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도 지역도 달랐지만 요구는 하나 "머물게 해달라"…부산 시민 63인의 명령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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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 애향심 있지만 한계 토로
중장년 ‘재취업’ 노년 ‘정년 연장’
생활임금 문제·임금체불 지적도
원도심·서부산 교통 문제 심각
돌봄 시설·출산 인프라도 부족
문화 생태계 조성 지원 요구도

지난 16일 부산 금정구 남산동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여야 부산시장 후보들에게 바라는 청년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아래 ‘텍스트 마이닝’은 63명의 부산시민 요구사항을 키워드로 정리해 표현한 것이며, 글자 크기가 클수록 언급 빈도가 잦은 키워드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 16일 부산 금정구 남산동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여야 부산시장 후보들에게 바라는 청년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아래 ‘텍스트 마이닝’은 63명의 부산시민 요구사항을 키워드로 정리해 표현한 것이며, 글자 크기가 클수록 언급 빈도가 잦은 키워드다. 김종진 기자 kjj1761@

63명의 부산 시민이 여야 부산시장 후보에게 보낸 ‘명령’은 세대와 직업, 거주 지역에 따라 우선순위는 달랐지만 결국 하나의 요구로 모였다.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사람이 계속 머물며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일보〉가 각계각층 시민 63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이들의 요구는 크게 △일자리·기업 유치 △교통 인프라 △돌봄·주거 △문화 생태계 △노동 환경 △지역 균형발전으로 나뉘었다.

■세대를 관통한 ‘일자리’

세대를 불문하고 가장 많은 시민이 꺼낸 화두는 단연 일자리였다. 특히 2030 청년층은 부산에 대한 애향심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한계를 토로했다. 해운대구의 취업준비생 김지훈(27) 씨는 “최소 중견기업 이상 들어가고 싶은데 부산은 기업체가 많지 않다”며 “고민하다 결국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부산진구 직장인 류보경(29) 씨는 한층 직설적이었다. “‘부산에 계속 남고 싶으면 눈을 낮춰라’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 기분”이라며 “명절 때 KTX 타고 내려오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연봉이나 복지 측면에서 수도권 일자리와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고 말했다.

일자리 문제는 청년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중장년층에게는 재취업의 벽과 생계 문제, 노년층에게는 안정적인 생활과 최소한의 존엄의 문제로 이어졌다. 해운대구 주부 김경희(58) 씨는 “아이들 다 키우고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경력 단절 생활이 오래되다 보니 단순 노동 일자리를 제외하곤 찾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사하구의 박영옥(70) 씨는 “노인 일자리를 나이대와 건강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고, 실질적인 소득이 될 수 있도록 시간대와 종류별로 다양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래구의 김혜수(60) 씨는 “100세 시대 정년 연장은 이제 생존을 위한 필수”라며 “부산시 공사·공단 노동자 정년 연장을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

노동 현장의 목소리는 보다 날이 서 있었다. 사상구의 정철진(53) 씨는 “2025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 가운데 부산시 노동청에 접수된 임금체불만 3500여 건”이라며 “부산시가 앞장서서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체불과 부당해고 근절을 위한 특별감독을 실시해달라”고 촉구했다. 영도구에 거주하는 김은정(53) 씨는 생활임금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부산시는 최저임금보다 약 19% 높은 생활임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공기업 민간위탁 노동자들은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며 “공기업, 출자출연기관 민간위탁업체까지 확대해달라”고 했다.

■교통은 지역 격차의 또 다른 얼굴

교통 문제 역시 시민들이 체감하는 대표적 불편으로 꼽혔다. 특히 원도심과 서부산권 주민들은 교통 접근성을 삶의 질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단순 불편을 넘어 ‘시간의 격차’이자 ‘기회의 격차’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영업자 박진혁(48) 씨는 “명지, 기장처럼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지역이 여전히 많다”며 “주요 도로들이 많이 생겨서 서부산과 동부산이 이어졌지만 대중교통은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진구 직장인 정재호(47) 씨는 “녹산·화전산업단지에 삼성전기와 LS일렉트릭 부산공장이 있는데 대중교통 접근성이 매우 좋지 않다”며 “하단~녹산선 등 도시철도 사업이 빨리 진행돼야 양질의 일자리도 늘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장군에 사는 변호사 박정원(48) 씨는 “서부산에서 태어나 자랐고 결혼 후 동부산에 거주하고 있지만 부산은 여전히 동부산 중심으로 개발이 이뤄지고 있고, 서부산은 수십 년 동안 변화가 거의 없다”고 호소했다.

■돌봄 인프라 부족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돌봄 인프라와 교육·문화 시설 부족을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해운대구의 자영업자 정현철(40) 씨는 “자영업을 하면서 아이 키우기가 정말 힘들다. 직장인 위주로 돌봄 혜택이 구성된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회사원 황지인(37) 씨는 “매 주말 아이와 함께 갈 곳을 고민한다. 공공시설은 주말에 하지 않는 곳도 많다”며 “아이와 함께 편하게 갈 수 있는 육아 공간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역업계에서 일하는 직장인 조유진(35) 씨는 임신·출산 인프라의 허점을 짚었다. “부산은 ‘마미콜’ 등 특정 앱·기관을 통해서만 지원받을 수 있는 구조라 접근성이 떨어진다. GPS 지원도 안 되고 배차 거부도 빈번해 임산부가 일상에서 겪는 불편이 크다”며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창작자는 떠난다”…문화 도시의 민낯

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는 한층 단순했다. 시설이 아닌 생태계 중심 문화 정책을 통해 부산을 ‘문화 예술의 도시’로 변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수영구의 심문섭(53) 씨는 “부산문화회관에서 부산에서 만들어지는 작품보다 서울에서 티켓이 많이 팔린 작품을 초청하는 것처럼, 부산은 부산을 등한시한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꼬집었다. 동래구 현대미술 작가 장유재(34) 씨는 “엑스포나 미술관 유치 같은 외형 중심 정책을 넘어, 창작자들이 부산을 떠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실질적인 문화 시장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했다. 해운대구의 영화감독 정유미(45) 씨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의 가치를 세계에 알렸던 것처럼, 예술인 레지던시 및 창작 공간 확충이 필요하다”며 “부산을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깊이 있는 문화예술의 도시로 변모시켜야 젊은 층의 유입과 도시의 성장을 동시에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영구 LP바 운영자 정태현(40) 씨도 “현재 문화 지원 정책은 지나치게 행정적 서류 중심으로, 그 구조를 아는 사람들만 수혜를 받는다”며 현장 중심의 유연한 지원을 주문했다.

〈부산일보〉가 모은 시민 63명의 목소리는 단순한 의견 수렴을 넘어 이번 지방선거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읽힌다. 시민들은 더 이상 거창한 비전으로는 설득되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부산에서 일하고, 부산에서 늙어가는 삶이 가능한 도시를 만들어달라는 절박한 요청이다. 동구 사진작가 이준희(43) 씨는 “시민이 정말 필요한 것을 만들지 않고, 보여주기식 정치적 성과를 위해 필요한 것만 만드는 것도 부산의 문제”라고 일갈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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