-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천재의 얼굴, 숭고에서 상품으로
3월 26일, 1827년. 이날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가장 잘 알려진 베토벤의 얼굴은 요제프 칼 슈틸러가 그린 ‘베토벤 초상’이다. 이 초상은 단순한 인물화를 넘어, 낭만주의가 발명한 ‘천재 예술가’의 시각적 원형을 확립한 결정적 이미지다.
헝클어진 머리, 붉은 스카프, 손에 쥔 ‘미사 솔렘니스’(장엄 미사) 악보, 내면을 응시하는 시선. 슈틸러의 ‘베토벤’은 고독한 창조자이며, 초상은 외모의 기록을 넘어 ‘창조하는 정신’으로 형상화된다. 여기서 예술가는 장인을 넘어 시대와 불화하는 천재로 재정의된다. 낭만주의의 ‘숭고’는 이렇게 한 얼굴 속에 응축되었다. 160여 년 뒤, 이 얼굴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시 등장한다. 1987년, 앤디 워홀은 ‘베토벤’ 연작을 제작한다. 고독한 천재의 얼굴은 실크스크린으로 반복 인쇄돼 대량 복제의 표면 위에 놓인다. 슈틸러의 ‘베토벤’이 ‘내면의 깊이’를 드러낸다면, 워홀의 ‘베토벤’은 그 깊이를 없애고 ‘표면’만을 남긴다. 워홀은 낭만주의가 강조한 창조적 고통과 숭고를 형광색의 평면 속에서 차갑게 평준화한다.
칸트 이후 낭만주의가 말한 숭고는 인간이 자연의 압도적인 위력 앞에서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연을 초월하는 정신의 위엄을 자각하는 데 있었다. 슈틸러의 베토벤은 그러한 숭고를 응시와 표정, 고립된 분위기로 구현했다. 반면 워홀은 숭고를 해체한다. 반복과 색채 변형은 원본의 아우라를 약화시키고, 천재의 얼굴을 이미지의 네트워크 속으로 분산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발터 벤야민이 말한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을 떠올릴 수 있다. 벤야민에 따르면, 기술 복제는 원본 예술 작품이 지닌 ‘지금-여기’의 아우라를 약화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예술을 특정한 장소와 권위로부터 해방시켜 더 많은 대중이 쉬이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이를 통해 대중들의 감식력과 비판력이 성장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워홀의 실크스크린 복제 이미지는 벤야민의 논지와 접점을 가진다. 워홀의 실크스크린은 원본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무화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이미지를 더 널리 각인시킨다.
낭만주의는 예술가를 초월적 존재로 신화화했다. 반면, 워홀은 그 신화를 복제하고 반복함으로써 그 아우라를 훼손하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천재의 얼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로써 워홀은 자본주의를 비판하기보다 그 작동 방식을 극도로 투명하게 드러낸다. 반복은 그저 미학적 전략인 것이 아니라, 욕망이 끊임없이 복제되는 체제의 은유다. 결국 워홀은 천재를 신화화한 낭만주의의 이상을 무너뜨리면서도, 자본주의가 그 신화를 또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고 증식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숭고를 기억하는가, 아니면 이미지를 소비하는가?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3-25 [17:59]
-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봄의 문턱, 보는 방식의 재탄생: 세잔을 생각하다
3월 19일. 성모 마리아의 남편, 예수의 양부.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은 ‘침묵’의 성인, 그는 목수였다. 성 요셉의 축일에 폴 세잔을 떠올린다.
현대 회화의 개척자 세잔 역시 격렬한 선언도, 급진적 이론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당시 화단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 대신 고향 엑상프로방스에서, 묵묵한 노동처럼 같은 산과 사과와 탁자를 수없이 다시 그렸다.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말처럼, 마네가 회화의 ‘평면성’을 선언하면서 현대 회화의 출발점을 마련했다면, 세잔은 재현을 구조의 문제로 전환함으로써 이후 탈재현적 실험의 길을 열었다. 그전까지 회화의 과제는 캔버스 위의 대상이 실제‘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잔은 실제의 외형이 아니라, 실제가 지각 속에서 구성되는 방식을 그리고자 했다.
예컨대 식탁 위에 놓인 과일 바구니를 그리는 정물화에서 실제 우리 눈은 식탁과 그 위의 사물들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없다. 왼쪽을 주목하면 다른 쪽은 보이지 않고, 또 과일 바구니 안쪽을 보려면 과일 바구니에 가까이 가서 위에서 보아야 한다. 세잔의 정물화는 이렇게 위치 이동을 통해 ‘다시점’에서 포착된 대상을 한 캔버스에 모아둔 것이다.
회화의 목적은 더 이상 모방이 아니다. 자연은 모사의 대상이 아니라, 지각이 형성되는 장이 된다. 철학적으로 이 변화를 가장 섬세하게 읽어낸 이는 메를로-퐁티였다. 그는 〈세잔의 회의(의혹)〉에서 세잔의 회화를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지각의 현상학’으로 해석했다. 우리는 세계를 본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세계를 끊임없이 구성한다. 세잔의 화면은 그 구성의 과정을 드러낸다.
세잔의 그림은 완성된 사물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보는 중인 상태’를 남겨 둔다. 흔들리는 윤곽, 불안정한 원근, 색의 긴장 속에서, 관람자는 실제처럼 보이는 캔버스를 소비하는 대신 지각의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 회화는 눈앞의 풍경이 아니라, 보는 행위 자체를 사유하게 만드는 장이 된다. 그래서 세잔 이후의 회화는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은 더 이상 외부에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주체와 세계가 만나는 지각의 구조 속에서 생성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전통적 재현 회화의 화면이 세계를 하나의 중심 시점에 고정시켰다면, 세잔의 구조적 화면은 세계가 지각 속에서 끊임없이 구성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그의 위대함은 격정이 아니라 반복에 있고, 영감이 아니라 구축에 있다. 그는 자연을 모방하지 않았다. 대신 자연을 보는 방식을 해부했다.
3월 19일, 성 요셉의 침묵을 떠올리며 세잔을 생각한다. 그가 남긴 ‘보는 방식의 변화’는 현대미술 전체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현대 회화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오늘 우리가 세잔을 다시 읽는 이유도 여기 있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3-18 [18:00]
-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세계 여성의 날, 기억의 기념비
지난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이날은 1908년 뉴욕에서 1만 500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더 나은 근로조건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흐름을 국제적 의제로 끌어올린 인물이 독일의 사회주의 운동가 클라라 체트킨이다. 그녀는 1910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여성회의에서 여성의 참정권과 노동권을 요구하는 ‘국제 여성의 날’을 제안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러시아의 여성 노동자들은 ‘빵과 평화’를 외치며 대규모 파업 시위를 벌였다. 시위 4일 만에 차르가 폐위되었고, 여성들은 임시 정부로부터 투표권을 얻어냈다. 당시 시위가 시작된 날이 율리우스력으로 2월 23일(일)이었는데, 이날이 현재의 그레고리력으로 3월 8일이었다. 이후 3월 8일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여성의 정치적·사회적 권리를 요구하는 날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종종 여성의 날을 꽃과 축하의 이미지로 소비한다. 그러나 그 기원은 축제가 아니라 거리 행진, 구호, 피켓, 체포, 해고 등으로 점철된 투쟁이었다. 이처럼 여성의 권리는 인권과 마찬가지로 선물처럼 주어진 적이 없다. 그것은 끈질긴 집단적 행동의 결과였다. 주디 시카고의 ‘디너 파티’는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내 계보로 작성한 기념비적 설치 작품이다.
거대한 삼각 테이블 위에는 39인의 여성을 위한 식탁이 놓여 있고, 바닥에는 999명의 여성 이름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 39인의 여성은 신화와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여성 문명의 계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이슈타르로부터 흑인 여성 노예해방 운동가 소저너 트루스를 거쳐, 화가 조지아 오키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이 포함된다. 이들 모두는 각자의 시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역사 서술의 중심에서는 종종 밀려나 있었던 ‘여성’들이다. 그리고 바닥에 새겨진 999명의 여성 이름은 역사 속에서 업적을 남겼지만,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거나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을 상징한다.
이 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지워진 역사를 복권하는 작업이다. 시카고는 왕이나 장군, 남성 영웅을 내세우는 기념비의 형식을 전복시켜 식탁을 기념비로 만들었다. 권력의 동상이 아니라, 공동의 식사 자리를 통해 여성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였다. 또한 자수, 도자기, 직물처럼 ‘여성 공예’로 폄하되던 매체를 대형 설치 미술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이렇듯 ‘디너 파티’는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여성들의 ‘이름과 기억’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동시에 서구 중심적 여성 역사를 서술하는 1970년대 페미니즘의 한계를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들 이름을 복권한 최초의 기념비적 시도였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3-11 [18:03]
-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돌봄의 철학과 미학 - 인상주의 화가 메리 카사트
얼마 전 어느 신문 기사에 ‘황혼 육아’가 강력한 ‘치매 방패’라는 흥미로운 기사가 게재된 적이 있었다. 손주를 돌보는 일이 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좋은 활동이라는 해석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돌봄’(Sorge, cura)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실존적 근거로 해석했다(공병혜, 〈돌봄의 철학과 미학적 실천〉). 하이데거 연구자들은 하이데거의 ‘Sorge’를 ‘염려’와 함께 ‘돌봄’, ‘보살핌’으로 혼용해 사용한다. 돌봄은 주위 세계와 타자에 대한 배려로서 인간 현존재의 주요한 특성이다.
메리 카사트(1844~1926)의 그림에서 여인들은 아이를 안고, 바라보고, 살을 맞대고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극적인 서사도, 감정을 과장하는 몸짓도 없다. 이 ‘평범함’이 카사트 회화의 주제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이 평범함에서 카사트가 포착하는 것은 바로 돌봄이라는 행위 자체다. 인물 사이의 거리, 시선의 교차, 손의 위치와 긴장은 돌봄이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조율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카사트는 이를 서사로 설명하지 않고, 화면의 구조로 드러낸다.
미술사적으로 보아도 카사트의 의의는 충분하다. 그는 인상주의의 핵심 중 한 명이었지만, 이후 인상주의를 설명하는 미술사적 서사에서는 늘 뒤로 밀렸다. 모네의 빛, 르누아르의 색채, 드가의 형식 실험으로 미술사적 진보 서사가 만들어졌고, ‘가정, 돌봄, 여성의 일상’은 부차적 주제로 밀렸다. 그러나 카사트는 당시 인상주의에서조차 주변부로 취급된 삶의 영역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다. 그는 돌봄을 하나의 지속적인 실천, 즉 매 순간 주의를 기울이고 반응해야 하는 행위로 그렸다.
돌봄이 “인간을 인간답게 존재하게 하도록 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돌봄의 대상은 사람이며 또한 돌봄의 주체도 사람이다. 아이를 돌보고 노인을 돌보고 병자를 돌보는 행위, 돌봄은 현대 사회에서 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사회적 행위다. 이제 최근의 연구 성과는 노인이 손주를 돌보는 행위에서 나타나는, 신체뿐 아니라 인지적 차원에서의 긍정적 측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노인이 개인 가족 차원에서 수행하는 돌봄도 국가의 시스템 차원으로 편입해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속에서 돌봄은 더 풍부하고 유연한 사회적 실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카사트의 미학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의 작품은 돌봄을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으로 제시한다. 크지도 소란스럽지도 않은 그의 화면 속에는 분명한 확신이 담겨 있다. 돌봄은 부차적인 일이 아니라, 삶을 성립시키는 중심적인 행위라는 믿음이다. 카사트의 미학은 바로 이 믿음을 말이 아니라 그림으로 보여준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3-04 [18:12]
-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모든 규정은 부정이다 - 장미셸 바스키아와 무하마드 알리
헤겔은 스피노자의 말을 빌려, “모든 규정(規定)은 부정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무엇이라고 ‘규정’(Bestimmung)하는 것은 그것이 아닌 모든 다른 것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흑인’을 ‘어떠하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흑인을 그 규정 속에 가두는 것이 된다. 장미셸 바스키아와 무하마드 알리는 이러한 규정적 정체성을 거부한다.
1964년 2월 25일 세계 챔피언이 된 알리는 “나는 가장 위대하다”라고 외친다. 이 선언은 흑인을 ‘규정’해 온 세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후 그의 몸은 발언, 저항, 시대를 흔드는 이미지가 되었다. 베트남전 징병 거부는 그를 챔피언 자리에서 끌어내렸지만, 인간으로서의 위상은 오히려 높였다. 그는 링 위에서조차 정치적 존재로 남았다.
바스키아의 회화에는 언제나 균열이 있다. 거리에서 시작된 그의 그림은 미술관으로 들어왔지만, 미술관의 질서를 따르지 않았다. 그에게 캔버스는 투쟁의 링이었다. 그의 예술은 정체성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신을 ‘흑인 예술가’로 규정하는 언어를 경계했고, 그 언어가 자신을 이미 권력의 분류 체계 안으로 포획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의 화면이 끝없이 파열되고 중첩되는 이유는,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는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완결은 곧 규정이며, 규정은 곧 부정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에는 반복적으로 왕관, 해골, 해부학적 도식, 낙서 같은 텍스트가 등장한다. 이 기호는 특정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다. 왕관은 권위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불안정하고, 해골은 죽음을 가리키면서도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한다. 텍스트는 의미 전달이 아니라, 그 실패를 드러낸다. 단어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처럼 쓰였다가 지워지며, 끝내 확정되지 않는다. 이는 언어가 세계를 설명하기보다 세계를 분할하고 지배해 온 것에 대한 비판이다.
그의 회화는 헤겔적 의미에서의 ‘부정의 운동’에 가깝다. 그는 어떤 규정을 제시하지 않고,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를 무너뜨린다. 나치가 유대인의 몸을 측정하고 분류했던 것처럼, 흑인의 몸 역시 오랫동안 그러한 시선 아래 놓여 있었다. 바스키아는 ‘미술사에 편입된 흑인 예술가’가 아니라, 미술사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드러내는 존재였다.
바스키아와 알리는 자신을 규정하려는 세계에 맞서 “아니다”라고 말한다. 랑시에르의 말처럼 정체성은 스스로 선언될 때 정치적 가능성이 되지만, 타자에 의해 요구될 때는 쉽게 배제와 강제로 전환된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바스키아와 알리는 그 대신 질문을 뒤집는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질문이 뒤집히는 순간, 예술과 정치, 몸과 언어는 하나의 투쟁 장으로 겹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2-25 [18:09]
-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계엄의 시간, 예술이 기억하는 얼굴
2026년 2월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선고가 열리는 날이다. 판결은 어떻게 내려질 것이며, 정치권과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또한 훗날 역사는 이날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우리나라 비상계엄의 역사는 1948년 10월 21일 여순사건 당시 이승만 정권의 계엄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 4·19혁명 직전 이승만 정권은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계엄은 군사정권의 권력 장악 도구가 되었다. 1972년 유신체제 아래에서 계엄은 긴급조치와 더불어 사실상 상시적 통치 수단으로 기능했다. 1979년 10월 16일 부마민주항쟁 발발 후, 박정희는 10월 18일 0시 부산에 계엄령을, 20일 낮 12시 마산에 위수령을 선포했다. 1980년 5월 18일 0시 전두환은 전국 확대 계엄을 선포하고 광주 시민을 학살했다. 이 사건들은 계엄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장치로 작동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헤겔에 기대어 말했다. “위대한 세계사적 사실과 인물은 두 번 나타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 이는 브뤼메르 18일(1799년 11월 9일) 나폴레옹의 쿠데타와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친위 쿠데타를 지칭하는 것이었지만, 이 말은 대한민국의 2024년 12·3 내란 사건에도 해당하는 격언이 될 수 있다. 그 핵심 의미는 ‘반복’이 아니라, 권력이 과거의 권위를 빌릴 때, 역사는 소극(익살극)으로 전락한다는 경고였다. 비극은 피를 남겼고, 반복된 소극은 권력의 초라함을 폭로한다.
고야는 ‘1808년 5월 2일’에서 프랑스군에 소속된 북아프리카 출신 맘루크 기병을 앞세워 마드리드 시민과 충돌하는 나폴레옹 군대를 그렸고, ‘1808년 5월 3일’이라는 작품에서 나폴레옹 군대가 마드리드 시민을 처형하는 장면을 그렸다. 어둠 속에서 총을 겨눈 군인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체제의 장치처럼 묘사된다. 반면, 흰 셔츠를 입은 남자는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그런데 고야는 그의 손에 예수의 ‘성흔’을 연상시키는 상처를 그려 넣어 이 사람이 억압받는 순교자이자, 민중의 대변자처럼 묘사했다. 따라서 이 장면은 단순한 처형의 기록을 넘어, 권력의 폭력과 시민의 존엄이 충돌하는 순간을 응축한다. 이 그림은 ‘비극’의 순간을 기록하지만, 동시에 반복되는 권력의 ‘모방극’을 예고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얼굴 없는 권력은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는 총을 든 자가 아니라, 총을 마주한 자의 얼굴을 기억한다. 계엄의 시간 속에서도 훗날 역사와 예술이 주목하는 것은 권력의 명령이 아니라, 존엄한 시민의 얼굴일 것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2-18 [18:13]
-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예술은 어디까지 타인의 삶을 끌어안을 수 있는가?
르네 니콜 굿, 알렉스 프레티. 요 며칠 사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총격으로 사망한 미국 시민권자의 이름이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1957~1996)가 1990년 제작한 ‘무제(총에 의한 죽음)’는 미술관 바닥에 포스터 더미를 쌓아둔 작품이다. 관람객은 각 낱장의 포스터를 한 장씩 가져갈 수도 있다. 포스터에는 1989년 5월 1일부터 7일까지 단 일주일 동안 총격으로 사망한 460명의 이름, 나이, 지역, 사망 당시의 상황이 짧게 기록돼 있다. 이 작품의 각각은 고인의 사진 이미지로 구성된 낱장의 포스터들이다. 이 낱장의 포스터는 관객이 가져가도록 유도되며, 다시 보충된다.
‘관계 미학’의 이론가 니콜라 부리오는 이 작품을 ‘관계 미술’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언급한다. 이 작품은 관객이 포스터를 가져가는 참여 행위를 통해 완성된다. 부리오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이 무엇을 재현하는가가 아니라, 작품이 어떤 관계의 장을 생성하는가이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작품을 유통시키는 참여자가 된다. 관객은 포스터를 읽고, 접어 가방에 넣고, 집에 가져가 벽에 붙이거나 누군가에게 건넨다. 이때 작품은 전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공간으로 확산된다. 부리오의 말대로, 이것은 과정의 기록이 아니라 “관객 속에서 현전하는 형식”을 가진 예술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윤리적 긴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포스터 속 이름들은 통계가 아니라 실제 삶의 흔적이다. 익명의 숫자로 소비되던 총기 사망자들이 다시 개별적 존재로 호명되는 순간, 관객은 불편한 질문과 마주한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고 소비하는가. 예술은 어디까지 타인의 고통을 매개로 삼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오늘날 더욱 절박하게 제기된다. 미국에서는 학교, 쇼핑몰, 거리에서 총격 사건이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있고, 최근 이민 단속 과정에서 발생한 총격 사망자들 역시 연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보도의 초점은 대개 사건의 경과와 책임 공방, 정책 논쟁에 맞춰진다. 속보와 후속 기사들이 이어지는 동안 개인의 서사는 정치적 쟁점에 흡수되어 잊힌다. 남는 것은 숫자와 사건 코드뿐이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이 1990년에 던졌던 질문은, 2020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더욱 절실하다.
관계 미술은 사회적 관계의 구조를 가시화하는 미학이다. ‘무제(총에 의한 죽음)’에서 관객은 포스터를 가져가는 순간, 타인의 죽음 속에 들어있는 서사를 소유하는 자가 된다. 동시에 그 기억을 전달할 책임을 떠안는다. 작품은 관객에게 감동이 아니라 윤리적 책임을 건넨다. 이 책임이야말로 관계 미학이 말하는 사회적 접촉의 실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2-11 [18:09]
-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배제의 국경, 예술이 마주한 얼굴
1917년 2월 5일, 미국 의회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시하고 ‘이민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무엇보다 아시아·태평양계 이민을 차단하며 국가가 인종과 계급에 따라 이동의 권리를 선별할 수 있음을 제도화한 사건이었다. 국가가 나서 제도적 차별을 국가 정책으로 공식화한 순간이었다. 현재도 이 논리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 결과는 국경에서, 그리고 미국 내에서도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의한 시민들의 반복되는 죽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관용 원칙과 국경 장벽 건설, 가족 분리 정책을 통해, 이민을 범죄화하고 이주민을 위협 대상으로 고착시켰다. 단속은 강화되었고, 국경은 더 이상 국가의 경계선이 아니라, 죽음을 생산하는 정치적 장치가 되었다.
이 폭력의 역사는 예술 안에서 기억되고 있다. 멕시코 출신 작가 테레사 마르골레스는 1990년대 멕시코시티에서 검시관으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시체의 삶’을 공공 공간에서 급진적으로 가시화하는 퍼포먼스, 조각 오브제, 사진 연작을 제작해 왔다. 그녀는 국경을 넘다 사망한 이주민의 현장에서 채취한 물과 흙, 섬유를 사용해 설치 작업을 만든다. 예컨대 시신을 씻는 데 사용되었던 물을 증발시켜 하얀 전시장 공간을 짙은 안개로 채우거나, 멕시코-미국 국경의 살인 사건에서 나온 피로 얼룩진 깃발을 베니스 비엔날레의 팔라초 로타-이반치치 외벽에 거는 식으로, 마르골레스는 규범적 경계를 넘어 관객의 주의를 환기하고 책임을 묻는다.
그녀의 작품은 직접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지만, 관객은 그 공간 안에서 이미 사라진 몸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예술은 사건을 재현하는 대신, 죽음이 남긴 감각적 잔여를 통해 침묵의 증언을 수행한다.
그녀의 작품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국경에서의 죽음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정책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위험한 것은 사막이 아니라, 합법적 이동 경로를 차단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죽음은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조건 속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국가는 이를 ‘불법 이주자의 위험한 선택’으로 설명하며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트럼프 시기의 이민 담론은 이 전가의 논리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이주민은 범죄자, 침입자, 위협이라는 언어로 묘사되었고, 국경의 폭력은 정당한 방어 행위로 포장되었다. 그러나 예술이 보여주는 것은 정반대의 현실이다. 국경은 방어선이 아니라 분리의 기계이며, 보호가 아니라 배제를 실행하는 장치다.
1917년의 이민법이 그랬듯, 트럼프 시대의 이민 정책이 남긴 것은 장벽만이 아니라 수많은 무덤 없는 죽음들이다. 그리고 예술은 그 무덤이 되기를 거부하고, 대신 기억의 장소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 선택이야말로 오늘날 미학이 정치와 만나는 가장 절박한 지점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2-04 [18:01]
-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소멸의 풍경과 생성의 회화 - 유현욱의 가덕도 프로젝트
가덕도. 개발과 생태가 충돌하는 경계의 장소. 신공항 건설은 망국적인 ‘서울공화국’을 넘어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을 취한다. 거부하기 쉽지 않은 명분으로 진행되는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 아래,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해안 숲과 동백나무 군락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이 소멸의 현장에서 유현욱의 회화는 시작된다. 그의 작업은 풍경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생명의 시간을 기록하는 행위에 가깝다.
그는 이념적 논쟁의 현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대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경제적 효과가 불분명한 개발’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생명·생태 파괴’를 예술의 언어로 포착한다. 꽃과 나무, 풀과 숲, 그 미세한 생명들의 숨결을 기억하고자 하는 그의 행위는 개발의 논리가 삼켜버린 세계를 되살리려는 예술가의 윤리적 응시이다. 그것이 유현욱의 가덕도 프로젝트의 단순하고도 명확한 이유이다. 그는 동백, 감잎, 마삭풀, 고사리, 개모시풀 등 해안 식물들을 직접 채집해 말리고, 삶고, 침전시켜 안료를 만든다. 이 안료는 단지 색의 재료가 아니라, 시간과 생명의 잔존물이며 사라지는 자연의 육체 그 자체다. 이 안료들로 그린 그림은 모두 꽃잎의 분말과 잎의 섬유, 그리고 작가의 손길이 서로 스며든 생태적 회화의 층이다. 그는 이 섬에서 채취한 안료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그림을 그린다. 여러 작품 가운데 하나만 소개하기로 한다.
그의 ‘사라지는 붉은 섬’은 동백 숲의 동백 꽃잎을 다듬고, 삶고, 침전시켜 얻은 재료로 그린 그림이다. 유현욱의 그림에서 숲은 단일한 풍경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그는 가덕도의 동백 숲을 다시점적 구조 속에서 해체하고, 수많은 점의 집합으로 재구성한다. 원근법적 시선이 배제된 화면에서 숲의 안과 밖, 시간과 공간, 생성과 소멸은 서로 스며든다. 산업사회가 끊어 놓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잇는, ‘살아 있는 물질로 그린 풍경’이다.
가덕도의 동백은 이제 물감이 되어 다시 피어난다. 그림은 붉은 잎사귀처럼, 사라지면서도 살아나는 생명의 형상이다. 개발의 논리 속에서 지워지는 풍경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생명들의 기억을 소환하는 기록을 남기는 일, 그것이 유현욱이 선택한 예술의 윤리다. 작가가 손수 만든 식물 안료의 발색은 약하고,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랜다. 그러나 그는 그 불안정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시간의 흔적이자 생명의 증거로 받아들인다.
예술은 세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사라지는 것을 기억하게 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제나 생성의 다른 이름이다. 유현욱의 가덕도 프로젝트는 소멸의 풍경 위에 피어나는, 느리고 조용한 생성의 회화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1-28 [18:03]
-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트럼프 시대, 욕망의 정치와 이미지의 저항
미술은 언제부터 저항의 얼굴을 갖게 되었을까. 권력이 언어와 무력을 독점하고, 자신의 욕망을 세계의 질서로 포장하려 할 때, 미술은 늘 그 바깥에서 다른 언어를 만들어왔다.
오늘의 세계는 다시 한번 노골적인 제국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트럼프의 정치가 보여주는 것은 합의와 조율의 정치가 아니라, 힘의 과시, 거래의 논리, 그리고 지배 욕망의 공개적 표출이다. 동맹은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압박의 대상이 되고, 국제법이 아니라 트럼프 왈(曰) 자신의 ‘도덕성’이 행위의 근거가 된다.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를 내세운 경제 제재와 군사 위협, 자원을 둘러싼 거래의 밑바탕에는 세계를 소유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의 정치가 놓여 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납치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군사적 행동에도 스스럼없이 석유 통제권이라는 욕망을 표출한다. 이는 트럼프 때문에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드러나지만, 실제로는 제국이 자신의 영향권을 확대하려는 오래된 충동의 반복이다.
이처럼 권력이 욕망을 숨기지 않을수록, 언어는 거칠고 단순해진다. 적과 동지, 승자와 패자, 복종과 제재라는 이분법만이 남는다. 그러나 미술은 바로 그 단순화에 저항해 왔다. 미술이 저항의 언어가 되는 것은 권력이 숨기고 우리가 너무 쉽게 믿어버린 세계의 구도를 흔들기 위해서이다. 반제국주의 미술은 승리를 그리지 않는다. 대신 상처를 드러내고, 침묵 속으로 밀려난 존재들을 다시 호출하며, 힘의 논리가 가려버린 감각을 복원하고자 한다. 그것은 선동이 아니라 기억의 정치에 가깝다.
20세기 초중반, 제국주의와 전쟁이 노골화되던 시기에 미술은 결정적인 전환을 맞는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제국주의의 포악한 폭력 그 자체의 얼굴을 남겼고,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는 자본과 노동, 착취와 저항의 구조를 공공 공간에 새겼다. 미술은 언제나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승자의 언어가 아니라 패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동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저항은 일상적인 장면 속으로 스며든다. 마사 로슬러의 포토몽타주 작업에서 전쟁은 거실의 소파와 잡지, 안락한 실내 공간 속으로 침입한다. 편안히 몸을 뉜 실내의 여자와 폐허 속을 수색하는 병사들이 겹치는 이미지는 전쟁이 우리의 일상과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시각적으로 폭로하는 것이다.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듯, 저항은 이제 구호의 정치가 아니라 감각의 재배치가 된다. 트럼프식 정치가 세계를 거래 가능한 숫자와 힘의 크기로 환원할수록, 로슬러의 이미지는 그 이면에 숨겨진 안락함의 공모, 욕망의 윤리적 책임, 지워진 타인의 얼굴을 다시 감각하게 만든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1-21 [17:55]
-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죽음 이후에 남는 힘… 1월 15일의 이야기
1월 15일. 1919년 이날,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 베를린에서 살해되었다. 혁명 직후의 혼란 속에서 사회민주당 정부는 우익 민병대 ‘자유군단’을 활용했고, 그녀는 체포되어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얻어맞고 확인 사살된 뒤, 베를린 란트베어 운하에 던져졌다. 국가는 폭력의 뒤에 숨어, 그 폭력이 작동하게 하는 조건과 구조를 구축했다.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의 죽음도 다르지 않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자행된 고문은 개인의 일탈이나 과잉이 아니라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진 조직된 살해였다. 그리고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다음 날의 발표는 폭력을 은폐한 국가의 언어였다. 그러나 진실을 지우려는 권력의 시도는 죽음을 은폐하지 못했고, 오히려 평범한 시민들에게까지 분노가 확산되게 만들었다. 두 죽음 사이에는 68년의 시간과 대륙의 거리가 놓여 있지만, 질문은 하나다. 죽음은 어떻게 확산되어 역사를 바꾸는가?
부산민주공원의 ‘민주항쟁도’는 이 확산의 형상을 담는다. 이 그림에는 주인공이 없다. 박종철을 포함하여 누구도 중심이 아니다. 대신 연결된 몸들, 이어지는 사건들, 반복되는 저항의 장면들이 있다. 하나의 죽음은 고립되지 않고, 공동의 감각으로 번져간다.
안토니오 네그리는 이를 ‘공통체’(共通体, the common)의 생성이라 부른다. ‘공통체’는 국가나 제도가 부여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억압과 폭력에 맞서 사람들이 경험·분노·언어·기억을 공유하며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생산하는 과정 자체다. 로자의 시신은 운하에 가라앉았지만, 그녀의 사유는 노동자와 민중 사이에서 살아남았다. 로자가 살해되기 전날 남긴 “나는 있었다, 나는 있다, 나는 있을 것이다”라는 문장은 개인을 넘어서, 역사적 주체의 지속을 선언한 말이었다. 그녀에게 민주주의는 노동자와 민중이 스스로 사고하고 조직하며, 권력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이었다. 그녀에게 “자유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이며, 민주주의는 무엇을 성취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억압하지 않았는가로 평가되어야 했다. 박종철의 죽음 역시 개인의 비극을 넘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공통의 언어가 되었다.
‘민주항쟁도’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 이후에 형성된 공통의 감각을 다시 배열하고, 관람자를 그 안으로 끌어들인다. 우리는 이 그림 앞에서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공통체’의 일부가 된다.
1월 15일, 이날은 한 개인의 죽음이 어떻게 다시 공통의 힘으로 전환되는지를 묻는 날이다. ‘민주항쟁도’를 보면서 우리는 느낀다. 죽음은 개인을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죽음을 계기로 형성된 공통의 경험과 연대의 흐름까지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1-14 [17:59]
-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허용된 예술, 관리되는 자유
예술은 자유로운가? 짧게 답하자면, 그랬던 적은 거의 없다. 그 대신 예술은 늘 허용되어 왔다. 그리고 허용은 언제나 조건을 동반한다. 칸트 또는 근대 이후 미술은 스스로를 자율적 영역으로 규정해 왔다. 진리 인식과 도덕으로부터, 나아가 정치·종교로부터 독립한 공간. 이 자율성은 예술을 보호하는 방패였지만, 동시에 예술을 관리 가능한 대상으로 만드는 장치이기도 했다. 미술관은 그 장치의 가장 정교한 제도적 형태다. 전시장 안에 들어오는 순간, 작품은 위험한 발화자에서 ‘해석 가능한 대상’으로 바뀐다. 예술은 비판할 수 있지만, 체제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1990년대 영국에서 등장한 YBAs(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Young British Artists)는 이 균형을 노골적으로 흔들었다. 형식의 새로움보다 삶의 노출을 선택했고, 은유 대신 직접성을 택했다. 동물의 사체, 훼손된 신체, 피, 개인의 상처 등 혐오스러운 재료로 이루어진 작품을 직접 전시했다. 이들은 제도 안으로 들어가 미술관뿐 아니라, 시장과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트레이시 에민은 그 결정적 사례 중 하나이다. 우울증, 성 경험, 중독, 자해의 기억을 가공하지 않은 채 드러내는 그녀의 작품은 윤리적 불편함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노출은 고백처럼 보이나, 위로나 치유의 서사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나의 침대’는 이 불편함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녀의 침대가 전시장에 놓이는 순간, 그것은 개인을 넘어 보통의 인간이 겪은 삶의 잔해로 확대된다. 담배, 재떨이, 술, 피임약, 콘돔, 강아지 인형 등 일상용품이 어지럽게 널린 흔적은 개인의 상징이 아니라 어느 정도 고통에 찌든 삶의 증거에 가깝다. 이 장면은 테리 스미스가 말하듯(〈Contemporary Art. World Currents〉), “개별 예술가들의 타인 및 세대, 나아가 세계를 통한 공감 및 교감”, 더 쉽게 말해 “사적인 개인의 삶을 드러냄으로써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21세기 동시대 미술의 한 흐름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부터 예술의 자유는 관리되기 시작한다. 제도는 예술을 직접 금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예술이 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거나,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면 다시 통제의 대상이 된다. 이때 통제는 노골적인 금지가 아니라, 오히려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덧붙이며, 교육 프로그램이나 시장의 언어로 감싸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위험해 보이는 작품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 사례’로 설명되고, 급진적인 태도는 ‘한 시대의 스타일’로 정리된다. 예술이 완전히 금지되면 침묵이 된다. 반대로 모든 것이 허용되면 예술은 장식으로 전락한다. 말하자면, 제도는 예술을 허용한다. 그러나 예술은 그 허용의 울타리를 넘어서고자 할 때에만 살아 움직이는 것이며, 전복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2026-01-07 [18:05]
-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걸음마의 미학: 반 고흐가 밀레에게서 발견한 '인간의 첫 제스처'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 속에는 언제나 복합적 감정이 응축되어 있다. 반 고흐는 밀레의 ‘첫걸음’을 다시 그렸다. 물감 자국이 선명한 붓질은 강렬하고 생동감이 있다. 화면 전체에 흘러넘치는 곡선과 흔들리는 붓의 결은 그가 포착하는 세계가 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물러나며 감각의 층위를 흔드는 장(場)임을 말해준다. 여기서 가족의 작은 정원은 아이에게 첫 무대이자, 삶 전체를 압축한 축소판이다. 이곳에서 아이는 수없이 반복해야 할 ‘작은 발걸음’을 처음 시도한다.
그림 속 부모는 환대와 돌봄의 제스처를 보여준다. 아빠는 무릎을 굽혀 몸을 낮추고 팔을 넓게 벌린 채 아이를 기다린다. 반면 엄마는 아이의 몸을 살짝 받쳐주며, 균형을 유지할 최소한의 힘만 제공한다. 이는 보호와 자율의 섬세한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돌봄의 기술’(art)에 가깝다. 이를 바탕으로 아이는 불안하고 흔들리는 첫걸음임에도 손을 뻗는다.
반 고흐는 밀레의 장면에서 노동의 고단함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맺는 가장 근원적인 관계, 즉 돌봄과 의지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여기서 걸음마는 한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 인간 사이의 첫 신뢰 관계가 형성되는 순간이다. 반 고흐는 밀레의 장면에 자신의 색과 감정을 불어넣는다. 초록의 울렁이는 색면, 노란 땅의 따스함, 파란 옷이 가진 고요한 안정감, 모든 색은 빛을 머금은 듯한 울림을 내뿜으며 아이의 첫 발걸음을 축복한다. 특히 아버지의 몸짓에서 느껴지는 앞선 이의 기다림, 허리 굽혀 아이를 감싸는 어머니의 자세에서 보이는 보호의 에너지 등은 반 고흐 특유의 정서적 깊이가 만들어 낸 것이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장면은 감각을 통해 지각하기 이전에 우리 몸에 떨림이 발생하는 정동(affect)의 사건이다.
반 고흐의 ‘첫걸음’은 새해를 맞아 ‘처음’이라는 말의 무게와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가장 단순한 몸짓인 걸음마는 결국 우리가 평생 반복하는 행위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또다시 발을 내딛는 행위.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매번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
이 지점에서 니체의 말을 떠올린다. “삶에 ‘왜’가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딜 수 있다.” 우리가 새해마다 다시 첫걸음을 내딛는 힘은 바로 그 ‘왜’에 관한 감각, 누군가의 기다림, 세계의 환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2026년, 우리의 첫걸음도 이 그림 속 아이처럼 떨림과 용기를 품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서로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따뜻한 손짓이 더해지기를 바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12-31 [18:04]
-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경계의 바다-아이 웨이웨이와 난민의 얼굴
12월 18일은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수많은 사람이 전쟁과 폭력, 빈곤을 피해 국경을 넘어 떠난다. 그러나 그 길은 언제나 위험으로 가득하다. 지중해의 검은 파도 위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흔적은 뉴스의 숫자로 남지만, 인간의 얼굴은 사라진다. 이 날은 바로 그 잊힌 얼굴들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역사는 완전한 서사가 아니라, 파편 속에서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진실의 섬광(Aufblitzen)을 포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진실은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부서진 세계 속에서 잠시 빛나는 인간의 존엄이었다. 역사는 거대한 서사보다, 파편처럼 흩어진 기억 속에서 더 깊은 진실을 드러낸다. 난민의 이름 없는 몸, 그 무수한 파편들 속에서 인류의 윤리가 깨어난다.
아이 웨이웨이는 이 시대의 ‘경계의 예술가’다. 그는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 말할 수 없는 자들의 현실을 예술로 증언한다. ‘Law of the Journey’(2017)는 체코 프라하 국립갤러리에 설치된 길이 70m의 검은 고무보트와 300명의 난민 조각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작품이다. 검은 보트 위에 서로 기대어 앉은 인물들은 모두 무표정의 익명이다. 그 얼굴에서 우리는 인간의 보편적 고통을 본다.
아이 웨이웨이의 작업 방식은 벤야민이 말한 ‘파편의 미학’ 그 자체다. 그는 완전한 내러티브를 거부하고, 부서진 현실의 단편들을 배치해 비극의 구조를 드러낸다. 고무보트, 구명조끼, 난민의 잔해 같은 오브제들은 모두 ‘진실의 섬광’을 담는 매개체다.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은 바로 그 섬광의 형태로, 잊힌 자들의 목소리를 현재로 소환한다.
이 작품은 유럽의 난민 위기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인류 전체의 초상이다. 보트는 구원의 상징이자 절망의 무덤이다. 수많은 난민이 이와 같은 고무보트로 바다를 건넜고, 그중 많은 이들이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아이 웨이웨이는 그들의 흔적을 차갑고 거대한 형상으로 되살린다. 벤야민의 말처럼, 진실은 완전한 이야기 속이 아니라 파편 속에서 번쩍인다. 이 거대한 보트 위의 사람들은 파편처럼 흩어진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그 침묵 속에서 인류의 진실이 섬광처럼 드러난다. 예술은 그 섬광을 붙잡는 행위이며, 인간의 부재를 통해 인간을 증언하는 일이다.
세계 이주민의 날, 우리는 이 거대한 검은 보트를 떠올린다. 그것은 타인의 배가 아니라, 곧 우리의 배이기도 하다. 경계와 국적의 이름으로 갈라진 세계 속에서, 조르주 아감벤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난민이다. 그는 외친다. “내가, 우리가, 바로 난민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12-17 [18:04]
-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파편의 시선-다다의 포토몽타주와 브레히트의 생소화 효과
전쟁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 겨울의 초입, 인간의 이성은 여전히 시험대 위에 있다. 2025년 끝자락에서 우리는 기술의 속도에 비해 감정의 성숙이 더디고, 혐오와 폭력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다이스트들은 한 세기 전, 비슷한 질문 앞에 섰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 태어난 그들은 아름다움보다 진실을 택했다. 세상과 문명의 파괴에 직면해, 그들은 그 파편들을 붙잡아 새로운 예술로 만들었다.
다다의 포토몽타주는 그런 절망의 시대가 낳은 급진적 시각 언어였다. 몽타주는 오려서 편집하는 기법이다. 신문과 잡지에서 잘라낸 얼굴과 문장, 병사의 팔다리, 광고 문구, 기계 부품 같은 조각들이 서로의 경계를 찢으며 낯선 충돌을 일으킨다. 이 이미지들은 조화로운 구성보다 균열과 단절의 리듬으로 세계의 불합리를 폭로했다. 한 장의 포토몽타주 안에는 파편화된 인간, 산업화된 전쟁, 그리고 언론의 선전이 뒤엉켜 있었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언어로는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다다는 해체를 통해 진실을 말하려 했다.
브레히트의 ‘생소화 효과’(Verfremdungseffekt)는 이러한 다다의 실험을 연극의 언어로 옮긴 철학적 장치였다. 그는 관객이 무대 속 인물에 감정이입해 현실을 잊어버리는 것을 경계했다. 극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되면, 비판적 사고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로 완전히 변신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인물을 ‘보여준다’. 관객은 몰입 대신 사유하도록, 감동 대신 판단하도록 요구받는다. 무대는 현실을 재현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구조를 드러내는 공간이 된다.
다다의 포토몽타주와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모두 감정의 이완 대신 인식의 긴장을 불러오는 예술이다. 하나는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다른 하나는 서사의 단절을 통해 세계의 이면을 드러낸다. 다다의 예술가가 신문과 광고의 파편을 붙여 현실의 위선을 폭로했다면, 브레히트는 연극의 장면과 장면 사이에 틈을 내어 그 속의 사회적 모순을 드러냈다. 둘 다 예술의 목적을 감동이 아니라 각성에 두었다.
오늘, 다시 불안과 분열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들의 예술은 묻는다. “당신은 지금 보고 있는 세계를 얼마나 낯설게 바라보고 있는가?” 다다가 현실을 해체함으로써 세계의 불합리를 드러냈듯, 브레히트는 무대의 환상을 해체함으로써 인간의 이성을 일깨웠다. 그들의 예술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불편함을 통해 진실에 다가간다. 낯섦을 견디는 순간, 우리는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오래된 혁명이다.
2025-12-03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