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탐정코남] #38. 낙동강의 움직이는 섬
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부산 낙동강에 정체불명의 섬이 나타났다. 강 위를 둥둥 떠다니는 이 섬은 하루에 몇십 미터를 이동하기도 하고, 하룻밤 사이 없어지기도 하는데. 주민들 눈에 발견된 지는 6개월 정도. 특히 바람이 불거나 흐린 날이면 한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의 섬이 나타난다,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낙동강의 움직이는 섬. 그 정체를 밝히기 위해 직접 배를 타고 나가봤다.
움직이는 섬을 찾아라
부산 사하구 을숙도. 낙동강하굿둑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올랐다. 높은 곳에서 낙동강을 관찰하면 '움직이는 섬'을 쉽게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유난히 맑은 날씨 덕에 낙동강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전망대 위에서는 낙동강 인근 습지와 섬을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배를 타야만 했다.
을숙도 체육공원 인근 선착장. 환경보호단체 초록생활의 백해주 대표가 직접 키를 잡고 안내를 맡았다. 그는 "움직이는 섬을 볼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나가봐야만 알 수 있다"며 "확률적으로 이렇게 맑은 날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며 기대를 접게 했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배에 올라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섬 수색을 시작했다.
보이는 건 갈대뿐
배는 을숙도에서 출발해 낙동강 상류로 향했다. 백 대표는 "움직이는 섬은 엄궁동 부근에서 자주 발견된다"며 일행을 이끌었다. 그러나 배를 이리저리 몰며 낙동강을 헤맸지만 움직이는 섬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백조 무리만 한가로이 떠 있었다. 10분 남짓 낙동강 상류로 조금 더 올라갔다. 곧 '삼락습지'라고 불리는 곳 인근에 도착했다. 습지에는 갈대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성인 남자 키보다 훨씬 큰 갈대가 강을 따라 자라고 있다.
삼락습지 옆으로 배를 이동하며 살폈지만, 여기도 갈대만 있을 뿐 어디에서도 섬을 찾을 수 없다. 움직이는 섬이니까… 우리를 피해서 도망치는 것은 아닐까?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있던 중 백 대표가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사실 저게 바로 움직이는 섬의 정체입니다." 그는 갈대를 지목했다.
갈 곳 잃은 갈대
백 대표는 "움직이는 섬이라고 별명이 붙었지만, 사실은 갈대 수풀 섬"이라며 "정확히 말하면, 낙동강에 정착하지 못한 어린 갈대가 강바닥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서로 엉켜 강물을 떠다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낙동강에는 성장을 마친 후 갈색빛을 띠는 갈대가 대부분이었지만, 그 주변에는 마치 잔디처럼 키가 작은 초록빛을 내는 어린 갈대가 있었다.
움직이는 섬의 정체는 이 어린 갈대가 정착하지 못하고 떠내려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백 대표는 "과거부터 아주 작은 형태가 물 위에 둥둥 떠다니긴 했지만, 섬이라고 부를 만큼 대규모로 떨어져 나온 건 네댓달 전부터"라고 말했다. 백 대표가 목격한 섬은 길이 30~40m, 폭은 10m 정도의 크기였다. 가까이 다가가 어린 갈대를 관찰했다. 손으로 잡아당기니 쉽게 끌려 올라왔다. 작은 갈대가 엉켜있는 형태라 당연히 발을 디디고 서 있을 수도 없다.
습지의 위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백 대표는 조심스럽게 낙동강하굿둑 수문이 열린 것과 관계가 있다고 추측했다. 백 대표는 "올해 초 하굿둑 수문이 상시 개방되면서 수풀 섬이 많이 발생했다"며 "아마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염분이 유입된 후 나타난 생태계 변화로 생각된다"고 했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내수면에 정착한 갈대가 해수에 적응하지 못하고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곳 습지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백 대표는 "원래 갈대는 기수역에도 잘 적응하는 강인한 식물이라, 움직이는 섬 현상은 일시적" 이라면 "다만 염분에 약한 수양버들이나 버드나무 같은 경우는 결국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낙동강 하구가 기수역 생태계로 차츰 복원되면서 현재 습지 생태계의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백 대표는 "현재 이곳 습지에는 수달, 삵과 같은 멸종위기종이 많이 살고 있는데 이곳이 해수의 영향을 받게 되면 이들도 이동할 것"이라며 "구포 위쪽으로 밀양 삼랑진 등에서 삵과 수달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추측했다.
<사건결말>
움직이는 섬의 정체는 강바닥에 뿌리내리지 못한 어린 갈대였다. 이런 현상이 좋다, 나쁘다고 단정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1987년 하굿둑이 들어서며 해수 유입 차단으로 형성된 생태계가 전환기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60~70년대 과거의 낙동강 생태계로 복원된다고 정리할 수도 있다. 다만 생태계 전환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정착된 생태계가 다시 또 변화하는 데는 그 곱절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해수 유입으로 인한 지하수의 염분 변화, 농작물의 피해 등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철저히 대비해 기수 생태계가 온전히 복원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다.
제작=남형욱 기자, 정윤혁 PD, 이지민 에디터, 한승규 대학생인턴
2022-11-18 [17:00]
-
[맹탐정코남] # 37. 기적을 만드는 두 손, CPR 제대로 배워봅시다
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개요>
안타까운 사고로 대한민국이 슬픔에 빠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이태원 참사로 인해 총 156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참사 현장의 사진과 영상이 SNS를 통해 공유됐고 전 국민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참혹한 순간을 지켜봐야만 했다. 무엇보다 쓰러진 사람에게 수십 명의 구급대원이 CPR(심폐소생술)을 하는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대규모 참사 이후 CPR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사고가 일어난 자리에 CPR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명을 구하는 CPR,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배워봤다.
업그레이드된 CPR
CPR을 배우기 위해 동래구 온천동 '부산 119안전체험관'을 찾았다. 2016년 문을 연 이곳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자연 재난, 도시 재난 등 다양한 유형의 재난을 경험하고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다. 구체적으로 차량전복, 지진, 지하철 화재 등 대응법을 익힐 수 있으며 무엇보다 CPR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사실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CPR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떤 자세로,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강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답'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119안전체험관에서 구급안전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김민경 소방장은 "실제로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은 5년 주기로 바뀐다"며 "2015년 이전까지는 가슴 압박 30회, 인공호흡 2번을 하라고 했는데, 현재는 가슴 압박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인공호흡에 숙달되지 않은 일반인이 호흡법을 하는 것 보다 가슴 압박에 집중하는 게 요구조자(재난 따위를 당하여 구조가 필요한 사람)의 생존율을 높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CPR은 한번 배워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해서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응급처치 방법이다. 김 소방장에게 본격적으로 CPR을 배워봤다.
누구에게 해야 할까?
심폐소생술은 말 그대로 심장과 폐를 살리는 기술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한테는 하지 않는다. 심장과 폐가 임상적으로 사망한, 갓 죽은 사람에게 한다. 사람이 살아있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분할까? 과거 CPR 교육에서는 기도를 확보한 후 경동맥을 짚고 눈으로 가슴이 뛰는지 확인하라고 교육했다. 이제는 달라졌다. 김 소방관은 "두 번째 손가락을 요구조자 코에 가져다 대고, 10초 동안 아주 센 콧바람이 나오는지 확인한다"고 말했다. 이어 "심정지 상태가 되면 폐도 함께 움직임을 멈추기 때문에 호흡만으로도 심정지 환자 구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CPR은 언제까지 해야 할까? 정답은 구조대원이 현장으로 도착할 때까지다.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고 의식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면, 119에 신고와 동시에 자동 심장충격기를 신청한다. 이때 주변 사람 중 한 사람을 정확하게 지목해 신고를 요청하면 CPR을 더 빨리 할 수 있어서 생존율이 더 높아진다.
어디를 압박해야 할까?
이 부분 역시 달라진 부분이다. 과거에는 쓰러진 사람의 양쪽 젖꼭지를 연결하는 가상의 선을 긋고, 그 선의 가운데를 압박하라고 교육했다. 김 소방관은 "사람마다 젖꼭지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곳을 압박하기엔 어려움이 있어 달라졌다"며 "갈비뼈를 따라 움푹 들어간 명치를 찾은 다음, 명치에서 목 쪽으로 손가락 두 마디를 대고 반대편 손꿈치를 올려놓은 손가락 옆에 붙이고 압박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마네킹을 상대로 연습하는데 생각보다 압박 포인트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슴 압박을 할 차례다. 몸을 요구조자 쪽으로 숙인 후, 팔꿈치를 쭉 편 상태에서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다. 김 소방관은 "양손을 겹쳐 깍지를 낀 후 아래쪽 손바닥 접히는 손꿈치 부분으로 압박하는데 어깨와 바닥이 직각으로 90도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 상태로 분당 100회에서 120회 즉 1초에 2번, 가슴이 5~6cm가 들어갈 정도로 계속 압박해 주면 된다"고 말했다.
갈비뼈보다 생명을 우선
과거 CPR 교육에서 가장 헷갈렸던 부분이 압박 강도다. 얼마만큼 강하게 또는 약하게 해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119안전체험관에서는 센서가 내장된 심폐소생 실습용 마네킹을 압박하면, 모니터를 통해 적정 압박 강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압박 강도가 약하면 '약해요', 느리면 '느려요' 압박 강도와 횟수가 모두 적절하면 '좋아요'라고 표시됐다. 생각보다 '좋아요' 표시를 띄우는 게 어려웠다.
1초에 2번 직접 압박해 보니 매우 빠른 속도였다. 1분이 흘렀는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가슴 압박에는 많은 힘이 들어갔다. 몸무게를 두 팔에 실어서 온몸으로 압박해야 했다. 김 소방관은 "CPR을 정확히 하면, 갈비뼈가 부러질 가능성이 높은 응급처치"라면서 "하지만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해서 CPR을 멈추게 되면 그 사람의 목숨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무엇보다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CPR 주의점은?
쓰러진 사람 위에 올라타서 CPR을 하면 안 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봤을 법한 장면이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다. 김 소방관은 "의사나 구조대원이 정확하게 심폐소생술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피치 못하게 자세가 나오지 않을 때 하는 자세"라면서 "일반인이 했을 때는 가슴 압박이 아니라 가슴 밀쳐 올리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아나 영아를 대상으로 하는 CPR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가장 큰 차이점은 압박 강도다. 소아는 돌이 지난 후 8세까지를 말하는데 4~5cm 정도, 영아는 2.5~4cm 정도로 가슴을 눌러야 한다. 성인보다 압박 강도가 다소 약하다. 또 성인인 경우 두 손을 이용해 압박하지만 소아는 한 손으로 영아는 검지와 가운뎃손가락 두 개를 이용해 압박한다. 김 소방관은 "압박 횟수는 1초에 2번으로 성인과 동일하다"며 "다만 영아의 경우 소아나 성인보다 심장이 약간 더 아래쪽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머지 한 손으로는 머리가 움직이지 않게 이마를 눌러주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결말>
CPR을 멈출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구조자가 지쳐 쓰러져 더 이상 CPR을 할 수 없을 때 멈출 수 있다고 한다. 이때 CPR을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이 10초 안에 교대해서 가슴 압박을 이어 나가면 생존율은 높아진다. 그래서 심폐소생술은 나만 잘하고, 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다 숙지하고 계속 연습해야 하는 응급처치법이다. 달리 말하면, CPR은 심장이 다시 뛸 때까지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이태원 참사 이후 119안전체험관에는 CPR교육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20명씩 하루 6번 교육하는데 체험 예약이 어려울 정도다. 10일 대한응급의학회 등에 따르면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주변에 CPR을 할 수 있는, CPR을 배운 '일반인'이 많을수록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CPR 교육 비율이 높을수록 환자의 생존율이 올라간다는 말이다. 또 정확도에 따라 생존 퇴원율이 3배 가까이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CPR의 중요성과 관심이 높은 지금, 기적을 만드는 두 손 CPR을 제대로 배워야 할 때다.
제작=남형욱 기자, 정윤혁 PD, 이지민 에디터, 한승규·한재경 대학생인턴
2022-11-11 [15:24]
-
[맹탐정코남] # 36. 방화복 입고 엘시티 101층 올라가 봤습니다
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초고층 건물이 많은 부산. 높이 200m가 넘는 건물 꼭대기 층에서 불이 나면 어떻게 될까? 화재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고. 비상식적인 상황이지만 스프링클러 또한 작동을 멈춘다면? 점차 거세지는 불길에 사람이 갇혀 있는 급박한 상황. 믿을 건 소방관의 두 다리뿐이다. 부산에서 전국 소방관을 대상으로 엘시티 계단오르기 대회가 열렸다. 무려 101층을 20kg이 넘는 방화복과 진화장비를 착용한 채 계단으로 걸어 오르는 대회다.
전국에서 소방관 600여 명이 모인다기에 맹탐정도 대회에 참가했다. 겁도 없이 방화복을 입고 도전하겠다고 했다. 완주는 할 수 있을지? 101층 엘시티 계단 오르기에 도전했다.
101층을 올라가자
'계단 오르기'는 건강에 참 좋은 운동이다. 특별한 장비가 없어도, 엄격한 훈련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올라야 할 건물이 101층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간단한 운동이 아니다. '도전'인 셈이다.
지난달 26일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 앞은 전국에서 모인 소방관으로 가득했다. '전국소방공무원 엘시티 계단 오르기 대회'가 열려서다. 맹탐정도 비경쟁 부문인 '언론인 특별참가' 자격으로 대회에 겁 없이 도전했다. 다만 걱정이 앞섰다. 입고 있는 옷이 운동복이 아닌 '방화복'이기 때문이다. 소방관이 현장에서 입는, 불길에도 끄떡없는 두꺼운 옷. 당연히 통풍이라는 개념이 없다. 10월 말 선선한 가을 날씨였지만,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흘렀다.
높이 411.6m, 101층 '엘시티 랜드마크동' 입구 앞에 섰다.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중간쯤 올라가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할 수 있을까?' '아침 먹고 올 걸, 아니 토하면 안 되니까 안 먹는 게 나으려나'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온 사방이 계단
소방관들의 도전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 언론인 특별참가 팀이 먼저 출발했다. 평소 유산소 운동은 되도록 멀리하는 편이다. 6층 정도 올랐을까? 당연히 숨이 막혔다. 체력 관리에 소홀했던 그간의 날들을 반성하기보다, 아직 95층이 남았다는 사실에 더 힘들었다. 갑작스러운 운동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이 흘렀다. 호흡은 거칠어졌고, 같이 간 젊은 PD와 더 젊은 대학생 인턴은 그런 맹탐정을 불쌍하게 쳐다봤다. 십 년만 더 젊었어도 10층 정도는 숨도 안 가빴을 텐데.
엘시티 빌딩을 계단으로 오르긴 처음이다.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엘시티 계단에는 창문이 없다. 보이는 건 온통 시멘트벽과 계단뿐이다. 해운대해수욕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까? 왜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올라가는 상상을 했을까? 바닷바람이 불면 좀 덜 힘들 텐데.
뛸 생각은 1도 하지 않은 채, 10층 정도를 올랐을까? 밑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오는 무리가 보였다. 소방관이다. 일행보다 훨씬 늦게 출발했지만, 어느새 우리를 추월할 만큼 달려 온 것이다. 실제로 뛰어오진 않았다. 하지만 평지를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였다. 그들에게 방해되지 않기 위해 길을 내줬다.
강철 체력의 소방관
엘시티 랜드마크동에는 20·48·76·97층 등 총 4개의 피난안전구역이 설치되어 있다. 초고층 건축물 화재 시 외부 소방력에 의한 소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건물을 뒤덮고 있는 통유리와 초고층 건물 위층과 아래층의 기압과 온도 차로 인한 굴뚝 효과로 한번 불이 나면 상부로 빠르게 불길이 번진다. 피난안전구역은 화재 등 재난 발생 시 대피하는 곳이다. 급수전과 긴급 연락을 위한 통신시설 등이 설치돼있다.
계단오르기 대회 중간 쉼터 역시 피난안전구역에 마련되어 있다. 48층에서 물을 마시며 가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미 소방관들은 먼저 출발한 특별 참가 인원을 거의 다 추월해 오르고 있었다. 방화복만 입은 우리와 달리, 소방관들은 '풀세트'에 가깝게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헬멧을 쓴 채 방독면을 목에 걸고, 등에는 커다란 산소통을 매고 있다. 손에는 진압 장갑을 끼고, 신발은 운동화 대신 특수 고무로 된 안전화를 신고 있다. 실제 출동 시에는 호스나, 도끼 등 화재진압 장비도 가져간다고 하니 그들의 체력이 존경스러웠다.
이벤트 아닌 훈련
물론 중간중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돌리는 소방관도 눈에 보였다. 이들도 사람이구나. 체력이 한계에 달한 듯 구석에서 머리를 박고 쉬는 사람도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발걸음을 돌려 다시 계단을 올랐다. 부산에서 가장 높은 건물 계단을 오르는 '이벤트'일 뿐이지만. 참가하는 소방관들은 진지했다. 실제 상황을 가정해 훈련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맹탐정을 추월해 올라가는 소방관이 있을 때마다 '화이팅'을 외쳤다. 장난스러운 마음으로 참가한 맹탐정도 진지해졌다. 소방관보다 빨리 올라갈 수는 없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그들의 훈련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될 뿐이다. 페이스를 조절하며 한층 한층 계단을 올랐다. 70층을 넘고. 80층, 그리고 마침내 101층에 도달했다. 101층 전망대 한쪽에 결승선이 마련되어 있다. 마지막 골을 앞두고 속도를 내어 통과했다. 기록은 보잘것없는 38분 56초. 30분 안에 도착하는 게 목표였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부상으로 기념 메달을 받았다. 이날 대회에 참가한 소방관은 670명.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완주했다.
체력보다 대단한 사명감
"오히려 대회라서 더 힘들었습니다. 만약 실제 상황이었다면, 힘든 줄도 모르고 올라갔을 텐데… "
소방관에게 대회 참가 소감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사명감 넘치는 그의 말에 언제 가장 힘들었냐고 다시 물었다. 김해동부경찰서 김정호 소방관은 "김해는 그렇게 고층 아파트가 많지 않다"며 "맨날 연습하던 20층까지는 수월했는데, 3~4배 정도 되는 계단이 계속 이어지니까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대회라는 부담감 때문에 시작부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101층 계단을 23분 48초에 주파한 '강철 체력'의 소방관에게도 소감을 물었다. 이번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청주동부소방서 윤바울 소방관은 "101층을 뛰어본 적이 없어 1등을 할지는 몰랐다"며 "한층 만 더 올라가자, 5층만 더 올라가자 이런 마음으로 계속 오르다 보니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상황이라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마음 편하게 제 체력의 한계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건결말>
소방관들의 체력은 대단했다. 잠시 멈춰 쉴지언정 포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20kg이 넘는 화재 진압장비를 착용하고 맨몸으로도 올라가기 힘든 계단을 뚜벅뚜벅 올라갔다.
체력보다 더 대단한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의 사명감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그 일념 하나로 그들은 계단을 올랐다. 체험을 위해 빌려 입은 새 방화복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반면 소방관들의 방화복은 하나같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화마 속에서 구했을까?
하지만 강인해 보이는 그들도 결국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2021년 전국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5.7% 3093명의 소방관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또 22.8%는 수면장애를 호소하고 있다고 조사됐다.
자신을 희생해 남을 살리는, 소방관의 처우 개선에 더 많은 지원과 노력이 필요할 때다. 그들의 헌신이 없다면, 안전한 대한민국도 없다.
제작=남형욱 기자, 정윤혁 PD, 이지민 에디터, 한승규 대학생인턴
2022-11-04 [14:00]
-
[맹탐정 코남] #35. 불꽃사진 이렇게 찍으면 칭찬받는다(feat. 사진기자)
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부산 불꽃축제가 3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11월 5일 올해로 17번째를 맞는 불꽃축제가 부산의 가을밤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화려한 불꽃 연출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부산 시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축제로 성장했는데 몇 가지 고민거리가 생겼다.
첫 번째 고민은 '장소'다.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게 분명한 광안리해수욕장을 또 가야 하냐는 것. 부산시민이라면, 불꽃축제를 보러 갔다가 사람에게 휩쓸리며 이동한 경험,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광안리해수욕장 말고 불꽃을 감상할 수 있는 다른 명당은 없을까?
두 번째 고민은 바로 '사진'. 1년에 한 번뿐인 불꽃 이쁘게 찍고 싶은데, 왜 내가 찍은 사진은 엉망진창일까? 스마트폰으로는 불꽃을 찍기 어려운 걸까? 고가의 전문 DSLR 카메라를 마련해야 하는 걸까?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바로 신문사 사진기자였다. <부산일보> 막내 사진기자에게 불꽃축제 명당, 불꽃 사진 잘 찍는 법 등 모든 것을 물어봤다.
다시 터지는 불꽃
별다른 수고를 기울이지 않아도, 부산에 살면 매년 불꽃놀이를 볼 수 있다. 부산의 11월은 그야말로 불꽃의 도시였다. 그러나 코로나로 수년간 불꽃은 꺼졌다. 그래서 이번 축제에 거는 기대가 크다. 기대가 큰 만큼 불꽃을 더 잘 보고 싶다. 불꽃축제를 온전히 제대로 즐기고 싶다.
불꽃축제 명당은 많다. 물론 광안리해수욕장에서 보는 게 가장 가깝고 좋다. 하지만 광안리해수욕장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린다. MBTI가 '극 I형'인 사람에게는 100만 명은 지옥이다. 사람들이 많이 없고, 불꽃은 잘 보이는 그런 곳은 없을까? 본보 김종진 사진기자가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줬다. 김 기자는 "사람 없는 명당은 없다"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사진 기자들이 많이 찾는 포인트 중 한 곳이 바로 광안동의 '금련산청소년수련원'인데, 이곳이 그나마 광안리보다 낫다"고 말했다.
광안대교가 정면으로 보이는 금련산과 황령산 일대는 불꽃축제를 감상하기 좋은 포인트다. 황령산 봉수대와 달리 금련산청소년수련원은 걸어서 올라오기에도 충분한 높이다. 통나무집이나 생활관 등은 예약해야 하지만, 수련원에 들어와 불꽃축제를 보는 것은 일반인들도 상관없다. 주차비는 2000원이다. 김 기자는 "남들보다 서둘러 미리 올라와서 좋은 자리를 잡는다면, 광안리해수욕장 부럽지 않은 명당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불꽃 사진찍기 좋은 금련산청소년수련원
사진기자들이 선호하는 장소는 금련산청소년수련원 안에서도 생활관 앞 공터와 당일 한정 프레스에만 오픈되는 생활관 옥상 등이다. 공터에 자리를 잡고 불꽃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비결을 물어봤다. 김 기자는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거다"라며 "스마트폰으로 많이 촬영하실 텐데, 삼각대가 크고 무거운 게 결과물이 좋다"고 했다. 이어 "그날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나무덱보다 아스팔트에 삼각대를 펼치는 게 흔들림이 적다"고 했다.
직접 한번 찍어봤다. 숨을 참고 찍었는데도, 손이 흔들려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셔터스피드를 길게 주다 보니, 노출도 날아가 너무 밝은 사진이 찍혔다. 김 기자는 노출을 잘 잡을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줬다. 그는 "본격적인 불꽃축제를 시작하기 전 테스트용으로 몇 발의 불꽃을 쏜다"며 "그때 사진기자들도 저마다 노출을 잡고 구도를 잡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보통 8초 정도를 잡는데, 이렇게 두면 불꽃이 하늘로 쏘아져 올라가는 궤적과 불꽃이 터지는 장면을 한 번에 찍을 수 있다"고 했다.
자연이 만든 완벽한 구도
'광안리 바다 위에서 불꽃이 터진다.' 사실 이 문장은 모호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불꽃은 광안리해수욕장과 광안대교 사이의 바다, 광안대교 위, 광안대교 뒤 먼바다 등 총 3곳에서 터진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보면 이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금련산청소년수련원에서 보면 이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기 좋은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구도다. 생활관 앞 공터나 전망대서 사진을 찍으면 자연스럽게 '완벽한 사진 구도'가 잡힌다. 제일 아래 어두운 배경의 금련산 숲과 나무가 사진의 중심을 잡아준다. 그 위에는 아파트와 가로수 불빛 등 도심의 불빛이 자리한다. 그리고 다시 어두운 바다가, 다시 그 위에는 반짝이는 광안대교가 놓인다. 그리고 불꽃이 터질 하늘이 광안대교 위에 놓이게 된다. 누군가 그림을 그려 놓은 듯 완벽한 구도다.
만약 광안대교와 불꽃만 보고 싶다면, 생활관 가까이에 있는 전망대로 가면 된다. 이곳은 생활관 앞 공터보다 지대가 높기 때문에, 조금 더 깔끔한 불꽃 감상이 가능하다.
떠오를 관람 명소 용호별빛공원
광안리해수욕장에서 보이는 광안대교가 익숙하다면, 반대 방향 즉 광안대교 뒤를 보는 뷰는 어떨까? 많은 사람이 이기대를 떠올리겠지만, 새로 생긴 장소가 있다. 바로 용호 별빛공원이다. 이곳은 광안대교 선박 충돌사고로 폐쇄된 용호부두를 친수공간으로 조성해 주민들에게 돌려준 곳으로, 1만 6450㎡(약 5000평 규모)를 자랑한다. 바다와 맞닿은 광활한 평지로 부산에서도 손꼽히는 넓은 부지다.
용호만 매립부두에 조성된 덱이나 이기대 산책로에서 불꽃축제를 감상했던 사람들이면, 모두 이곳으로 몰릴 확률이 크다. 그만큼 이곳에서 보는 뷰가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광안대교의 아름다운 모습과 함께, 마린시티의 화려한 야경도 함께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람선을 타고 광안대교를 지나 먼바다에서나 부산을 볼 때 볼 수 있었던 구도를 편하게 볼 수 있는 셈이다. 다만 공원 주위로 성인 키를 훌쩍 뛰어넘는 높은 방파제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광안대교에 가까이 자리 잡는 것보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편하게 보는 걸 추천한다.
추억을 남기기 좋은 장소
금련산수련원과 달리 이곳은 평지다. 김 기자에게 평지에서 사진을 찍는 노하우가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청소년수련원에서는 스마트폰을 가로로만 두고 촬영했다면 이곳에선 세로로 세워 촬영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세로로 세워, 사진 아랫부분에는 광안대교를 두고, 두 주탑 사이로 올라오는 불꽃을 찍으면 좋다는 것이다. 다만 눈으로 볼 때와 달리 높은 방파제가 있기 때문에 사진으로 광안대교와 마린시티를 함께 담는 것은 조금 힘들다고 말했다.
불꽃 사진을 찍기에 썩 좋은 장소는 아닌 걸까? 걱정은 기우였다. 김 기자는 "꼭 '불꽃' 사진만 찍는 게 좋은 축제 사진은 아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불꽃 아래 목마를 탄 어린아이의 실루엣이나 불꽃을 찍은 스마트폰 화면을 다시 카메라로 찍은 사진 같은, 축제의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다면 충분히 좋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장소는 사람들이 많이 몰릴 것이 분명한 장소이기 때문에, 축제를 즐기는 사람을 찍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사건결말>
부산 불꽃축제가 다가오자 광안리해수욕장 일대 식당, 카페에서는 '바가지 자릿세'를 요구하고 있다. 한 카페는 축제 당일 창이 크게 나 있는 테이블석에 60만 원을 매기기도 했다. 안타깝지만, 과도한 자릿세에도 법률상 단속할 기준이 없다. 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회가 받는 티켓가격은 테이블이 있는 R석은 10만 원, 의자만 있는 S석은 7만 원이다. 이마저도 모두 매진.
값을 지불하고 자리를 사서 보는 것도 좋지만, 금련산청소년수련원이나 용호 별빛공원 등 부산에서 불꽃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았다. 굳이 바가지 요금에 눈을 찌푸릴 필요가 없다. 소개한 곳 외에도 더 좋은 장소가 있을 수도 있다.
불꽃 사진 '잘' 찍는 법은, 생각보다 다른 곳에 있었다. 조리개, 셔터스피드 등 카메라 조작법을 잘 숙달했다면, 하늘로 향한 렌즈를 조금 아래로 내려보자. 사진은 결국 추억을 남기는 도구. 펑펑 터지는 불꽃만 찍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불꽃축제를 함께 즐기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떨까? 불꽃 아래 비친 밝은 미소, 사랑스러운 눈빛 등 그날의 분위기를 담을 수 있다면, 분명 그 사진이 더 좋은 불꽃축제 사진이다.
2022-10-28 [14:00]
-
[맹탐정코남] #34. 광안리 모래를 파면 나오는 이것은?!
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 새로운 즐길 거리가 생겼다. 준비물은 작은 삽 하나와 체력. 그리고 약간의 끈기만 있으면 되는 이것. 바로 조개잡이다. 광안리해수욕장의 모래를 파다 보면 조개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데, 흔히 조개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나 남해 등 갯벌에서 잡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광안리에서 조개를 잡는다는 게 뭔가 미심쩍은데. 만약 있다면 광안리에 있는 조개는 어떤 조개일까? 하다못해 그나마 서쪽에 있는 다대포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끝까지 의문이 남지만 일단 직접 광안리해수욕장으로 나가봤다.
<현장검증>
오늘 저녁은 조개구이다
광안리 바다에 들어가 본 적은 있어도, 모래사장 위에 누워 태닝을 한 적은 있어도, 땅을 파헤쳐본 적은 없다. 작은 모종삽 하나를 손에 들고 광안리로 향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아니 조개 찾기가 시작됐다. 조개는 어디에 있을까? 먼저 광안대교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해수욕장의 중심부를 살펴봤다. 바싹 메마른 조개껍데기만 찾을 수 있을 뿐, 어디에도 조개는 없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기도 하고, 파도가 강하기 때문에 모래와 흙, 바닷물 등 퇴적물이 뒤섞인 갯벌이 만들어질 수 없는 환경이다. 이곳에는 조개가 살 수 없다.
조개는 광안대교를 기준으로 해수욕장 좌우 끝, 삼익비치 아파트 쪽과 민락동 횟집 거리가 가까운 모래사장에서 나온다. 이곳은 중앙부와 달리 어느 정도 모래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민락동 횟집 거리 근처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고 땅을 파보기로 했다.
조개는 사서 먹자
모래를 계속 팠지만, 조개를 쉽게 발견할 순 없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물때를 맞추지 못했다. 땅을 계속 팠지만, 곧바로 바닷물이 들이쳐 조개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땅을 깊게 파면 팔수록 물은 빨리 차올랐다. 무조건 깊게 파는 게 능사는 아니다. 최대한 넓은 부위를 효과적으로 공략해야 했다. 광안리 해수욕장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30여 분, 드디어 첫 번째 조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개량조개로 추정되는 조개로, 크기는 성인 남성 검지손가락 두 마디 정도였다. 생각보다 씨알이 굵었다.
한참 땅을 파다 보니 맛조개 숨구멍으로 발견되는 구멍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언뜻 저 구멍에 소금을 뿌리고 기다리면, 맛조개가 솟아오른다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찮았다. 바닷물이 들어와 구멍에 소금을 뿌릴 순간조차 없었다. 그때, 저 멀리 누가 봐도 전문가 포스를 내뿜으며 조개를 그야말로 주워 담는 고수가 눈에 들어왔다.
고수는 장비부터 다르다
고수 옆에 자리 잡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고수 근처에서 땅을 파면 쉽게 조개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허탕이다. 오랫동안 광안리에서 조개를 채취해왔다는 그는 "지난번 태풍에 다 쓸려나가서 모시조개나, 개량조개를 발견하긴 어렵다"며 "맛조개를 노리는 게 좋다"고 말했다. 고수가 맛조개를 잡는 모습을 지켜봤다. 호미를 이용해 모래를 얕고 넓게 헤집었다. 파는 느낌이 아니라 헤집는 느낌이다. 그리고 맛조개 구멍을 발견하면, 바로 가느다란 쇠꼬챙이를 집어넣었다. 몇 번 구멍을 쑤시다가 재빨리 뽑아내니 갈고리처럼 휘어진 꼬챙이 끝에 맛조개가 걸려왔다.
모종삽 하나만 들고 왔던 손이 부끄러워졌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맛조개 꼬시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장비다. 고수는 양동이를 반 정도 채웠는데, 불과 10분 만에 잡은 양이라고 했다. 그는 "옛날보다 조개가 많이 없어졌다"며 "최근에 조개 축제를 한다며 조개를 들이부어 그나마 좀 낫다"고 말했다. 이어 "가게를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살림에 보탬이 될까 싶어서 자주 나온다고" 말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면 된다
장비 탓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물이 최대한 빠지기를 기다렸다 다시 시도했다. 땅속에 숨은 맛조개를 꼬시개를 이용해 꼬셔서 낼 수 없다면, 맛조개가 숨은 만큼 깊고 빠르게 땅을 파내면 된다. 단순하게 접근하기로 했다. 구멍이 발견되면, 지체 없이 땅을 더 깊게 팠다.
광안리 해수욕장을 다 헤집어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열댓 마리의 맛조개를 모종삽 하나로도 캘 수 있었다. 대신 온전한 상태의 맛조개는 드물다. 땅을 막 파 젖히다 보니 부서지거나, 알맹이만 남은 상품성 없는 맛조개가 대다수였다.
어린아이 손을 잡고 가족이 함께 조개잡이를 나온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채취한 조개 중 그나마 모양이 이쁘고 부서지지 않은 조개를 어린아이에게 선물했다. 용호동에 사는 주민 A 씨는 "아이가 안전하게 뛰어놀 수도 있고, 모래를 파며 조개를 잡는 것도 아이에겐 색다른 놀이"라며 "비록 많이 잡지는 못했지만, 아이와 즐겁게 지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사건결말>
원산지가 '해수욕장'인 조개는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백합 조개나 개량 조개를 많이 발견하지는 못했다. 대신 맛조개는 쉽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제대로 된 도구와 요령만 있다면 한 양동이를 가득 채우는 것도 짧은 시간 안에도 가능해 보였다.
광안리에 조개가 늘자, 지난 7월 부산 수영구는 코로나로 인해 중단됐던 조개잡이 축제를 3년 만에 개최했다. 행사를 위해 조개류 약 1톤을 해수욕장에 살포하기도 했다. 국립수산과학원 조사 결과, 광안리 조개에서는 패류독소 불검출. 중금속 함량은 기준치 이하라고 한다. 광안리 조개는 먹을 수 있다.
조개가 서식하는 깨끗한 바다 광안리. 이번주 아이들과 함께 조개잡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제작=남형욱 기자, 정윤혁 PD, 이지민 에디터, 한재경 대학생인턴
2022-10-21 [16:14]
-
[맹탐정 코남] #33. 부산에 온 아미들은 '이곳'에 간다?! 'BTS 성지' 총정리
<사건개요>
방탄소년단(BTS)이 2년 만에 부산에 돌아온다. 2030부산엑스포 유치라는 '목적'을 가지고 오지만, 어쨌든 그들이 다시 한번 부산으로 온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왜냐하면, BTS가 온다는 말은 그들의 팬덤 ARMY(아미)도 부산을 방문한다는 말이다.
‘아미’의 규모가 제대로 집계된 적은 없다. 다만 2022년 10월 기준, 유튜브 ‘BANGTANTV’ 구독자는 약 7090만 명, 인스타그램 ‘bts.bighitofficial’ 팔로워 수는 약 6816만 명, 트위터 ‘@BTS_twt’ 4754만 명, 그리고 하이브 팬덤 플랫폼 위버스 BTS 페이지 구독자는 1741만 명이다. 이정도면 일단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지 않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아미는 한국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해외 아미의 ‘화력’은 한국만큼 강력하다. 특히 ‘미국 아미’는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라디오 방송을 집중 공략해 BTS가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계기가 됐고, K-POP 이 주류 문화가 되도록 이끌었다. 전세계 56만 명을 대상으로 한 2022년 '아미 센서스'에 따르면 멕시코, 페루,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에 있는 아미가 한국에 있는 아미보다 많다. 즉 아미에게 부산을 알리는 것은, 전 세계를 상대로 부산을 알리는 것과 같은 말이다.
BTS와 부산은 인연이 깊다. 맴버 중 부산 출신이 정국(전정국)과 지민(박지민)이다. 이들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BTS 성지’가 부산 곳곳에 존재한다. 정국과 지민의 발자취를 따라 부산을 여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BTS 정국의 부산 성지>
‘정국투어’를 떠나요
부산 만덕동에는 이곳 출신 맴버 정국의 이름을 내건 투어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만덕동 문화해설사 곽종영 씨는 2019년 정국투어를 최초로 기획했다. 그는 “당시 부산 팬 미팅 콘서트로 많은 관광객이 만덕에 왔는데, 정국이 다녔던 초등학교 정문에서 사진만 찍고 떠나는 게 너무 아쉬웠다”며 “아름다운 만덕동을 알리고, 정국의 추억이 담긴 곳도 소개해주고 싶었다”고 투어를 기획한 계기를 설명했다.
투어 코스는 정국이 어린 시절 살았던 아파트에서 출발해, 백양중학교-레고마을-만덕도서관-은행나무길-백양초등학교로 이어진다. 정국은 백양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백양중학교에서 2학년 1학기까지 다녔다. 정국이 누볐던 그 길, 그 골목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셈이다.
한 아파트 앞에서 곽 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까지 정국이 살았던 아파트”라고 말했다. 만덕동이 눈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 곽 해설사는 “정국이 보던 풍경과 같은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라며 팬심을 자극했다.
백양중학교에 도착하자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곽 해설사는 “‘아육대’ 출전 당시 정국은 계주에서 활약을 펼쳤는데, 어릴 때부터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정국에 빠삭한 이유가 있다. 바로 곽 해설사의 둘째 아들과 정국은 초·중학교 친구다. 그는 “같이 축구도 하며 친하게 지냈던 것 같다”며 “BTS 활동으로 바빠지기 전에는 정국이 부산에 오면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정국에 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레고마을, 은행나무길 등 관광코스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곽 씨는 “투어에 참여한 청소년에겐 자원봉사 시간도 준다”고 했다. 15일 출발하는 정국투어는 ‘1365 자원봉사포털’에서 신청 가능하다. 정국투어의 소요 시간은 2시간 남짓이다.
보랏빛으로 물든 ‘곱창쌀롱’
부산진구 연지동, 정국으로 가득한 곱창집이 있다. 입구부터 모든 게 다 보랏빛이다. 문을 열자 보라색 네온으로 장식된 포토존이 있고, 가게 모든 벽면이 정국과 BTS 사진으로 도배돼 있다. 사진 수를 세어보다 100장을 넘어가길래 포기했다. 사진뿐만 아니라 인형, 컵홀더, 텀블러 등 가지각색의 굿즈로 장식되어 있다. 대부분은 팬들이 두고 간 굿즈라고 한다. 압권은 ‘정국이 앉은 자리’라며 만든 포토존이다. 옆에 정국 사진이 놓여있어, 함께 인증샷을 찍을 수 있다.
조윤재 사장은 “정국을 알고 지낸 지는 20년이 넘었다”며 “가게를 오픈했다고 하니까 지난번 콘서트 끝나고 나서 방문해줬는데, 그때 이후로 입소문이 나 아미에게 많이 알려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국은 식성이 좋아 모든 메뉴를 다 먹어봤고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곱창, 막창, 닭발, 갈비가 메인 메뉴인데, 이들을 한데 섞어 연탄불에서 볶아낸 세트 메뉴가 인기다. 연탄불에 구워 잡내가 하나도 없었다. 빨간 양념에 버무려져 있어 매울 것으로 짐작했지만, 전혀 맵지 않았다. 이곳을 찾는 외국인 아미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수준인 것 같다. 조 사장은 “코로나 전에는 유럽, 필리핀, 베트남 등 전 세계 아미들이 왔다”며 “이번 콘서트 덕에 예약 문의가 많아 14~16일 영업시간을 정오부터 자정까지 늘렸다”고 말했다. 자리가 없어서 돌아가는 아미들이 안타까워서다.
< BTS 지민의 부산 성지>
APOBANGPO! 메그네이트
부산의 BTS 성지, 단 한 곳을 꼽으라고 하면 남구 대연동의 카페 ‘메그네이트’를 말할 수 있다. 이 카페가 성지가 된 이유는 뭘까? 대형 창고를 개조해 만든 것 같은 독특한 외관과 커다란 규모, 샹들리에와 원색 소파가 인상적인 화려한 인테리어 덕분일까? 이유는 따로 있다.
이곳은 지민의 아버지인 박현수 씨가 운영하는 카페다. 누가 봐도 잘 큰, 번듯한 ‘청년’을 보면 ‘부모님이 누굴까’라는 생각을 한다. 가수 박진영도 그랬고, 아미도 마찬가지다. ‘지민을 키운 사람은 누굴까?’ 처음엔 호기심에 이곳을 방문했을 것이다. 그러다 점점 입소문이 나고 ‘BTS 성지’로 굳어졌다.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
카페 곳곳에서 지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한쪽 벽면에는 지민이 활동 중에 썼던 모자로 장식되어 있다. 모자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는 게 필수 코스다. 카페 중앙 커다란 탁자 위에는 미국, 그리스 등 전 세계 아미가 놓고 간 선물로 가득했다. 그들이 남긴 편지에는 ‘APOBANGPO’라고 쓰여 있다. ‘아미 포에버, 방탄 포에버’의 줄임말이다. 왜 'F'가 아니라 'P'인지는 모르겠다.
지난 9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됐던 지민 초상화도 눈에 띄었다. 일러스트 작가 ‘리케이(Lee.k)’의 작품으로 지민의 아버지가 직접 선택했다고 한다. 예술 작품으로 지민을 만나는 경험도 가능한 카페다.
메뉴 중 ‘퍼플레몬에이드’를 주문했다. 보라색이라 BTS를 상징하는 거냐고 종업원에게 물었지만, “특별한 관련은 없다”고 했다. 아무튼 BTS를 상징하는 보랏빛이 인상적인 레모네이드다.
지민이 맛집 맞나? ‘맛나분식’
부산 금정구 서동미로시장. 이름처럼 미로 같은 시장 골목을 헤매다 보면, 고소한 향기와 ‘지글지글’ 전 부치는 소리에 발길을 멈추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지민의 어린 시절 간식을 책임졌던 ‘맛나분식’이다. 30년이 넘은 오래된 곳으로 이곳의 주요 메뉴는 ‘계란만두’다. 잘 달궈진 철판 위에 불린 당면과 계란을 섞은 다음 밀가루 물을 묻혀 만두처럼 지져낸 음식. 부산에 15년 넘게 살고 있지만, 이런 맛은 처음이다.
가게 사장 김수연 씨는 “지민이 중학생일 때 우리 집에서 많이 먹고 갔다고 하는데, 학생이 워낙 많이 와서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중에 방송을 통해 지민이 먹고 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맛도 맛이지만 이곳의 장점은 30년 전으로 돌아간 음식 가격이다. 떡볶이와 계란만두, 파전을 주문했는데, 다 합쳐 3500원이다. 학생이 많이 올 수밖에 없는 가격이다.
계란만두는 담백함 그 자체다. 간장에 찍어 먹거나 떡볶이 국물에 적셔서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계란 한 판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떡볶이는 많이 달지 않고 칼칼해 포장마차 떡볶이 생각이 난다. 부추와 파가 적당히 섞인 파전도 기름지지 않고 간도 적당했다.
김 사장은 “지민을 본 적은 없지만, 대신에 아미들을 정말 많이 찾아온다”며 “전 세계에서 찾아오고, 한번은 '일본아미'가 길을 못 찾아서 우리가 데리러 간 적도 있다”고 했다. 쉽게 찾는 방법이 있다. 서동미로시장에 있는 가게는 각각 번호가 붙어있다. 맛나분식의 번호는 ‘1-82’번이다. 이 숫자를 따라오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지민세트로 주세요 ‘용문각’
분식으로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금정구 회동동의 중국집, 용문각으로 가자. 이곳 또한 지민의 맛집으로, 어렸을 때부터 지민과 그의 가족이 함께 찾는 맛집이다. 한 자리에서만 30년 이상 장사를 했다고 하니, 지민의 맛집으로 알려지기 전부터 유명한 동네 맛집. 가게 내부는 평범하지만 역시 한쪽 벽면은 지민을 중심으로 BTS 사진이 빼곡히 붙어있다. 지민의 싸인도 있는데, ‘추억을 지켜줘 감사하다’고 적혀있다.
지민이 앉은 자리에서, 지민세트를 주문했다. 유니짜장 2그릇과 탕수육, 군만두가 함께 나오는 구성이다. 야채와 고기를 잘게 다져 넣은 유니짜장은 간이 세지 않다. 과하게 달지 않아 물리지 않는다. 살짝 매콤한 맛도 들어있어 중화요리 특유의 느끼함이 없다. 면을 다 먹은 후 남은 소스에 밥까지 비벼 먹고 싶다. 탕수육도 간이 적당하다. 달콤한 소스가 ‘부먹’ 스타일로 나오는데, 부드러운 돼지고기와 바삭한 튀김옷의 고소한 맛과 잘 어우러진다.
메뉴 이름 앞에 ‘전복’이 붙은 메뉴를 주문하면 완도가 고향인 사장님이 배송받은 국내산 전복이 들어간다. 용문각 어순익 사장은 “지민이를 초등학교 시절부터 봤는데, 이 동네 살면서 우리 집 짜장면을 많이 먹었다”고 말했다. 평일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미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게로 끊임없이 들어왔다. 어 사장은 “일본에서 온 할머니부터 손주까지 3대가 아미인 손님이 온 적도 있다”고 했다. 이번 콘서트를 전후해 또 손님이 많겠다고 말하자, 그는 “콘서트 다음날 관광버스 1대가 예약되어 있다”며 살짝 미소를 띠었다.
+ RM, 뷔도 부산을 사랑해
부산 출신 멤버 정국, 지민 외에도 BTS에게 부산이라는 도시는 사랑받고 있다. 부산 곳곳 BTS 멤버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RM(김남준)은 미술 애호가로 유명하다. 그가 컬렉팅하는 작품과 작가는 높은 관심을 받는다. 윤형근·권진규 등 한국 미술계 거장에서부터 김우진 등 신진작가까지. 그의 예술에 대한 사랑은 폭넓고 다양하다. RM 발자취를 따라 아미들은 미술관을 투어하고, 전국의 아트페어에서는 MZ세대의 컬렉팅 열풍이 불었다.
부산에도 RM의 흔적이 담긴 곳이 있다.
바로 부산시립미술관 별관에 마련된 ‘이우환 공간’이다. 이우환 공간 1층에서 RM이 2019년에 남긴 방명록을 볼 수 있다. 그는 ‘바람을 가장 좋아한다’고 적었다. 바람이라는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 더 관심이 갔다. 2층에 전시된 바람 앞에 섰다. 점도 선도 면도 아닌 ‘붓질’이 이리저리 엉켜있다. RM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같은 작품을 보며 아티스트와 팬이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RM은 2020년에는 한 번, 올해에는 두 번이나 부산시립미술관을 방문했다.
부산시민공원에도 BTS의 흔적이 남아있다. 2019년 공연 부산 콘서트 전후 멤버 뷔(김태형)가 방문해 인증샷을 남긴 게 화제가 됐다. 이후 그가 사진을 찍었던 장소가 포토존으로 남아있다. 아직까지 많은 팬이 그곳에서 서서 뷔포즈를 잡으며 사진을 찍는다.
위치는 시민공원 남문에서 ‘시민마루’라는 큰 정자를 찾아 가면 된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보이는 큰 정자다. 정자 주위 산책로 바닥에 포토존이 표시되어 있고 뷔가 섰던 자리에는 발자국 프린트가 찍혀있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으니 잘 살펴야 한다.
<사건결말>
부산은 '아미효과'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공연을 앞두고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구멍 뚫린 아시아드경기장, 공연날 바가지 씌우는 숙박업소 등 안그래도 '열정페이' 논란이 있는 콘서트에 아미들의 불만이 크다.
이번에 부산을 방문하는 아미는 약 10만 명이라고 한다. 아미들에게 부산을 '잘' 알리는 것은, 2030부산엑스포 유치를 앞두고 가장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다.
BTS가 간 곳은 성지가 되고, 그들이 먹은 곳은 맛집이 된다. 부산 콘서트를 전후해 아미들이 즐길 수 있는 '부산의 BTS 성지'가 더 늘었으면 좋겠다.
제작=남형욱 기자, 이지민 에디터, 정윤혁 PD, 한승규·한재경 대학생인턴
2022-10-14 [16:00]
-
[맹탐정코남] #32. 고양이 사료가 주식?! 달맞이 공원의 여우
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부산 달맞이 공원에 여우가 나타났다. 길고양이가 많은 건 알고 있지만, 달맞이 공원에 여우라니, 사정을 알고 보니 시민들 눈에 포착된 이 여우는 국립공원연구원이 멸종위기종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경북 영주 소백산에 방사한 수컷 '붉은여우'. 약 400km의 긴 거리를 이동해 마침내 달맞이 공원에 나타난 것. 국립공원연구원 측은 달맞이 공원이 여우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으로 서둘러 포획해야 한다고 하는데. 포획 틀과 모니터링 장비를 설치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 시민들 눈에 발견된 지 두 달이 넘었다. 하지만 여우를 포획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달맞이 공원은 여우가 살기에 부적합한 곳인지, 달맞이 공원에 정말 여우가 있는지 직접 만나러 가봤다.
<현장검증>
달맞이 공원의 붉은여우
달맞이길에 여우가 최초로 나타난 것은 지난 6월로 추정된다. 공원을 산책하던 시민들 눈에 먼저 들어왔는데, 주차장 인근 언덕 쪽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먹이를 받아먹으며, 장난치는 듯한 모습이 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덕분에 '여우를 보러 많은 사람이 달맞이에 몰린다'라는 건 과장된 말이지만, 그래도 주민들은 '달맞이에 여우가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졌다. 한 주민은 여우가 자주 앉아 쉬는 지정 바위도 있다고 말했다. 주민 A 씨는 "'산스장(산속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다, 고개를 돌렸는데 바로 옆에 여우가 엎드려 있었다"며 목격담을 전했다. 공원 곳곳 안내 현수막도 걸려있다. '여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소리 지르지 마시오'. 여우도 마찬가지로 달맞이 공원에 익숙해진 것 같다. 9월 말이 될 때 까지 아직 달맞이 공원을 벗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여우는 공원연구원에서 방사한 개체로 목에는 GPS 추적 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위치를 특정하기 쉬운데, 국립공원연구원 측에 따르면 아직 달맞이 공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지난 2일, 무모하지만 달맞이 공원 일대를 돌아다니며 여우를 찾아보기로 했다. 여우를 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서둘러 포획해야 한다고 하니 여우가 있는 장소를 제보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언덕 아래 산책길부터, 해월정, 달맞이 어울마당을 왔다갔다 거리며 3~4시간을 샅샅이 훑어봤지만, 여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달맞이 공원의 여우는 지난해 12월 방사된 후 강원도 동해시로 이동했고, 6월 초 해운대구 달맞이고개까지 내려온 것으로 추정한다. 이동 거리만 370km가 넘는다. 왕성한 활동량 때문일까? 여우 찾기가 쉽지는 않다. 설상가상으로 여우는 야행성 동물이라고 한다. 낮에는 땅굴이나 수풀 속에서 잠을 자다 해가 지면 활동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9 to 6'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맹탐정과는 인연이 없는 동물일지도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외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제작진은 '달맞이 공원에 여우가 나타났다'고 최초로 언론사에 제보한 '캣맘'을 만날 수 있었다.
고양이 밥을 먹는 여우
그는 자신을 달맞이 공원 일대에서 길고양이를 돌봐주는 '캣맘'이라며 소개했다. 그는 "내가 여우를 발견해 신고했는데, 처음에는 고양이를 착각한 것 아니냐며 사람들이 믿지 않아 사진도 같이 보내줬다"고 말했다. 그가 직접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함께 봤다. 한눈에 봐도 고양이나 개와는 다른 생김새다. 꼬리가 몸만큼 길며, 다리는 몸통에 비해 짧은 편이었다. 몸을 덮은 붉은 털은 윤기가 돌고 있었다. 기다란 주둥이 밑으로 목에 걸린 GPS 장치까지, 공연연구원에서 방사한 붉은 여우가 틀림없다. 그는 여우가 자주 나타나는 포인트를 알려주면서 맹탐정 일행을 안내했다.
공중화장실 옆 수풀, 보행 데크 아래 공간 등 그야말로 야생 동물들이 찾을 법한 장소만 알려줬다. 그리고 그 장소 대부분에는 고양이 밥그릇이 놓여 있다. 그는 "요즘 들어 고양이 밥그릇이 항상 깨끗하게 비어 있다"며 "고양이는 절대로 그릇을 다 비우는 경우가 없는데, 여우가 와서 먹고 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우가 하루빨리 포획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고양이 때문에 밥을 안 줄 수도 없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밥이 없으면, 배고픈 여우가 고양이를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일주일 뒤 다시 도전
이대로 포기하긴 이르다. 캣맘의 조언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여우를 만나러 나왔다. 날씨 운이 따르지 않는 것일까? 달맞이 공원에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캣맘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추측건대, 여우는 몸이 젖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며 "항상 맑은 날에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느낌이 좋지 않다. 이번에는 돌아다니지 않고 달맞이 어울마당 인근에서 계속 기다려 보기로 했다. 어느덧 해가 어둑어둑 사라졌고, 오후 8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캣맘이 알려준, 여우가 자주 출몰하는 바로 그 시간대다. 하지만 고양이만 지나다닐 뿐 여우를 만날 수는 없었다. 여우가 달맞이 공원에 없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때마침 공원연구원 관계자들을 달맞이 공원에서 만나게 됐다. 안테나 같은 모양의 막대기를 들고 달맞이 공원을 탐색하고 있었다.
공원연구원 관계자는 "GPS를 추적해보니 아직 달맞이 공원에 있는 것은 맞다"고 답했다. 그들은 고양이 밥그릇 주변에 방수포를 설치해, 사람이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관계자는 "포획 틀을 설치했지만, 고양이 사료 등 다른 곳에서 여우가 먹이를 먹는다"며 "일단 모니터링 장비를 설치해두고 언제 여우가 나오는지 확실히 지켜보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들도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건결말>
결국 여우는 만나지 못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맹탐정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여우를 찾으러 돌아다니는데, 눈치 빠른 여우가 나올 턱이 없었다. 많은 전문가는 이 여우가 달맞이 공원에서 야생성을 잃을까 우려한다. 붉은여우의 주식인 들쥐 같은 동물이 충분하지 않은 반면, 곳곳에 길고양이 사료 등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사냥 대신 사람이 주는 먹이에 익숙해지게 되는 셈이다. 또 차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달맞이 공원은 여우가 로드킬을 당할 위험도 크다. 국립공원연구원은 포획 틀로 여우를 잡는 데 실패하자, 캣맘들이 놓고 가는 사료 일대에 모니터링 장비를 설치하는 등 붉은여우의 행동을 파악하려고 노력 중이다. 시민에게도 여우를 만나면, 먹이를 주는 행위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달맞이 공원은 여우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붉은여우가 이곳을 떠나, 하루빨리 건강하게 살기 적합한 서식지로 돌아가길 기원한다.
2022-09-23 [16:06]
-
[맹탐정코남] 31. 한쪽에선 밤새 마시고, 한쪽에선 밤새 치우고
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공원을 찾는 사람 대부분은 운동, 휴식, 산책 등 나름 건전한 목적이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부산에는 '술 마시는 공원'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 바로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 2000년대 중후반부터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 이곳은 '헌팅 성지'로 불리며 전국적으로 인기를 끈다. 술과 음식, 담배 냄새 등이 뒤섞인 악취가 항상 공원 주변을 맴돌아, 수변공원이라는 이름 대신 '술변공원'이라는 오명도 가지고 있다. 공원에서 술 마시는 게 무슨 문제냐고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인터넷에서 수변공원을 검색하면 쓰레기로 가득한 공원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그 양이 하루에 약 50t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준.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은지, 진짜 엉망진창인지, 직접 새벽부터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쓰레기를 주워봤다.
<현장검증>
새벽 3시. 가장 핫한 곳
8월의 마지막 주말, 토요일 새벽 부산 수영구 민락동의 '민락수변공원'을 찾았다. 오전 3시, 선선한 새벽 공기에도 불금의 열기는 꺼지지 않고, 오히려 뜨거워지고 있다. 이곳은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몰린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즉석만남을 노리고 오는 젊은 청춘과 광안대교를 보며 음주가무를 즐기고 싶은 관광객이다. 길이 약 500m의 수변공원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2~3명 정도 공원 계단에 앉아 조촐하게 술과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적게는 4~5명에서 많게는 7~8명까지 무리를 지어 바닥에 은색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다. 대충 눈으로 훑어본 돗자리 개수만 50개가 넘는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조금 떨어졌을 뿐인데, 온도 차가 너무 크다. 술에 취해 고성방가는 물론이고 음악을 크게 켜고 노래를 떼창하는 무리까지. 새벽에 이렇게 열기가 넘치는 곳은 부산에서 이곳 수변공원뿐일 테다.
'술변공원'의 위상
사실 맹탐정도 이곳에서 술을 먹은 적이 있다. 아주 먼 옛날인 2009년, 20대 중반 시절. 13년이 훌쩍 지났는데 이곳은 여전히 더럽고 엉망이라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멀리서 술변, 아니 수변공원을 보면 약간 안개가 낀 듯 뿌연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다가 가까이 있어 해무인 줄로 착각하기 쉽지만, 안타깝게도 안개가 아니라 담배 연기다. 수변공원 내에서는 금연이다. 낮에는 흡연을 통제할 수 있지만, 밤을 지새우는 취객에겐 무용지물이다. 입 밖으로 내뿜어낸 연기가 구름처럼 떠돈다.
거기에 코를 찌르는 악취도 진동한다. 분명 야외인데도 불구하고 술과 음식 냄새가 가득하다. 거기에 비릿한 바다 냄새까지 더해지니 토사물에 코를 처박은 느낌이 든다. 악취의 원인은 취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 제대로 말하면 그들이 '두고' 간 쓰레기 때문이다. 수변공원 곳곳 먹고 남은 술과 안주가 방치된 사람 없는 돗자리가 많이 눈에 띈다. 잠시 자리를 비운 게 아니다. 돗자리에 앉아 술판을 벌이곤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청소라는, 뒷정리라는 개념이 실종된 곳. 상황이 이렇다 보니 쓰레기장 옆에서 술을 마시는 형국이다. 잘도 이런 곳에서 놀 수 있다니, 비위 좋은 사람이 많구나.
컴컴한 공원의 형광조끼
그나마 '수변쓰레기장'으로 전락하지 않는 건, 치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새벽 3시가 되자 형광 조끼를 입은 사람이 하나둘 등장했다. 드디어 청소가 시작된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취객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허리를 굽혀 청소했다. 왜 이렇게 늦게 청소하는 걸까? 사실 수변공원은 종일 '특별관리'를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수영구청 관계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환경공무직 직원 외에도 기간제근로자, 안전관리 용역 등 많은 인원이 수변공원을 관리한다"며 "다만 근무 시간을 고려해, 오후 9시부터 자정까지 3시간 동안 인력이 비는데, 그래서 시민들이 수변공원은 관리가 안 된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르게 생각하면 수변공원은 고작 3시간 만에 쓰레기로 엉망진창이 된다는 것이다. 사전에 협조를 구해, 구청 환경관리 담당 직원과 함께 쓰레기를 직접 치워보기로 했다.
식당과 공원의 차이점
수변공원 청소는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게 아니다. 마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느낌이다. 먼저 손님이, 아니, 사람이 떠난 자리를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돗자리 위에 술과 음식을 놔둔 채 그대로 두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건지 아예 나간 건지 잘 봐야 한다. 민락수변공원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계약직 직원 A 씨는 "빈자리에 사람이 없다고 바로 치우면 안된다"고 말했다. 담배 피우러 가거나, 술을 사기 위해 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A 씨는 "30분 넘게 기다려도 안 오길래 자리를 치웠는데, 남은 술을 마음대로 버렸다고 3만 원을 물어준 적도 있다"며 "그날은 일당을 날린 셈"이라고 했다. 또 "헷갈리면 바로 옆 돗자리 손님(?)에 물어보면 된다"고 노하우를 알려줬다.
빈 병은 따로 모아 분리수거를 한다. 남은 술이나 음료 등 액체는 어떻게 할까? 수변공원 계단을 살펴보면, 계단 벽면 아랫부분이 반타원형 형태로 뚫려 있다. 파도가 바로 앞까지 치는 수변공원 특성상 물 빠짐을 쉽게 하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인데, 그곳에 남은 음료를 버린다. 바다로 흘러가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다음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돗자리 덕이다. 음식물, 일회용품, 담배꽁초 등 쓰레기를 가운데로 모은 후 돗자리 채로 이불 싸듯 버리면 된다. 식당 테이블 치우듯 자리를 치우니, 불현듯 쓰레기 투기 해결법이 떠올랐다. 식당과 수변공원의 다른 점은 바로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으면 쓰레기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
45t의 쓰레기들
관리원들은 청소 시작 전 수변공원 일대에 일정 간격을 두고 1t 용량의 거대한 마대를 가져다 놓는다. 이곳에 쓰레기를 모아 한 번에 수거하기 위해서다. 계속 쓰레기를 치우고 있자니, 살짝 '현타'가 왔다. 선선한 날씨인데도 땀은 계속 흐르고, 즐겁게 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청소하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와 중에도 사람은 줄지 않는다. 새벽 4시가 넘었는데도 자리를 치우기 무섭게, 웨이팅이라도 한 듯 다른 사람이 돗자리를 깐다. "여름 되면 밤새도록 놀다가 해가 뜨면 집에 가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그나마 적은 편이다." 언제까지 사람이 있냐는 맹탐정의 질문에, A 씨가 답했다. 쓰레기만 치우는 것도 버거운데, 다른 애로 사항도 있다. 취객을 상대하는 일이다. A 씨는 "왜 쳐다보냐며, 왜 비질을 세게 해서 먼지를 일으키냐는 등 셀 수 없이 시비를 건다"며 "자리에 놔둔 지갑이나 귀중품이 없어졌다고 청소 관리원을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또 "몇몇 사람은 자기가 놀고 난 자리를 치우라고 고함치고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전 5시 30분 어느새 해가 떴지만, 아직 10여 개의 돗자리가 남아있다. 쓰레기차가 수변공원으로 들어왔다. 관리원은 쓰레기 마대를 한곳에 모았다. 개수를 세어보니 1t짜리 마대가 총 45개. 하루에 나온 쓰레기양이 45t이라고 할 수는 없다. 빈 페트병, 돗자리 등 부피가 큰 쓰레기가 많아서다. 돗자리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대여해주면 어떨까? 또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식으로. 그렇게 하면 돗자리 쓰레기라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결말>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버리는 사람 따로 있는 이곳. 고작 하루지만 수변공원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자니, 취객들에 대한 혐오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민락수변공원의 쓰레기 문제, 사실 해결 방법은 어린아이도 알 만큼 뻔하다. '자기가 어지럽힌 자리는 자기가 치우고 간다.' 하지만 이 간단한 일조차는 민락수변공원에서는 몇십 년 동안 불가능했다.
수영구청은 민락수변공원 내 음주 행위 금지라는 다소 강력한 조례제정을 추진 중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처럼, 수변공원 내 음식 취식을 아예 막자는 이야긴데, 기본권 제한이라는 우려와 공원 주변 상인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취객 간의 실랑이는 밤새도록 끊이질 않고, 밤이 되면 무질서가 판을 치는 이곳.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버려지면서 이에 따른 행정력 낭비와 비용도 무시할 수는 없다. 더 이상 사람의 선한 의지에만 기대 나아지기를 바랄 수 없다면, '수변공원 금주령'이나 입장료를 받는 등 강력한 조치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더 이득일 수도 있다.
2022-09-09 [15:00]
-
[맹탐정 코남] #30 부산에만 있는 특이한 아파트 TOP 3
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부산의 지형은 산 아니면 바다.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산을 볼 수 있고,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바다를 품고 있는 도시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평지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구가 줄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333만의 대도시. 이 많은 사람이 평지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수 없이 바다를 매립하거나 산을 깎아 억지로 평지를 만들었다. 덕분에 특이한 장소에 자리 잡은 아파트가 많이 생겼다. 절벽과 바로 마주 보고 있는 아파트, 경사를 그대로 살린 테라스 디자인으로 유명한 아파트 등 특이한 형태가 존재한다. 또 바다 지척에 우뚝 서있는 대단지 아파트는 광활한 '오션뷰'로 다른 단점을 모두 상쇄한다. 다른 지역 사람들의 눈을 의심하게 하는 '부산의 특이한 아파트' 세 곳을 선정, 직접 가봤다.
부산의 헬름 협곡
먼저 찾아간 아파트는 부산시 사하구 당리동 '동원베네스트 2차'다. 2006년에 지어진, 비교적 오래된 이 아파트는 인터넷에서 '부산의 헬름 협곡'으로 불린다. 헬름 협곡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나라 중 하나인 로한의 한 지역을 말한다. 절벽이 사방을 둘러싸고 그 한 가운데 난공불락의 요새가 있는 게 특징이다. 동원 베네스트 2차가 있는 곳과 꼭 빼닮았다. 승학산의 한 산줄기가 아파트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형태다.
사실 이곳은 아파트를 짓기 위해 산을 깎은 게 아니라, 석탄을 채굴하던 채석장 부지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가 있기 전에는 기중기 면허 시험장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계곡도 아파트 앞에 흘러 완벽한 '배산임수'를 자랑한다. 절벽이 둘러싸고 있는 특징적인 지형 덕분에, 8월의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도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다. 부산의 끈적한 바람이 아닌 숲속에서나 느낄 수 있는 상쾌한 바람이다. 432세대가 살고 있는데, 이곳 주민은 여름에도 에어컨을 잘 켜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거실에서 '폭포뷰'를
비가 내리면, 이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는 절벽에 폭포가 흐른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에 게시된 사진을 확인해보니 절경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운이 좋은 세대에서는 거실에 앉아서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고도 한다. 진정한 숲세권이라면, 거실에 앉아서 폭포를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 많은 사람이 이 아파트의 사진만 보고 우려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산사태에 취약할 것이라는 걱정이다. 하지만 실제로 방문해보니 산사태는 기우였다. 먼저 깎아지는 절벽은 암벽으로 흘러내릴 염려가 적다. 또한 만약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촘촘한 그물망이 절벽 전체를 다 감싸고 있다. 무엇보다 사진과 달리 아파트 단지와 절벽 사이의 거리는 꽤 멀다. 50m 이상 떨어져 있는데, 주차장이 있고 절벽과 단지 사이에는 높은 옹벽이 또 서 있다. 아파트보다 더 높은 지대에 기숙형 과학고인 '부산일과학고등학교'가 있어 학부모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는데, 지난 6월 실거래가는 105㎡가 2억 2500에 거래됐다. 평당 약 720만 원.
오션뷰의 끝판왕
두 번째 부산의 특이한 아파트는 2008년에 지어진, 남구 용호동의 '오륙도 SK뷰 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부산 도심 중심에서 꽤 떨어진, 남구의 끝자락이자 용호동의 가장 안쪽, 오륙도 바로 앞에 지어진 15개 동, 약 3000세대의 대단지 아파트다. 부산 기념물로 지정된 오륙도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아파트다. 달맞이 언덕에 우뚝 자리 잡은 '해운대 힐스테이트 위브'와 함께 주변 스카이라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비난 받기도 했다. 현재는 바닷가 근처에 지어진 고층 아파트가 많아 '오션뷰의 끝판왕'이라는 별명은 무색해졌지만, 그래도 'W'가 지어지기 전만 해도 남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먼저 그리스와 로마 신전을 닮은 출입구를 지나자, 잘 가꿔진 조경과 도로가 깔끔한 느낌을 줬다. 비록 지상을 통해 차가 지나다니고는 있었지만, 보도가 넓게 조성되어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분양 당시 '고급 리조트'를 콘셉트로 내세웠는데 이 아파트의 지리적 단점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았다. 사실 위치 덕분에 신혼부부 등 젊은 세대보다는 은퇴한 노년층이 여유롭게 살기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산의 바닷가 근처 아파트가 겪는 고질적인 문제도 있다. 해풍 탓에 금속 구조물은 많은 부분 녹슬어 있었고, 습한 기후 탓인지 아파트 저층부 벽면에는 얼룩이 많이 묻어 있었다. 비 오는 날에는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해무가 낀다고 전해진다.
가장 큰 단점은 교통
도시철도는 당연히 없고 버스 노선은 24, 27, 131번과 마을버스인 '남구2번'이 전부다. 대다수가 자가용이 있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주말이 되면 오륙도를 찾은 관광객으로 이곳은 북새통을 이룬다. 특히 넓지 않은 오륙도 공원 주차장이 가득 차면, 오륙도 SK뷰 아파트 앞 도로는 주차된 차로 난리가 난다. 주차된 자동차 사이로 버스 승객이 내리고 타는데 위험한 상황도 연출된다. 그래서 더 필요한 게 경전철이나 트램 등 교통수단이다. 지난해 부산 남구에 국내 1호 트램 일명 '오륙도선'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렸다. 기대감에 한껏 들떴는데, 지난달 비보가 날아왔다. 약 400억 원의 사업비가 설계과정에서 2배 넘게 급증해 국비 확보에 비상이 걸린 거다. 기재부는 당초 연구개발용으로 추진했던 사업이 승객을 태우는 상용노선으로 변경해 예산을 지원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승객을 태우지 못하는 연구용 트램 모형만 좁은 도로에 새로 생기는 셈이다. 구간도 짧아져 오륙도까지 트램이 달리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오륙도 SK뷰 아파트 주민이 트램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은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부산의 테라스형 아파트
요즘 아파트 대부분은 옵션으로 '발코니 확장'을 선택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거실과 방 등 실내 공간을 넓게 빼기 위해 확장을 선택한다. 그래서 발코니가 없거나, 있어도 안방과 연결된 조그만 공간이 발코니의 전부다. 간혹 '테라스'라고 이름 붙은 아파트가 많이 늘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건물 외벽에 맞닿아, 전망을 보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작은 공간, 즉 발코니가 추가로 설치되어 있을 뿐인데 이것을 테라스라고 한다. 사실 테라스라는 단어는 '땅'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건물과 땅이 만나는 부분을 꾸며놓은 곳이다. 따라서 테라스는 항상 건물 1층에 있을 수밖에 없다. 주방이나 거실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1층 야외공간이며, 실내보다 조금 높거나 낮게 만든 야외 정원에 가깝다. 그나마 부산에서 테라스형 아파트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망미주공아파트다. 이름은 '망미'주공이면서, 수영구 망미동 소재가 아닌 연제구 연산동에 있는 이 아파트. 1986년 사용승인 되어, 37년 된 주공아파트가 부산의 특이한 아파트 세 번째로 꼽힌 것은 전부 테라스형 디자인 덕이다.
재건축 후에도 테라스는 남길…
총 23동, 2038세대가 사는 곳으로 이 중 107동부터 110동까지 총 40세대가 1층 단독형 테라스동이다. 이 아파트의 상징으로 116㎡ 평 실거래가 기준, 2020년 5월 8억 500만 원에 거래됐다. 평당 2300만 원으로 해운대 등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지역과 맞먹는 수준이다. 경사를 따라 빨간 벽돌을 사용한 계단이 가운데 놓여 있고, 현관문이 마주 보고 있다. 야외 복도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에는 큰 나무들이 우거져 하늘을 가리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 덕에 사진찍기 좋은 아파트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한가로이 정원에서 책을 읽거나, 반려동물을 키우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언뜻 텃밭을 일궈놓은 세대도 있었다. 이 아파트는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데, 재건축 후에도 테라스 디자인은 살렸으면 하는 바람마저 들었다.
물론 이 아파트의 장점이 테라스만은 아니다. 아파트 내부엔 자연 경사를 활용한 커다란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연못 주변을 비롯해 단지를 거닐 수 있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동 간격이 상당히 넓은데 그 공간을 녹지로 채워 마치 커다란 숲속에 아파트가 세워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사건결말>
직접 가본 3곳의 아파트는 사진과 많이 달랐다. 절벽 한복판에 박혀있다고 오해를 샀던 동원베네스트는 사진과 달리 산과 아파트가 꽤 떨어져 있었다. 덕분에 답답함 대신 한여름에도 시원한 쾌적함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두 곳도 모두 살기 좋은 아파트였다. 오륙도 SK뷰는 고급스러움과 오션뷰가 장점이었고. 망미주공아파트는 푸른 정원과 테라스라는 그림 같은 디자인을 자랑하는 아파트였다. 또 재건축이라는 호재도 무시할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아파트 가격에 사람들은 민감하다. 살아보지 않고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 한 장으로 아파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어떤 아파트가 제일 비싼 아파트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지만, '어떤 아파트가 제일 좋은 아파트일까'라는 질문엔 정해진 답이 없다. 각자의 선호도가 다르고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평지가 부족한 지리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어진 부산의 특이한 아파트. 획일화된 외관으로 통일된 단지보다 개성 넘치는 아파트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2022-08-26 [16:15]
-
[맹탐정 코남] #29. 대형마트 치킨, 어디가 제일 맛있을까?
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대형마트 치킨이 치킨 시장 가격 경쟁에 불을 붙였다. '당당치킨' '한통치킨' 등 이름은 다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프랜차이즈 치킨값에 비해 반값, 아니 반의반 정도로 저렴하다는 것. 사실 마트 치킨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롯데마트에서는 5000원이라는 가격에 '통큰치킨'을 출시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라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판매를 멈출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은 2만 원에 육박하고, 배달비, 수수료 등 기타 비용을 더하면 3만 원 까지 올라간다. 고물가 시대에 지친 사람들, 이제는 마트치킨을 비난하기보다 치킨을 사기 위해 매장이 열리기 전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 즉 '치킨런'도 마다하지 않는다.
12년 만에 다시 돌아온 대형마트 치킨. 가격은 저렴하지만 프랜차이즈 치킨을 위협하는 맛과 양을 자랑한다는데… 홈플러스, 롯데마트, 메가마트 3곳의 치킨을 직접 구매해 비교해봤다.
<현장검증>
당당치킨, 지금 사러 갑니다
12년 전과 달리 치킨 가격 경쟁 '어그로'는 롯데마트가 아닌 홈플러스가 먼저 끌었다. 지난 6월 30일 발매한 당당치킨은 1~2개월 물량이 1주일 만에 소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10일까지 전국에서 팔려나간 치킨만 32만 마리. 계산해보면 1분에 5마리가 팔린 셈이다. 당당치킨의 가격은 6990원. 양념은 1000원 더 비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프랜차이즈 치킨값의 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엄청난 인기에 매장마다 줄을 선다는 말을 들었다. 또 만만하게(?) 보다 치킨이 없어 헛걸음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설마 하는 마음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홈플러스 서면점 관계자는 "아침 10시부터 판매가 시작된다"며 "11일 어제 같은 경우는 오후 1시에 준비한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고 말했다. 평일인데도 이렇게 불티나게 팔린다는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운이 나쁘면 치킨을 못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야 했다. 오늘 점심은 치킨이다.
점심부터 '치킨런'이라니
당당치킨이 인기라며 길게 줄을 선 사진을 신문이나 기사에서 자주 접했다. 신문을 만들지만, 연출한 사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전 10시 30분 홈플러스 매장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드문드문. '경쟁자는 없다…' 살짝 안도했다. 저 멀리 조리식품을 파는 코너가 보였다. 프라이드치킨 냄새가 코끝을 스친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일까? 세 사람이 장바구니를 든 채 줄을 서 있다. 저곳이구나. 얼른 뒤에 줄을 섰다. 매대는 텅 비어 있다. 대기줄이 생각보다 짧다. 출근하자마자 치킨을 사러 뛰어온 보람이 있다. 역시 조작된 사진이다라고 생각한 순간 맹탐정 뒤로 사람이 한둘씩 서기 시작했다.
곧 10여 명 정도가 줄을 섰다. 사람이 몰리니 담당 직원이 안내를 시작했다. 그는 "조리기구 사정상 한 번에 6개씩 나온다"며 "다음 치킨은 15분 뒤에 또 나온다"고 외쳤다. 당당치킨은 '당일 제조, 당일 판매 치킨'의 줄임말이다. 30분 정도 기다리자 주방 문이 열렸고 곧 당당치킨이 나왔다. 1인 1마리 한정 상품이다. 마침내 당당치킨이 손에 들어왔다. 그사이 줄을 서 있는 사람은 더 늘었다. 하루에 판매되는 양이 정해져 있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중고거래 앱인 '당근마켓'에 웃돈을 붙여 당당치킨을 판매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다행히(?) 반응은 싸늘했다고 전해진다.
3곳의 치킨이 한자리에
당당치킨을 구매한 뒤 바로 롯데마트로 향했다. 사실 대형마트 치킨의 원조는 롯데마트다, 2010년 혜성처럼 나타나 치킨 시장을 뒤흔든 통큰치킨. 당시엔 여론에 밀려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지금은 그 양상이 다르다. 당당치킨의 독주에 '한통치킨(한통가아아득치킨이 정식 명칭이다)'을 내놓으며 통큰치킨의 부활을 알렸다. 당당치킨 못지않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 매장 입구에서부터 실감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카트마다, 장바구니마다 치킨이 한 통씩 들어있다. 발걸음을 서둘렀다. 다행히도 운이 좋아 바로 구매했다. 대기줄도 없다. 가격은 한 마리 1만 5800원이지만, 제휴카드 할인 혜택을 받아 8800원에 샀다.
메가마트의 '메가킹치킨'은 취재 전날 저녁 메가마트에서 미리 구했다. 3곳의 치킨을 한자리에 모아두고 비교를 위해 먹지 않고 참아냈다. 원래 메가킹치킨의 가격은 한 마리 1만 900원이다. 지난 3일부터 9일까지 바캉스 시즌행사로 6900원에 판매했다. 할인행사 기간을 놓쳤지만 마감할인을 받아 7900원에 구매했다. 드디어 3곳의 치킨을 모두 모았다. 맛과 양 등 조목조목 비교해보기로 했다.
마트 치킨 no.1은?
각 마트 치킨의 양과 무게를 측정해봤다. 먼저 당당치킨은 10조각이 들어있다. 무게는 806g. 국내산 8호 냉장 계육을 쓰는데, 다른 곳과 차이는 치킨 조각이 상대적으로 크고 맛감자 토핑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닭 다리를 집어 먹어봤다. 만든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튀김 옷이 바삭바삭했다. 염지를 약하게 해 짜지 않고 육즙이 풍부하게 느껴졌다. 염지를 강하게 한 치킨은 삼투압 현상이 활발하게 일어나 당장 먹을 때는 짭조름한 맛이 확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분이 빨리 날아가 퍽퍽해진다. 다만 맛감자는 빼도 될 것 같다. 맛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롯데마트의 한통치킨은 양으로 승부하는 것 같다. 무게는 955g이고 치킨 조각은 무려 22조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통치킨은 9~11호 크기의 냉장 계육을 쓴다. 통상 치킨의 '한 마리 반' 분량이라는 소리다. 맛은… 한입 베어 물자마자 기름 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비교를 하기 쉽게 닭 다리를 또 뜯었는데 당당치킨에 비해 상대적으로 퍽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풍부한 양이 단점을 커버하는 것 같다. 패키지도 셋 중에 가장 눈에 잘 들어오고 이쁘다.
메가킹치킨은 743g으로 가장 가벼웠다. 모두 15조각이 나왔다. 앞서 두 치킨과 가장 다른 점은 반죽의 형태다. 당당치킨과 한통치킨이 물반죽을 입힌 후에 크리스피 파우더를 묻혀 튀겨내 바삭함을 살린 것에 비해, 메가킹치킨은 단순하게 물 반죽만으로 튀겨냈다. 덕분에 옛날 통닭 느낌도 난다. 맛은 살짝 매콤하다. 반죽이 조금 두꺼운 편이라 후추 간을 강하게 한것으로 추정된다. 구매한지 하루가 지났음에도 전혀 퍽퍽하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다.
독보적인 꼴찌
맹탐정 개인적으로 순위를 매기면, 당당치킨이 1위, 이어 메가킹치킨, 한통치킨 순이다. 당당치킨을 식기 전에 먹어봤다면,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맛이었다. 다른 사람의 입맛도 궁금해졌다. 동료기자와 PD에게 시식을 부탁했다. 평소 퍽퍽한 닭가슴살을 좋아하는 A씨는 "비슷한 반죽을 쓴 당당치킨과 한통치킨이 너무 비교된다"며 "한통치킨은 절대 사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메가킹치킨이 딱 짭짤한 프라이드치킨의 정석 같은 맛"이라며 "색깔은 노르스름한 게 한통치킨이 맛있어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질기고 냄새도 난다"며 혹평했다. C와 D도 비슷한 의견이다. 당당치킨과 메가킹치킨은 취향에 따라 선호도 차이가 있을 뿐 "맛있는 치킨"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한통치킨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맛이 없다"고 평했다.
<사건결말>
대형마트 치킨 3곳의 맛을 비교했지만, 프랜차이즈 치킨과 그 맛을 비교해 생각해봐도 크게 다른 점은 못 느꼈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전문적인 레시피를 사용해 맛이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치킨은 치킨. 혹자는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고 했다. 가격이 3배 차이난다고 프랜차이즈 치킨이 3배 더 맛있지는 않았다.
맛이 비슷하다면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이 과연 합당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한국육계협회에 따르면 냉장 닭고기 가격은 10년 전보다 오히려 떨어졌다. 2012년 8월 7-8호 냉장 닭고기의 가격은 kg당 4402원인데, 2022년 8월은 4244원으로 조사됐다.
닭고기 가격은 떨어지는데 왜 치킨은 그렇게 비쌀까? 시간이 지날수록 올라가는 배달료와 배달 플랫폼의 수수료. 그리고 밀가루, 기름 등 재료값의 상승도 무시 못 하지만 일부에서는 결국 이익을 보는 것은 프랜차이즈 본사라는 지적도 많다. bhc그룹은 작년 매출 6164억 원, 영업이익은 1680억 원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매출은 약 29%, 영업이익은 21%가 증가했고, 제너시스BBQ 역시 매출은 12% 이상 늘어난 3662억 원, 영업이익은 18% 증가한 653억 원을 달성했다.
저렴한 치킨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마트에 줄을 서고, 프랜차이즈 가맹주는 비명을 지르고, 업계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하는 상황.
이 '치킨게임'에서 진짜로 웃는 사람은 누구일까?
2022-08-19 [1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