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한국판 스페이스X ’가능할까?
요즘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은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에 쏠려 있다. 이 기업이 오는 12일(현지시간) 나스닥 시장에 등판하기 때문이다. 기업공개(IPO) 규모는 역대 최대인 750억~800억 달러로 전망된다. 기존 최대 기록인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공모 규모 294억 달러를 배 이상 넘어선 수치다. 스페이스X를 신호탄으로 하반기 오픈AI, 앤트로픽 등 초대형 비상장 테크 기업들이 연이어 등판하는 ‘IPO 슈퍼사이클’이 도래하면, 세계 증시의 구도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 세 기업이 조달하려는 자금만 약 2000억 달러, 합산 기업가치는 4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호손에 전시된 스페이스X의 ‘팰컨9’. 연합뉴스
■ ‘스페이스X 상장’ 증시 블랙홀 되나
스페이스X는 챗GPT 개발사 오픈AI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기업가치가 높은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평가받는다. 실질적 수익 기반을 갖춘 우주 사업 포트폴리오가 이 같은 기업가치의 배경으로 꼽힌다. 2002년 설립된 이 회사는 위성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며 민간 우주산업 판도를 바꿨다. 현재 전 세계 상업용 우주 발사 서비스 분야에서 60%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며 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다. 재사용 로켓과 스타링크, 스타십을 기반으로 우주 사업 분야에서 수익성을 확보했다. 재사용 발사체 팰컨9는 발사한 1단 로켓을 지상으로 회수한 뒤 재사용하는 방식이라 총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였다. 2018년 첫 출시 이후 현재까지 각국의 위성 발사와 스페이스X 주력 위성인 스타링크 발사에 활용되고 있다. 일회용 발사체와 달리 수십 회 이상 반복 사용이 가능해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았다.
업계에선 기업 공개 흥행 여부에 따라 스페이스X 시총이 1조 75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본다. 현실화할 경우 세계 시가총액 톱10에 진입한다. 스페이스X는 4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된 투자자 대상 로드쇼를 통해 자금 조달 규모와 최종 공모가, 기업가치 등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당장 이목이 쏠리는 것은 스페이스X가 기존 인공지능(AI) 성장주에 퍼져있는 자금을 얼마나 흡수할지다. 스페이스X가 상장되면 기존 성장주 비중을 줄이고 이동할 가능성이 있어 주가에 미래 성장 가치가 선반영돼 상승세가 가팔랐던 종목이 우선 영향을 받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최근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외국인 순매도가 늘어난 것 역시 스페이스X 상장에 따른 포트폴리오 재조정 압력이 일부 선반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스페이스X가 투자 자금을 단숨에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될지 투자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지구관측 위성인 차세대 중형위성(차중) 2호가 실린 스페이스X의 발사체 '팰컨9'이 한국시간으로 5월 3일 오후 4시(현지시각 3일 오전 0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우주군 기지에서 발사되고 있다. 연합뉴스
■ 민간 주도 우주산업 시대 가속
스페이스X의 상장은 글로벌 우주산업의 주도권이 정부에서 민간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발사체와 위성 개발을 국가가 직접 주도하던 시대를 넘어, 민간 기업이 기술 혁신과 사업화를 이끌고 정부는 서비스를 구매하는 ‘뉴스페이스’ 체제가 가속하는 것이다.
2000년대 미국은 정부 주도로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올드 스페이스 체제’에서 벗어나 경제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뉴스페이스’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과거처럼 발사체를 직접 개발하는 대신 스페이스X의 발사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바꿨다. 스페이스X는 이를 기반으로 발사체 재사용 기술과 같은 혁신을 이뤄냈고, 이후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 등 독자적 수익 모델까지 구축하며 세계 최대 우주기업으로 성장했다.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 유럽의 자존심 아리안스페이스 등 추격자들의 도전도 매섭다. 이처럼 우주 전장은 이미 민간 기업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됐다.
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2025년 11월 27일 새벽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연합뉴스
■ 국내도 뉴스페이스 전환 속도
항공우주 5대 강국을 국가 비전으로 내세운 우리나라도 우주항공청 출범, 누리호 민간 이전, 우주산업 클러스터 조성 등을 통해 뉴스페이스 시대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0년대 들어 민간 중심 우주산업 육성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자 정부는 기존 국가 주도 개발 체계를 민관 협력 체계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대표적 사례가 한국형발사체 누리호다. 정부 주도로 개발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는 반복 발사하는 고도화사업을 통해 기술 이전이 진행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민간 기업이 발사 서비스를 주도하는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 지난달 발사된 차세대 중형위성 사업 역시 정부가 개발한 위성 플랫폼을 민간에 이전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2024년 출범한 우주항공청 예산은 올해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섰고, 민간 투자를 지원할 뉴스페이스 펀드에도 올해부터 연간 1000억 원 이상 국비가 투입된다. 지역별 강점을 살리는 육성 정책도 이어진다. 정부는 경남을 위성 특화지구, 전남을 발사체 특화지구, 대전을 연구·인재 특화지구로 두는 우주산업 클러스터 사업에 2030년까지 3808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28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주항공 육성 의지를 내비쳤다. 이 대통령은 “우주항공의 또 다른 주역은 민간과 지방”이라고 강조하며 “한국판 스페이스X가 탄생할 수 있도록 민관협력을 대폭 강화하고 전남과 경남 등 핵심 인프라를 갖춘 남부지방을 우주항공 종합 벨트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5월 27일 경남 사천 우주항공청사에서 열린 '제2회 우주항공의 날 기념식'에서 오태석 우주항공청장(앞줄 왼쪽 두 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연합뉴스
■ 우주산업 생태계 구축해야
뉴스페이스 시대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민간 우주 항공 산업이 아직 뉴스페이스 선도국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는 평가다. 국내 우주산업은 국가 연구개발(R&D)이 70~80%를 지탱할 정도로 공공 수요 비중이 절대적이다. 시장 규모와 민간 사업화 기반도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이 진정한 뉴스페이스 국가로 도약하려면 정부 지원을 넘어 민간 기업이 독자적인 시장과 수익 모델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산업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전략적 제휴는 의미 있는 행보다. 우주발사체부터 관측·통신 위성, 탐사에 이르는 한화의 ‘우주 밸류체인’과 KAI가 가진 ‘중대형 위성 개발 및 탐사선’의 시너지가 기대된다. 저궤도 위성통신부터 우주 탐사까지 아우르는 종합 우주 패키지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장이 있는 경남 창원과 KAI 본사가 있는 사천을 잇는 우주항공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경남~전남(고흥 우주센터·순천)~제주(한화우주센터)를 잇는 남부 우주산업 벨트로 확장될 수 있다. 한화와 KAI의 종합 역량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시도에 성공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한국판 스페이스X’ 탄생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민간 수요 확대, 스타트업 육성,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등을 통해 우주산업 생태계 전반의 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KAI 최대 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의 매각 의지, 정부 승인, 노조 반발, 독과점 논란 등은 풀어야 할 과제다.
반도체 이후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글로벌 우주산업 전쟁에 당당하게 참전할 수 있는 ‘한국판 스페이스X’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