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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⑧] 경쟁 안 하면 하향평준화? 거대한 거짓말!
<‘대학민국 고졸’을 곱씹으며>
대한민국 청소년은 매일 전쟁터에서 산다. 목표는 ‘좋은 대학’. 거기서 낙오한 아이들은 요즘 말로 ‘루저(패배자)’가 된다. 최소한 ‘괴물’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 처절한 경쟁 속에서 기를 쓰고 살아간다.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던 ‘대입 생존자’들 앞에는 더 큰 쓰나미가 덮쳐온다. 취업이다.
좌표 설정 없이 대학에 간 이들은 블랙홀 속에서 헤매기 일쑤다. ‘욜로(YOLO·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와 같은 말을 추종하며 현실을 탈출하려 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 좌절한 청년들은 더는 미래가 없다고 소리친다.
애초에 그들이 ‘고졸’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그 엄청난 시간과 사교육비, 등록금을 꿈을 향한 일에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 대학은 꼭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일 순 없을까.
청년들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 줄 근본적인 ‘혁명’이 그래서 절실하다. 고졸이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 고졸은 벤츠 타고, 대졸은 골프 타는 독일
노무현 정부 시절에 교육정책 중 ‘3불(대학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보다 더 강력한 교육의 ‘4불’을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내용도 BTS 노래처럼 ‘다이너마이트’급이다. 3불의 고교등급제와 유사한 ‘특권학교 폐지’에다 ‘대학입시 폐지’ ‘대학서열 폐지’ ‘대학 등록금 폐지’가 4불의 핵심이다.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는 주인공은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김누리 교수.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동작구 중앙대 캠퍼스.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 온라인 강의 준비로 분주한 그를 만났다. 김 교수는 <부산일보>의 ‘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기획 의도를 듣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을 표시하고, 귀를 의심할만한 독일의 실상 하나를 소개했다.
“독일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업 세계에 뛰어든 사람을 ‘아추비(Azubi)’라고 해요. 그리고 대학에 가는 학생들을 ‘아비’라고 합니다. 아비라는 게 독일의 고교졸업시험 ‘아비투어(Abitur)’를 말해요. 독일에서 대학에 가려면 아비투어를 봐야죠. 대학에 가는 아비와, 고졸 아추비 사이에 통계적으로 임금 차이가 거의 없어요. 그런데 실제로 한 40세 이전에는 아추비가 아비보다 수익이 좀 높아요. 그러니까 독일에서 ‘아추비는 벤츠 타고, 아비는 골프 탄다’는 말이 나오는 거죠.”
놀랍게도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졸업반인 4학년 즈음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김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한 학생이 4년 동안 같은 담임교사와 지낸다. 교사는 20명정도 되는 학생을 맡으면서 학부모와 매달 상담을 한다. 즉 아이에 대해 100%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독일에서는 아이를 경쟁시켜 우열로 나누지 않는다. 아이의 개성과 소양, 취향에 관심을 둘 뿐이다”면서 “부모와 학부모가 4년 동안 아이를 두고 상시적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학부모는 교사가 추천하는 진로를 대체로 수용한다. 또한 학부모가 원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 독일 학부모는 고졸을 더 원한다?
김 교수는 또 한 가지 대단히 흥미로운 독일의 사례를 설명했다. 독일 학부모들은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하면 오히려 걱정을 한다고. “도대체 왜죠?”라는 질문이 절로 튀어나왔다.
“독일에서 기본적으로 대학에 간다는 건 학자나 예술가가 된다는 의미죠. 학자와 예술가는 미래가 불안정한 직업이에요. 만약에 교사가 학부모에게 ‘이 아이는 책 읽는 것 좋아하니 김나지움(Gymnasium·보통 9년제인 독일의 중·고교 과정) 보내서 아비투어 보게 하세요’라고 권유하면 부모들 대부분의 반응은 걱정이에요. 자기 애가 굶을 수도 있으니까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독일의 학부모들은 자녀가 대학 진학보다는 일반적인 직업 경로를 선택해 일하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는 것을 가장 바란다. 고등학교 단계에서 이뤄지는 우수한 직업교육의 수혜를 받고 졸업한 학생들은 다양한 직업 세계로 뛰어들 수 있다. 흔히 한국인이 인식하는 것처럼 독일에서는 고졸 출신이 열악한 환경 속에 단순 노무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독일 고졸이 취업하는 직업 세계에는 굉장히 다양하다. 은행, 증권회사와 같은 금융권은 물론 기술직, 행정직, 사무직 등 두루두루 진출한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독일의 고졸자 고용률은 다른 국가에 견줘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중 고졸자 고용 현황을 보면, 독일이 82.8%로 가장 높다. 그 뒤를 이어 영국(81.4%), 프랑스(73.2%), 한국(72.2%) 수준이다. 한국의 고졸 고용률은 OECD 평균인 76.6%보다도 뒤처지고 있다.
우리 산업 현장에서도 ‘독일 모델’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부산경영자총협회 심상균 회장은 “일하면서 학습하는 독일식 모델이 우리나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고”고 말했다.
■ 노력으로 학벌 쟁취하는 시대는 끝났다?
한국의 고졸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현실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 체계와도 닿아있다. 우월감으로 무장한 서울의 일부 대학 출신과 모멸감을 내재화한 채 살아가는 대다수의 지방대 출신, 거의 ‘투명인간’ 취급 당하는 고졸자들이 함께 존재하는 게 한국의 현주소다. 10대 때 치른 단 한 번의 입시로 이 모든 게 결정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학벌이 대물림되는 현상이 강화되면서 한국 사회의 새로운 계급이 됐다는 점. 김 교수는 “중산층 사회에서 학벌 세습이 나타나고 있다”며 “과거에는 서울대 입학생 절반 정도는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기득권 계층이 더 좋은 학벌을 얻는 게 고착화됐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폐단을 뿌리 뽑기 위해 대학 입시를 없애고, 독일의 아비투어처럼 자격시험으로 전환해 학생들이 일정 점수만 받으면 모든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학의 서열을 없애 야만적인 경쟁 교육을 뿌리 뽑는 것이다. 그럼 ‘하향평준화’의 길로 가자는 것인가. 김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독일도 1970년 이전에는 우리처럼 경쟁 교육 체제였어요. 그런데 ‘68혁명’을 계기로 1970년부터 대대적인 교육개혁이 일어나고, 교육 철학도 바뀝니다. 한 번 봅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50년, 딱 반세기가 지났죠. 그 이후에 독일 교육이 하향했다거나, 망했다는 말 들어본 적 있나요?”
김 교수는 독일 교육의 우수성을 가장 단순하게 볼 수 있는 지표로 노벨상을 꼽았다. 1970년 교육 개혁 이후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가 더 늘었다고 한다. 독일은 2019년 기준 노벨 과학상(물리학·화학·생리의학) 수상자를 70명이나 배출했다. 미국, 영국에 이어 3위다. 세계에서 가장 지독한 경쟁 교육을 시키는 한국은 현재까지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전무하다.
김 교수는 “한국의 교육이 이 보다 더 하향이 될 수 있나?”고 일침을 가했다. “우리나라에는 당분간 노벨상이고 뭐고 학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나올 수 없다고 봐요. 이런 경쟁체제가 우리 잠재력을 다 죽여놨으니까. 학문적, 예술적으로 뛰어난 업적이 나올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의 학문은 중하위권을 면치 못할 거에요. 경쟁 교육을 하지 않으면 교육 수준이 하향평준화된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거대한 거짓말입니다.”
■ 서면·남포동에서 혁명의 촛불을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하면서 ‘교육개혁 공약’을 내세웠다. 대학 서열 체계를 극복하고 지식 암기 중심의 획일화된 수업과 평가를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 중심으로 개혁하겠다는 게 뼈대다. 문 대통령의 임기 하반기에 접어든 현재 정부는 이 공약을 지키고 있을까. 정부가 대학 서열화 해소 방안으로 채택한 것은 ‘국공립대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 그런데 국공립대 네트워크는 국정과제 수립 단계에서 누락됐고, 공영형사립대 정책은 예산조차 편성되지 않은 상태다.
국공립대 네트워크는 프랑스의 ‘파리 1~13대학’처럼 국공립대를 네트워크화해 학생을 공동으로 선발하고, 공동으로 학위를 주는 것이다. 이 방안에는 서울대 수준으로 파격적인 예산을 배정해 대학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도 포함돼 있다. 현재 서울대의 한 해 예산은 8000억 원에 육박한다. 같은 국립대인 부산대의 2.47배, 경상대의 4.6배 수준이다.
경희대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는 서울대와 지역거점국립대학 9곳을 넘어 기타 지역국립대학과 사립대를 포함해 5개 내외의 학교를 통폐합하는 작업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지역거점국립대학 9곳부터 네트워크화를 추진하면 여기에 소외되는 다른 대학들의 반발도 뒤따른다”면서 “권역별로 지역 특성과 산업을 살려 대학을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정부가 살인적인 경쟁 교육의 문제를 극복하기는커녕 ‘공정’을 앞세워 경쟁을 더욱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게 대학 입시에 정시를 확대한 결정이다. 김누리 교수는 이를 두고 정부가 우리 교육을 ‘야만’ 상태에서 ‘원시’ 상태로 후퇴시켰다고 단언한다. 김 교수는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살인적인 경쟁을 부추기는 게 교육개혁이다? 말도 안되는 것이다”고 질타했다.
김 교수는 궁극적으로 한국의 고질적인 대학서열 문제, 학력·학벌주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이자 최대 피해자인 학생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 역사에서 모든 혁명은 ‘자기 혁명’이에요. 남이 대신해주지 않았죠.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을 노예처럼 묶어 놓고 정치적 미숙아 취급을 합니다. 그런데 프랑스에는 68혁명 때 고등학생들이 파리 시내를 휩쓸면서 소르본느라는 엘리트 대학을 해체했어요. 지금 파리의 모든 대학은 평준화 돼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부당한 현실에 맞서 스스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교사와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지지해야죠. 필요하다면 남포동이나 서면에서 함께 촛불을 들어야 합니다.” -끝-
박세익·황석하·이승훈 기자 그래픽=노인호 기자 영상·편집 정수원 PD hsh03@busan.com
※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2020-11-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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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⑦] 교수 파벌, 성추행, 과잠…과거에 기생하는 대학들
<‘대학민국 고졸’을 곱씹으며>
대한민국 청소년은 매일 전쟁터에서 산다. 목표는 ‘좋은 대학’. 거기서 낙오한 아이들은 요즘 말로 ‘루저(패배자)’가 된다. 최소한 ‘괴물’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 처절한 경쟁 속에서 기를 쓰고 살아간다.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던 ‘대입 생존자’들 앞에는 더 큰 쓰나미가 덮쳐온다. 취업이다.
좌표 설정 없이 대학에 간 이들은 블랙홀 속에서 헤매기 일쑤다. ‘욜로(YOLO·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와 같은 말을 추종하며 현실을 탈출하려 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 좌절한 청년들은 더는 미래가 없다고 소리친다.
애초에 그들이 ‘고졸’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그 엄청난 시간과 사교육비, 등록금을 꿈을 향한 일에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 대학은 꼭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일 순 없을까.
청년들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 줄 근본적인 ‘혁명’이 그래서 절실하다. 고졸이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 고장 난 ‘대학 시계’
‘샌드 페블즈-나 어떡해’ ‘심수봉-그때 그 사람’ ‘높은음자리-바다에 누워’ ‘신해철(무한궤도)-그대에게’ ‘김동률(전람회)-꿈속에서’….
과거 대학가요제를 주름잡은 명곡들이다. 1970~1990년대 대학은 뜨거웠다. 학생운동으로 시끌시끌했고, 문화와 예술이 곳곳에서 꽃피었다. 시대의 선봉에서 사회를 이끌었다.
지금 대학의 모습은? 과잠(학과 잠바), 신입생 군기, 교수 성추행, 교수 파벌…. 끼리끼리, 수직적 위계 문화에 취했다. 난립한 사립대의 강의 수준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는 저 멀리 달려가는데, 대학의 ‘그때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대학은 과거에 멈췄다.
지난달 29일 광주 서구.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이하 학벌 없는 사회)의 작은 사무실. 앳된 얼굴의 황법량 상임활동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생인 그는 대학이 제 기능을 잃었다고, 오히려 학벌 사회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광주만 하더라도 광주형 일자리, AI 등 지역 현안에 대해 그 많은 대학이 수준 높은 보고서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산이나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면서 어떻게서든 기득권은 유지하려고 하고….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국민도 ‘왜 우리가 이런 대학에 국고를 지원해야 하느냐’며 지탄하는 상황이 올 겁니다.”
우리 사회 깊숙이 퍼진 학벌 사회.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까. 우리 사회 곳곳에 퍼진 병폐의 깊숙한 곳에는 ‘대학’이 있다고 이 단체는 진단했다.
■ 옥상옥 ‘SKY캐슬’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 서성한(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 중경외시(중앙대·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 건동홍(건국대·동국대·홍익대)…. ‘최상위 클래스’부터 나열한 서울지역 대학 서열이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지거국(지방 거점 국립대)도 이 사이에 끼어 있다.
수험생들은 더 높은 대학을 위해 빠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전쟁’을 시작한다. 학부모들도 이들 대학이 수시로 바꾸는 입시 정책을 놓칠까 봐 눈코 뜰 새 없다. 주변에 대학이 넘쳐나지만, 굳이 ‘이 대학들’을 고집한다. 양질의 일터 즉 ‘미래’가 이곳에서 결정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대학 서열화에 빠진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학력 차별 철폐’를 외치며 지난 2011년 광주에서 출범한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 교수, 학생, 교사 등 30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지역 경계 없이 전국구로 활동 중이다. 이들은 학벌 없는 사회를 실현하려면 ‘대학 개혁’이 필수라고 말한다. 결국 대학 서열화가 입시경쟁 풍토, 학력주의 인식을 촉발하고,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학벌 없는 사회 박고형준 상임활동가는 “수시, 정시 비율을 조정하며 경쟁의식을 고취하는 것도 사실상 대학 서열화의 중심에 선 수도권 사립대 역할이 크다”면서 “대학 서열화부터 뿌리 뽑아야 대학 입시에만 초점이 맞춰진 왜곡된 교육 목적을 바로 잡고, 그에 맞춰 초중등 교육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한다. ‘수능 자격고시화’ ‘국공립대 네트워크 구축’ 등이 그것이다. 수능 자격고시화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어느 정도 기준 점수 이상이 되는 수험생에게 대학에 갈 자격을 주자는 제도다. 국공립대 네트워크는 프랑스의 ‘파리 1~13대학’처럼 국공립대를 네트워크화해 학생을 공동으로 선발하고, 공동으로 학위를 주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국공립대 네트워크’ 정책은 이미 15년 전부터 제시돼 왔지만 여전히 공회전 중이다.
박고형준 활동가는 “이 2개 정책이 연동되면, 일정 자격을 얻은 수험생이 거주지와 가까운 국공립대에 입학할 기회가 열린다”며 “국공립대만큼이라도 경쟁을 줄일 수 있고, 이에 따라 학부모들의 불필요한 학비 부담이나 지역 인재 유출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건학 이념, 공공성의 목적을 달성하는 사립대에 지원금을 확대하는 방안 등도 거론했다.
■ ‘내로남불’ 대학
이른바 ‘잘나가는 대학’ 학부생 A 씨. A 씨는 평소 거리에 나가 학생 인권을 외쳐왔다. 여러 청년·시민단체와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 사회의 문제를 꼬집었다. 그러던 중 ‘학벌 없는 사회!’라는 구호가 나오자 A 씨는 침묵했다. 더는 현장에 나오지 않았고, 오히려 학벌 차별 정책에 찬성하는 쪽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학생인 황법량 상임활동가가 현장에서 겪은 이야기이다.
“갈수록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가 약해지니까, 명문대 일부 학생은 노골적으로 학력 차별 철폐 반대편에 섰어요. 인권은 엄청나게 민감해하면서도 학벌 사회에는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 등 일부 대학 구성원의 비판 의식이 불균형하게 발달해 있습니다.”
그는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해 ‘대학 안’의 구성원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잠(학과 잠바), 축제 등 대학이라는 학벌을 상품화하고 브랜드화하는 크고 작은 행동에 비판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무조건 과잠을 입지 말자는 게 아니라, 너무 비판 없이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지 말자는 얘기”라며 “대학 본연의 역할을 잊은 채 기득권 의식에만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폐쇄적인 대학 문화를 꼬집듯 대학을 모든 시민에게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황 활동가는 “궁극적인 목표지만, 이제는 넘쳐나는 대학이 지역 문화센터나 공공도서관처럼 누구든지 궁금한 분야에 대한 강의를 신청해 들을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며 “필요한 사람만 시험을 치고 성적 증명서를 발급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 구석구석 번진 학벌주의
학벌 없는 사회는 대학 문제가 촉발한 차별이 사회 곳곳으로 번져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취업’ ‘승진’처럼 익히 알려진 것부터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문제도 있다고. 대학생들만 동원 훈련에서 특혜를 준다든지, 현역병 입대 조건에 중졸, 고졸 등 학력 기준을 넣은 사례 등이다.
박고형준 활동가는 “병무청이 현역병 입대 자원을 늘리거나 줄일 때 고졸, 중졸 등 학력을 기준으로 삼았었다”면서 “보통 ‘군대 안 가면 좋은 것 아니냐’라고 하지만 이는 명백한 차별 사례며,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해 개선했다”고 말했다.
채용 시장의 학력 차별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다. 여전히 입사 원서에 대학명을 요구하는 등 학력을 기준으로 채용 기회를 박탈하는 경우가 끊이지 않는다고. 실제 학벌 없는 사회는 최근 국적 항공사가 승무원을 채용할 때 학력에 따라 지원 기준을 제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또 광양보건대가 직원 채용 과정에서 학력에 따라 배점을 다르게 한 부분을 이슈로 만들었다. 당시 광양보건대 총장은 결국 ‘조카 채용 논란’에 휩싸이며 파면되기에 이르렀다. 이밖에 광주 청소년 수련시설 등 지역 곳곳에서 학력 차별적인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박고형준 활동가는 “이는 단순히 광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라며 “여러 분야에 다양한 모습으로 학력 차별이 이뤄지고 있어 개선해 나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작은 변화
“우리 단체가 해산하는 게 우리의 최종 목표입니다. 존재할 이유가 없어져야 학벌 없는 사회가 될 테니까요.”
박고형준 활동가는 느리지만 우리 사회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학벌 사회에 지친 학생과 학부모, 시민단체 등이 곳곳에서 노력하고 있는 결과라고 말한다. 그는 대안학교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줄고 채용 비리, 학력 위조가 쉽게 드러나는 등 사회 전반에 학벌주의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최근 학력에 의존하지 않고 떳떳하게 사는 것을 오히려 부러워하는 시선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고 입을 모은다. 학벌 사회를 없애고자 하는 공감대가 아직 부족하다는 게 큰 이유다. 특히 교육청, 대학 등의 동참이 관건이다. 문제를 제기하면 정부 지침이 아직 정비가 안 됐다거나 예산이 없다는 등 책임을 ‘중앙 정부’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위학교 구성원들의 감시 활동도 필요하다.
박고형준 활동가는 “광주만 봐도 대학이 넘쳐나고 초·중·고교가 300여 개가 넘는다”면서 “시민단체뿐 아니라 일선에서도 꾸준히 감시 활동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구본창 정책국장은 “국공립대 네트워크가 국정과제 수립 단계에서 누락되는 등 이번 정부가 대학 서열화 해소는 시동도 걸지 못했다”며 “대학도 뽑는 경쟁이 아닌 가르치는 경쟁으로 체질을 바꿔야만 한다”고 말했다.
광주=이승훈·박세익·황석하 기자, 영상·편집 정수원 PD lee88@busan.com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0-11-1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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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⑥] 저임금 고졸은 ‘노오오오력’하지 않은 개인 탓?
<‘대학민국 고졸’을 곱씹으며>
대한민국 청소년은 매일 전쟁터에서 산다. 목표는 ‘좋은 대학’. 거기서 낙오한 아이들은 요즘 말로 ‘루저(패배자)’가 된다. 최소한 ‘괴물’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 처절한 경쟁 속에서 기를 쓰고 살아간다.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던 ‘대입 생존자’들 앞에는 더 큰 쓰나미가 덮쳐온다. 취업이다.
좌표 설정 없이 대학에 간 이들은 블랙홀 속에서 헤매기 일쑤다. ‘욜로(YOLO·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와 같은 말을 추종하며 현실을 탈출하려 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 좌절한 청년들은 더는 미래가 없다고 소리친다.
애초에 그들이 ‘고졸’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그 엄청난 시간과 사교육비, 등록금을 꿈을 향한 일에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 대학은 꼭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일 순 없을까.
청년들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 줄 근본적인 ‘혁명’이 그래서 절실하다. 고졸이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 학생 재능·소질 발굴은 여전히 뒷전
서울 인덕과학기술고등학교에서 교육 연구부장을 담당하고 있는 이강은 교사. 경력 20년차인 그는 자동화기계과 교사로, 학생의 진로에 관심이 있어 2010년부터 학과내 직업진로교육을 맡고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직업교육과 취업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게 일상이다.
지난달 21일 서울 노원구 인덕과학기술고등학교. 방송 강연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청소년 진로 교육에 대해 깊은 고민을 들려주고 있는 이 학교 이강은 교사와 마주 앉았다.
이 교사는 지난 10년간 진로지도 교사로 일하며 우리 교육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한다. 아직도 아이들의 재능이나 소질을 이끌어내주는 데 소홀하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특히 특성화고에 온 아이들조차도 자신의 전공을 깊이 생각하고 선택하기보다 성적에 따라 오는 현상이 여전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서울은 과거에 비해 인식이 좀 개선돼서 내 재능을 좇아가기 위해 특성화고에 오는 학생이 좀 늘었지만, 지역에선 아직까지 이런 변화가 저조해요. 중학교 단계에서 학생 진로교육이 전혀 안돼 있다고 보면 됩니다. 아직 학력중심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이 교사는 특히 학부모들이 과거 실업계 고등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사로잡혀 아이들을 특성화고에 보내기 꺼려하는 현상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는 또 고졸로 취업을 해도 대졸자와 임금 격차가 커 ‘학벌 사회’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걸림돌로 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과 노동환경 차이가 대체 어느 정도여서 그러는 것일까?
■ 대졸보다 적게 벌고, 일은 많은 고졸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근로자수는 1084만 6459명이다. 대졸 이상 근로자가 471만 9690명으로 전체의 43.5%를 차지해 가장 많지만, 고졸 근로자도 403만 9975명, 전체의 37.2%에 이르러 규모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임금면에서는 격차가 확연히 드러난다.
같은 자료에서 지난해 대졸 이상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457만 1000원이었지만, 고졸은 299만 1000원에 그쳤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고졸 근로자의 임금이 대졸 이상의 60~65% 수준에 그친 셈이다. 대졸 이상과 고졸자의 평균 임금이 이 정도이지만, 여성 고졸자만 따로 보면 이보다 격차가 더 벌어진다. 지난해 여성 고졸자는 한달에 평균 233만 3000원을 손에 쥐었다.
노동시간은 이와 정반대다. 지난해 대졸 이상 근로자는 한 달에 158.9시간을 일했지만, 고졸의 같은 기간 노동시간은 168.8시간으로 조사됐다. 학력에 관계 없이 해를 거듭할수록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고졸자의 노동시간이 대졸 이상보다 적게는 10시간, 많게는 14시간가량 길었다. 다시 말하면, 고졸자는 대졸 이상 근로자보다 적게 벌면서도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우리 사회도 이 같은 상황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통계청의 지난해 '고졸 및 대졸자에 대한 사회적 지원 의식' 조사에서 "우리 사회는 고졸자에게 적절히 대우하고 있다?"는 질문에 "매우 그렇지 않다(6.3%)" "그렇지 않다(41.2%)"와 같이 부정적인 답변이 47.5%로 나타났다. 이와 반대로 "매우 그렇다"는 0.75, "그렇다"는 12.6%에 그쳤다.
■ 고졸, 대졸보다 능력 부족할까?
고졸 말단 여사원들이 회사의 범죄를 폭로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여상을 졸업해 입사 8년차인 이들은 커피 타기, 사무실 정리, 심지어 남성 직원들의 구두닦이 심부름까지 온갖 잡무에 시달린다. 하지만, 업무 능력은 회사의 웬만한 대졸 사원보다 뛰어나다. 그렇다면 실제 기업들이 바라본 고졸은 어떤 모습일까?
부산경영자총협회 심상균 회장은 “솔직히 중소기업의 대졸 가운데 고졸보다 역량이 떨어지는 직원이 많은 게 사실이다”고 단언한다. “대졸 사원들 보면 대학에서 실무 능력이나 지식을 제대로 쌓아서 왔는지 의문이 많이 들 때가 있어요. 역량은 미치지 못하는데 대졸이라는 이유로 어깨에 힘만 들어가죠. 심지어 일부 대졸 직원은 입사 이후에 상공회의소 인력개발원 같은 곳에서 직무능력을 다시 배우게 하기도 합니다.”
심 회장은 반면 “고졸 직원이 훨씬 빨리 성장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대졸을 따라잡고 승진하기도 한다”면서 “현재 고졸과 대졸의 취업 상황이나 지원자들의 마인드를 보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교육비 부담으로 부모는 골병이 들고, 자신도 힘든 삶을 살아간다”고 안타까워했다.
부산에 본사를 둔 대기업 A사 인사담당자는 “대부분 고졸 직원이 나이가 어려서인지 패기가 넘치고 업무 추진력이 상당히 좋다”면서 “특정 분야 지식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스스로 개발 활동을 하거나 대학에 입학하는 등 대졸자보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겸손히 잘 메운다”고 밝혔다.
부산 중소 제조업체 B사 대표는 “생각보다 똑똑하고 역량 있는 고졸 직원이 많다”면서 “고졸자가 진득하게 일을 하고, 애사심이 높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학력 간 임금 불평등 해소 시급
이강은 교사는 이런 학력 간 임금 불평등이 ‘대기업 우선주의’에 기인한다고 본다. 한마디로 대기업이 너무 많이 가져가서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고졸의 노동환경도 열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하청 구조가 고질적인 문제다”며 답답해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앗아가지 않아야 하고, 정부의 단순 임금보전 수준을 넘어 중소기업을 대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중소기업을 대기업에서 독립적인 구조로 만들어야 하는 것도 급선무죠.”
그는 ‘산학일체형 도제학교’와 연결된 중소기업 중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곳은 대기업 하청이 아닌 수출기업이란 것을 현장에서 목격했다고 전했다. 이 교사는 “대기업이 내려 앉으면 하청 중소기업까지 다 타격을 받는다. 대기업이 원가 절감하면 중소기업 직원의 임금까지 깎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의 한 중소기업 관계자도 “고졸자라도 특별한 기술을 가진 인력이라면 임금을 많이 줘야 하지만, 구조적으로 대기업 하청을 받는 중소기업 사정이 여의치가 않다”면서 “차별적 임금제도 등을 국가적 차원에서 진단하고 장기 플랜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전공 지식 등 고졸자와 대졸자 간 간격을 줄일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대졸자들이 4년간 배운 전공 지식이나 경험을 보완할 수 있는 전문 교육 과정이 특성화고에 필요하다는 얘기다. 부산에 본사를 둔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디지털, 공학 등 일부 전문 분야에서는 관련 전공을 공부하거나 대학 내 공모전 등 경험을 쌓은 대졸자가 유리하다”면서 “기업-교육청 간 산학협력을 통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임금 불평등 문제만 어느 정도 해결되어도 대학입시에 목을 매는 현상이 완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이 1만 원 이상인 일본 같은 경우에는 고졸자 취업이 거의 100%입니다. 고졸자 임금이 대졸자와 거의 비슷해 굳이 대학에 안 가려고 해요. 호주도 기술을 가지고 내가 일한 만큼 받을 수 있는 풍토가 정착돼 있죠. 선진국처럼 모두가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우리도 앞당겨야죠.”
박세익·황석하·이승훈 기자 그래픽=류지혜 기자 영상·편집 정수원 PD hsh03@busan.com
※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2020-11-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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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⑤] "내 아이만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대학민국 고졸’을 곱씹으며>
대한민국 청소년은 매일 전쟁터에서 산다. 목표는 ‘좋은 대학’. 거기서 낙오한 아이들은 요즘 말로 ‘루저(패배자)’가 된다. 최소한 ‘괴물’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 처절한 경쟁 속에서 기를 쓰고 살아간다.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던 ‘대입 생존자’들 앞에는 더 큰 쓰나미가 덮쳐온다. 취업이다.
좌표 설정 없이 대학에 간 이들은 블랙홀 속에서 헤매기 일쑤다. ‘욜로(YOLO·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와 같은 말을 추종하며 현실을 탈출하려 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 좌절한 청년들은 더는 미래가 없다고 소리친다.
애초에 그들이 ‘고졸’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그 엄청난 시간과 사교육비, 등록금을 꿈을 향한 일에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 대학은 꼭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일 순 없을까.
청년들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 줄 근본적인 ‘혁명’이 그래서 절실하다. 고졸이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 대물림
부산에서 작은 물류 업체를 운영하는 전현석(49·가명) 씨. 그는 평생 짐 하나를 지고 살아간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고졸’이란 딱지다. 일찌감치 결혼해 남매를 낳은 그는 그래서 자녀들을 ‘내세울 만한 대학’에 보내는 데 더욱 올인하고 있다.
사교육비를 아끼지 않은 덕인지 첫째는 꽤 이름난 대학에 입학시켰다. 합격 발표가 났을 때 “정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고 한다. 둘째 역시 좋은 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시키고 있지만, 마음먹은 것처럼 되지 않아 걱정이다.
한숨을 한 번 내쉰 뒤 전 씨가 말했다. “사실 와이프도 고졸인데 다니던 직장에서 불이익을 많이 당했어요. 을의 입장이다 보니 어디 하소연도 못 했습니다. 그냥 좀 더 빨리 돈을 벌고 싶어서 고졸을 택했던 건데, 어디서든 반복되는 ‘대학은 어디 나왔어요?’란 질문, 그게 콤플렉스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자식들에게 그런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애들이 좋은 대학 가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돈 아끼지 않을 겁니다. 어디서든 학벌 따지는 대한민국 사회가 금방 바뀌겠어요?”
대한민국 노동 인구의 절반가량은 전 씨처럼 고졸 이하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중요한 이들이지만 ‘투명인간’ 비슷한 취급을 당해온 게 사실이다. 현실이 그러니 한국에선 다른 어느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아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서 단적인 예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OECD국가의 25~34세 국민 중 44.9%가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았고, 55~64세의 연령대에선 28.4%가 고등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선 청년 세대인 25~34세의 69.8%, 부모 세대 55~64세의 24.4%가 고등교육을 이수했다.
청년들은 OECD 평균보다 24.9%포인트(P)나 높은 ‘고학력’으로 OECD 국가 중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지만 부모 세대는 OECD 평균보다 4%P 낮았다. 단순하게 보자면, 부모 세대의 학벌주의가 청년 세대의 대학 진학률을 비정상적으로 높여 버린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특히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청년 61.5%·부모 44.5%)이나 서구권인 영국(청년 51.8%·부모 38.7%) 미국(청년 50.4%·부모 43.4%)에 비해서도 한국은 두 세대 간 격차가 45.4%P로 눈에 띄게 크게 나타났다. 독일의 경우 청년 33.3%·부모 26.9%로 두 세대 모두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은 비율이 현저히 낮아 한국의 상황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그나마 세상이 급변하면서 한국 부모 세대의 ‘고졸’에 대한 인식이 청년 세대에 그대로 대물림되는 것 같지는 않다. 경제난과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어느 때보다 힘든 환경 속에서 사는 청년들의 인식은 혼란스러우면서도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부모 세대는 오히려 자녀의 학벌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9’에 따르면, 2012년 한국 중·고등학생의 66.1%가 4년제 이상 대학교를 졸업하길 기대했던 것이 2018년에는 64%로 2.1%P 줄었다. 반면 2012년 초·중·고 학부모의 69.4%가 자녀가 4년제 이상 대학을 졸업하길 원했는데, 2018년에는 72.7%로 기대감이 3.3%P 증가했다. 다만 석·박사 학위 취득에 대한 기대는 중·고생과 학부모 모두 기대감이 다소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 전쟁터
실제 대한민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청년들의 기억 속 고교 시절은 흡사 ‘사활을 건 전쟁터’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고든, 취업을 목표로 하는 특성화고이든 치열한 경쟁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긴 매한가지다.
“어찌 됐든 옆에 있는 친구들보다 잘해야 취업이든 대학이든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거잖아요.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 좋고 재밌지만, 결국은 경쟁자니까요.”
지난해 말 부산 남구 한 특성화고를 졸업하면서 금융업체에 취업한 김 모(19) 씨. 고3 시절, 무척이나 치열했던 삶이 떠오르면 몸서리친다. 오전 7시에 눈을 뜨고 다음 날 오전 1~2시에 눈을 감는 생활이 1년 내내 계속됐다.
“등교하면 진로활동실에서 가서 자기소개서 쓰고 면접 준비를 합니다. 야자(야간자율학습) 때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공부나 면접 예상 질문을 만듭니다. 틈날 때마다 친구들과 모의 면접, PPT 면접, 토론 면접 주제를 분석합니다.”
중간, 기말고사 때는 시험공부도 병행한다. 취업 자격 기준에 내신 등급이 명시돼 있는 경우가 많아 결코 게을리할 수 없다. 혹시나 취업이 되지 않으면 ‘플랜B’로 대학 입시도 준비해야 해 내신 점수가 중요하다.
대학에 가려는 친구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그렇듯 원하는 대학, 학과에 가기 위해 쉼 없이 달렸다.
올해 부산 연제구의 한 특성화고를 졸업한 노 모(18) 씨는 “사람 일은 모르다 보니까, 나중에 취업도 못 하고 대학도 못 가게 될까 봐 다들 불안해한다”면서 “육체적인 힘듦보다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더 컸다”고 말했다.
이런 청소년의 삶은 다른 나라에서도 당연할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이 대학생을 상대로 고등학교의 이미지를 조사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드러났다.
한국 대학생의 80.8%가 고등학교를 ‘사활을 건 전장’이라고 답했는데, 중국(41.8%)과 미국(40.4%), 일본(13.8%) 대학생보다 월등하게 높은 것이었다. 오히려 일본 학생의 75.7%가 고등학교를 ‘함께하는 광장’이라고 답해 일본의 상황이 한국과 비슷할 것이라는 예상을 깼다. 우리 교육에 근본적인 대수술이 절실하다는 지적을 받는 대목이다.
사정이 이러니 한국의 중·고생이 자살 충동을 느끼는 원인 역시 ‘성적 및 진학 문제’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실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이 타국보다 월등하게 많은 것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 희망
이런 현실 속에서도 청년 세대의 인식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고졸’이 특별한 꼬리표가 아니라, 용기 있는 결단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주목받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한다.
부산 모 사립대 졸업자 이 모(28) 씨는 “대학 가기 쉬운 환경에서 캠퍼스 낭만 같은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과감히 결단했으니 용감하다고 느낀다”며 “무작정 떠밀리듯 대학을 간 친구들보다 의지나 실행력이 오히려 앞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학력 차별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용기를 내는 데 큰 걸림돌이라 인정한다. 고졸을 택했다가 이런 차별 때문에 뒤늦게 대학 졸업장을 따는 무의미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이 씨는 “직장에서 고졸이라고 하면 ‘기특하다’ ‘장하다’고 얘기해 주지만 여전히 ‘너희 이제 고등학생 아니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학생티 내지 마라’ 등 차별적 발언을 하는 선배들이 있다”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고교 졸업자 김 모(23) 씨는 “똑같은 실수를 해도 ‘고졸이라 못하는 건가’라고 생각하더라. 현실이 이러니까 나중에 이직하거나 결혼할 때 대학 졸업장이 필요할 것 같아서 지금이라도 다시 대학 졸업장을 딸 준비를 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처럼 학벌 때문에 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언제 될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박세익·황석하·이승훈 기자 그래픽=류지혜 기자 영상·편집 정수원 PD run@busan.com
※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2020-11-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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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④] 새로운 도전 앞에 나타난 건 드높은 '학력의 벽'
<‘대학민국 고졸’을 곱씹으며>
대한민국 청소년은 매일 전쟁터에서 산다. 목표는 ‘좋은 대학’. 거기서 낙오한 아이들은 요즘 말로 ‘루저(패배자)’가 된다. 최소한 ‘괴물’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 처절한 경쟁 속에서 기를 쓰고 살아간다.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던 ‘대입 생존자’들 앞에는 더 큰 쓰나미가 덮쳐온다. 취업이다.
좌표 설정 없이 대학에 간 이들은 블랙홀 속에서 헤매기 일쑤다. ‘욜로(YOLO·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와 같은 말을 추종하며 현실을 탈출하려 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 좌절한 청년들은 더는 미래가 없다고 소리친다.
애초에 그들이 ‘고졸’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그 엄청난 시간과 사교육비, 등록금을 꿈을 향한 일에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 대학은 꼭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일 순 없을까.
청년들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 줄 근본적인 ‘혁명’이 그래서 절실하다. 고졸이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고등학교에서 기술을 배워 대기업에 취업했다가 호주 이민을 결심한 박장한, 고교 졸업 후 부산 도시철도 기관사가 된 박지훈 씨. 두 청년의 이야기에서 그 해답을 엿보기로 했다.
■ 떨림
가을 낙엽이 살포시 내려앉은 부산 온천천. 산책로가 내려다보이는 한 카페에서 말끔한 단풍색 스웨터를 입은 청년이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장한(27) 씨다.
그는 내년 초 대한민국을 떠난다. 호주로 이민 간다. 고단한 한국에서의 삶을 보상받았다 생각해서일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카메라 없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인터뷰) 하면 되는 거죠? 안녕하세요. 저는 93년생 박장한입니다.” 입술에서 약간의 떨림이 느껴졌다. 웃음 가득했던 표정도 어느새 진지해졌다.
“호주 가는 건, 학력이나 취업 때문은 아니에요.” 밝고 편안한 목소리에서 아쉬움보다는 후련함, 그리고 기대감이 더 다가왔다.
장한 씨는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를 나와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중학교 졸업 때 이미 ‘고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왜 굳이 중학교 때….” 민감한 질문이다 싶어 말끝이 흐려졌다. 카페에 흐르는 재즈 음악이 어색한 분위기를 달래고 있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빨랐다. 간단했다. 바로 ‘취업’이었다. 조금은 조숙한 선택의 이유를 설명해야 하니 천장을 잠시 보며 기억을 끄집어냈다.
“대학 안 가고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업계 가는 친구들 대부분 그럴 거예요. 가정형편도 좋지는 않았습니다. 누나 대학 다닐 때 등록금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거든요.” 간혹 앞머리에 가려진 그의 짙은 눈썹이 움츠러들었고, 두 손은 계속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의 결정에는 친한 친구들의 영향도 컸다. 어느 날 교실에서 한 친구가 대기업 취업률이 좋은 한 고등학교를 검색하고 있었다고. 부산에서도 나름대로 명망 있는 학교라 고민은 무의미했다.
갑자기 어린 장한의 꿈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중학생이 무슨 꿈이 있었겠습니까?" 슬쩍 미소 띤 그의 표정에서 짓궂은 어린 장한의 모습이 교차했다.
“막연히 대기업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뭐가 됐든. 이 목표를 가장 쉽게 이룰 수 있는 게 실업계라고 생각했고요.” 어린 장한의 ‘새길’에 부모님도 거부감이 없었다고 한다. “계획한 대로 한번 해봐라”며 지지해주셨다. 어린 장한의 똘망똘망 큰 눈과 차분한 말투에 미소로 응원하지 않았을까.
부산기계공고에서 선택한 학과는 기계과의 ‘CNC선반’. “쇠 깎는 겁니다. 도면 주어지면 그것에 맞게 작업하는 거….” 마찬가지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습니다. 이 과를 가면 취업이 잘 된다고 하니….” 답이 계속 무미건조하다고 느꼈는지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후회는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후회할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좋은 회사를 갈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저는 공부보다는 실무에 ‘초집중’했습니다. 전국기능경기대회 등 기술 경쟁에서 이기려고 친구들과 온종일 기술만 연마했어요.”
■ 도전
장한 씨는 수상 경력 등으로 졸업 전 취업에 성공했다. 경남 창원의 한 방위산업체에서 생산직으로 3년간 근무했다.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페이도 좋았고 동료들도 최고였고….” 그런 곳을 떠난 이유를 물었다. “뭐랄까… 음….” 생각에 잠긴 듯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던 그가 짧은 숨을 내쉬었다.
“계속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나이가 많지 않으니 계속해서 다른 걸 해보고 싶었던 거죠.” 어쩌면 젊은 청년에게 당연한 일을 괜히 물었나 싶었다. 그런데 그는 입을 다문 채 꽤 오랜 시간 말이 없었다. 뭐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과거의 그는 수없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을 밀어냈던 것 같다.
‘중학생 장한’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미래를 선택했었다고 고백했다. 글자만 적힌 전공 이름만 보고 학과를 선택한 것이다.
“CNC선반이 컴퓨터 관련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생소한 전공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검색 정도만 해서 들어갔던 거죠.”
식은 커피를 양껏 들이켠 그는 홀가분해 보였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호주에 갔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습니다. 일단 영어부터 배우자 마음먹었죠. 어떤 분야에 도전하든 영어는 필요했으니까요.”
2년 뒤 한국에 돌아온 장한 씨는 처음으로 학력의 한계를 체감했다. 이력서를 넣으려 해도 ‘대졸 이상’ 문구가 자꾸 눈에 거슬렸다.
“제가 느낀 바로는 대졸 이상만 지원할 수 있는 채용 공고가 서너 배는 많았습니다. 최하 학력이 대졸인 거죠. 아무리 좋은 포트폴리오나 자격증이 있더라도 지원 자체를 못 하니…. 대졸자와 같이 경쟁할 기회조차 없더라고요.”
결국 장한 씨는 대졸 이상 문구가 적힌 채용 공고에 지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프리랜서 1년 계약을 따냈다. 고졸이라고 솔직하게 밝혔는데도 인상적인 포트폴리오를 인정한 회사에서 그를 뽑은 것이다. 당시 상황을 떠올리자 헛웃음이 나는 모양이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갔지만, 나름의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프리랜서 신분에다 프로그래밍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으니까요.”
■ 완생
1년 뒤 회사를 나온 장한 씨는 호주에서의 새 삶을 준비 중이다. 의자에 등을 기대며 자세를 고쳐 앉은 장한 씨가 속 시원한 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시 돌아가도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에게는 다른 조언을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다면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대학에 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할 것 같아요. 아직 우리 사회는 대학이라는 제도권 밖에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처럼 언제든지 하고 싶은 일이 바뀔 수 있으니까요. 하고 싶은 일이 바뀔 때 필요한 게 대학 졸업장이었습니다.”
장한 씨는 과거를 향한 후회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가 커 보였다. “대졸보다 불리한 게 사실이지만 고졸도 자기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 던지고 싶은 말은 딱히 없습니다. 현실은 자기가 하기 나름입니다.” 기분 좋은 그의 건강한 기운이 그대로 내게 전달되는 듯했다.
헤어지기 전, 그는 tvN 드라마 ‘미생’을 내게 떠올려 주었다. “‘어이 고졸!’로 불리던 장그래가 결국은 미생에서 완생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하하.”
■ 탑승
박지훈(26) 씨는 평소처럼 도시철도 전동차 운전석에 앉았다. 주간제어기를 1단으로 올리자 전동차가 철도차량기지에서 스르르 미끄러졌다. 뒤따라오는 열차 간격을 고려하면서 승객을 제때 이송하기 위해 주간제어기를 4단으로 올려 속도를 높였다.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전동차가 어두운 철로 위를 “타닥” 소리를 내며 달렸다. 운전실에는 표지판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소리내어 읽는 지훈 씨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역사에 진입하기 직전 갑자기 전동차에 문제가 발생했다. 잘 달리던 전동차가 멈춰버린 것이다. 지훈 씨의 눈이 크게 떠졌다. 무슨 오류가 발생한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는 우선 매뉴얼 대로 관제실에 이를 보고했다. 다음은 객실방송으로 승객들을 안심시킬 차례.
“차량 고장으로 잠시 정차했습니다. 승객 여러분은 안전한 차내에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지훈 씨의 이마에서 한줄기 땀방울이 흘렀다.
지난달 어느 평화로운 저녁 시간, 동래구의 한 카페에서 지훈 씨와 마주 앉았다. 그는 아찔했던 당시 상황을 낯선 기자인 내게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었다. 얼굴은 한껏 긴장된 표정이었다. “만약 이게 실제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싶었죠. 시뮬레이션이었으니까 다행이었지, 전동차가 갑자기 멈췄을 때 정말 긴장됐습니다.”
■ 환승
지훈 씨는 올해 8월 부산교통공사에 입사한 수습 기관사다. 수개월 뒤 수습기간이 끝나면 부산 도시철도 2호선에 투입된다. 그는 “불과 3년 전 자신이 멀쩡하게 다니던 대학까지 그만두고 기관사의 길을 걷게 될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2014년 대기업이 운영하는 경남 진주시의 한 공과대학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취업이 잘 된다는 이유가 컸다. 휴학 후 해군으로 복무하던 시절, 문득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017년 전역일이 다가오자 지훈 씨는 진로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고 한다. 취업을 노리고 진학했지만 기계 일에 가슴이 설레었던 건 아니었다. 그가 타고 있던 해군 고속정 ‘참수리호’가 파도에 흔들리듯, 그의 마음도 흔들렸다.
전역 후 그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왔다. 기관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면서다. “지인 중에 기관사를 하시던 분이 추천하셨어요. 밤낮이 바뀌어 힘든 점이 있지만, 그만큼 쉬는 날도 법적으로 충분히 보장돼 해볼만 하다고.”
그때부터 지훈 씨의 마음은 기관사를 향해 질주했다. 우선 관련 서적을 구입해 독학을 하면서 부산교통공사의 기관사 교육원인 BTC아카데미 입교를 준비했다. 입사 시험에 필요한 기관사 면허증을 따려면 전문 교육기관에서 460시간 교육을 받은 뒤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2018년 2월, BTC아카데미에 입교했다. 대학은 복학을 미루고 휴학을 이어갔다.
아카데미는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강의 때마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전문용어가 전장의 총알처럼 휙휙 날아들었어요. 전동차의 속도와 철로 곡선 구간 등을 익혀야 하는데, 시뮬레이션 연습을 하면 손에 땀이 찰 정도로 긴장됐어요. 배경지식이 없다 보니 입교 뒤에 한동안 엄청 고생했어요. 두 달정도 지나니 뭔가 눈에 보이고, 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 도착
이듬해 7월, 지훈 씨는 고생 끝에 드디어 면허증을 취득했다. 이어 9월에 휴학 중이던 대학에 자퇴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입사 이력서에 표시될 '최종학력 고졸'이 신경쓰이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물론 부모님은 처음에 반대하셨어요. 그래도 취업이 안 될 수도 있고, 어떻게 될지 모르니 휴학을 계속 권하시더라고요. 그래도 학교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지훈 씨는 학력 자체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 졌다.
이어 그는 최종학력 ‘고졸’ 신분으로 부산교통공사 시험에 도전해 보란 듯이 합격했다. 지훈 씨가 3년 동안 깨달은 건, 전문 분야의 기술과 경쟁력을 갖추고 취업할 수 있다면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결국 대학에 가는 것도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 잖아요. 이른바 '스카이' 대학에 기를 쓰고 가려는 것도 그런 것 아닌가요. 그런데, 저는 기관사 면허증을 취득했고 전문지식도 배웠어요. 조금만 더 가면 취업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을 그만뒀죠. 사실 요즘에는 무조건 대학에 가야한다는 인식이 많이 희석된 것도 같아요."
지훈 씨는 다만 최종학력이 고졸이었지만 학력 제한이 없는 공공기관이어서 입사가 가능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고졸 학력으로 민간 기업에 취업을 시도하는 많은 청년들이 좌절하고 있는 게 현실이어서다.
"만약 제가 기관사의 꿈을 포기하고 고졸 학력만 가지고 민간 기업에 가려했다면, 아마도 어려움이나 불평등을 느꼈을 겁니다. 아무래도 사기업은 학력이나 학벌 위주로 채용하는 곳이 많으니까요."
정말 대학을 포기한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는지 다시 한 번 물었다. "없습니다."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단호한 그의 목소리에 더없이 강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이승훈·황석하·박세익 기자, 영상·편집 정수원 PD lee88@busan.com
※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2020-11-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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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③] "그만둔 대학, 왜 다시 가고싶냐고요?" 해경이 된 이대현 씨
<‘대학민국 고졸’을 곱씹으며>
대한민국 청소년은 매일 전쟁터에서 산다. 목표는 ‘좋은 대학’. 거기서 낙오한 아이들은 요즘 말로 ‘루저(패배자)’가 된다. 최소한 ‘괴물’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 처절한 경쟁 속에서 기를 쓰고 살아간다.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던 ‘대입 생존자’들 앞에는 더 큰 쓰나미가 덮쳐온다. 취업이다.
좌표 설정 없이 대학에 간 이들은 블랙홀 속에서 헤매기 일쑤다. ‘욜로(YOLO·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와 같은 말을 추종하며 현실을 탈출하려 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 좌절한 청년들은 더는 미래가 없다고 소리친다.
애초에 그들이 ‘고졸’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그 엄청난 시간과 사교육비, 등록금을 꿈을 향한 일에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 대학은 꼭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일 순 없을까.
청년들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 줄 근본적인 ‘혁명’이 그래서 절실하다. 고졸이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 환멸
가을 햇볕이 포근하게 감싸는 부산의 한 커피숍 테라스. 아르바이트 하느라 시간 내기가 힘들다던 그를 기다렸다. 드디어 인터뷰 할 시간을 내었다고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10분가량 지났을까. 180cm가량 훤칠한 키, 디지털 전투복 무늬 재킷 아래 반바지를 입은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름은 이대현(29·가명). 대현 씨는 올 8월 해양경찰에 최종 합격한 뒤 임용대기 중이다. 굳이 그를 대면하고 싶었던 건 그가 살아 온 삶, 특히 학교 얘기가 궁금해서였다.
통성명을 하고, 서로 긴장이 조금 풀렸다 싶자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시 대학에 가시겠어요?”
대현 씨는 즉답을 하지 못했다. 한참 동안 입술을 매만졌다. 햇빛을 받은 갸름한 얼굴의 오뚝한 코, 그 오른쪽에 살짝 드리운 그림자가 짙어 보였다.
그는 4년 전 다니던 대학을 그만뒀다고 했다. 그러니 최종 학력은 ‘고졸’이다.
“사실 대학을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한 걸 보면 괜히 그만뒀나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깊이 마음 속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일말의 미련? 그런 감정이라 볼 수 있을까. “저도 제 감정을 잘 모르겠네요. 굳이 표현한다면 ‘찝찝함’이라고 해 두죠.”
대현 씨는 2011년 부산의 한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전공은 경영학. 번듯한 기업 CEO가 되려고 거길 선택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적성을 고려한 것도 아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경영학은 학문의 폭이 넓잖아요? 그래서 우선 배우면서 다양한 것을 모색해보고 싶었습니다.”
대학에서 보낸 첫 해는 실망의 연속이었던 모양이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었다고. 대학에서 취업하면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것을 배우기 원했는데, 그런 강의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휴~.” 아주 짧은 한숨을 그가 내쉬었다.
“수강했던 교양 과목 중 ‘세계종교학’ ‘세계음악사’가 생각나네요. 뭐 그것도 학점을 메우려고 선택했지만.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강의였어요. 이렇게 비싼 등록금 내면서 대학에 계속 다녀야 하는지 회의감도 들었고요.” 대현 씨가 기억하는 최악의 순간은 대학에서도 족집게 강의를 접했을 때다. 시험 앞두고 강사가 출제될 부분을 콕콕 찍어줬던 것. 고등학교 때처럼 시험을 위한 기계적인 공부가 계속된 셈이다.
동기, 선후배들과 어울리고 연애도 하면서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진 않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대학 때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네요. 1학년 1학기 마치고 바로 입대했어요. 뭐 다들 찔끔 하다 어디 가버리고, 찔끔 하다 휴학하고 이래서…. 그땐 연애도 안 했어요.”
2013년 전역 후 2학기에 복학한 대현 씨. 여전한 환멸이 이어졌다. 고민 끝에 선택한 탈출구는 휴학. 그는 평소 관심이 가던 일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 모색
“저는 손으로 하는 정교한 작업을 좋아했어요. 설탕공예나 인테리어, 문신 기술 같은.” 그의 눈이 제법 반짝였다.
대현 씨가 휴학 후 처음 시도한 게 미용실습이었다. 그가 미용학원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다양한 수강생 구성에 적잖게 놀랐다고 한다. 미용고 학생부터 부모님뻘 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까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이날부터 하루 두세 시간씩 가위를 잡거나 파마 롤을 말았다. 손에서 미용약품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미용학원 강사는 그가 다닌 대학 출신이라 그런지 그를 격려하고 응원했다.
“나도 대학을 나왔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게 제일 멋진 거야.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미용의 길이 안정적이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컸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대현 씨는 6개월 만에 미용학원을 그만뒀다고 한다. 긴장하면 손에 땀이 나는 다한증도 미용실습의 걸림돌.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시험 칠 때 손에 땀이 나서 종이가 젖어 찢어질 정도였어요. 미용실습 때도 긴장해서 손에 땀이 나니까 가위가 자꾸 미끄러져서 손에 착착 감기지 않았습니다.”
대현 씨의 ‘휴학 여정’은 미용학원에서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이어졌다. 영사실 보조 아르바이트였다. 10개 상영관을 비추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돌발 사고에 대비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래도 영화도 많이 볼 수 있어 재미있었겠다고 하자 쓴웃음을 지었다.
“짜장면집 아들이 짜장면 잘 안 먹는다고 하잖아요. 영사실에서 보는 영화는 몰입도가 떨어져서 별 재미가 없어요.”
■ 결단
한 편의 영화가 언젠가 끝나듯, 그에게 복학 시점이 다가왔다. 취업 ‘스펙 쌓기’를 꼭 해야만 하나, 스펙 쌓는다고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어디 외국으로 워킹홀리데이라도 갈까 생각해봤어요. 그런 생각 자체가 스트레스였죠. 시험 한 방으로 취업하는 공무원 쪽에 점점 마음이 끌렸습니다. 스펙 상관없이 시험 과목 공부만 하면 되니까요.” 어느새 그는 대학이 굳이 필요 없다는 결론까지 내달렸다.
그렇지만 최종 학력이 ‘고졸’이 된다는 생각에 자퇴를 주저하진 않았을까. 단호하고 차가운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다니던 학교가 소위 말하는 ‘급’이 있는 대학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취업에 유리한 학벌이 아니면 애써 대학 졸업장을 딸 필요가 없다고 웅변하는 것 같았다.
대현 씨는 2016년 대학으로 돌아가는 다리를 불살라버렸다. 부모님께 한마디 상의도 없이. 며칠 뒤 어머니께 대학을 그만뒀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께는 도저히 자퇴 사실을 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부모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독단적으로 실행한 일이라 부모님 충격도 컸다.
본격적인 공무원 준비가 시작됐다. 대현 씨가 설명한 ‘집-독서실’ 일상은 다음과 같다. 아침에 눈뜨면 오전 9시. 바로 가방을 챙겨 독서실로 향한다. 걸어서 2~3분 거리다. 배가 고프면 ‘슥’ 집에 들어가 홀로 늦은 점심을 차려 먹는다. 다시 독서실로 돌아와 책을 편다. 저녁에도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최종 귀가 시각은 자정을 넘겨서다.
“물론 공무원 준비 기간 내내 그랬던 건 아니에요. 처음엔 동네 친구들도 자주 만났어요. 겉으론 친구들하고 웃고 떠들었는데, 100% 즐길 수 없었어요. 오히려 돌아오는 길에 불안감만 커졌습니다.”
■ 삭제
대학까지 포기하고 선택한 길, 극약 처방이 필요했다. 대현 씨는 고심 끝에 전화번호를 바꿔버렸다. 그는 세상에서 자신을 지웠다. 그의 고교 친구 박규민(29·가명) 씨는 얼마 전 대현 씨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대현이었어요. 2~3년 만에 연락했던 것 같네요. 사실 종종 전화를 걸어봤는데, 다른 사람이 받아서 당혹스러웠죠. 친구들에게 소식을 물어봐도 자초지종을 아는 친구가 없더라고요. 공무원 시험 준비에 몰입하려 전화번호를 바꿨을 것 같다는 짐작은 했어요.” 규민 씨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의 대현 씨가 공무원 준비 중 무슨 일을 당한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고 한다.
대현 씨는 고립을 자초하며 시험 준비에 몰두했지만, 합격이 녹록지 않았다. 열심히 준비했던 교도관, 경찰, 해양경찰 시험은 낙방의 연속. 필기시험에서 아예 탈락한 적도 있고, 체력 점수를 적게 받아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최종면접까지 갔다가 탈락한 적도 있었다.
간간히 친구들 소식을 들었다. 취업에 성공한 친구도 있었고, 한 녀석은 요리를 배워 부모님이 운영하던 중화요리점을 이어 받았다고 한다. 일면식도 없는 아버지 친구 아들의 취업 소식도 들어야 했다.
“어느 날 독서실에서 돌아와 컴컴한 방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어요. ‘나는 지금 도대체 뭐하고 있나’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죠. 올해 들어 거의 임계점에 도달했던 것 같아요. 또 떨어지면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당시 불안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해양경찰 최종 합격자 발표가 있기 하루 전. 불안한 마음에 어딜 나가지도 못하고 집안에 머물렀다. 그날 밤 대현 씨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해양경찰 시험에 최종 합격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 새길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온 대현 씨는 두 손으로 감싼 커피잔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요란한 경적소리가 울렸고, 그가 무겁게 입을 뗐다. “사실 정식 임용되고 직장에 적응하면 방송통신대라도 다녀볼까 생각 중이에요.” 노트북 컴퓨터에 그의 말을 옮기다가 고개를 들어 그를 다시 보았다. 무척 의외여서다.
“처음 대학에 다닐 때는 흥미도 없었고 내가 무엇을 할지도 몰랐습니다. 이제 해양경찰이라는 길이 정해졌어요. 그래서 업무 실력을 전문적으로 키울 수 있는, 행정학을 공부하고 싶네요.”
대현 씨가 오랜 방황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고졸을 선택한 뒤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그가 깨달은 게 뭔지 물었다.
“무엇을 할지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대학에 진학하는 게 중요해요. 남들 다 가니까, 안 가면 혼자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가는 것은 정말 아닌 것 같아요.”
대현 씨는 후련하다는 듯 남은 아이스커피를 다 마시고 얼음만 남겼다. 그의 뒤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햇빛을 받아 계속 반짝였다.
황석하·박세익·이승훈 기자, 영상·편집 정수원 PD hsh03@busan.com
※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2020-11-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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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②] "대학 왜 가냐고 묻지는 않잖아요"…청년활동가 김현지 씨
<‘대학민국 고졸’을 곱씹으며>
대한민국 청소년은 매일 전쟁터에서 산다. 목표는 ‘좋은 대학’. 거기서 낙오한 아이들은 요즘 말로 ‘루저(패배자)’가 된다. 최소한 ‘괴물’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 처절한 경쟁 속에서 기를 쓰고 살아간다.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던 ‘대입 생존자’들 앞에는 더 큰 쓰나미가 덮쳐온다. 취업이다.
좌표 설정 없이 대학에 간 이들은 블랙홀 속에서 헤매기 일쑤다. ‘욜로(YOLO·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와 같은 말을 추종하며 현실을 탈출하려 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 좌절한 청년들은 더는 미래가 없다고 소리친다.
애초에 그들이 ‘고졸’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그 엄청난 시간과 사교육비, 등록금을 꿈을 향한 일에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 대학은 꼭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일 순 없을까.
청년들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 줄 근본적인 ‘혁명’이 그래서 절실하다. 고졸이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 냉철
새삼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부산 수영구의 한 좁은 카페 구석에 사람 셋에 카메라까지, 4개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하고 있었으니. “한 명 인터뷰하려고 세 명이나 오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기획 취지를 한 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다시금 청년기획 ‘고졸’을 취재하게 된 배경을 들은 김현지 씨. 갓 뽑아낸 차가운 아메리카노잔을 이리저리 매만졌다. 머릿속으론 뭐라 답할지 신중히 정리하는 듯했다.
“사실 ‘나는 대한민국 고졸이다’라는 주제가 부담스러웠습니다.” 이런저런 실없는 얘기를 한 덕에 어색함이 사라졌는지, 그가 커피잔을 보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졸이라는 건 제가 스스로 느끼는 자아정체성 중 후순위예요. 예전에 대학을 그만뒀을 때야 크게 느꼈죠. 지금은 고졸이라는 것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훨씬 중요하고 급하기 때문에…. 그래서 과연 내가 인터뷰에 적합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잔잔하게 카페를 울리는 클래식 음악에 묻히는 듯했던 목소리가 이전보다 또렷해졌다. 현지 씨가 살짝 웃으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다음 질문을 하라는 신호다.
대학을 중퇴한 현지 씨는 ㈔부산청년들 사무국장. 20대 후반 청년 활동가다. 구체적인 나이는 밝히지 않았는데, 이유가 있었다.
“제가 너무 까탈스럽죠?” 그는 ‘나이주의’도 학벌주의처럼 자연스럽게 굳어진 편견이라고 했다. 어리다는 이유로 미성숙한 사람, 자원이 부족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문화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20살이 되면 대학에 가고, 20대 중반에 접어들면 취업하고, 30대 초중반쯤이면 결혼한 뒤 빚을 내 집 사고…. 약속한 듯한 ‘라이프 사이클’에 결국 나이주의 학벌주의가 다 연결돼 있지 않을까요.” 나이를 알려주지 않은 게 미안한지 뜨뜻미지근한 미소가 뒤따랐다.
■ 기대
현지 씨는 ‘대안학교→검정고시→수능’을 거쳐 부산 한 사립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다리는 건 기대와 다른 캠퍼스 생활. 그 즈음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서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제가 올드한 사람이라서 잔디밭에서 기타 치는, 뭐 이런 걸 기대했는지도 모르죠. 하하.”
기대했던 대학 생활이 어떤 건지 물었더니, 연신 먼 곳을 바라보았다. 기억을 더듬으려 애썼지만 허사인 듯했다. “토론대회를 나가거나 나름 이런저런 활동을 했지만, 크게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학과사무실에 걸린 재단 간부 사진 등도 맘에 들지 않았고요. 어설프게 세상에 대한 불만이 있었어요. 당시에 다큐멘터리를 배우러 다니면서 영화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영화감독을 하거나 영화 비평을 하더라도 굳이 대학 졸업장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더는 학교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사립대 안에서도 등록금이 비싼 전공을 선택한 탓에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대학을 더 다니는 건 ‘가성비 최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실 영화, 영상 활동 기술을 많이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이미 떠난 학교였지만 꽤 진한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대학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대부분 만류했다.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된 직후여서 특히 어머니의 아쉬움이 컸다고.
“어머니가 고교 때부터 저를 해외로 보내고 싶어 했어요. 근데 저도 똥고집이다 보니 말릴 수 없었죠. 대학 선배나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 시기에 그냥 그렇게 다녀서 졸업하는 게 낫다’고 하더라고요. ‘꼰대’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른 말은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은 드네요. 하하.” 추억이 하나 둘 떠오르는지, 눈가에 기분 좋은 웃음이 맴돌았다.
■ 현실
현지 씨는 대학생 신분을 내던진 뒤 고졸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꽤 강하게 느꼈다.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 “전공이 뭐예요?” “왜 (대학을) 그만뒀어요?” 등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던 질문이 또렷이 귀에 박혔다고. 쏟아내는 그의 말에 거침이 없었다.
“스물 한 살부터 스물 다섯 살까지 이런 질문을 숱하게 받았습니다. 인문학 스터디 모임 같은 곳에 오는 사람 정도면 대학을 나왔거나 대학을 다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학교 그만뒀다고 하면 왜 그만뒀냐고 해요. 근데 아무도 대학을 왜 다니냐고 묻지는 않잖아요. 이 자체가 차별적 인식 아닐까요.”
삶도 녹록지 않았다. 모아둔 돈이 없다 보니, 무보증 월세방에서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촬영으로는 생활비를 부담할 수 없어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했다. 콜센터, 은행 청원경찰, 좌판 두부 판매, 식당, 카페 등등. 가늠할 수 없는 어떠한 ‘힘듦’이 느껴졌다. 순간 적막함이 찾아왔고, 나는 애꿎은 커피잔을 다시 들이켰다. 다음 질문이 머리 속에서 잊혀졌다.
다행히 그가 아르바이트할 때 느꼈던 ‘특별한 시선’을 끄집어냈다. “고졸이라 하면 ‘왜 취업 안 하고 이런 일을 하느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반응이 돌아왔어요. 근데 대학 다니다 잠시 휴학했다고 하면 ‘아 고민의 시기구나’라고 보는 거죠. 그때 저는 자퇴서를 내지 않고 학교를 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과거 대학 시절 공장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불쑥 소환됐다. 같이 일하던 ‘고졸 형님’이 반장에게 혼난 뒤 담배 피며 “대학 안 나오면 이렇게 무시당한다”고 했었던….
지금도 학력의 한계를 느끼냐고 물었다. 현지 씨는 전에 없던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뗐다. “생각해보니 조금 아쉬운 것도 같네요.”
그가 말하는 아쉬움이란 ‘자기 검열’과도 같았다. 지금 일하는 시민사회 영역에선 학력이 별다른 걸림돌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스스로 고졸이라서 포기했던 것들,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스스로 어떤 영역은 제외한 채 길을 걸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학력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영역인데도 닫혀있다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한 거죠. 그런 것들이 쌓여 안정적이지 않은 삶의 부분을 만들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학력 스펙이 달랐다면 생각 자체를 다르게 했겠죠.”
■ 신념
이어 현지 씨는 의외의 말을 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대학을 계속 다녔을 거라는. 다만 이 모든 경험을 알고 돌아갔을 때라는 조건에서다. 배우고 싶은 걸 알게 됐으니 더 효율적으로 학교를 활용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과거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있느냐고 또 물었다. “이미 후회도 많이 했죠. 후회도 총량이 있는데 그걸 다 써서 지금은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습니다.” 20대 초중반 방향을 잃었을 때 ‘나는 무엇을 하지’ ‘나는 뭘 할 수 있지’라는 불안감이 많이 찾아왔다고 했다.
“막연하게라도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면 그러한 불안감을 유예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동떨어져 나와 있는 게 아닌가 싶었죠. 후”
그런데도 현지 씨는 자신과는 별개로 고졸자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을 전혀 말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고졸에게 특별한 꼬리표가 붙는 이 사회부터 바꿔야 한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어서다.
“사실 그냥 학교를 안 다니는 것뿐이죠. 본인의 선택이니까요. 고졸로 살아갈 그 사람이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어떠한 사람이 돼 있을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확실한 것은 우리 사회가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는 ‘스무 살에 대학 가는 것’이 여전히 가장 편리하고, 무난하다는 겁니다. 나중에 학교를 다니고 일까지 병행하는 게 쉽지 않은 건 현실이죠.”
현지 씨는 고학력 사회가 변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꽤 뜸을 들였다. “쉽게 바뀔지, 할머니가 됐을 때는 바뀔지, 우리 손자가 대학을 안 가도 될지….” 뜸을 들이던 그는 “천천히 바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학력의 경계선’을 치워내는 일들을 자신도 계속해나갈 거라고.
“대졸자와 고졸자 간 정보 불평등, 학제 시스템 밖에서의 강의 부족, 대학생 중심의 청년 행사 등의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행정기관도 피상적인 노력에서 벗어나 사회초년생이 감당하기 어려운 청년 노동 인권, 권익 문제도 관심 가져야 합니다.”
현지 씨는 요즘 ‘꾸준히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는 전셋집도 마련하고 싶댔다. 그리고 늦었지만, 다시 대학에 다니고 싶어 했다. 한 개인이 부수기엔 ‘대학 졸업장=안정적인 직장’이란 공식이 너무 단단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 헤어져 돌아오는 내내 생각났다. “진득하니 앉아서 누가 해주는 강의를 듣는 게 이젠 썩 재밌어졌어요.”
이승훈·박세익·황석하 기자, 영상·편집 정수원 PD·이란 대학생인턴 lee88@busan.com
※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2020-11-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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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①] "기자님은 고졸이세요?" 전국구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
<디지털 청년기획 ‘고졸’을 시작하며>
대한민국 청소년은 매일 전쟁터에서 산다. 목표는 ‘좋은 대학’. 거기서 낙오한 아이들은 요즘 말로 ‘루저(패배자)’가 된다. 최소한 ‘괴물’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 처절한 경쟁 속에서 기를 쓰고 살아간다.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던 ‘대입 생존자’들 앞에는 더 큰 쓰나미가 덮쳐온다. 취업이다.
좌표 설정 없이 대학에 간 이들은 블랙홀 속에서 헤매기 일쑤다. ‘욜로(YOLO·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와 같은 말을 추종하며 현실을 탈출하려 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 좌절한 청년들은 더는 미래가 없다고 소리친다.
애초에 그들이 ‘고졸’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그 엄청난 시간과 사교육비, 등록금을 꿈을 향한 일에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 대학은 꼭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일 순 없을까.
청년들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 줄 근본적인 ‘혁명’이 그래서 절실하다. 고졸이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 기습
“단따다 단따 단따다 단따 단 따다따다따다….”
정체불명 마크가 그려진 시청 앞마당을 보자 환청처럼 한 음악이 귓가에 깔렸다. 검은 양복에 스티로폼 박스를 어깨에 진 두 사람이 몸을 흔들며 ‘관짝춤’을 추던 유튜브 패러디 영상이 떠올라서다.
유튜브에서 무려 440만 뷰를 찍은 ‘그 장소’. 그곳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당당함'에 애써 숨긴 긴장감이 올라왔다. 조용하고 휑한 도심 거리에서 정색하고 몸을 흔들었을 그의 뻔뻔함(?)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지난달 23일, 온종일 잠잠하던 마른하늘에 슬쩍 비까지 내렸다.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33) 주무관을 만났다. 여느 사무실처럼 공무원들이 일렬로 앉아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는 모습이 왠지 어색했다. 다만 그는 조그만 이어폰이 아닌 큰 헤드셋으로 단단히 귀를 막고 있었다. 또 어떤 기존의 ‘틀’을 박살 내고 있을지….
“안녕하세요.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유튜브에서 들었던 굵고 또렷한 목소리. ‘B급 갬성’ ‘돌연변이’ ‘괴짜’ 등 세간의 수식어와는 다른 진지함에 오히려 긴장이 풀렸다.
반대로 인터뷰 장소는 기존 틀을 무시한 특별한 감성(?)을 선사했다. 자신을 뽐내는 가죽 소파, 밝은 조명을 상상했는데, 우체국 택배 상자가 쌓인 을씨년스러운 창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항상 여기서 인터뷰합니다.”
최근 유명세 때문인지 큰 눈이 슬쩍 피곤해 보였다. 그런데 손에 든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켠 뒤 갑자기 날카로운 ‘선빵 질문’을 날렸다.
“혹시 고졸이세요?”
그때 이날 충주버스터미널 앞을 걷다 밟을 뻔한 ‘충주 뱀’이 떠올랐다. 뒤통수를 때리는 그의 질문에 작지만 서늘했던 그 뱀의 진한 여운이 느껴졌다.
“아니요.” 기어들어 가듯 대답한 순간, 슬쩍 감기듯 피곤해 보였던 그의 눈이 반짝였다. “부산일보에 고졸 기자가 있나요?” 인터뷰 대상자에게 첫 질문 2개를 뺏긴 건 처음이었다.
“없습니다.” 사실 회사에 고졸 출신 기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게 몰랐다. 당연히 없다는 생각에 대답이 튀어나왔다. ‘팩트 체크’ 없이 내뱉은 내 고정관념이 더 부끄러웠다. 장난기 가득한 그의 미소를 보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적폐네, 그런데 무슨 특집을 합니까? 본인들도 안 뽑으면서. 하하하하하하하. 이것도 다 (기사에) 내보내 주세요.”
■ 배격
김 주무관은 우리 사회가 만든 학벌의 틀을 벗어난 ‘고졸’이다. 그는 바쁜 스케줄에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고졸 관련 기획 보도를 준비한다는 말에 “제대로 찾아오셨다”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온·오프라인, 방송까지 넘나들며 워낙 인기가 많은 사람인데 빛의 속도로 섭외에 응한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요즘 인터뷰 요청이 밀려들어서 거절이 80%입니다. 건방지죠(웃음). 이 기획은 전형적인 인터뷰와 달라서 바로 수락했습니다. 여러 군데 강의를 나가면 여전히 학력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학벌주의 인식에 제동을 걸고 싶었습니다.”
김 주무관은 나름 지역 명문고를 나와 수도권 대학에 입학했단다. 대학도 학과도 그냥 점수에 맞춰서 휩쓸리듯 갔다. 고교 시절을 톡톡 튀게 보냈을 줄 알았지만, 여느 학생과 다를 바 없었다고 한다.
“대학이 필요한지 아닌지 생각조차 안 해봤죠. 주변 친구들 모두 다 결승점(대학)을 향해 달려가니까…. 나름 지역 명문 고교라 그런지 대학을 안 간다는 생각을 한 친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다 그렇지 않았나요?” 이렇게 말하며 고교 시절을 떠올렸지만 크게 건진 건 없는 듯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 그는 틀을 깨기 시작했다. 전공 공부에 관심이 가지 않아 군 전역 후 학교를 그만뒀다. 또렷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나 후회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회계 수업을 듣는데 미분 같은 걸 영어로 강의하더라고요. 하하.”
부모님 반대는 크게 없었다. ‘사법고시 준비’라는 명분이 있었고, 서른 살 전까지 합격이 안 되면 취업을 하겠다는 ‘플랜B’도 세웠기 때문이다. 민감할 법한 질문에도 그의 눈빛은 여전히 당당했다. 오히려 이전보다 답변이 더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졌다.
사법고시를 준비했다기에 혹시나 ‘SKY 대학’에 입학했었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실수였다. “이것 봐~. 학벌주의를 배격해야 하는데 벌써 스카이 논란이 나오잖아….” 틈을 보이면 바로 ‘공격’이다.
어쨌든 처음부터 공무원이 될 생각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고졸 스펙’으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었다. “기자님이 고졸이었다면 회사에서 뽑아줬을까요?” 그의 ‘뼈 때리는’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런데도 그는 고졸 신분(?) 때문에 단 한 번도 불안해 하거나 후회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그 이유가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대학을 그만둘 때 정상적인 회사를 가겠다는 생각 자체를 접었습니다. 자격증이나 시험으로 승부를 봐야겠다고 다짐한 거죠. 늦었지만 제 길이 명확히 정해졌던 겁니다.” 자신을 믿어서인지 가족이나 친척도 걱정하는 티를 내지 않았단다.
■ 직면
그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고졸이라고 차별을 당하진 않았다. ‘그러한 경험’을 찾느라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찾지 못한 눈치였다. 평소 직설적인 콘텐츠로 대결하는 그였기에 숨길 리가 없었다.
“학벌이 ‘제로 베이스’에서 첫인상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합니다. 학벌 좋다고 역차별을 받으면 안 되니까요. 그래도 공직 사회에선 학벌주의 인식이 많이 개선됐습니다. 제가 사기업에 다녔다면 할 말이 많았겠죠.”
다만 무의식적인 ‘시선’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한다. 몇몇 동료는 공무원이 된 후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학을 다시 다닌다고. 그러나 사회가 문제이지 그런 ‘개인’을 결코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이미 미지근해진 아메리카노 한 잔을 빠르게 들이켰다.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은 듯했다.
“사실 일 외적으로 강의를 다니면서 학벌주의를 꽤 느꼈어요. 강의 도중 항상 ‘고졸 없나요?’라고 물어보는데 있으면서도 손을 들지 않습니다. 강의 후기 글을 보면 ‘제가 손을 못 들었다’ ‘솔직한 모습에 감명받았다’ 같은 댓글들이 적혀있더라고요. 또 제가 고졸이라고 밝혔을 때 마치 반전이라는 인식에 웃음이 터지기도 해요. ‘아 여전하구나’라고 느끼죠.”
그는 고졸임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력의 틀을 벗어난 자신을 대견해하는 듯 보였다.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가더라도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제 꿈을 이루는 데 대학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령 대학이 제 꿈을 이루는 데 필수 관문이라도, 이 또한 사회가 만들어낸 어떤 고정적인 틀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주변 친구들 모두 대학을 갔는데 전혀 부러운 게 없습니다.”
■ 앞길
그는 아이가 “아빠 나 대학 안 갈래!”라고 한다면, “아싸!”라고 답하겠다고 했다. 본인의 미래 계획을 구체적으로 짜왔다는 것 자체가 칭찬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가 농담 섞인 말투로 웃으며 말했다. “얼마나 효자입니까. 4년간 학비가 얼만데요. 그 돈으로 펀드를 들어주거나 대출 껴서 땅을 사주는 게 낫지요. 애가 진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진로인가에 따라 아빠로서 조언이 다르겠죠. 물론 결혼할 때 여전히 학벌을 보는 문화 등 실질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 거품도 빼야 하는데….” 말할 때마다 책상 위에 올려진 채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의 두 손도 무언가 설명하는 듯했다.
그는 대학 진학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대학 갈지를 정하기 전에 확실한 계획부터 세워야 합니다. 그 계획에 대학이 필요한가 보라는 거죠. 요즘 아쉬운 부분은 고졸자가 성공하는 사례만 보고 회피하듯이 제도권 교육을 벗어나는 이들이 있다는 겁니다. ‘아 고졸도 다 잘 사는데 나도 학교 가기 싫어’는 바람직하지 않은 마인드죠.”
김 주무관은 우리 사회가 “어렵지만 변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먼 곳을 잠시 응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역인재 채용’ ‘고졸인재 채용’ 등 정책이 이런저런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슬금슬금 사회 인식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어찌 됐건 고졸자에게 문을 터주는 역할을 했으니까요. 기업도 ‘대학 졸업장 없이도 더 훌륭한 인재가 들어올 수 있구나’라고 느꼈을 거구요. 학벌주의를 깰 특화된 교육, 취업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봐요.”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그가 처음으로 생각에 잠긴 듯 말끝을 흐렸다. “사실 할 말이 더 많은데….” 한숨을 짧게 내쉰 그는 옅은 미소와 함께 마지막 말을 건넸다.
“모두가 대학을 가야 취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도록 하는 게 급선무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충주시=이승훈·황석하·박세익 기자, 영상·편집 정수원 PD lee88@busan.com
※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2020-11-09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