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날씨입니다. 입김 후후 내쉬며 된장 푼 시래기국을 물컹한 건더기와 함께 입 안에 넣으면 영혼의 허기까지 가십니다.
중부지방에 눈과 함께 한파가 몰아친 날, 마침 목판화가 이철수가 자신의 SNS '나뭇잎 편지'에 시래기 사진과 마음 따뜻해지는 글을 올렸습니다.
"하얗게 쌓여 있는 눈덕분입니다. 사위가 온통 밝습니다. 김장하며 널어둔 무우청 시래기조차 환합니다. 눈 조명을 받은 마당 구석이 모두 주인공같습니다. 누렇게 시들어도, 데치고 다듬어 놓으면 겨우내 먹을 만한 식재료가 됩니다. 빛나는 순간이 있지요!"
추위를 견디며 얼고 녹기를 반복한 시래기는 겨우내 먹을 만한 식재료가 되어 '빛나는 순간'을 맞습니다.
시래기의 생애를 좀 더 밀착해 바라본 시가 또 있었습니다. 마치 이철수 판화가의 눈 맞은 시래기 사진을 보고 쓴 것 같습니다.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 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
기억하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겨울을 나다가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
잠시 옛날을 기억하게 할 짧은 허기를 메우기 위해
서리에 젖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
(도종환 시 '시래기')
시를 읽으니 시래기가 고생하신 우리 어머니 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위가 다음 주까지 계속된다는데, 부모님께 전화라도 한 통 드려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