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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아닌 숲을 봤더니… ‘슬세권’ 부산 문화 드러났다 [新 문화지리지-2022 부산 재발견]
9월 20일 ‘미술관 옆 화랑’을 시작으로 12월 27일 ‘부산의 축제’에 이르기까지 15편을 연재한 부산문화재단 공동기획 ‘新문화지리지-2022 부산 재발견’이 마침표를 찍었다. 입에 단내가 나도록 수십 수백 곳에 전화를 돌리고, 발로 뛰며 부산 문화의 현주소를 확인한 결과물이다. 문화 지도에 표시된 점 하나도 허투루 찍지 않았다. 맞춤형 자료가 존재하지 않으니 매번 맨땅에 새로 지도를 그려 나가는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문학 속 부산’처럼 오래된 기억과 흩어진 자료를 지도라는 장소에 구현하다 보니 지도로 표현할 수 없는 것도 많아 아쉬웠다.
2009년 시즌1 때와는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문화 환경이 달라졌다. 발로 쓴 15편의 ‘新문화지리지 시즌2’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슬리퍼 신고 손쉽게 갈 수 있는 ‘슬세권’ 문화의 재발견이다. ‘크고 강한’ 문화가 아니라 일상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접근성 좋고 문턱 낮은 ‘작은 문화’가 꿋꿋하게 생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갤러리 카페의 확산은 미술을 시민 일상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시즌1에선 없던 생활밀착형 문화공간인 21곳의 생활문화센터는 시민 문화놀이터 가능성을 보여 준다. 지역 문화 실핏줄인 하우스콘서트홀에선 자체 관객 DB 구축과 꾸준한 기획 공연으로 일상에 음악이 흐르게 했다. 동네 책방은 책방의 개성을 살린 북큐레이션과 독서·영화 모임으로 골목 문화의 다양성을 채우는 소중한 인프라였다.
생존은 절박한 화두였다. 부업을 해야 근근이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는 공연장,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정기간행물 제작자를 만나며 영혼까지 끌어모아야 하는 현실에 먹먹했다. 상대적으로 척박한 부산 문화 환경은 역설적으로 개성 있는 문화를 일구는 촉매가 됐다. “경쟁이 치열한 서울에선 인기를 얻기 위해 트렌드를 쫓아간다면 부산에선 뮤지션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어 개성적인 음악이 탄생할 수 있다”는 인디신이 대표적인 사례다. 온라인 플랫폼 홍수 속에서 연극 비평이나 일러스트처럼 전문적인 내공에 집중한 오프라인 미디어 생태계의 생존 전략도 돋보였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덕이 크지만 BIFF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영화도시 부산’에선 40여 개의 크고 작은 영화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개성 있는 플랫폼으로 영화를 틀고 있었다.
문화 지원의 경직성은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아쉬움이었다. 대학 무용학과가 잇따라 문을 닫고 동인 춤판이 힘을 잃어가는 무용계에선 천편일률적인 지원 정책 탈피를 주문했다. 연간 100회 이상 공연을 해도 공연장 지원 사업에서 배제되는 라이브클럽을 보면서 장르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기준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신석기 시대 공동묘지였던 가덕도 장항유적에 기껏 홍보공원을 만들고도 잡초만 무성하게 방치한 행정 당국의 태도도 아쉬움을 자아냈다. 자칫 부산이 기억을 상실한 도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뒤따랐다.
매번 문화 지도를 그릴 때마다 문화 시설 불균형은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해운대 집중에서 수영구와 원도심으로 확장되는 모습은 보이지만 여전히 화랑은 남·수영·해운대에 몰려 있고, 소극장은 범일동-대연동-광안동-남천동-연산동의 도시철도 역세권에 많았다. 소위 동부산권에 문화 시설이 집중적으로 찍혔다. 부산현대미술관, 부산도서관, 부산국회도서관을 비롯한 대형 문화공간이 서부산권에 들어섰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기사에 대한 반향은 즉각적이었다. 연극인들조차 현장에서도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 됐다는 말을 전했다. 해운대구청에선 해운대구만 따로 떼서 기획시리즈를 만들 작정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문화 격차 해소에 행정당국의 노력을 당부하는 시의원의 질의도 뒤따랐다. 아카이브 구축과 더 세분화한 추가 문화지도 제작을 비롯한 후속 보도를 제안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출판 문화에 대한 점검, 과거와의 흐름 속에서 이후 맥락을 짚어 주는 기획에 대한 주문도 뒤따랐다.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도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행정적 뒷받침을 할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별취재팀=이상헌 선임기자 ttong@busan.com
2022-12-2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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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와 딴판으로… 장소와 시간만 다른 판박이 축제들 [新 문화지리지-2022 부산 재발견] 15.
‘新문화지리지-2022 부산 재발견’은 2009년 시즌1과 비교해 달라진 부산 문화 풍경을 담아내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취재 꼭지마다 상전벽해의 변화 앞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부산의 축제는 오히려 그렇지 못해서 놀랐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로 민선 단체장 시대가 열리고 동시에 국제 규모의 문화 행사가 늘어나면서 축제의 시대가 본격화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은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그 후 정체 구간에 든 듯, 특이성과 차별성을 갖지 못하면서 부산 축제 전반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았고, 변화보다는 안전하게 축제를 개최할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개선 목소리는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취재 중에 만난 한 축제 전문가는 “일부 구·군 단위 축제 중에는 다른 지자체 축제를 컨트롤 C, 컨트롤 V 하면서 약간의 양념만 치는 식으로 무한 복제가 이루어졌다”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그 전문가는 “축제를 없애자는 말은 아니다. 축제는 더 커지고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부산의 축제 이대로 좋은지 열두 달 축제 현황과 함께 과제를 짚어 본다.
■10월 개최 최다·관(官) 주도 여전
먼저 부산의 축제 현황은 일정 기간(2일 이상) 지역 주민, 지역 단체, 지방 정부가 개최하며, 불특정 다수인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관광예술축제(문화관광 축제·특산물 축제·문화예술제·일반 축제)로 한정했다. 특정 계층이 중심이 되는 행사(경연대회, 가요제, 미술제, 연극제, 기념식, 시상식 등)나 경로잔치 같은 단순 주민 위안 행사, 순수 예술 행사(음악회, 전시회 등), 기타 종합적인 축제로서 성격이 약한 행사(학술행사, 국제회의, 시민의날, 엑스포, 박람회, 패션쇼 등)는 제외했다. 그러고 나니 51개로 집계됐다. 시즌1의 57개(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 등 포함)와 큰 차이가 없다.
시즌1 당시 문제점으로 지적한 특정 달 10월에 개최하는 축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은 여전했다. 당시엔 17개였는데 올해는 19개로 더 늘었다. 관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 역시 마찬가지다. 관 주도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만큼 변화의 폭이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축제야말로 해마다 바뀌는 트렌드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해의 이슈를 즉시 반영하는 것인데 변화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구청장 좋아하는 가수 불러 주세요!”
더 큰 문제는 구·군 단위에서 축제 전문가를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구청장뿐 아니라 담당자마저 자주 바뀌는 구조에서 전문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매년 해 오던 결과물에다 현 지자체장의 의지라든가 선호도를 반영하는 방식이 되고 만다.
올해 A 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새로 취임한 B 구청장은 코로나19로 중단했던 지역 축제를 3년 만에 대면으로 개최했다. 이 축제는 구 단위에서 개최하지만 운영 전담조직(축제조직위원회)도 있었고, 부산시 우수 축제에 선정될 만큼 나름 탄탄한 입지를 자랑했다. 하지만 B 구청장은 축제조직위원회를 하루아침에 해체하고, 문화예술과에 축제 업무 전반을 맡을 것을 지시했다. 실제 행사 운영이야 입찰 과정을 거친 대행사가 맡았지만, 관 주도 축제 특성상 하나부터 열까지 최종 결정은 구청에서 해야 하는데 축제 전문가도 아닌 공무원이 처음으로 맡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 심지어 개막식 무대에 세울 초청 가수를 섭외하는 과정에 구청 직원은 “우리 구청장이 좋아하는 이 가수 꼭 좀 넣어 주세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더란다.
■경제 활성화·지역 이미지 제고 순기능
그런데도 축제는 필요한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해 보자. 흔히 축제는 종합예술이자 종합문화라고 한다. 문화산업의 자양분이라고 할 수 있는 각종 공연과 체험, 놀이, 전통 계승이 축제의 기능에 포함돼 있다. 정체성이 뚜렷한 몇몇 축제는 부산을 넘어 한국의 대표 브랜드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요즘은 지역 축제가 경제 활성화나 지역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도 효과를 발휘한다.
역기능이나 단점도 있다. 주민과 공무원 강제 동원 문제뿐 아니라 일회성 이벤트성 행사가 될수록 경제적·시간적 낭비를 할 수 있다. 또 무분별한 행사 개최를 하다 보면 점차 획일화한다. 규모 늘리기에만 치중하거나 과도한 관광 상품화를 좇다 보면 축제 정신이 결여될 수 있다.
■민간 영역 더 열고 변화 시도해야
전문가 조언을 구하기 위해 축제 관련 일을 하는 이들에게 물었다. 관 주도를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구체적으로는 축제가 관의 정책을 뽐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점과 궁극적으로는 주민이 즐기고 거기에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방식의 축제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처럼 관에서 지원은 하되 민간(BIFF)에서 협찬 확보 등으로 규모를 키우고 프로그래밍 전권을 갖고 운영하는 방식이 되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민간 주도에 총량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예를 들면 부산바다축제 예산이 7억 원가량인데, 7억짜리 행사를 하면 민간의 의지가 전혀 들어갈 수 없지만, 기본 예산 7억으로 70억짜리 행사를 만든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록페스티벌만 하더라도 시장이 원하는 밴드를 부르는 게 아니라 일반인이 원하는 밴드를 부르니까 사람들이 지갑을 열고 티켓을 산다고도 했다.
결국 민간이 원하고, 민간이 즐기는 축제로 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시선으로 새로운 축제, 새로운 문화적 행위, 더 나아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개발해야 민간 기업 참여가 늘 것이고, 민간인이 찾아와 소비할 것이며, 그래야만 살아 움직이는 축제가 되어 지속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축제도 중장기 비전이나 로드맵 그려야
부산의 축제 지형 전반에 대한 고민과 생태계 변화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월별 개최 분산의 문제만은 아니다. 아직은 관이 주도하는 축제가 많은 만큼 축제 전반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이를 개선해 나가기 위한 중장기적인 비전이나 로드맵을 그릴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행사 하나하나 치르는데 급급한 나머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시가 구·군 축제의 콘셉트는 정해줄 수 없지만 적어도 개최 시기 분산을 유도하거나 조정할 수는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는 가운데 축제 관련 데이터도 축적하고, 부재한 아카이빙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다 청년들이 축제를 기획하는 기회는 많아져야 할 것이다. 축제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는 말이다. 부산형 축제 아카데미 같은 것도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 다만 그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는 여전히 숙제다.
부산시 손태욱 관광진흥과장은 “책임을 분산하는 측면에서 민간이 들어와서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우리는 플랫폼 역할과 행정적인 지원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도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장담하지 못했다. 손 과장은 또 “부산시 대표 축제를 주관하는 문화관광축제조직위만 하더라도 역량 있는 분들이 많아서 축제 하나하나는 잘 치르지만, 그것과 연계된 다른 작업은 미흡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부산시, 기초자치단체, 민간을 가리지 않고 부산에서 열리는 축제 전반을 살펴보는 한편 시의 역할이라든지 정책 구상을 가다듬을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끝-
특별취재팀=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그래픽=비온후 김철진 대표 beonwhobook@naver.com
부산일보사·부산문화재단 공동기획
2022-12-26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