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항의 국가적 평가와 글로벌 리더십 정립 시급하다
박인호 부산항을사랑하는시민모임 공동대표
부산항 150년 역사는 언제나 국가 경제의 전환점과 함께 움직였다. 개항은 근대 경제의 시작이었고, 전쟁은 생존의 통로였으며, 산업화는 국가성장의 엔진이었고, 세계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됐다.
이제 부산항은 또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다. 앞으로 50년 동안 단순한 물류 거점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해운·물류·금융·기술·비즈니스가 결합된 세계적 종합 해양산업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인가. 150년 전 열린 바다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리고 그 문이 향할 다음 방향은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부산 해양 이니셔티브의 변곡점인 부산항 개항 150주년은 단순한 기념의 시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다음 100년을 설계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세계 해운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친환경 연료와 디지털 항만, 새로운 항로까지 변화의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부산항 역시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
세계 해양항만질서 재편의 시대, 새로운 실천 방안 제시가 시급하다. 북극항로와의 연계, 수출입 물류기지와 글로벌 해양수산허브를 지향하는 부산항만의 체질 개선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부산은 역사적으로 흐름을 통과시킨 도시였다. 이제는 그 흐름을 축적하고 활용하는 도시로 전환해야 한다. 부산항이 대한민국 남단에 있는 하나의 항만이 아닌 전 세계의 공급망과 세계 해양산업을 이끌 수 있는 중심 역할을 하는 항만, 국가 항만을 넘어 세계 해상공급망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동북아 물류의 교차점에 있는 지리적 이점과 축적된 항만 운영 경험은 부산항의 중요한 국제경쟁력이다. 부산항은 단순한 물류항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 고도성장을 견인한 역사적 항만이다. 흔히 ‘한강의 기적’을 말하지만 그 뒤엔 ‘부산항의 기적’이 있었다. 1960~1980년대 한국 수출 대부분이 부산항을 통해 이뤄졌고 한때 전체 수출의 약 80%가 이곳에서 처리됐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부산항이 사실상 엔진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국가적 평가와 정책적 위상은 충분히 정립되지 못했다.
근대의 문턱에서 실패한 국가로 전락했던 조선이 세계 10대 교역국인 대한민국으로 변신한 것은 기적이다. 근대화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조선에서 출발해 근대 국가의 총아인 대한민국으로 변신하는 과정, 그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이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일군 기적이다. 치열했고 드라마틱했던 그 역사를 탐구하면서 이 기적을 이어나갈 지혜를 모색하는 것이 개항 150주년을 맞는 우리의 도리이자 역사적 사명이다.
싱가포르항이 지리적 이점만으로 지금의 경쟁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이를 전략적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더 주목해야 한다. 싱가포르항은 단순한 물류 시설이 아니라 해양산업의 중심 플랫폼으로 발전해 왔다. 항만 주변에는 금융선박관리 해사법률 해양보험 등 다양한 해양서비스산업이 집적하고, 글로벌 선사와 해양 관련 기업들이 한곳에 모여 항만을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부산항도 싱가포르 같이 항만·산업·금융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일관되게 실행하며, 항만 개발과 산업 육성, 인재 양성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장기 전략이 안정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산업 생태계와의 정책통합성이 중요하다.
부산항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지, 싱가포르항의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글로벌 항만 경쟁은 더 이상 단순한 물류 경쟁에 머물지 않는다. 부산항의 글로벌 리더십 정립이 시급하다. 부산항의 지난 150년이 대한민국 근대화, 산업화, 고도성장 견인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부산항은 신해양질서를 선도하는 세계전략항만으로 발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