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낙제'가 '우수' 둔갑… 정신응급 실태 감춘 복지부 '꼼수 평가'
위기개입팀 제외·등급제 폐지 등
3단계 통계 마사지로 점수 보정
요원 크게 모자란 부울경 고득점
전국 정신건강센터 평가 입맛대로
취약한 지역 인력 구조에 면죄부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경. 홈페이지 영상 캡처
속보=보건복지부가 전국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평가를 엉터리로 진행하며 부실한 인력 실태를 장기간 방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과 경남 등 위기개입팀 전문인력이 현저히 부족한 광역센터에도 전문성 평가 항목에서 만점을 남발하고, 전문기관 용역 결과마저 무시한 채 입맛대로 평가 잣대를 바꾼 사실도 드러났다. 정부가 사실상 ‘가짜 성적표’로 국가 정신응급 안전망의 취약한 인력 실태를 가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0일 〈부산일보〉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미애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2022·2023·2025년 3차례 이뤄진 17개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평가 결과와 용역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정부는 ‘근속 기준 하향→위기개입팀 제외→등급제 폐지’ 등 3단계에 걸친 ‘통계 마사지’로 평가 기능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특히 2025년 근속률 평가에서 위기개입팀 인력을 통째 제외(부산일보 3월 24일 자 2면 보도)한 사실은 ‘위기개입 인력을 모두 포함하라’는 2023년 연구용역 보고서(정신건강복지센터 평가체계 운영 강화 연구)의 지침과도 어긋났다. 복지부와 국립정신건강센터는 “현장 의견 등을 수렴했다”고 해명했으나, 정작 정부가 5000만 원을 들여 마련한 전문가 가이드라인은 도외시한 셈이다.
정부의 이러한 ‘가짜 성적표’는 지역 간의 극심한 전문성 격차를 가리는 방패로 작용했다. 2024년 12월 기준 위기개입팀 내 전문 요원이 13명 중 단 2명(15.4%)에 불과한 부산은 전체 전문 요원 확보율 항목에서 4점 만점을 받았다. 20명 중 전문 요원이 4명(20%)뿐인 경남 역시 4점 만점이었고, 13명 중 단 1명인 울산도 3점의 고득점을 기록했다. 복지부가 이직률 높고 전문요원마저 부족한 위기개입팀을 통계에서 빼버리는 방식으로 점수를 보정했기에 가능한 ‘착시’였다.
앞서 복지부는 근속 기준부터 낮춰 ‘낙제점 지우기’에 나섰다. 2022년 시범 평가 당시 ‘36개월 이상’ 근속 기준에서 0점을 받아 ‘미흡’ 등급에 머물렀던 울산은 이듬해 정부가 기준을 ‘12개월’로 낮추자마자 단숨에 ‘우수’ 기관으로 둔갑했다. 고용 안정을 유도해야 할 지표가 ‘1년 단기 근속’의 면피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2단계 ‘위기개입팀 제외’에 이어 3단계로 도입한 ‘합격제’는 변별력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70점만 넘기면 모두 합격증을 주는 체계 탓에 위기개입팀 전문 요원 비율이 100%인 서울과 0%인 대구·충북이 똑같은 ‘합격’ 판정을 받았다. 전국 17개 센터 중 ‘불합격’을 받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최대 수혜처인 울산은 3년 만에 ‘미흡’에서 ‘합격’으로 올라서며 취약한 인력 구조에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다.
이처럼 정부가 행정적 방치로 일관하는 동안 현장은 신입들의 사투장으로 전락했다. 전국 위기개입팀 요원 197명 중 62%인 122명이 3년 미만 경력자이며, 29%인 57명은 1년도 채 안 된 신입이다. 생사가 걸린 법적·의학적 판단을 내려야 할 요원들이 경험 부족에 시달리며 최일선 안전망에 구멍이 뚫리고 있는 셈이다. 그 사이 지역 안전망 지표는 최악으로 치달아, 2024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9.1명으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산은 30.2명, 울산은 29.2명으로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경남대 사회복지학과 엄태완 교수는 “부실한 실태가 드러나자 이를 개선하는 대신 평가 방식 자체를 바꿔버린 일종의 ‘꼼수 평가’”라고 비판했다. 엄 교수는 “상담이나 출동 건수만 늘리는 보여주기식 행정은 현장에서 의미가 없다”며 “자살률 추이나 재입원율 감소처럼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지표로 평가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향후 평가지표 구성 등 운영 방식이 현장 여건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점검해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