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피지컬 인터넷 시대, 부산 해양물류의 대전환 전략
신석현 (주)아이엘에스 대표이사
신석현 동명대 교수 부산일보DB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이 산업 전반을 재편하면서 물류의 패러다임 또한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 물류가 단순히 화물을 운송하고 보관하는 ‘지원 산업’에 머물렀다면, 오늘날 물류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사물인터넷(IoT)이 결합된 ‘고부가가치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글로벌 물류계를 이끄는 핵심 개념이 바로 피지컬 인터넷(Physical Internet)이다.
피지컬 인터넷은 디지털 인터넷의 작동 원리를 현실 물류 체계에 적용한 혁신 모델이다. 인터넷이 데이터를 패킷 단위로 표준화해 최적의 경로로 전송하듯, 화물 또한 표준 모듈 단위로 분해·공유·재조합해 전 세계 운송망을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기업이나 운송수단이 각각 따로 운영되던 기존 ‘폐쇄형 물류’에서 벗어나, 창고·트럭·철도·선박·항공 등 모든 물류 자원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공동 활용하는 ‘개방형 공유 물류’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구현되면 공차 운행과 중복 투자, 불필요한 대기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물류비 절감은 물론, 배송 시간 단축과 탄소 배출 감소까지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단순한 효율 개선을 넘어 경제성과 친환경성,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해결하는 차세대 물류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유럽연합(EU)은 ‘PI 프로젝트’를 통해 공동 물류 네트워크 실증사업을 추진 중이며, 미국은 스마트 풀필먼트센터와 자율주행 트럭을 연계한 통합 물류 플랫폼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또한 자동화 항만과 무인 물류단지를 기반으로 초대형 디지털 공급망을 구축하며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물류 경쟁력은 더 이상 항만 규모나 물동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연결되어 있고, 얼마나 스마트하게 운영되는가가 국가와 도시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부산이 갖는 전략적 의미는 매우 크다. 부산항은 대한민국 수출입 물동량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국가 핵심 인프라이자, 동북아 환적 중심항만이다. 지리적 조건과 항만 인프라 측면에서는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쟁은 ‘하드웨어 확장’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혁신’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부산이 글로벌 해양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피지컬 인터넷 기반의 스마트 물류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항만 자동화 터미널 확대, AI 기반 선석 배정 시스템, 무인 야드트랙터, 로봇 피킹 스마트창고, 디지털 트윈 항만 운영, 실시간 통합 관제 플랫폼 등 전 과정의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항만·철도·공항·도심 물류센터가 하나의 데이터 네트워크로 연결될 때 비로소 ‘끊김 없는 물류’가 실현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운영할 전문 인력 양성이다. 앞으로 물류 현장은 단순 작업 인력이 아닌 기술 융합형 인재를 요구한다. 물류 자동화 엔지니어, 로봇 운영 매니저, 스마트창고 관리자, AI 물류 데이터 분석가 등 이른바 ‘피지컬 AI 인력’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 지역 대학과 직업교육기관이 산업 수요에 맞춘 실습 중심 교육과 자격 체계를 구축하고, 기업과 연계한 현장형 인턴십과 산학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해양수산부 부산 시대 부산은 해양수도권 조성과 북극항로 개척 본격화, 항만과 대학·연구기관·기업이 밀집한 도시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이를 활용해 ‘스마트 해양물류 인재 특화 도시’ ‘글로벌 물류 테스트베드 도시’로 발전시킨다면, 단순한 항만 도시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물류 혁신 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는 지역 청년 일자리 창출과 신산업 육성,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이제 물류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후방 산업이 아니다. 도시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성장 동력이다. 피지컬 인터넷은 부산이 물동량 경쟁을 넘어 기술 경쟁, 시스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 해답이다.
항만을 더 많이 짓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더 똑똑하게 연결하는 도시가 살아남는다. 데이터처럼 흐르는 물류, 그 중심에 부산이 설 때 대한민국 해양산업의 새로운 100년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