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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아닌 숲을 봤더니… ‘슬세권’ 부산 문화 드러났다 [新 문화지리지-2022 부산 재발견]
9월 20일 ‘미술관 옆 화랑’을 시작으로 12월 27일 ‘부산의 축제’에 이르기까지 15편을 연재한 부산문화재단 공동기획 ‘新문화지리지-2022 부산 재발견’이 마침표를 찍었다. 입에 단내가 나도록 수십 수백 곳에 전화를 돌리고, 발로 뛰며 부산 문화의 현주소를 확인한 결과물이다. 문화 지도에 표시된 점 하나도 허투루 찍지 않았다. 맞춤형 자료가 존재하지 않으니 매번 맨땅에 새로 지도를 그려 나가는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문학 속 부산’처럼 오래된 기억과 흩어진 자료를 지도라는 장소에 구현하다 보니 지도로 표현할 수 없는 것도 많아 아쉬웠다.
2009년 시즌1 때와는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문화 환경이 달라졌다. 발로 쓴 15편의 ‘新문화지리지 시즌2’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슬리퍼 신고 손쉽게 갈 수 있는 ‘슬세권’ 문화의 재발견이다. ‘크고 강한’ 문화가 아니라 일상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접근성 좋고 문턱 낮은 ‘작은 문화’가 꿋꿋하게 생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갤러리 카페의 확산은 미술을 시민 일상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시즌1에선 없던 생활밀착형 문화공간인 21곳의 생활문화센터는 시민 문화놀이터 가능성을 보여 준다. 지역 문화 실핏줄인 하우스콘서트홀에선 자체 관객 DB 구축과 꾸준한 기획 공연으로 일상에 음악이 흐르게 했다. 동네 책방은 책방의 개성을 살린 북큐레이션과 독서·영화 모임으로 골목 문화의 다양성을 채우는 소중한 인프라였다.
생존은 절박한 화두였다. 부업을 해야 근근이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는 공연장,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정기간행물 제작자를 만나며 영혼까지 끌어모아야 하는 현실에 먹먹했다. 상대적으로 척박한 부산 문화 환경은 역설적으로 개성 있는 문화를 일구는 촉매가 됐다. “경쟁이 치열한 서울에선 인기를 얻기 위해 트렌드를 쫓아간다면 부산에선 뮤지션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어 개성적인 음악이 탄생할 수 있다”는 인디신이 대표적인 사례다. 온라인 플랫폼 홍수 속에서 연극 비평이나 일러스트처럼 전문적인 내공에 집중한 오프라인 미디어 생태계의 생존 전략도 돋보였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덕이 크지만 BIFF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영화도시 부산’에선 40여 개의 크고 작은 영화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개성 있는 플랫폼으로 영화를 틀고 있었다.
문화 지원의 경직성은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아쉬움이었다. 대학 무용학과가 잇따라 문을 닫고 동인 춤판이 힘을 잃어가는 무용계에선 천편일률적인 지원 정책 탈피를 주문했다. 연간 100회 이상 공연을 해도 공연장 지원 사업에서 배제되는 라이브클럽을 보면서 장르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기준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신석기 시대 공동묘지였던 가덕도 장항유적에 기껏 홍보공원을 만들고도 잡초만 무성하게 방치한 행정 당국의 태도도 아쉬움을 자아냈다. 자칫 부산이 기억을 상실한 도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뒤따랐다.
매번 문화 지도를 그릴 때마다 문화 시설 불균형은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해운대 집중에서 수영구와 원도심으로 확장되는 모습은 보이지만 여전히 화랑은 남·수영·해운대에 몰려 있고, 소극장은 범일동-대연동-광안동-남천동-연산동의 도시철도 역세권에 많았다. 소위 동부산권에 문화 시설이 집중적으로 찍혔다. 부산현대미술관, 부산도서관, 부산국회도서관을 비롯한 대형 문화공간이 서부산권에 들어섰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기사에 대한 반향은 즉각적이었다. 연극인들조차 현장에서도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 됐다는 말을 전했다. 해운대구청에선 해운대구만 따로 떼서 기획시리즈를 만들 작정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문화 격차 해소에 행정당국의 노력을 당부하는 시의원의 질의도 뒤따랐다. 아카이브 구축과 더 세분화한 추가 문화지도 제작을 비롯한 후속 보도를 제안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출판 문화에 대한 점검, 과거와의 흐름 속에서 이후 맥락을 짚어 주는 기획에 대한 주문도 뒤따랐다.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도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행정적 뒷받침을 할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별취재팀=이상헌 선임기자 ttong@busan.com
2022-12-2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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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와 딴판으로… 장소와 시간만 다른 판박이 축제들 [新 문화지리지-2022 부산 재발견] 15.
‘新문화지리지-2022 부산 재발견’은 2009년 시즌1과 비교해 달라진 부산 문화 풍경을 담아내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취재 꼭지마다 상전벽해의 변화 앞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부산의 축제는 오히려 그렇지 못해서 놀랐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로 민선 단체장 시대가 열리고 동시에 국제 규모의 문화 행사가 늘어나면서 축제의 시대가 본격화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은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그 후 정체 구간에 든 듯, 특이성과 차별성을 갖지 못하면서 부산 축제 전반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았고, 변화보다는 안전하게 축제를 개최할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개선 목소리는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취재 중에 만난 한 축제 전문가는 “일부 구·군 단위 축제 중에는 다른 지자체 축제를 컨트롤 C, 컨트롤 V 하면서 약간의 양념만 치는 식으로 무한 복제가 이루어졌다”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그 전문가는 “축제를 없애자는 말은 아니다. 축제는 더 커지고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부산의 축제 이대로 좋은지 열두 달 축제 현황과 함께 과제를 짚어 본다.
■10월 개최 최다·관(官) 주도 여전
먼저 부산의 축제 현황은 일정 기간(2일 이상) 지역 주민, 지역 단체, 지방 정부가 개최하며, 불특정 다수인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관광예술축제(문화관광 축제·특산물 축제·문화예술제·일반 축제)로 한정했다. 특정 계층이 중심이 되는 행사(경연대회, 가요제, 미술제, 연극제, 기념식, 시상식 등)나 경로잔치 같은 단순 주민 위안 행사, 순수 예술 행사(음악회, 전시회 등), 기타 종합적인 축제로서 성격이 약한 행사(학술행사, 국제회의, 시민의날, 엑스포, 박람회, 패션쇼 등)는 제외했다. 그러고 나니 51개로 집계됐다. 시즌1의 57개(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 등 포함)와 큰 차이가 없다.
시즌1 당시 문제점으로 지적한 특정 달 10월에 개최하는 축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은 여전했다. 당시엔 17개였는데 올해는 19개로 더 늘었다. 관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 역시 마찬가지다. 관 주도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만큼 변화의 폭이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축제야말로 해마다 바뀌는 트렌드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해의 이슈를 즉시 반영하는 것인데 변화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구청장 좋아하는 가수 불러 주세요!”
더 큰 문제는 구·군 단위에서 축제 전문가를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구청장뿐 아니라 담당자마저 자주 바뀌는 구조에서 전문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매년 해 오던 결과물에다 현 지자체장의 의지라든가 선호도를 반영하는 방식이 되고 만다.
올해 A 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새로 취임한 B 구청장은 코로나19로 중단했던 지역 축제를 3년 만에 대면으로 개최했다. 이 축제는 구 단위에서 개최하지만 운영 전담조직(축제조직위원회)도 있었고, 부산시 우수 축제에 선정될 만큼 나름 탄탄한 입지를 자랑했다. 하지만 B 구청장은 축제조직위원회를 하루아침에 해체하고, 문화예술과에 축제 업무 전반을 맡을 것을 지시했다. 실제 행사 운영이야 입찰 과정을 거친 대행사가 맡았지만, 관 주도 축제 특성상 하나부터 열까지 최종 결정은 구청에서 해야 하는데 축제 전문가도 아닌 공무원이 처음으로 맡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 심지어 개막식 무대에 세울 초청 가수를 섭외하는 과정에 구청 직원은 “우리 구청장이 좋아하는 이 가수 꼭 좀 넣어 주세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더란다.
■경제 활성화·지역 이미지 제고 순기능
그런데도 축제는 필요한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해 보자. 흔히 축제는 종합예술이자 종합문화라고 한다. 문화산업의 자양분이라고 할 수 있는 각종 공연과 체험, 놀이, 전통 계승이 축제의 기능에 포함돼 있다. 정체성이 뚜렷한 몇몇 축제는 부산을 넘어 한국의 대표 브랜드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요즘은 지역 축제가 경제 활성화나 지역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도 효과를 발휘한다.
역기능이나 단점도 있다. 주민과 공무원 강제 동원 문제뿐 아니라 일회성 이벤트성 행사가 될수록 경제적·시간적 낭비를 할 수 있다. 또 무분별한 행사 개최를 하다 보면 점차 획일화한다. 규모 늘리기에만 치중하거나 과도한 관광 상품화를 좇다 보면 축제 정신이 결여될 수 있다.
■민간 영역 더 열고 변화 시도해야
전문가 조언을 구하기 위해 축제 관련 일을 하는 이들에게 물었다. 관 주도를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구체적으로는 축제가 관의 정책을 뽐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점과 궁극적으로는 주민이 즐기고 거기에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방식의 축제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처럼 관에서 지원은 하되 민간(BIFF)에서 협찬 확보 등으로 규모를 키우고 프로그래밍 전권을 갖고 운영하는 방식이 되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민간 주도에 총량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예를 들면 부산바다축제 예산이 7억 원가량인데, 7억짜리 행사를 하면 민간의 의지가 전혀 들어갈 수 없지만, 기본 예산 7억으로 70억짜리 행사를 만든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록페스티벌만 하더라도 시장이 원하는 밴드를 부르는 게 아니라 일반인이 원하는 밴드를 부르니까 사람들이 지갑을 열고 티켓을 산다고도 했다.
결국 민간이 원하고, 민간이 즐기는 축제로 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시선으로 새로운 축제, 새로운 문화적 행위, 더 나아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개발해야 민간 기업 참여가 늘 것이고, 민간인이 찾아와 소비할 것이며, 그래야만 살아 움직이는 축제가 되어 지속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축제도 중장기 비전이나 로드맵 그려야
부산의 축제 지형 전반에 대한 고민과 생태계 변화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월별 개최 분산의 문제만은 아니다. 아직은 관이 주도하는 축제가 많은 만큼 축제 전반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이를 개선해 나가기 위한 중장기적인 비전이나 로드맵을 그릴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행사 하나하나 치르는데 급급한 나머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시가 구·군 축제의 콘셉트는 정해줄 수 없지만 적어도 개최 시기 분산을 유도하거나 조정할 수는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는 가운데 축제 관련 데이터도 축적하고, 부재한 아카이빙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다 청년들이 축제를 기획하는 기회는 많아져야 할 것이다. 축제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는 말이다. 부산형 축제 아카데미 같은 것도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 다만 그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는 여전히 숙제다.
부산시 손태욱 관광진흥과장은 “책임을 분산하는 측면에서 민간이 들어와서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우리는 플랫폼 역할과 행정적인 지원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도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장담하지 못했다. 손 과장은 또 “부산시 대표 축제를 주관하는 문화관광축제조직위만 하더라도 역량 있는 분들이 많아서 축제 하나하나는 잘 치르지만, 그것과 연계된 다른 작업은 미흡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부산시, 기초자치단체, 민간을 가리지 않고 부산에서 열리는 축제 전반을 살펴보는 한편 시의 역할이라든지 정책 구상을 가다듬을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끝-
특별취재팀=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그래픽=비온후 김철진 대표 beonwhobook@naver.com
부산일보사·부산문화재단 공동기획
2022-12-2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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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숲에 갇힌 도시… 사람 중심 건축으로 숨통 틔워라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14.
건축 전문가들은 흔히 부산의 도시 건축에 대해 “건축이 가지는 다양성이 많이 결여돼 있으며, 부산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건축물이 없다”고 말한다. 동네마다 용적률과 층수만 조금씩 다를 뿐 건축의 차이를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게 부산의 현주소다. 사각형 틀과 특색 없는 건물들이 도시의 인상이 된 지 오래다. 건물은 줄지어 있지만, 부산이라는 도시 정체성을 담은 건축물을 찾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 이유는 뭘까. 동의대 건축학과 이태문 교수는 “그 중심에 사람이 아닌 물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
부산이란 도시 속 건축은 한마디로 산만하다. 해안가는 높은 건폐율과 용적률을 향한 열망으로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주위와의 조화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주변과 단절돼 있거나 서로를 배척한 채 각자의 존재감을 뽐내며 우뚝 서 있다. 건물은 튀기만 할 뿐 배려나 존중은 사라진 지 오래다. 도시 곳곳이 건축주의 욕망이나 자본에 굴복해 버렸다. 아파트 건립으로 학교 통학로가 갑자기 사라지는 게 현실이 됐다. 도시 주거 공간은 새것 바꾸기에 바쁘다. 세월이 조금 흘렀다 싶으면 재개발,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교체된다. 대한민국의 도시라면 비슷하겠지만, 부산은 유독 심하다. 평지에서 산 중턱까지 천편일률적인 아파트가 도시를 온통 잠식해 버렸다. 마치 이쪽에서 Ctrl+c 해서 저쪽에 Ctrl+v해 채워 넣은 느낌이다. 그곳엔 소통 대신 불통이, 접촉 대신 접속만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카페 건축’이 무표정한 도심에 자극제가 되고 있어 반가울 따름이다.
■의미 있는 부산의 건축들
부산에도 잘 찾아보면 깊은 여운과 울림을 주는 건축물이 더러 있다. 대표적인 게 청소년 자립생활공간으로 복지시설의 고정관념을 깬 ‘수국마을’과 폐교를 리모델링해 놀랄 만한 공간 변신을 가져온 ‘알로이시오기지1968’이다. 두 곳 모두 같은 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했다. 동아대 건축학과 김기수 교수는 “'수국마을'은 중앙에 복도를 두고 옆으로 기숙사를 배치했던 기존의 형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숙사 유형을 제시해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었고, 10년이 넘게 걸린 프로젝트 '알로이시오기지1968'은 건축주, 사용자와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오래된 학교 건물을 완성도 높은 재생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두 작품 모두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건축으로 평가받는다.
부산의 자연과 바다 환경을 활용해 이를 건축물에 잘 녹여낸 것도 있다. 바로 ‘오륙도 가원’이다. 경사진 계곡 아래 움푹 들어간 곳에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고 앉은 레스토랑이다. 자연이 지닌 지형 지세를 최대한 살리고 거기에 인공의 요소를 최대한 절제하려 애썼다. 안용대(가가건축사무소 대표) 건축가는 “‘오륙도 가원’은 부산다운 건축상에 가장 부합하는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자연과 풍경 속에 살짝 얹어 놓은 듯 차분하고 안정적이며, 여기에 더해 건축의 세밀함도 놓치지 않아 건축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고 평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키스와이어센터, 크리에이티브센터, 모여가 주택, 레지던스 엘가, F1963, 구 백제병원, 문화골목, 동아대 박물관 등도 건축적 혹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건축물이다. ‘키스와이어센터’는 기업이 가진 것을 지역 사회에 어떻게 잘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과 그 방향성을 잘 읽어낸 건축물이다. 기장의 ‘임랑문화공원(박태준기념관)’이나 영도의 ‘아레아식스’도 비슷한 범주에 속한다. ‘F1963’이나 ‘구 백제병원’ ‘동아대 박물관’은 과거 건축자산을 되살렸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구 백제병원은 개인, 동아대 박물관은 사적재단, F1963은 민간 기업이 각각 소유하고 있지만, 모두 도시가 가진 정체성을 계속 이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시의 빛’ 같은 존재다.
세대별로 각기 다른 모양을 보여준 ‘모여가 주택’이나 세대별 마당이 있는 집을 선보인 도심형 생활주택 ‘레지던스 엘가’는 공동주택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었다. ‘크리에이티브센터’는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의 조화가 빛난다. ‘문화골목’은 쇠퇴해 가는 지역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해 활성화한 경우다. 문화라는 상큼한 공기를 도심 골목에 불어넣었다. 폐건축 자재를 재활용해 향후 부산이 지향해야 할 도시재생의 모델을 제시했다.
문제는 건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이들 건축물이 긴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건축 공간들이 시민의 삶 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숨쉬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 건축의 질적 향상 어떻게
앞에서 언급한 건축물 중에는 ‘부산(다운) 건축상’ 수상작이 많다. 2003년부터 시작된 부산 건축상은 올해로 20년째를 맞았다. 수상작만 해도 무려 200작품이 넘는다. 이는 건축상 수상작이 적어도 연평균 10작품 이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부산 건축상이 부산 건축의 활성화에 기여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산 건축상이 존중받고, 높게 평가받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상의 명칭이 변경되고, 선정 과정이나 상의 목적 등의 불분명 때문에 그 권위와 명성은 점점 퇴색하고 있다. 최근 지역의 건축가들이 부산 건축상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상의 권위를 높이는 것은 궁극적으로 부산 건축의 질적인 향상을 이루는 일이다. 그래서 이들의 목소리가 반갑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부산(다운) 건축상을 주는 목적이 불분명하다. ‘부산다운’의 개념도 명확하지 않다. 부산 건축상에 금·은·동이 있는데 마치 경기하는 느낌을 받는다. 상을 주는 이도 모호하다. 이게 부산 건축상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요인이다”고 꼬집었다.
부산 건축상의 권위를 세웠다고 해서 곧바로 부산 건축이 질적으로 한 단계 높아지는 건 아니다. 단지 ‘지렛대 효과’는 있다. 이와 맞물러 도시 건축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필요하다. 부산시총괄건축가, 부산건축정책위원회, 부산건축제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도시 건축의 발전을 위한 담론의 장도 활발해야 한다. (주)싸이트플래닝건축사사무소 한영숙 대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축 담론이 활발했다. 지금은 담론의 장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부산의 도시 건축을 좀 더 살찌우기 위해서라도 담론의 장이 활발하게 펼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건축이 나아갈 방향은
세계는 지금 도시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됐다. 건축 등 창의적인 문화 콘텐츠로 도시의 면모를 새롭게 과시하는 도시가 있는가 하면, 자연과의 공존을 부르짖으며 세계 전면에 나서는 도시도 있다. 그 중심에 도시 건축이 있다.
부산의 도시 건축은 부산의 정체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부산이란 도시가 가진 역사와 고유한 문화, 자연 환경적 특성 말이다. “부산은 자연과 바다, 해양의 도시이면서 자연이나 물을 잘 다룬 건축물이 없다. 다만 강이나 바다를 바라보는 아파트나 건물만 있을 뿐이다.” 김 교수의 지적이다. 산과 강,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의 자연환경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다. 이제는 부산의 건축이 이를 도시 건축에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일만 남았다. 이를 위해서는 건축가도, 건축주도, 부산다운 건축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도시의 삶은 근본적으로 함께 살아가기이다. 비좁은 도시에서 삶이 서로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면, 공존하고 배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건축은 바로 이런 관계성을 만들고 구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옛 하야리아 공원의 건물이나 적산가옥, 영화관 등 도시의 기억이나 정체성을 마구잡이로 지워버리는 어리석음은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부산의 도시 건축이 좀 더 건강해지려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건축, 친환경적인 건축도 필요하다. 더불어 도시 건축은 인간적인 커뮤니티가 성장하는 곳으로 도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도시의 입장에서 보면 개별 건축물의 진화는 도시 발전의 작은 움직임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게 지속적으로 모이고 확장되면 도시 이미지를 바꾼다. 동명대 이승헌 실내건축학과 교수는 “잘 만들어진 건축 공간은 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좋은 에너지를 보급하는 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부산 도시 건축, 이제 변할 때다.
특별취재팀=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사진 제공=부산시청·기장군청·부산건축제
그래픽=비온후 김철진 대표 beonwhobook@naver.com
부산일보사·부산문화재단 공동기획
2022-12-19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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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가수 전방위 활약, 영화 제작 분야까지 ‘부산 파워’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13.
“부산 사나이답게 묵묵히 배우 생활하고 있습니다. 부산 촬영이 있으면 큰 힘을 받습니다.”(조진웅)
“고향 부산은 정말 귀한 곳입니다.”(정우)
“부산에서 부일영화상을 받으니 금의환향한 기분이에요.”(임시완)
“푸른 광안리 바다 보면서 연기 연습한 시간이 배우 생활 자양분이에요.”(윤사봉)
“부산의 딸 자랑스럽게 돌아왔습니다.”(김슬기)
“부산은 저를 꿈꾸게 한 곳이에요.”(안보현)
“고향 부산은 제게 언제나 따뜻하고 너른 품이죠.”(박세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고 있는 부산 출신 배우들이 〈부산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10여 년 전 ‘新문화지리지-2009 부산 재발견’ 기획에서 114명이었던 부산 출신 대중문화인은 2022년 기준 1255명으로 껑충 뛰었다. 활동 무대도 넓어졌다. 이젠 극장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안방극장 채널마다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부산 출신 대중문화인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달라진 대중문화계 흐름을 살펴봤다.
■‘반짝반짝’ 연기자-방송인 직군
부산 출신 대중문화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직군은 방송-연기자 직군이다. 탤런트와 영화배우, 방송인을 아우르는 이 직군은 1128명으로 전체 인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흥행 보증 수표’로 불리는 대형 스타가 여럿 있다. 배우 공유, 강동원, 이재용, 유재명, 조진웅, 정우 등이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과 ‘도깨비’ 영화 ‘부산행’ ‘밀정’의 공유를 비롯해 영화 ‘검은 사제들’ ‘검사외전’ ‘마스터’ ‘브로커’의 강동원은 20년 넘게 정상 자리를 지키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조진웅, 유재명, 정우는 최근 10여 년 동안 충무로 ‘신스틸러’에서 ‘중심축’으로 성장했다. 부산 남구 출신인 조진웅은 경성대학교를 졸업한 ‘진짜 토박이’. 방송에서 롯데 자이언트의 열혈 팬임을 여러 번 밝히고 공식 석상에서도 부산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된다. 올해 초 영화 ‘경관의 피’로 관객을 만난 그는 영화 ‘대외비’와 ‘데드맨’의 주연으로 영화 마을에 돌아올 예정이다.
유재명의 행보도 만만치 않다. 부산대 극예술연구회와 부산의 극단에서 연기 생활을 한 유재명은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주연 자리를 꿰차며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대표작으로는 드라마 ‘비밀의 숲’과 ‘이태원 클라쓰’ 영화 ‘명당’ ‘소리도 없이’ 등이 있다. 영화 ‘소방관’과 ‘행복의 나라’ ‘하얼빈’ 등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달 종영한 드라마 ‘멘탈코치 제갈길’로 시청자를 만난 정우도 빼놓을 수 없다. 2013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일명 ‘쓰레기 오빠’로 스타덤에 오른 정우는 이후 카카오TV 웹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 X’과 넷플릭스 ‘모범가족’, 영화 ‘이웃사촌’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 등 여러 플랫폼을 오가며 주연급 배우로 우뚝 섰다.
올해 부일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임시완과 인기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라는 유행어를 남긴 박해준도 부산이 고향이다.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로 연예계에 데뷔한 임시완은 이듬해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연기를 시작한 뒤 연기 내공을 쌓아오고 있다. 올해에도 드라마 ‘트레이서’로 시청자를 찾은 데 이어 지난달부터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로 안방극장 나들이 중이다. 박해준은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과 영화 ‘비상선언’ ‘서울의 봄’에 출연했다.
작품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신스틸러’도 여럿 보인다. 배우 강말금과 태인호와 고창석, 김홍파, 정은채, 김인권 등이다. 특히 강말금은 “능숙한 부산 사투리도 자신 있으니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도 꼭 한번 출연해 보고 싶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최근 10여 년간 눈에 띄는 건 달라진 연예계 진출이다. 이전엔 주로 부산 연극판에서 연기 내공을 쌓거나 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면, 이젠 연예기획사의 공개 오디션에 응시하거나 직접 캐스팅으로 연기를 시작한 배우들이 훌쩍 늘어났다. 충무로 블루칩으로 떠오른 배우 안보현도 이런 케이스다. 사하구 출신인 안보현은 모델로 데뷔한 뒤 2014년 ‘골든 크로스’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와 ‘유미의 세포들’ ‘군검사 도베르만’ 등에 출연했고, 2023년에는 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와 영화 ‘2시의 데이트’의 주연으로 대중을 찾을 예정이다.
방송인으로는 이경규, 김숙, 신봉선, 김태현, 김원효, 이용주 등이 맹활약하고 있다.
■‘우리도 잘나가요’ 가요계 스타들
가수 직군도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발라드 가수와 래퍼, 아이돌 그룹까지 전방위에 포진해 가요 팬을 만나는 중이다. 대형 연예기획사에서 연습생 기간을 거친 이들뿐 아니라 각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름을 알리며 가요 무대에 속속 오르고 있다.
‘가요계 대부’인 가수 나훈아와 설운도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특히 나훈아는 지난해와 올해 부산 벡스코에서 콘서트를 열고 남다른 ‘부산 사랑’을 드러냈다. 2021년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무대에 올라 “부산 동구 초량2동 452번지가 내 고향”이라며 “다른 무대에 못 서도 내 고향 사람들은 꼭 만나고 싶었다”고 애정을 전한 바 있다.
어느덧 가요계 선배가 된 가수들도 찾아볼 수 있다. 가수 이승환을 비롯해 그룹 2PM의 장우영, 씨앤블루의 정용화, 에이핑크 정은지, 2AM의 이창민 등이다. 다만 이승환은 어린 시절 상경한 케이스라 부산 출신이란 타이틀을 온전히 붙이기엔 한계가 있다. 장우영과 정용화, 정은지, 이창민 등은 그룹 활동을 넘어 활발한 개인 활동도 하고 있다.
글로벌 아이돌 그룹으로 우뚝 선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정국과 지민도 부산 출신이다. 두 사람은 10월 열린 2030 부산 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콘서트에서 남다른 부산 사랑을 밝혀 주목받았다.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에는 정국과 지민을 그린 벽화가 있는데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을 느낄 수 있는 ‘관광 루트’도 생겼다.
가요계 ‘젊은 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래퍼 빅원을 비롯해 그룹 골든차일드의 Y, 강다니엘 등이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K콘텐츠 이끄는’ 영화감독·프로듀서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연출가와 제작자의 입지도 커지고 있다. 부산 출신 영화 감독과 프로듀서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부산 파워’의 내실을 키우고 있다.
영화 ‘해운대’ ‘국제시장’으로 천만 영화를 두 편이나 낸 윤제균 감독이 대표적이다. 주목할 만한 건 윤 감독이 낸 천만 영화 두 편이 모두 부산 배경 작품인 점이다. 윤 감독은 올 7월부터 CJ ENM 스튜디오스 대표를 맡아 영화 연출과 콘텐츠 다양화에도 힘쓰고 있다. 이달 말에는 뮤지컬 영화 ‘영웅’으로 8년 만에 극장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넷플릭스 ‘수리남’과 영화 ‘공작’ ‘군도: 민란의 시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쟁’ ‘비스티 보이즈’를 만든 윤종빈 감독도 대표적인 부산 출신 영화인이다. 영화 ‘클로젯’과 ‘검사외전’ 등의 제작에도 참여했을 만큼 전방위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곽경택 감독은 영화 ‘소방관’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곽 감독이 만든 부산 배경의 영화 ‘친구’는 개봉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대중 사이에서 회자되며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후 선보인 영화 ‘극비수사’와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 ‘니나내나’를 연출한 이동은 감독과 ‘사상’을 만든 박배일 감독, ‘뷰티풀 데이즈’ ‘파이터’ ‘송해 1927’의 메가폰을 잡은 윤재호 감독도 부산 출신 연출자다.
예능계 큰손으로 불리는 유호진 PD와 예능계 떠오르는 혜성인 장시원 PD도 부산 출신이다. 유 PD는 ‘뮤직뱅크’와 ‘해피선데이’ ‘1박 2일 시즌3’ ‘어쩌다 사장’ 등을 만들었다. 장 PD는 ‘도시어부’와 ‘최강야구’ 등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전국구 활동 중심…‘부산 출신’ 타이틀 ‘호불호’ 갈려
부산 출신 대중문화예술인의 모임인 ‘갈매기의 꿈’은 배우 변우민을 회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엔 부울경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오시리아 문화예술타운인 쇼플렉스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동향이라 그저 반갑다’는 말은 대중문화계에선 통하지 않는 듯하다. 예전엔 연령대가 어릴수록,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부산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반기지 않았지만, 이젠 활동을 막 시작하는 배우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추세다. 표준어 연기를 주로 하는 특성상 대사에 진한 사투리 억양이 있을 거란 선입견이 있을 수 있고, 연예 활동 반경에 제한이 생길 수 있는 걸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자신의 입지를 어느 정도 굳혔거나 안정적인 활동을 보이는 대중문화인은 ‘부산 출신’ 타이틀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있다. 또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본인의 자력으로 꿈을 이룬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연고에 연연하지 않는 점도 하나의 이유로 작용했다.
특별취재팀=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그래픽=비온후 김철진 대표 beonwhobook@naver.com
부산일보사·부산문화재단 공동기획
2022-12-1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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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서 뛰어도 세계가 알아본 ‘부산스러운 밴드’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12.
부산의 인디밴드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달리며 메달을 따는 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수도권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이지만, 한국을 넘어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밴드도 등장하고 있다. 음악성으로만 평가하며 ‘한국판 그래미상’으로 불리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부산밴드 ‘소음발광’은 올해 주요 부문 2관왕을 차지했다. 소음발광의 멤버 강동수는 “부산 인디 씬은 작지만 반짝인다. 사라졌다고 여기는 가치와 낭만이 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이 낭만과 가치를 나누고 싶다”라고 수상 소감을 남겼다. 부산 인디뮤지션들은 중앙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정작 지역에선 그 진가를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다.
■인디 성지, 홍대를 넘은 부산 뮤지션들
올 3월에 열렸던 제19회 한국 대중음악상 주요 부문 후보에 부산에서 활동 중인 밴드 3팀이 올랐다. 브릿팝의 감성을 가진 밴드 ‘검은 잎들’은 최우수 모던록 노래 부문에 첫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 ‘책이여, 안녕!’을 올렸고, 최우수 모던록 앨범 부문은 ‘보수동 쿨러’가 첫 번째 정규앨범 ‘모래’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보수동쿨러는 2017년 결성돼 이듬해 싱글 앨범 ‘죽여줘’를 발매했다. 독특한 음색의 보컬, 솔직한 가사가 매력적이며 인디 음악계의 신예를 소개하는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출연했다.
두 번째 정규 앨범 ‘기쁨, 꽃’과 최우수 록 노래 ‘춤’으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2개의 트로피를 쥔 소음발광은 2016년에 결성된 부산 밴드이다. 이름 그대로 무대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선보이며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부산의 인디 뮤지션 중 현재 가장 대중에게 유명한 밴드는 ‘세이수미’이다. 2012년 결성돼 줄곧 활동했지만 정작 이들의 진가를 알아본 건 외국 레이블이었다. 2017년 영국 레이블 댐나블리가 세이수미의 공연을 보고 반해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외국에서 음반 발매와 현지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도 세이수미는 한국과 유럽, 북미 온라인 콘서트를 성공리에 끝냈고 해외 투어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7년 부산에서 결성된 ‘더 바스타즈’는 2018년 500여 팀이 출전한 뮤지션 경연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인 래퍼 스쿨보이큐와 합동 공연했다.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는 EBS 스페이스공감 ‘올해의 헬로 루키’에 지역 참가자로 처음 선정됐고, 독보적인 감성의 인디팝 밴드 ‘헤서웨이’, 구수한 그루브가 인상적인 ‘아이씨밴드’, 국악과 밴드의 흥을 모두 즐기는 ‘루츠리딤’, 1960년대 로커빌리를 구사하는 밴드 ‘하퍼스’, 얼터너티브 록밴드 ‘더 튜나스’, 팝펑크 밴드인 ‘밴드 기린’, 하드록 밴드 ‘시너가렛’,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다는 밴드 ‘폴립’ 등이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상인디스테이션의 송봉근 씨는 “서울은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인기를 얻기 위해 트렌드를 쫓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부산은 뮤지션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어 개성적인 음악이 탄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
인디 음악과 밴드 공연을 만나는 주요 무대가 라이브클럽이다. 부산의 인디 밴드와 뮤지션들 역시 지난 20여 년간 라이브 클럽에서 팬들을 만났다. 지역의 인디 뮤지션들을 키웠던 이 공간들은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며 많이 사라졌다.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는 서울 홍대 라이브 클럽을 살리기 위한 구호였고 동시에 부산의 대표 라이브클럽 중 하나였던 ‘15피트언더’가 문 닫기 전 걸었던 문구이기도 하다.
올해 부산에서 매주 기획 공연을 올리는 라이브클럽은 경성대 근처 오방가르드가 유일하다. 2018년 시작해 코로나 시국에서도 방역 수칙을 지키며 꿋꿋하게 공연을 이어왔다. 힙합공연과 디제잉쇼, 미술 창작 스튜디오를 겸하는 경성대 근처 라이브클럽 노드는 20대 초반의 예술가들이 모이며 부산에서 가장 젊은 예술가들이 뭉치는 곳으로 유명하다.
부산대 근처 무몽크와 인터플레이클럽, 경성대 근처 바이널언더그라운드에서도 인디 뮤지션 공연이 부정기적으로 열리며 부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사상인디스테이션도 부산 뮤지션들을 지원하는 무대를 올리고 있다.
KT&G상상마당부산은 오방가르드와 더불어 부산에서 가장 많은 인디 뮤지션 공연이 펼쳐지는 장이다. 기획 공연 외에도 부산음악창작소와 협업으로 지역아티스트 지원 공연을 진행하며 실외 버스킹존, 옥상 루프톱 콘서트 등 3개의 공연장이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라이브클럽은 지역의 뮤지션을 키우고 인디 공연을 펼치는 공연장이지만, 안타깝게도 문화공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음료를 팔기 위해서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해야 하며 이런 이유로 문화공간 지원 사업에서 배제되고 있다.
오방가르드만 해도 한해 100회 이상의 공연이 열리지만, 올해 공연장 지원사업에서 탈락했다. 오방가르드 운영진은 “장르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기준이다.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도 펍에서 공연했고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유명 밴드 공연이 라이브클럽에서 펼쳐지고 있다. 인디뮤지션에게 라이브클럽은 공연장이며 관객에게는 인디 뮤직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식음료 판매가 목적이었다면 이렇게 고생하며 운영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공연장뿐만 아니라 뮤지션 지원 프로그램도 장르의 현실을 모른다는 비판이 또 나온다. 노드에서 만난 한 뮤지션은 “지난 주말 공연했는데 70만 원으로 모든 공연을 끝냈다. 지원 금액을 일괄적으로 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공연에 따라 액수는 더 적게, 횟수는 더 많게, 사용 범위는 더 자유롭게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역의 기획사 설립, 음악 프로그램 절실
부산 인디 뮤지션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방향성과 홍보이다. 라이브클럽 무대에 서고 부산음악창작소의 지원으로 싱글, 혹은 미니 음반을 내고 운 좋으면 부산록페스티벌이라는 큰 무대에 서기도 한다. 그리고 대다수 뮤지션은 다음이 없는 것 같은 벽에 부딪친다.
서울은 관련 음악 기획사, 프로듀서들이 많아 함께 다음 단계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방송 프로그램을 포함해 다양한 무대에 노출되며 밴드가 성장하는 반면, 부산은 제자리에 맴도는 상황이다. 간혹 부산 뮤지션이 서울 방송사 오디션에 참가하기도 하는데, 출연료도 없는데 기존에 하던 일을 접고 서울을 오가야 하는 현실이 감당하기에 힘들다.
김종군 민락인디트레이닝센터장은 “마케팅을 담당하고 음악적인 방향을 고민하고 발전을 의논할 수 있는 전문기획사나 프로듀서, 레이블들이 지역에 꼭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KT&G상상마당부산의 박말순 팀장은 “음악성이 탄탄한 지역 밴드는 많아졌지만 기획, 마케팅, 팬관리, 네트워킹까지 챙기는 지역 밴드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부산 밴드의 공연은 티켓 파워로 연결되지 못한다”고 전한다.
뮤지션들은 한목소리로 부산 밴드를 알리고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실질적인 통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역 뮤지션의 음악을 소개하는 지역 방송사 프로그램이 절실하고, 싱글이나 미니음반이 아니라 음악 산업에서 인정받는 정규앨범이 나오도록 실질적인 지원도 중요하다.
부산은행은 올해 영상전문가를 섭외해 부산의 명소에서 부산 밴드 공연을 촬영한 후 유튜브에 올려 좋은 반응을 얻었다. ‘부산스러운 라이브’는 부산 밴드를 알리는 색다른 시도였지만, 6개 밴드에서 중단되며 아쉬움을 남겼다.
세이수미 기타리스트 김병규 씨는 “인디씬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라이브클럽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과 함께 뮤지션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지속적인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그래픽=비온후 김철진 대표 beonwhobook@naver.com
부산일보사·부산문화재단 공동기획
2022-12-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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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위기에도 지역 공동체·전문 분야 파고든 미디어 실험 중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11.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가 무너지는 세상이다. 온갖 소식과 정보를 전하는 신문과 잡지, 그리고 방송 등은 갈수록 더 심한 격변기를 겪고 있다. 어제의 ‘뜨는 별’이 오늘 ‘지는 해’가 된다. 올드 미디어로 분류되는 부산의 정기간행물과 방송 역시 쓰나미처럼 덮치는 온라인 물결 속에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부산일보〉가 2009년 ‘신문화지리지-2009 부산 재발견’ 기획 연재를 게재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이다.
■ 정기간행물은 ‘생존 투쟁’ 중
2017년 말 창간호를 낸 독립출판 계간지 ‘하트 인 부산’. 부산의 청년작가 모임 ‘글담’이 뜻을 모았다. 목표는 ‘부산을 대표하는 로컬 인문 매거진’이다. 부산 16개 구·군을 돌아가며 지역의 스토리와 사람들을 소개한다.
독립출판 ‘쓰담’ 장혜원 대표는 “부산 청년작가 8명이 지역 기록을 남겨서 부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고, 사람들이 부산을 찾도록 만들자는 데 마음이 통했다”고 말했다.
5년간 부산 절반을 소개하며 쉼 없이 달려온 하트 인 부산은 올 7월 SNS를 통해 휴간 소식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장 대표 등은 공지 글에서 “잡지 수명의 최대 고비인 5년이라는 시간을 앞두고, 하트 인 부산 역시 당연한 수순을 밟게 되었다는 실망감을 드리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었다”면서도 “추후 멋지게 돌아오는 그날까지 각자 성장을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은 “퀄리티(질)를 유지하기에는 각자의 삶과 가정 또한 너무나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했다”며 “도전하는 청년들을 위해 현재의 지원 정책은 문턱과 장벽이 더 낮아져야 한다”고 고충를 밝히기도 했다.
부산 유일 연극비평지 ‘봄’은 2013년 1호가 탄생하며 지역 문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고사하는 지역 연극 비평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발행인인 진선미 배우 등 연극인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6개월에 한 번씩 발간하는 봄은 다음 달 19호가 세상에 나온다. 내년이 벌써 10주년이다.
진선미 발행인은 “예술단체를 제외하고 장르 한 분야로 정기간행물을 제대로 내는 건 문학 분야와 저희가 다인 것 같다”며 “지금 문화계 정기간행물은 사실 고사 직전이다.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간행물이 훨씬 많다”고 상황을 전했다.
출판업계는 이른바 ‘로컬 잡지’가 전체의 1%가 되지 않을 것이라 추정한다. 부산의 정기간행물도 경제·사회·문화 분야 기관이나 단체, 기업이 내는 예산의 힘으로 명맥을 잇는 것이 대부분이다.
■ 희망 싹트는 ‘로컬 간행물’
그래도 그간 영도구와 수영구 등지를 중심으로 구 단위 지역에서 정기간행물의 활발한 활동이 포착됐다.
영도구에서는 ‘비밀영도’가 매년 특별한 형태로 발간된다. 2017년부터 1년에 한 차례씩 나오다가 5권부터 특별판 형태로 바뀌었다. 올해도 특별판이 곧 나올 예정이다. 책을 내는 (사)삼진이음 홍순연 이사는 “국토부 중심시가지형 도시재생사업인 대통전수방 프로젝트로 처음 시작한 일이라 그만두기 아까워 계속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리 너머 영도’도 종이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해 생명을 이어간다. 영도 깡깡이예술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한 플랜비협동조합이 시작한 로컬 매거진인데,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도시 사업을 하는 영도문화도시센터가 2020년 12월 월 2회 온라인 웹진으로 전환했다. 올 9월까지 웹진 25호가 발간됐다.
고윤정 영도문화도시센터장은 “아카이브 성격이 강했던 ‘다리 너머 영도’를 온라인에서는 시민기자단 방식으로 바꿔 주민이 참여하는 로컬 문화 잡지가 됐다”고 말했다.
수영구에서도 F1963과 망미골목 등 새로운 독립문화 공간의 탄생에 힘입어 ‘수영성 마을잡지 푸조와 곰솔’, 무크지 ‘비클립(b-clip)’ 등이 출간되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도서출판 화심헌이 올 7월 내놓은 잡지 ‘드로우(DRAW)’ 창간특별호도 시선을 끈다. 전국을 겨냥한 전문 일러스트 잡지를 부산에서 기획해 내놓았는데, 펼쳐만 봐도 내공이 예사롭지 않다. 화심헌 오동규 대표는 “부산이라고 해서 불가능한 건 없다. 서울이 아니어도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지역의 의미를 찾아 나서거나, 전문 분야에서 도전을 지속하는 것 또한 2022년 부산의 모습이다.
■ 부산 정기간행물 들여다보니
2022년 11월 기준 부산 16개 구·군에 등록된 정기간행물은 모두 292개다. 일간지와 주간지, 온라인매체는 법에 따라 부산시가 따로 관리한다.
2009년 부산시와 각 구·군에 등록된 목록상 정기간행물은 229종이었던 데 비하면 숫자는 늘었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활동을 중단한 곳이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된다.
구·군별로 보면, 해운대구가 45개로 가장 많은 정기간행물이 등록됐다. 등록 횟수만으로도 최근 해운대구의 활발한 경제·문화 활동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2009년까지 9개에 불과하던 해운대구 신규 등록 정기간행물은 2015년 7건 이후 매년 늘어 2021년 6건, 올해 7건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이어 부산진구와 남구가 각각 31건이다. 부산진구에서는 서면과 인쇄골목 등지를 중심으로 움직임이 활발하고, 남구에는 부산예술회관과 부산문화재단, 부산문화회관 등 문화시설과 단체가 많다. 이어 동구 24개, 금정구 23개, 수영구·중구 22개, 연제구 20개, 사하구 14개, 동래구·기장군 13개 등의 순이다.
2009년 부산시에 등록된 일간지는 〈부산일보〉와 국제신문 2개사뿐이었다. 이후 2012년부터 1~2개사가 이름을 올리더니 2022년 17개사가 등록돼 있다. 경제, 복지 등 전문 분야를 대변하는 소규모 신문이다.
부산시에 등록된 주간지도 48개에 달한다. 2008년까지 9개, 2009년에는 14개이던 것이 매년 그 수를 늘렸다. 이 가운데 제대로 발행되거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주간지는 20개 남짓으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올해까지 부산시에 등록된 온라인 매체는 241개로 가히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9년에 비해 20배나 급증한 수치다.
2007년까지만 해도 부산시에는 단 3개의 온라인매체가 등록됐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한 2020년 무려 39개 매체, 2021년에는 36개 매체가 ‘출생신고’를 했다.
부산시 대변인실 정현우 주무관은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년 5~6월에 등록번호를 받은 온라인매체들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매주 지역 인물의 인터뷰 스토리를 뉴스레터 형태로 업로드하는 ‘온라인 매거진 브릿지’와 같은 시도가 점점 활성화되고 있지만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 명맥 잇는 라디오…유선방송의 몰락
부산에서는 최근 첫 지역 공동체라디오인 ‘연제공동체라디오 연제FM’이 새로운 시작을 알려 주목 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전국에 20개 소출력 지상파 공동체라디오에 허가를 내줬다. 2004년 도입한 공동체라디오 시범 사업 이후 부산 연제공동체라디오, 경남 남해공동체라디오 등이 허가를 받은 것이다.
지난 15일 ‘실용화 시범국’으로 시험 방송을 시작한 연제공동체라디오 연제FM은 내년 9월 정식 개국을 앞두고, 장애인과 다문화가족 등을 주제로 한 13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정경희 연제공동체라디오 이사장은 “올해 태풍이 부산에 영향을 미쳤을 때 연제FM이 주민을 위한 재난 방송을 하며 공동체라디오의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고 말했다.
이외에 부산의 지상파 방송과 라디오는 큰 변화가 없다. KBS 부산방송총국과 부산MBC, KNN까지 지상파 TV 3사와 부산CBS, 부산교통방송, 부산극동방송, 부산불교방송, 부산영어방송, 원불교 계열 원음방송, 부산가톨릭평화방송 등 7개 지상파 라디오다.
방송에 준하는 유튜브와 팟캐스트 플랫폼 인터넷 방송도 무서운 기세로 늘고 있다. 이들 역시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정욱교 ‘051FM’ 대표는 “사실 20~30대에게는 뉴미디어가 거의 전부다. 기성 방송의 영향력은 거의 미미하다”고 말했다.
한편 10여 년 전만해도 부산에는 여러 유선방송사업자(SO)들이 존재했지만, 2022년 부산에는 SK브로드밴드(옛 티브로드), LG헬로비전, 현대백화점 계열 HCN까지 단 3개의 대기업 계열 유선방송사만 남아 있다.
특별취재팀=박세익 기자 run@busan.com
사진=윤민호 yunmino@naver.com
그래픽=비온후 김철진 대표 beonwhobook@naver.com
부산일보사·부산문화재단 공동기획
2022-11-2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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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극장 없고 프리랜서 배우로 뛰어도 연극은 계속된다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10.
■극장, 새로운 연극의 시작점
2009년 말 기준 부산의 연극 전문 소극장은 15곳. ‘新문화지리지-2009 부산 재발견’ 연극 편에 실린 내용이다. 공연장 지원의 기준이 되는 ‘300석’으로 풀어보면, 2022년 말 부산에 있는 300석 미만의 민간 소공연장 중 연극을 올릴 수 있는 극장은 26곳이다. 13년 전에 비해 많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상업극 전용관·무대 환경·대관비 등을 고려하면 부산 연극인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극장은 10여 곳으로 줄어든다. 현장 연극인들은 나다소극장, 하늘바람소극장 등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 소속 소극장을 많이 사용한다. 일터소극장이나 경성대 예노소극장도 연극하기에 괜찮은 극장으로 꼽힌다. 한 연극인은 “극장 구조로는 부산문화회관 사랑채극장이 좋았다”고 했다. 사랑채극장은 2017년 9월부터 어린이 전용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민간극장은 남구와 수영구에 몰려 있다. 남구의 경우 소극장 9곳에 뮤지컬 전용 공연장인 드림씨어터까지 위치한다. 지도를 보면 부산시민회관과 일터소극장 등이 있는 범일동부터 도시철도 2호선을 따라 수영역까지 공공·민간극장이 이어진다. 최근 2년 사이 여기는극장입니다와 효로인디아트홀이 연제구에 새로 들어서며, 범일동~대연동~광안동~남천동~연산동 ‘극장 메트로 라인’이 3호선까지 연결되는 분위기다. 2호선과 3호선을 연결하는 수영·망미동 일대에 창단 5년 이내 ‘청년 극단’ 몇 곳의 연습실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는 극장도 등장해 눈길을 끈다. 광안리에 위치한 어댑터플레이스는 온라인 스튜디오형 공연장으로 정기적으로 낭독극 공연을 연다. 새로운 장르나 연극·뮤지컬 사전제작 단계로서의 무대를 선보이는 인큐베이팅 전문 극장이다. 효로인디아트홀은 엔터테인먼트 효로인디넷과 극단 새벽이 2022년 하반기에 개관한 독립문화예술공간이다. 1층 갤러리·2층 소극장·3층 교육실을 갖춘 효로인디아트홀은 극단 새벽이 진행하는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테마연극제’의 거점 공간으로, 시민과 연극을 연결하는 장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 소극장 위기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과거에도 비슷한 소리가 있었지만 문화 콘텐츠 다양화로 인한 연극 관객 감소, 임대료 인상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소극장 운영은 더 힘들어졌다. 2020년 청춘나비 아트홀, 한결아트홀이 문을 닫았을 때 이대로는 소극장이 사라진다는 탄식도 나왔다. 그래도 부산의 소극장은 여전히 버티고 있다.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회장 최성우)는 여름창작낭독무대, 부산소극장연극페스티벌 등 소극장의 매력을 알리는 행사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18일 막을 내린 2022 부산소극장연극페스티벌은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소극장 연극 감상 기회를 제공해 큰 인기를 끌었다. ‘소극장 연극을 다시 보고 싶다’는 관객 반응에 소극장협의회 관계자들도 고무됐다. 최 회장은 “극장은 극단을 위한 공간이며, 창작 실험이 지속되어야 하는 공간”이라며 “일몰제 형태의 극장에 대한 예산 지원을 통해 극장과 극단이 더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에는 제대로 된 200석, 300석 규모의 극장이 없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연극 제작자의 지적이다. 제작비가 많이 올라 일정 규모 이상 관객을 확보해야 적자를 면할 수 있는데, 소극장은 너무 작고 큰 공연장은 대관비 부담이 크다. 올여름 서울에 ‘대학로극장 쿼드’가 개관했다. 옛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을 리모델링해 258석 규모의 블랙박스 공연장을 만들었다. 무대와 객석을 마음껏 변형할 수 있어 다양한 무대 실험이 가능하다.
현재 부산에는 블랙박스형을 표방한 민주공원 작은방(소극장)이 있지만 연극인들이 원하는 완벽한 형태는 아니다.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은 마이크 없이는 대사 전달이 잘 안되고,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은 무대가 좁고 객석과의 거리도 멀다. 다른 공공극장의 경우 강당 형태 구조에서 출발한 것이 많아 무대 활용에 한계가 있다. 공간의 제약은 부산 연극인들의 작품 상상력도 제한한다. 한 무대 전문가는 “블랙박스 형태의 200~300석 규모의 연극 전용 극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극 전용 극장을 짓는다면 멀티플렉스 영화관처럼 하나의 건물에 1·2·3관이 같이 있는 구조면 좋겠다. 관객이 극장에 갔을 때 다양한 연극 중에서 원하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젝트 중심 극단, 프리랜서 뛰는 배우
‘연극을 하고 싶은 막내가 극장으로 출근한다. 무대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며 극단 선배에게 화술이나 연기법을 배운다.’ 극단 세진의 김세진 대표는 “이런 형태의 동인제 극단은 이제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동인제와 비슷한 형태로 연극학과가 있는 대학 출신끼리 모인 극단이 있기도 하지만, 전통적 의미의 동인제 극단과는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1984년에 창단한 극단 부두연극단 이성규 대표도 “80년대까지는 각 극단의 성격이 확실했으나 90년대 들어 개인 프로듀서 시스템으로 바뀌었고, 그 뒤에는 출신 학교끼리 모이는 분위기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부산 극단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 ‘프로덕션’ 개념의 극단이 늘어났다. 청춘나비 강원재 대표는 “그때그때 공연 콘셉트에 맞춰 연출가부터 배우까지 팀을 꾸린다”고 했다. 강 대표는 2009년부터 이 개념을 도입했다. 청춘나비는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창작단막극제 ‘나는 연출이다’를 통해 신진 연출가 육성에 앞장섰고, 연극을 뮤지컬로 재창작하는 ‘살그시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어댑터플레이스를 운영하는 예술은공유다도 ‘연극 제작사’ 개념에 가깝다. 연출가 또는 배우 1인 극단도 많아져 어디까지 극단이고, 어디까지 연극 제작 단체인지 구분도 모호하다.
프로젝트 중심으로 극단을 운영하고, 배우는 단원이 아닌 프리랜서 개념으로 작품당 계약을 한다. 이 배경에는 극단이 단원의 생계를 책임지기 어려운 현실이 자리한다. 두 달가량 연습해서 한 작품을 올리는데 배우가 받는 돈이 약 100만 원. 세 작품은 뛰어야 한 달 수입 150만 원이 겨우 맞춰진다. 이마저도 연기 좀 한다는 배우의 경우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비를 충당하며 무대에 서는 배우도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가 모두 모이기 힘들어, 아침 9시에 연극 연습을 한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지역의 한 연출가는 “아침에 이 연습, 점심에 저 연습, 저녁에 작품 공연. 배우들이 이런 식으로 바쁘게 돌고 있다”며 “다작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배우들이 소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어려운 가운데 각 극단은 나름의 방식으로 출구를 찾고 있다. 최근에는 창작 뮤지컬을 올리는 극단이 늘어났다. 뮤지컬을 보고 연기 전공을 선택한 이들이 많고, 관련 지원금도 늘어난 영향이다. 다장르가 어우러진 융복합 공연으로 단원 구성도 다양해졌다. 극단 아이컨텍은 연극영화, 실용음악, 무용, 이벤트연출 학과 출신이 함께 활동한다. 아이컨텍 박용희 연출은 “요즘은 저작권 문제도 예민해서 연극에 들어가는 음악이나 안무를 다 만드는 추세”라고 전했다.
지역에 천착해 활동하는 극단도 나온다. 2017년 북구에 터를 잡은 극단 해풍은 올해 북구연극공동체 온을 출범시켰다. 극단 자유바다는 기장군 안데르센극장 위탁 운영을 맡아 어린이·가족극 작업도 같이한다.
5년 이내 부산에서 창단한 극단은 10곳. 1년에 두 개꼴로 극단이 새로 생기는 이유에 대해 한 연극인은 “선배들과 교류가 없는 영향일 것”으로 분석했다. “학교를 졸업하면 선배 극단에 들어가곤 했는데, 요즘은 선후배 사이에 네트워크가 없어 마음이 맞는 또래끼리 극단을 창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후배들과 소통을 위한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청년 극단의 대표는 “대학 졸업자도 줄고, 연기 전공자도 유튜브나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빠지고 있어 최근에는 극단뿐 아니라 프로젝트팀을 만드는 경우도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젊은 연극인들은 부산에서 교육 기회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아카데미가 없어 무대기술 관련 세미나라도 들으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부산에 터전을 잡고 연극을 한다. 5년 차 극단 판플의 양재영 대표는 말했다.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 공연에는 예전부터 이어지는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극장 공연이 좋아서 소극장에서 공연을 많이 올리려고 한다.”
특별취재팀=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사진=윤민호 yunmino@naver.com
그래픽=비온후 김철진 대표 beonwhobook@naver.com
부산일보사·부산문화재단 공동기획
2022-11-2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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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삭인 몸의 언어, 부산은 춤 역사의 살아 있는 현장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9.
“삭이는 춤, 내면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춤이 바로 부산 춤”이라는 김진홍 선생. 70년 가까이 부산 춤판을 지키며 춤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그의 말은 “춤은 동시대인이 한자리에 모여 소통하는 광장”이라는 젊은 춤꾼 박재현의 말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세월을 뛰어넘는 춤은 개인과 사회, 국경마저 초월한 몸의 언어다.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우리 춤에서 부산은 동래야류 등 전통적인 마당춤은 물론 해외서 유입된 외국 춤이 한국 춤과 결합해 다양한 공연예술 춤으로 성장했다. 부산은 그야말로 크로스오버 춤 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인 셈이다. 춤의 여러 갈래 가운데 무대 공연을 중심으로 부산 춤의 역사를 훑고자 한다.
■피란수도 부산은 ‘춤의 르네상스’
춤꾼 김해성(부산여대 아동스포츠재활무용과 학과장)은 논문을 통해 “일찍이 부산은 동래를 중심으로 권번이 발달하여 자연히 춤과 놀이가 성행한 전통춤을 가진 고장 중의 하나”라고 밝혔다. ‘영남은 춤, 호남은 소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니었다.
현대무용 박용호, 발레 김향촌이 합동연구소를 열고, 박이랑 옥파일 조말선 등이 아동무용 교육을 펼치며 다양한 춤이 보급됐던 부산이 춤의 중심지가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전쟁 때였다. 무용계에서는 한국전쟁을 놓고 ‘단절과 공백의 기간’으로 표현하지만, 여기서 간과된 것이 바로 ‘부산’이라는 공간이다. 전쟁 와중에도 무용 공연과 교육이 이어지면서 피란수도 부산은 ‘한국 춤 역사의 단절을 막아내고 계승한 역사적인 공간’이자 ‘춤의 르네상스’를 이끈 역사의 현장이었다.
1947년 부산 토성동 자택에 ‘민속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부산 춤 정체성 확립에 앞장섰던 추강 김동민(1910~1999) 선생은 전쟁의 힘겨웠던 시기, 먹고살기 급급했던 춤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현 국립국악원 전신인 ‘이왕직 아악부’가 민속무용연구소에 임시 간판을 걸었으며, 국립국악원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부산 용두산 공원에 임시 사무실을 연 뒤에도 민속무용연구소에서 강습회를 열곤 했다. 춤꾼 김온경(부산시 무형문화재 동래고무 예능보유자) 선생은 “당시 춤꾼들 사이에서 부산에 다녀왔다고 하면 김동민 안부를 묻는 게 먼저였다”고 회상했다. 김동민은 전쟁 한창이던 1951년, 부산극장에서 무용발표회를 가졌다. 김온경이 주연을 맡았던 당시 작품은 규모가 큰 행사였으며, 부산 극무용의 시초로 꼽히기도 했다.
■환도 이후 부산 춤, 큰 도약
휴전 이후 상당수 무용인이 고향 또는 서울로 발걸음을 옮기자 부산 춤판은 잠시 주춤했다. 위기는 곧 기회였다. 1957년 부산 최초로 무용인들의 권익집단인 부산무용가협회가 결성됐고 마침내 부산무용예술인협회로 정비됐다.
‘부산 예술 춤의 터전을 다지는 데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무용평론가 강이문(1923~1992)이 “1960년대는 환도 이후 잔류한 무용인들과 기존의 토착 무용인들, 신진 무용가들이 새롭게 판을 구성하던 시기”라고 했듯, 부산 춤판은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부산 첫 발레리노 김향촌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부산 최초 발레리나로 꼽히는 김혜성은 송준영 등과 함께 1960년 부산 최초 개인 사설 발레단 ‘푸리마발레단’을 창단했다. 당시 조예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조숙자는 부산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립극장에서 발레 공연을 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1963년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같은 해 부산무용협회가 만들어졌고 한성여자초급대학(현 경성대) 체육과에 무용 전공이 도입됐다. 동래의 마지막 한량으로 일제강점기 식민정책으로 중단됐던 각종 민속 예술을 부활시키는 데 앞장선 문장원(1917~2012)의 활약으로 부산에선 1967년 동래야류가, 1971년엔 수영야류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부산에서 춤으로는 처음으로 동래학춤이 1972년에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됐다.
문장원과 함께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래한량춤 예능보유자이자 ‘부산 춤의 살아 있는 역사’ 김진홍도 빼놓을 수 없는 춤꾼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열린 무용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무용계에 입문한 그는 1983년 제9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무용 부문에서 승무로 장원에 오르면서 전국 춤판에 이름을 날렸다.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을 비롯해 각종 무용제 운영위원장을 역임하며 부산 춤을 위해 헌신한 그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남은 별’이라는 테마의 새로운 명무전을 기획하며 조만간 무대에 오를 계획이다.
1968년 한국무용협회가 주최한 전국적인 무용예술제전이 부산에서 열리게 된 것은 황무봉(1930~1995)의 활약이 컸다. 1960년대 신무용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그는 부산 최초 ‘부산명보소녀가무단’을 창단하는 등 창작무용이 부산에 뿌리내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의 산조춤은 지금까지 무대에 오르며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1970년대 부산 춤 지형은 여러모로 획기적이었다. 1973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부산시립무용단이 꾸려진 것이 대표적이다. 부단장은 강이문, 안무장은 황무봉과 송준영이, 단무장은 손세란이 맡았다. 하지만 부산을 대표하는 춤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환경은 열악했다. 김진홍은 “당시 단무장을 맡았던 손세란(본명 손영애)이 하나뿐인 모피를 저당 잡혀 빌린 돈으로 무대 설치 비용 등을 갚았다”고 회상했다. 같은 해 부산시민회관이 세워진 것은 부산 무대 공연의 전환점을 가져왔다.
■춤 이끈 대학 무용
지역 대학에 무용학과가 잇따라 개설되면서 무용계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1979년 부산여대(현 신라대)에 무용 전공이 체육학과 내 개설됐으며, 1980년대 들어 부산여전(현 부산여대), 경성대 등에도 체육무용학과가 만들어졌다. 부산대와 동아대에선 독자적인 무용학과가 만들어졌으며, 1987년엔 부산예술고등학교에 무용과가 개설돼 차세대 무용수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는 대학이 중심”이었다는 무용평론가 이상헌의 말처럼, 최은희 김형희 이혜경 등이 서울에서 주목받았고, 부산현대무용단과 줌현대무용의 창단공연과 김희선 정미숙 목혜정을 중심으로 한 춤패 배김새, 신인 신은주의 춤판 등이 시선을 모았다. 기업이 후원한 무용단으로서는 국내 처음이었던 럭키그룹의 ‘럭키무용단’도 이 시기 창단됐다.
경성대가 주최한 부산여름무용제와 함께 1990년 처음 마련돼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대학무용제 역시 주목할 만하다. 대학무용제 운영위원장 김해성은 “학교 간 선의의 경쟁과 실력을 뽐내는 대학무용제는 새 춤꾼들의 탄생을 알리는 장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독자적인 무용 체계를 구축한 ‘독립군’들의 활약도 이후 부산 춤판을 보다 풍성하게 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다. 김형희는 하야로비현대무용단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트러스트 현대무용단을 발족해 활동했다. 춤공간 SHIN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히 구축한 신은주는 부산국제춤마켓을 13년간 이끄는 등 춤의 국제교류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국립부산국악원 예술감독 정신혜(신라대 교수) 역시 ‘동인 단체에 속하지 않으면 무용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던 시기’ 이미 독자적인 무용단을 꾸려 주목할 만한 작품을 빚어냈다. 김옥련은 열악한 발레 환경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창작품을 선보이며 부산 민간 발레계에 독보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허경미 역시 부산시립무용단을 그만둔 뒤 허경미무용단 무무를 만들어 활발히 활동 중이다.
제1회 전국무용제를 부산에서 치렀고, 2005년 부산국제해변무용제로 출발해 2008년 부산국제무용제로 이름을 바꾼 뒤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전 세계 무용인들이 모여 몸짓을 공유하고 있는 것도 부산 춤의 힘이다.
■그래도 춤은 계속된다
2011년 동아대를 시작으로 경성대, 신라대 등 지역 대학 대부분의 무용학과가 폐과 수순을 밟았다. 부산에서 독자적인 학과로 존재하는 곳은 부산대가 유일하다.
그래도 춤꾼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정신혜는 “춤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라며 “새로운 춤으로 탈바꿈할 기회”라고 말했다. 시대를 거스를 수 없다면 다양한 형태로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춤꾼 김남진은 “진정한 유럽식 아카데미를 만들어 실질적인 부산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말했으며, 춤꾼 윤여숙은 “예술을 보존하는 데 지자체의 책임이 있는 만큼 시립예술대와 같은 시 차원의 전문적인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춤꾼 김평수(부산민예총·한국민예총 이사장)는 “천편일률적인 지원금에서 벗어나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존중할 수 있는 지원이 우선”이라며 지역 예술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부산을 터전으로 한 춤꾼들의 노력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동래야류를 현대로 재해석한 국립부산국악원의 ‘야류별곡’은 서울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김옥련 신은주가 부산 춤판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가운데 허경미 박재현 이용진 등이 활기를 더하고 있다. 전통춤에선 윤여숙 김갑용뿐만 아니라 유은주 정해림 강미선 하선주 황지인 이민아 윤정미 남선주 김정원 구성심 이혜진 등이 명맥을 활발하게 잇고 있으며, 한국 창작춤에선 정미숙 변지연 박성호 이연정 강경희 박연정이 무대를 누비고 있다. 현대무용에선 정기정 안선희 방영미 박은지 이언주 허성준 이이슬 박미라가, 발레에서는 서정애 정성복이 다양한 작품으로 관객들을 찾고 있다.
신은주는 “시대의 흐름이 달라지면서 춤도 달라질 것”이라 말했다. 크고 작은 곳곳의 자리에서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는 다양한 세대의 부산 춤꾼들. 그들이 이뤄 나갈 또 다른 형태의 춤, 바로 부산 춤의 미래다.
특별취재팀=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도움말 및 자료제공=이상헌 무용평론가, 김진홍 김온경 윤여숙 신은주 김해성 정신혜 김남진 박재현 김평수 무용가
사진=윤민호 yunmino@naver.com
그래픽=비온후 김철진 대표 beonwhobook@naver.com
부산일보사 부산문화재단 공동기획
2022-11-1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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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는 BIFF뿐? 영화제 너무 많다? 둘 다 지독한 편견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8.
“영화제요? 부산국제영화제만 있는 것 아니었어요?” “이제 영화제가 너무 많은 건 아닌가요?” ‘신문화지리지 시즌 1’에선 다루지 않았던 주제인 ‘부산의 크고 작은 영화제’를 취재하면서 만난 관계자들은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 도서관이 몇 개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턱없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영화제도 그런 개념으로 접근하면 좋겠다고도 했다.
많든 적든 부산시 예산이 들어가는 영화제는 11개. 그것들을 포함해서 부산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영화제는 2022년 기준으로 40여 개에 달했다. ‘동네’ 영화제나 ‘부대 행사’ 영화제는 빠질 수밖에 없었음을 미리 밝힌다. 한동안 지속했지만 폐지된 영화제도 지면 한계상 싣지 못했다.
■BIFF만큼이나 오래된 단편·독립영화제
1996년 출범한 부산국제영화제(BIFF·이하 비프) 명성과 규모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부산에도 제법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화제가 있다.
39회를 개최한 부산국제단편영화제는 국내 최초의 단편영화제다. 영화의 뿌리라고 할 만한 단편영화를 소개하는 매우 중요한 영화제다. 1980년 한국단편영화제로 출범해 7년간 격년으로 운영하다 2000년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2010년(제27회)부터 현재의 이름인 부산국제단편영화제로 확대, 개편됐다.
부산독립영화제는 1999년 5월 ‘메이드 인 부산 독립영화제’로 시작해 2015년 부산독립영화제로 탈바꿈했다. 부산 영화를 소개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독립영화의 성과와 의미를 되돌아본다. 해당 지역에서 만든 영화로만 온전히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는 곳이 드문데, 부산독립영화제는 24회까지 한차례도 중단 없이 열리고 있다.
■“영화(제)는 좋은 수단이나 매개 될 수 있어”
부산이 ‘영화도시’로 명명된 데는 비프 덕이 크지만, 비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부산에서 열리는 다수의 영화제는 특성과 규모, 지향하는 가치는 다르지만 부산의 영화문화를 대표하는 자산이다.
17회를 이어 온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IKY·이하 비키)는 영화 관람 외에 영화를 매개로 한 체험과 교육 활동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상화 집행위원장은 “비키에서 영화는 수단”이라면서 “영화를 통해 감성을 키우고 정서적으로 충만을 얻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로 5회를 맞이한 국제해양영화제 조하나 운영위원장은 “영화제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가장 핫한 플랫폼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해양이나 환경영화제처럼 특별한 목적을 가진 영화제들은 비프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영화 상영 후 GV(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도 감독뿐 아니라 해양·환경·생태 전문가를 두루 투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9회 부산여성영화제를 주최·주관하는 부산여성사회교육원 석영미 원장은 “강의 몇 시간 하는 것보다 영화 한 편을 봤을 때 더 뚜렷하게 주제 의식을 전달하고, 논의의 장을 펼칠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같이 모여서 본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영화제가 갖는 의의를 설명했다.
■비프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우리 방식대로
자본의 논리가 영화의 다양성을 위협하지만, 여전히 국내외에서 영화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는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여러 방식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비프 기간에 맞춰 열리는 그림자영화제는 올해로 4회를 치렀다. 텀블러와 머그잔 등을 팔아서 후원금을 모은다. 그림자영화제 이수경 감독(집행위원장)은 “화려한 영화제 기간에 되레 더 외롭고 소외되는 경향이 있어 비프 기간에 맞춰 영화제를 연다”고 밝혔다. 이들은 거리에서, 노동 현장에서, 카페에서, 마을에서, 극장에서 영화를 틀고, 공연을 하고, 관객을 만났다.
‘작은영화영화제’를 5년째 이끄는 김미라 대표는 비록 작은 상영회 형식을 띠더라도 쉼 없는 ‘일상의 영화제’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60번째 상영회가 있던 날 김 대표는 “1년에 1500편 이상 만들어지는 단편영화가 각자의 주머니(장롱)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이날도 3편의 단편영화를 상영하고, 감독과 관객이 대화했다.
■콘셉트나 목적 생각하면 가성비 높은 영화제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 지원을 받든 그렇지 않든 저마다 겪는 가장 큰 고충은 재정 문제다. 최근 13회를 치른 부산평화영화제 박지연 프로그래머는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너무나 큰 영화제를 본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기준을 비프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라면서 “이를테면 고추아가씨 축제처럼, 이야기하고자 하는 콘셉트와 목적을 생각하면 영화제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을 들이고도 거둘 수 있는 효과는 큰 편이어서 작은 영화제를 더욱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제1회 먼지[MZ]영화제를 공동 주최한 북구 화명동 복합문화공간 무사이 최용석 대표는 “요즘 청년들이 본의 아니게 개인화되어 있는데 영화제라는 과정을 통해 서로 간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무엇보다 청년들의 변화가 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최 대표는 올해는 부산시의 청년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이번 사업이 가능했지만, 지속 여부는 장담하지 못했다.
상영관 문제도 있다. 누구나 영화의전당 같은 시설에서 열 수는 없다. 부산평화영화제나 부산여성영화제는 여러 상영장을 전전하다 최근 중구 광복중앙로 BNK부산은행 아트시네마 3층 모퉁이극장으로 옮겼다. 영화 상영 외에 부대행사를 열기도 좋아서 규모 면에선 만족할 만하단다. 그런데 이 건물엔 엘리베이터 시설이 없다. 명색이 차별을 없애자는 이야기를 하는 영화제를 열면서 장애인 리프트 시설조차 안 돼 있는 곳을 상영 공간으로 정하려니 너무나 난감하다는 것이다.
■중소 영화제, 내년 시 예산 삭감 소식에 허탈
〈부산, 영화로 이야기하다〉를 펴낸 동의대 김이석 교수는 “부산이 영화제의 도시로 자리매김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영화제 기간에 집중된 열기를 일상에서 지속시키고 확장하는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관객운동단체 모퉁이극장을 이끄는 김현수 대표는 “동네 작은 책방이나 독서 모임이 늘면서 독서문화가 커진 것처럼 영화 한 편도 그렇게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명히 영화 관람의 접근성은 확장되었지만, 영화를 보고 감흥을 나눌 장소는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영화의전당 이소영 시네마테크 팀장도 “영화제가 많다고 말하기보다는 본인의 기호에 맞는, 자기 감성에 어울리는 영화를 찾는 게 더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취재를 마무리할 즈음,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부산시 지원을 받는 중소 영화제들의 내년 예산이 대부분 삭감되었다는 것이다. 크든 작든 모든 영화제가 생존 자체를 힘들어하고 있음이 역력한데 거기서 또 줄여야 한다니 그저 갑갑할 노릇이다. 마지막으로 부산시민들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의 영화제 목록은 몇 개인가요?”
특별취재팀=김은영 기획위원 key66@busan.com
사진 및 포스터 제공=부산일보DB·영화의전당·각 영화제
그래픽=비온후 김철진 대표 beonwhobook@naver.com
부산일보사·부산문화재단 공동기획
2022-11-0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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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다양성 채우는 작은 서점, 가성비 좋은 공공도서관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7.
서점과 도서관을 ‘책 사는 곳’ 혹은 ‘책 읽는 곳’으로만 여기던 시대는 지났다. 온라인 서점의 공세와 코로나19 사태에도 서점들은 ‘특별한 무엇’을 내세워 동네 곳곳에서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도서관의 모습도 달라졌다. 부산 대표 도서관 ‘부산도서관’과 영남권 최초 국가도서관 ‘국회부산도서관’ 등은 딱딱한 이미지를 벗고 시민들의 문화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공간이 주는 기쁨’ 오프라인 서점은 살아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올 초 발간한 〈2022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대형 체인 서점의 매장 수는 2019년 150곳에서 지난해 143곳으로 줄었다. 전체 서점 수는 어떨까. 많이 줄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2021년 기준 전국 서점 수는 2528개로, 2019년보다 오히려 9% 증가했다. 다양한 형태의 작은 서점이 잇따라 문을 열었고, ‘지역 서점 활성화 지원에 관한 조례’가 보편화되면서 공공기관이 도서를 구매할 때 지역 서점을 우선 이용하는 등 생존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부산의 서점 수도 2009년 238곳, 2013년 209곳, 2019년 165곳까지 줄었지만 2021년 198곳으로 소폭 늘었다.
부산 서점 목록을 보면 ‘간판’에서부터 개성이 느껴지는 곳이 많다. 동네 서점들은 개성 있는 북 큐레이션을 선보이고 독서 모임, 영화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발길을 모으고 있다. SNS 활성화로 ‘가게 위치’의 중요성이 옅어진 덕에 부산 전역에서 작은 서점들은 문화의 향기를 내뿜고 있다.
중구 40계단 근처 골목의 두 평 남짓한 작은 책방 ‘여행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책보다는 마주 보고 앉는 작은 테이블이다. “작은 서점은 경험을 소비하는 곳”이라고 말하는 고하나 대표가 2019년 문을 연 이곳은 심리 상담을 진행하고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해 준다. 연제구 연산도서관 앞 ‘책방 카프카의밤’은 주인장 취향의 단행본과 독립출판물, 부산 서적을 취급한다. 계선이 대표는 “골목 문화가 풍부해야 주민 삶도 풍성해진다”며 “동네 서점은 골목 문화의 다양성을 채우는 중요한 인프라”라고 강조한다. 연제구의 ‘책과아이들’은 1997년 문을 연 어린이·청소년책 전문 서점이다. 강정아·김영수 공동대표가 운영하는 독서문화 복합공간이다. 김영수 대표는 “동네 책방은 주민 취향에 맞게 더 빠르게 큐레이션한다는 점이 도서관과 차별화된 점이다”고 말한다.
지난 주말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이 북적북적했다. ‘2022 보수동책방골목 문화축제’가 열린 것. 노래극·인형극이 열리고 체험 부스엔 웃음이 넘치고 책이 팔려 나가는 골목에 활기가 넘쳤다. 이 골목의 30여 서점은 오늘도 꿋꿋이 ‘부산 미래유산’을 지키고 있다.
■딱딱한 분위기 벗어던진 공공도서관의 변화
‘신문화지리지 시즌 1’을 기획했던 2009년 부산의 공공도서관 수는 23곳이었다. 2022년 10월 현재 부산 공공도서관 수는 49곳으로 배 이상 늘었다. 지역별로 보면 강서구는 1곳(2009년)→3곳(2022년 10월 기준), 금정구 2곳→3곳, 기장군 1곳→8곳, 남구 1곳→2곳, 동구 2곳→3곳, 동래구 1곳→3곳, 부산진구 2곳→4곳, 북구 2곳→4곳, 사상구 1곳→2곳, 사하구 1곳→2곳, 서구 1곳→1곳, 수영구 1곳→3곳, 연제구 1곳→2곳, 영도구 1곳→2곳, 중구 1곳→1곳, 해운대구 4곳→6곳이다. ‘수’로만 따지면 기장군에 도서관이 가장 많이 늘었다.
새로 생긴 공공도서관들은 숨죽여 책을 읽고 자료를 찾던 딱딱한 분위기를 벗고 도심 속 쉼터이자 시민들의 문화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대중교통 접근성도 좋아졌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20년 부산 대표도서관인 ‘부산도서관’이 개관한 것이다. 부산시 최초 직영 도서관으로 사상구 덕포동 지하철역 2번 출구 인근에 자리 잡았다. 11만여 권의 도서와 전자책, 오디오북 등을 보유하고 있다. 층고가 높고 칸막이 없이 개방된 구조에, ‘독서실형’ 열람실이 없는 대신 자료실 곳곳에 앉을 곳이 충분하다. 전시나 공연,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시설을 갖췄다.
영남권 최초 국립도서관인 ‘부산국회도서관’도 강서구 명지국제신도시에 올 3월 문을 열었다. 의회도서관 역할은 물론 공공도서관의 역할도 한다. 서울 본관에는 없던 관외 대출 서비스를 하며, 도서관 곳곳에 아이들이 뛰놀거나 공부할 수 있는 공간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쉼터를 마련했다. 의회 민주주의 체험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지난해 개관한 금정구 금샘도서관도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구성했다. 5만여 권의 장서를 비치해 통상 2만여 권인 다른 공공도서관보다 장서 보유고가 월등히 높다. 인근 주택가의 주차난 해소를 위해 공영주차장을 조성하기도 했다.
■생존 걱정하는 서점, 아직 부족한 공공도서관
개성 있는 작은 서점들이 잇따라 문을 열기도 했지만, 문을 닫은 곳도 많다. 코로나19 타격, 치솟은 임대료, 낮은 마진율, 줄어든 독서인구 등이 원인이다. 김영수 ‘책과아이들’ 대표는 “지역 서점 수익구조 개선과 관련해 완전 도서정가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10% 할인과 5% 적립을 허용하는 불완전한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출판사들은 할인을 염두에 두고 책값을 높이고, 소규모 출판사들은 할인 경쟁에 밀리고, 동네 책방은 결국 문을 닫게 된다. 독자 입장에서는 다양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계선이 책방 카프카의밤 대표도 “책방이 본업이 되기는 힘든 게 현실”이라며 “그나마 공공기관의 지역 서점 구매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은 소액에 그치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고하나 책방 여행하다 대표는 “문화정책이 받쳐줘야 할 부분도 있지만 각자 경쟁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보수동 책방골목번영회 이민아 회장은 “보수동 책방골목은 긴 세월 헌책의 가치를 지켜온 곳”이라며 “임대료 보존이나 생활문화시설 등록 가이드 등 행정의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 도서관 현실은 어떨까.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의 도서관 1관당 인구수를 보면 서울은 2021년 4만 8766명이지만, 부산은 2021년 6만 8375명이었다. 구·군별 인구수와 도서관의 면적·장서 수 등을 고려해야겠지만 구·군별 불균형도 보인다. 1963년 개관한 부전도서관은 건물 노후로 무기한 휴관에 들어가기도 했다.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장덕현 교수는 해결 과제로 지역적 불균형, 접근성, 체계적 로드맵, 거점도서관 등 4가지를 꼽았다. “부산 도서관이 서울 수준으로 되려면 70개는 있어야 한다”며 “도서관은 흔히 말하는 가성비 좋은 문화시설인데 대부분 접근성이 좋지 않은 곳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시가 전체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체계적인 로드맵을 세워 어디에 어떤 도서관을 어떤 규모로 지을 것인지 계획이 나와야 하며, 대표 도서관이 확실한 역할을 하고 권역별로 거점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사진=윤민호 yunmino@naver.com
그래픽=비온후 김철진 대표 beonwhobook@naver.com
일러스트=치옹타옹
2022-10-31 [1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