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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호구생활⑪] "허리가 고장났다" 독박육아 24시
올 2월 기다리던 첫아기를 맞이했다. 온 세상을 흔든 코로나19도 무시할 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내는 “앞으로가 무섭다” 했고, 주변 사람은 짠 듯 이구동성 “좋은 시절 다 끝났다”고 했다. '육아 전쟁' 때문이다.
내심 자신감이 충만했다. 괜히 겁주는 말이겠거니…. 쌍둥이도 아니고 얼마나 힘들다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독박 육아 체험'까지 결심했다. 이제는 남자도 똑같이 '공동 육아'를 할 시대이지 않나. 어쭙잖게 아이를 돌보다 '육아 호구'가 되기 십상이다.
■쾌조의 스타트
체험은 아기가 태어난 지 70일째 되는 날 했다. 오전 8시부터 24시간 동안이다. 오로지 혼자 육아+집안일을 해야 한다. 아내에게 마음껏 '집 밖 휴가'를 누리라 했지만, 마음이 불안한지 멀리는 못 가겠다고 한다.
코로나19로 한 달 반가량 재택근무를 해 나름대로 육아에 자신이 있었다. 어느 정도 보고 익힌 '육아 프로세스'가 머릿속에 있다.
시작은 좋았다. 비몽사몽 아빠와 달리 아기 컨디션이 '최상'이다. 쿠션에 앉혀 자동 모빌을 켜니, 30~40분간 '옹알이'하며 놀았다. 이때 빨래한 옷도 개고, 못다 한 거실 정리정돈도 끝냈다.
■전쟁의 서막
오전 9시가 채 되기 전, 전쟁의 전조현상이 드리웠다. 잠깐씩 '잉잉'대던 소리가 잦아지더니, 아기가 만세를 부르며 자지러졌다. 어깨에 올리거나 두 손으로 받쳐 안아도 무아지경이다. 난생처음 정체불명의 돌고래 같은 소리까지 내며 달래봤지만, 슬쩍 눈치만 볼 뿐 다시 울음보를 터뜨렸다.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거울을 갖다 대자, 간신히 진정됐다.
그 이후부터 긴장감이 맴돌았다. 배가 아팠지만, 또 아기가 울까 봐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 아내에게 잠시만 봐달라고 했으나, “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퇴짜. 10여 분간 5~6kg 아기를 안고 있는 오른쪽 팔뚝 힘도 이제 한계다.
■머피의 법칙
신기했다. 어깨에서 잘 자던 아기가 소파에 눕히기만 하면 ‘말똥말똥’이다. 신생아 ‘등 센서’가 소문이 아닌 진짜였다.
아기가 간신히 누워 모빌이나 초점책을 보다가도, 이불을 개는 등 청소만 하려 하면 찡찡댔다. 과자나 땅콩 등을 먹으려 하거나 카카오톡을 보려 해도 마찬가지. 마치 딴짓을 하지 못하게 감시하는 듯했다.
걷잡을 수 없는 울음보가 터지지 않으려면, 아기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당연히 한 상 차려 점심을 먹는 건 불가능했다.
있는 반찬을 데워 끼니를 때웠다. 전날 먹고 남은 찌개가 없었다면, 곧바로 '배달의 민족'을 터치했을 것이다. 그나마 데운 찌개도 아기를 달래고 오니 다 식어있었다.
아기를 안고 무언가를 하기엔 허리가 끊어질 듯했다. 허리 굽힘 없이 정리정돈할 수 있는 육아용 '대형 집게'를 하나 장만하고 싶었다.
결국, 집안일을 하려면 아기를 완전히 재워야 했다. 다행히 이날 오전 수유 후, 2시간 정도 낮잠을 잤다. 아내 말로는 평소엔 한 시간도 자지 않는다고. 오히려 재우다 실패하면 잠투정이 심해진다고 한다.
■하이라이트 '목욕'
설거지를 채 끝내지 못했지만, 아기가 깼다. 다시 육아다. 집안일과 육아가 ‘무한 반복’이다. 당이 떨어졌는지 어느 순간부터 단 음식이 당기기 시작했다.
낮잠 잔 아기의 수유를 끝낸 뒤 목욕에 도전했다. 바둥대는 아기를 한 손으로 껴안아 씻겨야 하는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날 체력이 다한 탓인지 목욕은 엉망이 됐다. 앉은 상태에서 아기를 들었다가 놨다 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나도 모르게 물 온도 조절에 실패했고, 조심해야 할 아기의 눈과 귀에도 물이 튀었다.
70일 된 아기의 표정에서도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빠의 서투름을 알고, 참고 견뎌주는 표정이었다.
아기도 지쳤는지 이날 평소보다 이른 오후 7시 30분에 잠이 들었다. 드디어 소위 말하는 '육퇴'(육아 퇴근)다. 육퇴 후 허리가 아파 소파에서 2시간 동안 뻗었다.
그러나 '육아 출근'은 금방 돌아왔다. 다음 날 오전 2시에 배가 고파 아기가 깼다. 한 시간 후 다시 잠이 든 아기는 오전 4시 30분, 6시 30분에도 차례로 깼다. 마치 군대에서 불침번을 서는 느낌이었다.
■오해와 진실
이번 체험은 저번 ‘임신부 체험’처럼 부부가 서로를 이해해보자는 뜻으로 시작했다. 사실 아기를 출산하고 키우는 과정에서 몇몇 마찰이 있었다.
우선 '육아 아이템'이다. '이거는 꼭 사야 한다'는 육아 아이템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수개월 간격으로 필요한 육아 아이템들이 달라, 업체들의 '상술'로 여겼다. 아내의 생각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러나 이날 독박 육아를 하며 집에 있는 모든 육아 아이템을 동원하는 내 모습을 봤다. 없으면 없는 대로 아이를 돌볼 수는 있었겠지만, '불필요한 아이템'은 없었다. 육아를 제대로 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었다.
두 번째는 '육아의 공동 분담'이다. 육아는 집안일의 일부분이 아닌 별개의 일이었다. 각자 맡은 일에서 추가로 더해진 일이다. 부부 중 한 명이 돕는 것이 아닌 '함께'해야 한다는 말을 몸소 체감했다.
사실 육체적 노동은 익숙해지면 할 만했다. 그러나 '정서적 힘듦'까지 겹치면 산후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창구가 없었다. 부부가 서로의 힘듦을 알고 받아주고 이해하는 게 필요했다.
■위대한 부모
임신부 체험 때처럼 이번에도 모성애의 위력을 느꼈다. 아기 목욕을 시킬 때 욕조를 1분 만에 헹구는 나와 달리, 아내는 매일 5분 이상 닦고 있었다.
육퇴 이후에도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며 스트레스를 푸는 나와 달리, 끊임없이 인터넷으로 '아기 재우는 법' '70일 아기 특징' '이유식 만드는 법'을 검색했다.
늦은 밤 아기가 배고플까 잠들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보였다. 얼마나 피곤한 상태인지를 알기에 더 대단하게 다가왔다.
비록 하루 체험이지만, 남다른 부성애도 느꼈다. 단순히 금전적으로 가족을 책임지는 것에 더해 아이와 정서적 교감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퇴근 후에도 어느정도 육아에 동참해야 할 자신감이 생겼다. 아이가 어떤 기분 상태이고, 무엇을 해줘야 할 지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다.
외로운 '육아 전쟁'을 견딜 힘은 부부에게서 나오는 듯하다. 이번 체험을 하며 아기의 웃음보다도 이를 지켜보는 아내의 위로가 더 큰 힘이 됐다. 모르지만 아내도 독박육아를 자청하는 남편에게 보이지 않는 위로를 받았을 터. '슬기로운 육아생활'의 기본 전제는 부부의 공감이다.
글=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사진=이승훈 기자 아내
2020-05-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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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호구생활⑩] 코로나19 재택 5주째…“다들 눈은 멀쩡하십니까”
■재택근무 29일…몰려온 ‘검은 아지랑이’
곧 끝날 것 같던 ‘재택근무’가 5주째다. 잠잠해지지 않는 코로나19 때문이다. 지난주까지는 외근을 병행했지만, 전 국민적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이제 현장 취재도 대부분 전화로 대체됐다.
회사가 아닌 좁은 방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게 꽤 익숙해졌다. 현장 취재가 없을 땐 무려 9시간 컴퓨터를 노려본다. 최근 산 탄력 좋은 ‘게이머 의자’ 덕에 나름 버틸 만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눈에 작은 아지랑이 같은 게 자주 뚜렷이 보인다. 빛 번짐이 심하고, 멀리 있는 것도 흐릿하다. 눈이 건조한 듯 따끔따끔해 자꾸만 감게 된다. 20대 초반 ‘라섹 수술’ 하기 전, 난시가 심할 때의 증상과 비슷하다.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회사 선후배도 이런 증상에 ‘인공 눈물’을 수시로 쓴다고 한다. 맘카페 등에도 “우리 아이 시력 괜찮은 걸까요?” 등 같은 처지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다들 ‘코로나19’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개학 연기, 재택근무 연장으로 컴퓨터, TV,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늘었다는 것이다. 산책이나 운동도 못 해 ‘눈 피로’도 풀지 못하는 상황. 특히 과도한 게임과 유튜브 시청으로 청소년 자녀들의 눈 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PC→TV→PC→TV→스마트폰
돌아보니 나도 그랬다. 일어나자마자 씻은 뒤, 오전 9시쯤 책상에 앉는다. 출근길 여유롭게 광안대교 바다를 보던 눈이 곧장 모니터와 마주한다.
한 번 눌러앉으면 기본 3시간이다. 가끔 전화 취재할 때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다. 화장실 갈 때도 휴식(?)을 위해 스마트폰을 꼭 쥔다.
점심시간이 되면 곧장 거실에 앉아 그리웠던 TV를 본다. ‘그날의 맛집’을 찾아다니고, 카페에 들러 잠깐의 여유를 누리던 점심보다 심플하고 편하다. 그러나 눈은 오전 내내 좁은 집 안만 봐서 피로가 쌓였다.
대략 한 시간의 식사 시간이 끝나면, 또 ‘게이머 의자’에 앉아 오후 6~7시까지 ‘논스톱’ 업무다. 피로한 눈을 돌려봤자 2~3m 방 안이 전부다. 간간이 눈이 피로해 눈을 감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봤자 1분 내외다.
일이 끝나면 또 저녁 식사, 이어 아기를 돌보며 다시 TV를 본다. 아기를 재운 뒤에는 불을 끈 채 소파나 침대에 앉아 낮에 화장실에서 보다 만 유튜브 시청.
두 달 전만 해도 청사포를 오가며 ‘야간 산책’을 했지만, 육아와 코로나19 때문에 이젠 갈 수가 없다. 야외 취재가 없는 날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하루 중 유일하게 50m 이상을 바라볼 수 있다. 눈에는 ‘최악의 일상’이다.
■‘블루라이트’와의 전쟁
블루라이트. TV, 컴퓨터,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에서 방출되는 파란색 계열의 광원이다. 익히 들어서 알겠지만, 시력 저하, 안구건조증 유발, 망막 손상을 일으킨다고. 과학적으로 증명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광고에서 그렇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쓰거나 모니터, 스마트폰에 차단 필름을 붙이기도 한다.
검은 아지랑이를 다시 보니, 예전에 샀던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이 떠올랐다. 3일 정도 쓰다가 가방에 처박히게 된 지 어느덧 2년. 인터넷 쇼핑몰에서 한 2~3만 원정도 주고 샀던 것 같다. 다행히 가방 구석 안경집에 고이 들어가 있었다.
스마트폰에는 ‘블루라이트 필터’ 기능을 켰다. PC에도 미확인 사이트에서 블루라이트 차단 프로그램을 다운받으려 했지만, 바이러스 침투 걱정에 포기했다.
안경을 낀 채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2시간을 보냈다. 처음 2시간은 눈 건조함 등이 체감상 이전과 별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점심 이후 변화가 느껴졌다. 플라시보 효과(진짜 약으로 믿어 좋은 반응이 나타나는 일)일 수 있지만, 빛 번짐이 덜하고 아지랑이가 줄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멀리 있는 물체도 아주 조금 또렷해진 듯하다.
그러나 안경만의 효과로 단정 짓기 어렵다. 점심 후 잠시 안경을 벗어 놓는다는 게, 2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등 띄엄띄엄 안경을 썼기 때문이다. 특히 안경 너머의 ‘핑크빛’이 거슬려, 자꾸만 안경을 뺐다 썼다를 반복했다. 오히려 장시간 쓰다 한 번 벗었을 때, 상대적으로 눈이 더 상쾌해진 느낌이다.
■눈 감기, 창밖 바라보기
블루라이트 차단에 더해 일정 시간 눈 휴식을 했다. 40~50분 일하면, 10분간 PC, 스마트폰, TV를 외면하는 식이다. 10분 중 5분은 눈을 감고, 나머지 5분은 창밖 먼 곳을 바라봤다.
체감상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보다 효과가 컸다. 5분간 ‘블랙아웃’ 뒤 눈을 떴을 때 상쾌함이 느껴졌다. 다만 식사 직후엔 그대로 장시간 잠이 들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창밖을 바라볼 때는 저절로 나오는 하품 덕에 눈물이 맺혀 눈 건조함이 덜했다. 눈을 쉬면 쉴수록 바라보던 먼 곳의 글자가 뚜렷해지는 느낌도 든다.
여담이지만, 먼 곳을 보며 일어서 있다 보니 허리·목 돌리기 등 자주 스트레칭을 하게 돼 한결 개운하다. 휴식 시간이 보태지니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고, 창밖을 보며 가족 간 대화도 늘었다.
그러나 이런 ‘눈 건강 지키기’는 사실 그렇게 쉽지 않다. 기사 작성에 물이 올랐을 때도 미련을 둔 채 자리를 떠야 한다. 한 번은 집중하다 보니, 2시간 동안 휴식을 잊기도 했다. 사실 알면서도 ‘일의 연속성’을 위해 휴식을 외면했다. 이후 팀장님의 조언대로 스마트폰 알람을 설정해 휴식 시간을 지켰다.
먼 곳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고역이다. 나도 모르게 TV를 곁눈질한다거나, 멀쩡한 공기청정기 상태를 점검했다. 코로나19만 아니면, 한 번씩 밖에 나가 집 주변을 거닐었을 것이다. ‘100% 휴식’도 어렵다. 쉬는 시간에 계속 울려대는 ‘카톡’ 소리를 무시할 용기가 없었다.
■블루라이트?? 글쎄…
안과 전문의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사람들의 눈 건강을 한목소리로 우려한다. 근거리 작업 시간이 길어진 데다, 눈에 이상징후가 나타나도 코로나19 감염 걱정에 병원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동아대병원 류원열 교수는 “정확히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앞이 흐려 보인다거나 눈에 따가울 정도의 건조감이 느껴진다면 이상신호일 수 있다”면서 “시력 저하나 각막염 등의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PC, 스마트폰, TV 등을 장시간 사용하는 영향이 크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블루라이트’가 주원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까운 곳에 오래 집중했기 때문에, 눈 깜빡임 횟수가 줄어 건성안을 일으키는 것이다. 눈을 쉬게 할 때 보다 눈 깜박임이 2배 이상 줄어든다고 한다.
더불어 근거리에서는 수정체가 계속 두꺼운 상태를 유지해, 수정체가 얇아지면서 풀리는 힘이 떨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멀리 볼 때 초점이 맞지 않거나, 잘 안 보이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디지털 기기뿐 아니라 운전, 독서 등 근거리 작업은 모두 이런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증상이 심할 때는 빛 번짐, 두통까지 동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스마트폰, PC 등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가 유해할까.
전문의들은 “근거 없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 미국 안과학회에서 스마트폰 블루라이트가 눈 건강에 영향이 없다는 논문이 나왔다고 한다. 또 쥐를 상대로 실험한 결과, 블루라이트든 이를 억제하는 노란 불빛이든 눈에 미치는 영향이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고. 이들은 당연히 시력 보호를 위해 블루라이트 차단 필름, 안경을 사는 것도 추천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블루라이트가 ‘수면의 질’은 떨어뜨릴 수 있다.
부산백병원 양재욱 교수는 “과학적으로 동의하는 건 스마트폰 블루라이트가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라며 “사람이 수천만 년 자연광 속에서 살아왔는데, 이에 비하면 디스플레이가 주는 자극은 매우 약하다”고 말했다.
류 교수도 “블루라이트 유해성이 너무 과장되게 알려져 있다”면서 “아주 장기간 노출돼야 드물게 황반 변성, 망막 질환이 생길 위험이 있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더 위험
어쨌든 PC, 스마트폰 등에 장시간 집중하는 건 눈 건강에 매우 해롭다. 특히 시력 상승이 진행되고 있는 아동·청소년들에게는 더 치명적.
특히 하루 3~5시간가량 쉬지 않고 집중할 경우에는 급성 내사시(눈이 몰리는 현상)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내사시는 원래 초등학교 입학 전 유아들에게 나타났으나, 최근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늘면서 10~20세까지도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10년 전과 비교해 발생 빈도도 높아지는 추세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영상통화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신생아, 유아를 둔 부모의 걱정이 크다고. 그러나 수 시간 통화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반드시 최소 10분 휴식
전문가 의견을 종합할 때 가장 중요한 ‘눈 건강 노하우’는 휴식이다.
30~40분 연속 근거리 작업을 하면 10~15분은 쉬도록 권장한다. 휴식이 불가능하다면, 모니터나 스마트폰과의 거리를 최소 40cm 이상 띄워야 한다.
휴식할 때는 눈을 감고 있거나, 창밖을 바라보는 게 좋다. 막연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원거리의 특정 타깃을 정해 보는 것이 더 좋다. 가령 반대편 건물 간판의 한 글자를 보는 식이다.
화면을 볼 때는 최대한 밝은 곳에서 봐야 한다. 어두울수록 동공이 열려 자극적인 빛이 더 들어갈 수 있다. 온풍기나, 스팀 에어컨 등을 얼굴에 직접 쐬는 것도 피해야 한다. 또 눈이 건조하지 않도록 집 안 습도를 40~60%로 맞추는 게 좋다.
블루라이트 차단 아이템을 사기보다, 차라리 인공 눈물이나 루테인 등이 들어 있는 영양제를 추천한다. 인공 눈물은 오염된 손으로 눈을 만졌을 때, 즉시 넣으면 소독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미세먼지로 뒤범벅이 됐을 때도 수돗물로 씻기보다, 인공 눈물을 넣는 게 좋다. 영양제는 안 먹는 것보다 나을 뿐이지, 확실한 예방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슬호생’ 결과 중요한 것은 생활 습관이다. 지금부터라도 내 눈이 ‘한계점’에 와 있다는 생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근거 없는 광고에 휘둘려 이런저런 아이템을 사면 스스로 ‘호구’가 될 뿐이다.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갔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앞으로도 미세먼지나 또 다른 감염병 등이 내 눈을 위협할 것이다. 지금의 이상 신호를 무시하면, 그땐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2020-03-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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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호구생활⑨] ‘30초 수제 마스크 만들기’…이게 가능하다고?!
‘호구’(虎口). 이용당하기 썩 좋은 사람 또는 무모한 도전자.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자다.
게임 하다가, 혹은 현실 생활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터. 많이 무뎌졌지만, 여전히 누가 나를 호구라 하면 화가 치민다. ‘바보짓’을 한 데 대한 자책이다.
우리는 스스로 호구가 되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호구를 강요당한다. 돈, 사회, 직장 상사에 의해 알면서도 바보가 된다. 치열한 삶 속에서 꾹꾹 ‘속앓이’만 할 뿐이다.
‘슬기로운 호구생활’은 일종의 ‘화풀이 기사’다. 호구가 된 그들을 대신해 말한다.
“내가 니 호구가!”
■ 30초 마스크 만들기??
손재주가 아주 ‘꽝’이다. 학창 시절 예술 과목은 늘 ‘양 양 양’이다. 그러나 ‘양’의 능력이라도 써야 할 일이 생겼다. 바로 ‘마스크 만들기’다. 이제 막 태어난 내 아이를 ‘코로나19’로부터 지켜야 한다.
부산에 사흘째 확진자가 없다가, 4일 만인 11일 2명이 추가됐다. 이 중 한 명은 우리 구에 산다. 안심할 겨를도 없이 또 ‘초긴장’이다.
지금은 어딜 가나 ‘금스크(금+마스크) 구하기’ 전쟁이다. 초유의 ‘마스크 5부제’ 시행까지. 나도 출생연도 끝자리 ‘8’이 되돌아오기만 목놓아 기다린다. 막상 그날이 와도 오전 일찍 줄 서지 않으면 여전히 못 구한다. 11일 오후 5시께 집 주변 네 군데 약국에 갔지만 모두 허탕이다.
그런데 ‘마스크 대란’ 속 마스크를 손쉽게 구할 방법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유튜브에 30초, 3분, 5분, 10분 만에 ‘수제 마스크’를 만들 방법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온갖 의구심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이렇게 좋은 게 있다면, 굳이 구하러 다니지 않고 다들 만들어 쓰겠지…. 실제 효과가 있는지, 만들기가 쉬운지 검증해 봐야겠다. 코로나19와 아내 출산으로 잠시 미뤄진 ‘슬기로운 호구생활’ 다시 시작한다.
■ 재료
‘유튜브 전성시대’다. 영상 하나에 재료, 구입처 등 마스크 제작법의 1부터 100까지 다 알려준다. 어떤 영상은 재료가 진열된 코너 위치까지 직접 찾아가 알려줬다.
모든 재료는 ‘다이소’와 ‘편의점’에서 샀다. 일회용 행주, 포장용 빵끈, 정전기 청소포, 수예용 고무줄, 방충망 필터(양면테이프 동봉), 반창고만 있으면 된다.
다행히 집 앞에 대형 다이소가 있다. 그러나 ‘마스크 대란’ 속 과연 재료들이 남아 있을까 의문. 그러나 예상과 달리 재료들이 곳곳에 널렸다. 다이소답게 가격도 착하다. 모두 사니 대략 1만 5000원 수준. 이론상으로는 이 가격에 수백 장의 마스크를 만들 수 있다. 참고로 위의 재료뿐 아니라 손수건, 커피 필터 등도 대체해 쓸 수 있다.
재료 구매를 단 15분 만에 마쳤다. 오랜만에 내 손으로 무엇을 만든다는 생각에 은근히 기분이 들떴다. 이공계 출신이라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겼다. 한 50장 만들어 회사 선후배들 나눠줘야겠다는 상상도 했다.
■ 제작
시작부터 삐걱댔다. ‘일회용 행주’를 잘못 샀다. 정확히는 제대로 샀는데, 유튜브 것과 다르다. 일회용 행주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건지, 유튜브 방송이 잘못 알려준 건지 모르겠다.
‘별반 다르지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찜찜했지만 제작을 시작했다. 첫 도전은 ‘일회용 행주+정전기 청소포’로 만드는 마스크. 영상 제목에 따르면 3분이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 분량만 5분이 넘는 것을 볼 때,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내 손재주 능력을 생각해 보면, 최소 10분은 넘게 걸릴 듯 했다.
첫 제작 시간은 무려 20분 15초. 3분은커녕 10분도 훌쩍 넘었다. 이론상 어렵지 않았지만, 고무줄 묶기, 선 따라 테이프 붙이기 등 실제 꼼꼼하게 따져야 할 게 많았다. 작품 상태도 엉망진창이다. 고무줄이 너무 짧은 탓에 귀가 당겨 착용 후 15분을 견디지 못했다. 테이프가 너덜대면서 귀걸이 고무줄 양쪽 다 빠져버렸다.
포기는 없다. 두 번째 마스크 제작에는 15분 40초가 걸렸다. 고무줄 쪽에 테이프를 3번이나 덧대고, 10번 가까이 잘 붙도록 눌렀다. 짧았던 고무줄 길이도 10cm 늘였다.
다행히 고무줄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뭔가 50% 부족한 모습이다. 외관상으로는 그럴듯했으나, 안쪽이 또 너덜댔다. 10cm 늘였지만, 귀는 여전히 아팠다. 가장 큰 문제는 사이즈. 내 입만 가릴 정도의 ‘유아용 마스크’다.
세 번째 작품은 12분 40초 만에 완성이다. 여전히 3분을 훌쩍 넘겼지만, 제작 순서를 어느 정도 외운 터라 점점 속도가 붙었다. 고무줄은 10cm 더 늘였으며, 행주 크기도 손의 직감을 믿고 더 키웠다.
그 결과 ‘최선의 마스크’가 나왔다. 귀도 덜 아프고 어느 정도 크기도 확보했다. 다만 입에 마스크가 들어갈 정도로 밀착돼 숨이 금방 거칠어졌다.
다음 마스크는 다른 재료인 ‘방충망용 필터’로 만들었다. 이번엔 무려 ‘30초’ 만에 만들 수 있다는 ‘초간단 영상’을 참고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방송 분량만 10분이 넘었다.
첫 방충망용 필터 마스크를 만드는 데 23분 51초가 걸렸다. 지금까지 ‘최장 시간’이다. 앞선 영상보다 과정이 복잡할뿐더러, 줄자나 양면테이프까지 필요했다. 크기는 적당했으나, 아쉽게도 마감이 엉망이다. 그러나 상품의 질은 ‘일회용 행주+정전기 청소포’의 것보다 우수했다. 2겹 두께로 필터가 만들어지는 등 두툼하고 단단했다.
방충망용 필터 마스크 두 번째는 19분 23초가 걸려 만들었다. 풀어지는 느낌도 없이 각이 잘 잡혔다. 다만 양쪽 귀에 거는 고무줄 크기가 다른 느낌이다.
마지막 세 번째 작품은 심혈을 기울였다. 15분 32초 걸려 완성했다. 그럴듯한 외관에 아내도 “마치 시중에 파는 것 같다”며 칭찬 세례. 그러나 ‘방충망’ 단어에 왠지 찝찝하다며 착용은 거부했다.
■ 착용
다음 날 마지막에 만든 마스크를 쓰고 오전 일과를 소화했다. 얼굴이 땅긴다거나, 숨쉬기가 어렵다는 등의 불편은 없었다. 보들보들한 착용감도 나쁘지 않아, 한 번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문제는 ‘마스크 효과’다. 실제 얼마나 비말 감염을 막아줄지 의심이 들었다. 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취재원을 만나거나 사람들과 마주친 뒤 괜히 기분이 찝찝했다. 나나 상대방이 말할 때는 책이나 수첩 등으로 호흡기를 한 번 더 막고 싶은 심정이다.
주변 사람들도 ‘이상함’을 눈치챘다. “보지 못하던 마스크네요?” “제 것과는 아주 다르네요”라며 마스크 출처를 물었다. 직접 제작했다는 말에 “멋있다” “대단하다” 등 칭찬은 했지만, 만드는 방법을 묻는다는 등의 관심은 없었다. 나처럼 만들지 않겠다는 얘기다.
■ 실효성 있나
교수, 지자체, 보건환경연구원 등 여기저기 물었지만, 수제 마스크의 효과를 명확히 들을 수 없었다. 각 마스크에 대해 분진 포집효율, 안면부 흡기 저항 등의 테스트를 해보지 않고서는 효과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해당 제품들이 먼지를 차단할 정전기를 일부 일으키기 때문에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것으로 봤다.
실제 최근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테스트한 결과, 빨아 쓰는 행주로 만든 ‘3겹 마스크’의 먼지 차단 효율성은 80.5%로 KF80 마스크(97.8%)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수제 필터면마스크도 80~95%의 분진 차단 효과를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제 마스크 제작이 현 사태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긴 제작 시간은 어느 정도 숙달되면 충분히 단축될 수 있다. 재료 구하기도 쉽다.
그러나 문제는 ‘불신’이다. 개인방송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콘텐츠가 쏟아졌다. 재료만 수십 개에 같은 재료로도 제작 과정이 제각각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랐다.
코로나19로 인해 정부 지자체, 의료진 모두 비상이다. 사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혹 여유가 된다면 일상 속 ‘수제 마스크’에 대한 옳고 그름도 보건 당국이 판단해주길 바란다. 여러 공신력 있는 테스트 결과가 나온다면, 전국을 뒤흔들고 있는 마스크 대란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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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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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호구생활⑧] “하루종일 TV를 봤다”
호구’(虎口). 이용당하기 썩 좋은 사람 또는 무모한 도전자.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자다.
게임 하다가, 혹은 현실 생활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터. 많이 무뎌졌지만, 여전히 누가 나를 호구라 하면 화가 치민다. ‘바보짓’을 한 데 대한 자책이다.
우리는 스스로 호구가 되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호구를 강요당한다. 돈, 사회, 직장 상사에 의해 알면서도 바보가 된다. 치열한 삶 속에서 꾹꾹 ‘속앓이’만 할 뿐이다.
‘슬기로운 호구생활’은 일종의 ‘화풀이 기사’다. 호구가 된 그들을 대신해 말한다.
“내가 니 호구가!”
■‘최애’ 채널의 배신
한없이 나른했던 지난 주말 오후. 새벽부터 무리하게 축구를 한 탓인지, 온몸이 돌처럼 굳었다. 소파에 누운 채 머리 위를 더듬어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OCN, CGV, 슈퍼액션….’
‘최애’(最愛·가장 사랑함) 영화 채널을 찾았다. 2~3시간 넋 놓고 바라보는 채널들이다. 손만 움직이는 ‘반시체’ 상태로 3번, 44번, 45번을 차례로 눌렀다.
광고, 광고, 광고 ….
“○○화재, 청약 사항 확인하세요.” “암 보험비, ○○만 원까지 보장됩니다.”
3개 채널 모두 ‘꿀맛 휴가’에 찬물을 끼얹었다. 기막힌 타이밍이다. 우연일지 모르나 모두 광고로 도배다.
하는 수 없이 ‘실제상황, 기막힌 이야기’를 찾았다. 사건사고 재연 프로그램으로 은근 빠져든다. 1990년대 히트 친 ‘경찰청 사람들’과 비슷하다. 장점은 재방송이 워낙 많아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것.
이날은 예외였다. 프로그램을 찾았으나, 또 광고질(?)이다. 우연이 아니라 이제 ‘악연’이다.
놀리는 듯 화면 왼쪽에 ‘배너 광고’까지 떴다. 미국 아카데미 4관왕 ‘기생충’을 보려면 녹색버튼을 누르란다. 내 돈 내고 보는 케이블 채널을 맘대로 즐기지도 못했다. ‘슬호생 8탄’은 ‘광고 호구’다.
■지상파 점령…선 넘은 ‘광고 자본’
“60초 후에 공개합니다!”
한 케이블 채널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최종 예선 합격·우승자 발표를 앞두고 꼭 60초 광고가 나간다.
탄식과 함께 저절로 욕이 나오지만, 자리를 뜰 수 없다. 1초라도 늦을까 노심초사하며 광고를 애청한다. 기껏 기다려도,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예고편만 덩그러니 내보낸 채 끝내기도 한다. 배신감이 극에 달한다. 조련사에 길들여진 동물원 속 원숭이가 된 느낌이다.
케이블 채널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상파도 마찬가지.
단 4회 만에 시청률 10% 돌파한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 인기를 얻더니 10회부터 3부 쪼개기 편성에 들어갔다. 고작 60분짜리 드라마가 두 번의 중간광고로 20분씩 쪼개진 셈이다. 여기에 더해 ‘하이라이트’인 예고편 앞에도 광고를 붙였다. 대놓고 시청자를 호구 취급했다.
예능도 마찬가지. 2부 쪼개기는 일상이 됐다. SBS ‘미운 우리 새끼’는 3부 쪼개기다. 교육방송인 EBS마저 쪼개기 광고를 삽입했다.
지상파 채널이 케이블이나 종편처럼 중간광고를 넣을 수 없으니, 아예 회차를 나누어 광고하고 있다.
■영화 한 편에 광고만 약 20개
뒤범벅된 광고 실태를 눈으로 확인해봐야겠다. 18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TV를 봤다.(점심시간 제외)
오전 10시. 영화 채널에 방영 중인 ‘위대한 소원’을 틀었다. 이미 40분 전에 시작한 영화다. 스토리는 생략.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성장기 드라마다.
시청 6분 만에 첫 광고다. 짤막한 4개 광고가 나간 뒤 재시작. 이후 10시 30분 다시 두 번째 광고가 시작됐다.
영화 1부와 2부 사이여서 그런지 광고가 꽤 길었다. 이것저것 주제가 다른 광고만 15개. 5분 후 다시 시작한 영화는 20여 분이 지나 끝이 났다.
한 편의 영화가 끝나니 또 광고다. 다음 ‘서유기2: 선리기연’이 시작하기 전까지 약 23개 광고가 줄줄이 나왔다. 12분간 ‘논스톱’이다.
광고 유형은 일반 CF부터 지역 내 맛집, 보청기, 가구, 대출 광고까지…. 해당 채널의 또 다른 드라마 홍보도 줄기차게 나왔다. 한 드라마 예고편은 체감상 2~3분 지속했다. 광고가 계속 반복돼 스토리와 성우 멘트를 외울 정도다.
■재시작 2분 만에 또 광고
이날 오후 1시 55분. 한 케이블TV의 ‘맛있는 녀석들’ 예능 재방송을 봤다. 이 채널은 방송 시작 후 55분간 광고가 없었다. 이후 1분 광고 돌입. 프로그램 연속성을 해치치 않아, 웃고 즐기며 시청이 가능했다.
그러나 1분 후 재시작한 프로그램은 고작 2분 만에 다시 끊겼다. 그리고 다시 광고. 무려 15분 넘게 20~30개의 광고가 줄기차게 이어졌다. 알고 보니, 해당 프로그램이 별다른 마무리 영상도 없이 끝이 난 것이었다.
이날 오후 3시 45분에 시작한 한 케이블 채널의 ‘TMI NEWS’. 7분 만에 1분 광고가 시작됐지만, 이후 프로그램이 마치기까지 광고가 없었다.
우연한 시점에 채널 수 대비 광고는 어느 수준일까. 시점에 따라 편차가 크겠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광고가 적은 특정 시점을 노려 TV를 보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회사 TV는 유료가입 채널이 적어 집에서 테스트했다. 오후 11시 50분 1~100번까지 채널을 돌려봤다.
유료 채널 등 나오지 않는 채널과 대놓고 광고하는 홈쇼핑 채널은 모두 뺐다. 남은 65개 채널 중 실제 광고는 11개. 약 17%다. 6개 중 1개 채널에서는 광고를 하는 셈이다.
또 하나 놀란 것은 홈쇼핑 채널이 너무 많다는 것. 1~100번 채널 중 18개가 홈쇼핑이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도…
퇴근 후 샤워하며 유튜브의 ‘영화리뷰(결말포함)’ 한 편 보는 게 일상이다. 그러나 꼭 수십 초짜리 중간광고 2편이 신경을 건드린다. 샤워 도중이라 5초 후 ‘광고 건너뛰기’도 안 된다.
유튜브의 광고 실태도 알아봤다. 10분 54초짜리 영화 리뷰 영상이 3번 쪼개졌다. 3분쯤에 15초짜리 광고 2개가 나왔다. 7~8분에도 5초, 23초짜리 광고 2개. 영화가 끝나니 51초, 35초 광고 2개가 또 붙었다.
6분 57초짜리 ‘무도 5분 순삭(순간 삭제)’ 콘텐츠는 시작 전 2개 광고가 있었으나 중간광고는 없었다.
유튜브 홈에 걸리는 광고도 적지 않았다. ‘5개 콘텐츠 후 1개 광고’가 공식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자주 보는 네이버TV도 테스트했다. 해외축구 하이라이트 등 4~5개 영상에서 중간광고는 없었다. 영상 시작 전에는 무작위로 30초짜리(5초 후 넘김 가능) 광고가 붙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은 3~4개 콘텐츠를 넘기면 광고가 하나씩 붙었다.
■낯부끄러운 광고질
지난 11일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유튜브 등 플랫폼사업자에게 ‘왕비의 맛’ 광고 차단을 요구하는 시정 권고를 내렸다. 왕비의 맛은 모바일 게임으로 이용 등급이 만 15세 이상이다. 그러나 광고에서 여성 캐릭터를 ‘딸기맛’ ‘복숭아맛’ 등으로 비유했다. 일본 성인 배우를 모델로 삼아 ‘○○배우의 맛을 느껴봐라’는 문구를 써 질타를 받았다.
왕비의 맛 논란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유튜브 홈화면 광고에는 ‘다 바꿨어.. 지금 할래?’라는 문구와 함께 젊은 여성이 모델로 그려졌다. 게임제목 옆에는 ‘실사풍 미녀 게임’ 문구가 적혔다. ‘바카라’를 출시했다며, 포커 게임 광고도 눈에 띄었다.
소개팅 앱 광고도 넘쳐났다. 나쁜 광고가 아니지만, 여성 신체를 부각하는 자극적인 광고 ‘썸네일’이 부적절해 보였다. 유튜브 홈화면에는 대출, 모바일 게임, 소개팅 광고가 대다수였다.
일반 콘텐츠를 가장한 광고도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마치 심층 취재해 증명한 것처럼 꾸몄다.
TV 채널이나 인스타그램 광고는 그나마 낫다. 인스타그램은 이용자가 보는 콘텐츠에 기반해 필요한 물품을 추천했다. 아내 인스타그램에는 육아용품, 샤워기, 화장품 등의 광고가 떴다.
■시청자가 ‘봉’이냐
하루 간 체험해 보니, 온통 광고였다. 콘텐츠는 많지만, 정작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콘텐츠를 보기가 어려웠다. 원하는 프로그램을 찾아도 광고 때문에 맥이 뚝뚝 끊겼다. ‘금’같은 시간을 허무하게 날리는 느낌이다.
TV보다 유튜브나 SNS 광고는 짧게 보고 넘길 수 있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자극적 광고에 한숨이 나왔다. 아이들에게 이런 광고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우려스러웠다.
체험이 끝나고, 그동안 관심 없던 ‘유튜브 프리미엄’ ‘넷플릭스’의 가격을 찾아봤다. 케이블 채널과 가격 차이가 크게 없다면 갈아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문득 유튜브 프리미엄, 넷플릭스 가입을 권유하는 광고들이 머리를 스쳐서다. 광고를 없애기 위해 또 다른 광고에 넘어간 호구가 되긴 싫었다.
■더는 못 참아
광고가 이제는 더 교묘해지고 대담해졌다. 최근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효능이나 장점을 소개한 상품을 비슷한 시간대에 홈쇼핑에 내놓는 일이 벌어졌다. 공공전파를 쓰는 지상파까지 별다른 동의 없이 광고 확대에 슬쩍 가세하는 실정이다.
시청자 인내는 이제 한계다. 그동안 ‘좋은 콘텐츠를 위한 투자 목적이겠거니’라며 참아왔다.
그러나 스토브리그 3부작 쪼개기 편성을 계기로 180도 태도가 바뀌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넘기던 PPL(영상 속 제품광고)도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기사 댓글과 SNS에는 광고 제한을 강화하는 법 개정까지 요구하고 있다.
플랫폼 다양화로 수익성이 낮아지고 있는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엄연히 돈을 낸 콘텐츠 이용객이다. 여론을 무시한 무리한 광고 행태는 장기적으로 시청자 이탈을 가속할 뿐이다.
최근 유튜브는 8분 이하 영상의 중간광고를 금지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편법, 꼼수 중간광고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시청자를 호구로 만드는 경마식 광고 경쟁에 ‘브레이크’를 걸기를 기대한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P.S. 슬기로운 호구생활을 응원해주시는 독자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호구생활을 하기 바라는 아이템이 있다면 lee88@busan.com이나 댓글로 남겨주세요.^^
2020-02-21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