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우국의 혼 오늘날 표충비 땀으로 흘렀더라…경남 밀양시 표충비·만어사 탐방
밀양 무안면 홍제사 경내 표충비
사명대사 뜻 기리려 1742년 세워
한국전쟁 등 큰 국란마다 땀 흘려
고요하면서도 온화한 사찰 만어사
수많은 물고기가 변했다는 경석들
두드리면 나는 종소리 신비로워
구국의 충정으로 승병을 이끌고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동상이 고향인 경남 밀양시 무안면 사명대사 유적지에 조성돼 있다. 김진성 기자 paperk@
올해는 유난히 무더위가 일찍 찾아왔다. 5월 중순부터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연일 계속 됐다. 올 여름 더위가 ‘역대급’이란 기상 예보가 그리 달갑지 않다. ‘찜통 더위’ ‘가마솥 더위’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곳이 밀양 얼음골이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이곳을 소개하는 것은 식상할 것 같다. 하지만 얼음골을 품은 밀양하면 얘기가 다르다. 경남 밀양은 얼음골뿐아니라 국란이 있을 때 땀을 흘린다는 표충비와 바위를 두드리면 종소리가 나는 만어사 경석 등 신비한 일들이 많은 지역이다.
■신비의 고장 밀양, 국란을 예견하는 ‘땀 흘리는 비석’
경남 동북부에 위치한 밀양(密陽)은 옛부터 신비로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 때는 이곳을 미리벌이라 불렸다. 용의 옛말인 ‘미르가 사는 벌판’에서 지금의 지명이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밀양에는 용과 관련된 명소가 꽤 된다. 밀양강이 만들어낸 절벽지형인 ‘용두목’, 이무기가 용이 되어 잠들어 있다는 ‘호박소’, 용왕의 아들이 돌로 변했다는 만어사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양기(陽)가 밀집(密)돼 있는 곳, 더운 기운이 많아 한 여름엔 대구를 방불케할 정도로 더운 지역으로도 인식된다. 하지만 밀양의 밀(密)은 빽뺵하다는 뜻 보다는 소리만 빌려 쓴 음차로 기록된 것이다. 밀(密)은 고대 우리말로 물을 나타내는데, 물이 많은 지역이라 해서 밀양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비의 도시 밀양의 대표적 명소 ‘땀 흘리는 비석’ 표충비를 찾았다. 표충비는 무안면에 있는 홍제사에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승병장인 사명대사의 표충사당과 표충비각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수호사찰이다. 표충비가 세워진 1742년(영조 18)에 사명대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란을 예견하는 ‘땀 흘리는 비석’인 사명대사 표충비. 김진성 기자 paperk@
‘땀 흘리는 비석’인 표충비는 홍제사와 돌담 하나를 두고 있다. 표충비를 보기 위해 절에 들어서니 마치 왕관과 같은 모양의 나무 한 그루가 떡하니 서 있다.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밀양 무안리 향나무’다. 1742년 이곳에 표충비가 세워질 당시 함께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수령이 284년이나 됐다.
크기와 모양이 톡특하다. 원줄기 높이는 사람 가슴 높이(1.5m)밖에 되지 않고, 가슴 높이 둘레도 1.1m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산 모양으로 옆으로 퍼져나간 가지의 폭은 10m가 넘는다. 국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향나무 20여 그루 중 이러한 모양을 한 향나무는 이곳이 유일하다. 향나무의 모습이 신기한 듯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어김없이 기념촬영을 한다.
향나무를 뒤로 하고 표충비각 앞에 섰다. 사명대사비로도 불리는 비석은 높이가 3.8m나 되는 거대한 대리석으로 이뤄져 있다. 표충비각 옆에는 비석이 땀을 흘린 역사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1894년 11월 19일 동학농민운동 7일전 3말 1되’를 시작으로 ‘1910년 7월 22일 국권피탈 17일전 4말 6되’, 1919년 2월 27일 기미년 3·1 독립만세운동 3일전 5말 7되’… .
1945년 광복과 1950년 한국전쟁, 4.19 혁명, 5.16 군사정변,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2010년 천안함 사태 등 한국 근대사의 국란을 앞두고 비석은 어김없이 ‘땀’을 흘렸다. 이를 두고 결로 현상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비석에 음각으로 표시된 글자 부분은 물기가 맺히지 않은 기이한 현상은 설명하기 어렵다.
국란을 예고하는 표충비가 땀을 흘리는 것은 사명대사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 사명대사유적지로 향했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다. 무안면은 사명대사의 출생지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 2000여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뒤 사명대사는 일본으로 끌려간 우리 백성 3000여 명을 데리고 귀국하기도 했다. 정부와 밀양시는 사명대사 생가 인근에 부지 면적 5만여 ㎡에 사명대사 동상과 사명대사 기념관, 추모공원, 기념비 등을 조성해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적지 입구로 들어서니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곳에 넓은 공터가 반긴다. 마음이 편안했다. 좋은 곳에 터를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입구 왼쪽에 연꽃 모양의 놀이터에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웃음 소리가 정겨웠다.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담은 부조 벽화가 인상적이다. 유적지 한가운데 사명대사의 동상과 추모 공간에서 잠시 묵념을 올렸다. 백성을 위해 칼을 들었던 실천적 종교인의 기개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사명대사 기념관에서는 사명대사가 생전 사용했던 장삼과 가사를 포함해 승병으로서의 활약상 등을 알 수 있다.
이곳에 전시된 표충비의 탁본을 보고 ‘땀 흘리는 비석’의 비밀을 짐작할 수 있다. 비석에는 사명대사의 승병 활동과 포로 구출 공적이 새겨져 있다.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는 사명대사의 충정이 비밀의 열쇠가 아닐까.
바위를 두드리면 맑은 종소리가 들린다는 만어사 경석이 계곡을 가득 메우고 있다. 김진성 기자 paperk@
■종소리 나는 만어사 경석, 용궁의 왕자가 돌이 된 사연은
수만 마리 물고기가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만어사. 사진으로 볼 때마다 이곳을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만어사 계곡에 늘려져 있는 돌을 두드리면 종소리가 난다는 이야기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밀양의 3대 신비 중 하나인 만어사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일단 대웅전에 가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신고’부터 했다. 대웅전 앞이 삼층석탑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 석탑은 고려 명종 10년(1180년)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466호)이다. 삼층석탑 위쪽에는 거대한 바위에 정교하게 새겨진 마애불이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크지 않는 사찰이 고요하고 편안하다.
마애불을 뒤로 하고 보니 눈 앞에 끝없이 펼쳐진 계곡이 보인다. 계곡에 수많은 바위가 마치 강물을 연상케 한다. 너비 100m에 길이는 500m에 이른다. 이것이 만어사 경석이구나. 거대한 바위들이 마치 계곡에 뿌려져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곳은 빙하기에 돌들이 풍화돼 쌓여 만들어진 지대로, 2011년 천연기념물 제528호로 지정됐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만어사 소원석. 김진성 기자 paperk@
정말 종소리가 날까 싶어 바위를 두들겨 봤다. ‘딱, 딱, 딱…’ 그냥 돌소리가 났다. 종소리가 아닌데 하고 있는데, 내 모습을 지켜본 한 분이 다른 돌을 쳐 보란다. 쳐보니 정말 종소리가 났다. 맑은 쇠소리랄까. 일반 돌소리와는 분명 달랐다. 신기했다. 만어사 경석은 화강암인데, 화강암의 성분 차이에 따른 현상이라고 한다.
만어사 경석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목숨이 다한 용왕 아들이 육지로 나와 신통한 스님에게 새로 살 곳을 부탁했고, “길을 가다 쉬는 곳이 그곳”이란 말을 들은 왕자는 만어사에 멈춰 미륵바위가 됐다. 왕자를 따르던 수많은 고기떼는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다.
만어사 미륵전엔 부처상 대신 왕자가 변한 5m 높이의 미륵바위가 모셔져 있다. 미륵전에 잠시 앉아 눈을 감았다. 고요하고 편안했다. 내 모습을 본 꼬마 2명이 절을 하고는 내내 엎드려 있다. 귀엽다.
미륵전에서 나와 계곡에 깔린 경석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원석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냥 들어도 들릴 만한 작은 바위인데 소원이 이뤄지면 들리지 않는단다. 저마다 소원을 빌고 돌을 들어보지만 대부분 들린다. 미륵바위가된 용왕의 아들이 모든 사람의 걱정과 고통을 없애주고 저마다의 소원을 들어주면 좋겠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