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문 너머 어둠 속에서, 당신의 ‘시네마 천국’을 켜는 사람
    문화라이프

    창문 너머 어둠 속에서, 당신의 ‘시네마 천국’을 켜는 사람

    1988년 개봉작 ‘시네마 천국’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직업이 있다. 바로 영화 상영을 담당하는 ‘영사기사’다. 영화관 뒤편, 작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미지의 공간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다. <부산일보> 취재진은 어린 토토가 된 마음으로 영사기사를 만나기 위해 지난 4일 오후 부산 영화의전당 7층에 위치한 영사실을 찾았다.영화의전당 영사실은 4개 상영관 천장에 얹혀 있는 구조다. 한 공간에서 모든 상영관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설계다. 얼핏 공장처럼 보이는 영사실은 전체적으로 침전된 듯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상영관 쪽으로 난 창문 앞에 당당히 버티고 선 영사기만이 이곳이 영사실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한창 상영 중인 영화와 관객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영사기사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풍경이다.영화의전당에는 아직 필름 영사기가 설치되어 있다. 디지털 영사기로의 전환 속에서 필름 영사기를 고수하는 영화관은 이제 전국에 극소수만 남았다. 이는 고전 명작 등 원본 필름을 보존하는 ‘아카이빙’ 역할을 영화의전당이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전당은 현재도 연간 20~30편의 필름 영화를 상영한다.“영화감독 중에는 여전히 필름 상영을 고집하는 분들이 있고, 관객 역시 필름 영화 특유의 플리커 현상(화면 떨림)과 잡음을 오히려 아날로그적 매력으로 느끼곤 합니다.”이날 취재진을 맞이한 김대철 영사기사는 필름 영사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영사실 설명을 이어갔다. 영사기와 음향 장비 등 각종 정밀 기계가 즐비한 영사실은 항상 철저한 온도와 습도 관리가 필요한 민감한 공간이다. 적정 온도는 24°C, 습도는 40~50%로 유지된다.온·습도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바로 ‘빛’이다. 영사실 내부의 불빛이 창문을 통해 상영관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철저히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사실 형광등에는 모두 암막 커튼이 꼼꼼하게 덧대어져 있다.김 영사기사는 “영사실 창문의 빛 투과율이 얼마인지 아세요? 일반 유리가 80% 내외인 반면, 이곳에 쓰이는 광학 유리의 빛 투과율은 무려 99.9%에 달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높은 투과율 덕분에 영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단 하나의 손실도 없이 스크린에 도달해 선명한 이미지를 구현한다.그는 한쪽 벽면에 보관된 ‘릴(Reel)’을 꺼내 보였다. 필름을 감아두는 원형 릴은 필름 크기에 따라 8mm, 16mm, 35mm 등 다양하다. 가장 대중적인 35mm 릴의 경우 약 15~20분 분량의 필름을 감을 수 있는데,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상영하려면 약 6~8개의 릴이 필요하다.문득 장비의 가격이 궁금해졌다. 필름 영사기는 대당 2,000만 원 선이지만, 디지털 영사기는 7,000~8,000만 원에서 비싼 것은 5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마저도 필름 영사기는 이제 생산이나 수리를 전담하는 업체가 없어, 고장이 나면 동네 전파사에 사정해가며 의뢰해야 하는 처지다.영사실 탐방을 마치고 영화의전당 6층 매표소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낮 시간임에도 영화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로비를 채우고 있었다.김대철 영사기사는 영화의전당 영사실의 최고참이다. 2005년, 24살의 나이로 영사 업무를 시작한 이래 벌써 2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충주 출신인 그는 특유의 정감 가고 매력적인 말투로 영사기사라는 직업의 세계를 풀어내기 시작했다.“충주의 TTC 영화관이라는 개인 극장에서 보조기사로 첫발을 뗐어요. 워낙 영화를 좋아했고 영사실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있었는데, 마침 채용 공고가 났죠. 막상 해보니 적성에 너무 잘 맞아서 아예 평생직업이 되었습니다.”정식 영사기사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녹록지 않았다. 자신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선배들 밑에서 도제식으로 혹독하게 교육받았다. 그는 “당시 분위기는 군대 문화와 참 비슷했다”고 회상했다.그 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은 “프레임 날리지 마라”였다. 과거 필름은 상영을 반복할수록 손상이 누적되는데, 상한 부분을 잘라내고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필름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영사기에서는 1초에 약 45cm의 필름이 지나간다. 즉, 45cm의 필름을 잘라내면 관객은 영화의 1초를 잃어버리게 되는 셈이다.“제작비가 수천억 원에 달하는 영화 ‘아바타’를 예로 들면, 단 한 프레임의 가치만 해도 수백만 원에 달합니다. 선배들이 프레임을 절대 날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이유죠. 이외에도 ‘항상 귀를 열고 영사기 소리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야 한다’던 조언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긴 경력 속에서 필름이 끊어지는 아찔한 영사 사고도 몇 번 경험했다. 암전된 상영관 안에서 수백 명의 관객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영사실을 매섭게 쳐다보던 기억은 지금도 악몽과 같다. 그럴 때면 손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덜덜 떨렸다고 회고했다. 방송으로 고개 숙여 사과하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 스크린 앞으로 나가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등 다사다난한 세월을 통과해 왔다.그가 처음으로 온전히 상영했던 영화는 무엇일까. 그는 “설경구 배우가 스모를 했던 영화였는데…”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2004년 12월 개봉작인 ‘역도산’의 포스터를 보여주자, 그는 “맞다, 이 영화다”라며 반갑게 고개를 끄덕였다.이후 그는 2010년에 영사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2012년 영화의전당에 입사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전용관이라는 상징성과 당대 최고의 최신 장비를 다룰 수 있다는 기대감이 그를 부산으로 이끌었다.그가 걸어온 길은 화려해 보이지만, 영화 ‘시네마 천국’의 늙은 영사기사 알프레도가 “일주일에 겨우 하루 쉬는 고된 일”이라고 말했듯 영사기사의 삶이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다. 영사기사의 시간은 철저히 영화관의 시계에 맞춰 흐른다. 조조영화부터 심야 상영까지 영화관 시간표에 삶을 저당 잡혀야 하기에, 밤 12시를 넘겨 퇴근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불규칙한 교대근무로 생활 리듬이 깨지는 것은 일상이다.특히 그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시간’이다. 영사기사의 부재는 곧 영화 상영 중단이라는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각 한 번으로 해고되는 동료를 본 적이 있다는 그는, 오전 출근인 날이면 밤새 흠칫하며 시계를 확인하는 직업병을 앓고 있다. 주변에서는 '영화를 실컷 공짜로 봐서 좋겠다'며 부러워하지만 이 역시 오해다. 개봉 전 영상과 음향의 이상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스크린을 보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확인 작업'일 뿐 온전한 감상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그 역시 온전히 영화를 즐기기 위해 쉬는 날 제 돈을 내고 극장을 찾는다. (그는 주로 페이크 다큐나 공포 장르를 좋아하며, 좋아하는 작품으로 ‘파라노말 액티비티’를 꼽았다.)그럼에도 이 고된 자리를 지키게 하는 힘은 결국 관객에게서 나온다. 영사기사는 매일 상영관을 돌며 최적의 밝기와 사운드를 세심하게 조율한다. 상영이 끝난 후 퇴장하는 관객들이 “이 극장은 화면이 정말 밝네”, “사운드가 압도적이다”라며 만족해할 때, 그간의 피로는 완벽한 보람으로 치환된다.이 지점에서 그는 관객들을 위한 흥미로운 팁을 건넸다. 극장에서 영화를 가장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이른바 ‘명당’ 좌석의 비밀이다. 보통 영사기사들은 스크린을 기준으로 앞에서 3분의 2 뒤로 물러난 지점을 기준점으로 잡고 화면 밝기와 음향을 미세 조정한다. 따라서 이 중심선에 위치한 좌석이 영사기사가 의도한 최고의 영상미와 음향을 가장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최근 기술이 워낙 좋아져 아주 미세한 차이일 뿐이니 어느 좌석이든 편하게 즐겨도 좋다는 다정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시대가 흐르면서 영사기사의 업무 환경도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필름 시대의 상징이었던 필름 검수나 릴 교체 작업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추세다. 김 기사는 과거 필름 시대에는 전기, 공구, 기계 제어, 심지어 용접 기술까지 요구되어 영사기 고장 시 자체 수리가 필수적이었지만, 지금의 디지털 영사기 시대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네트워크 시스템에 대한 IT 지식이 훨씬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그는 먼 미래에는 영사기사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덤덤하게 전망했다. 현재 점차 도입되고 있는 LED 상영관을 언급하며, 디스플레이 기술이 극도로 발달하면 ‘빛을 쏘는’ 영사기 자체가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뜻이다. 일반 가정의 대형 TV처럼 거대한 LED 디스플레이가 극장 벽면을 그대로 채우게 된다면 영사기도, 이를 다루는 사람도 필요 없게 될 것이라는 맥락이다. 스크린 뒤에 스피커를 배치할 수 없는 LED 디스플레이의 물리적 한계마저 극복하는 시대가 온다면, 영사기사라는 직업도 결국 추억으로 남지 않겠냐며 미소를 지었다.인터뷰를 마친 김대철 영사기사는 설렘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상영을 기다리는 예매 관객들 사이를 지나, 그들이 마주할 마법 같은 2시간을 위해 다시 영사실로 모습을 감췄다.

    더보기
  • “척추 감압술 우선, <br />최소 상처로 정상조직 보존”
    문화라이프

    “척추 감압술 우선,
    최소 상처로 정상조직 보존”

    허리 디스크라 불리는 추간판탈출증과 노년층에서 흔한 척추관협착증은 대표적인 척추 질환이다. 허리 통증이 심해지면 일상생활이 어려워지지만 대개는 약물이나 물리치료 등 비수술적 치료로 거의 대부분 해결된다.실제로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요통 환자의 5% 미만이다. 6주 이상의 적극적인 보존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심한 신경압박으로 사지마비와 대소변 장애 증상이 나타날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 수술을 검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수술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허리 통증이 계속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물론 원하던 대로 허리 통증이 말끔히 사라진 환자들도 있지만, 수술을 했음에도 통증을 안고 사는 환자들도 생긴다. 수술 주변 부위가 아픈 인접마디 증후군이나 척추수술 실패증후군 등의 후유증을 줄이려면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다.■인접마디 증후군과 수술 실패증후군허리 수술로 통증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가 수 년이 지난후에 다시 아프다는 환자가 더러 있다. 핀으로 고정하는 척추 유합술을 받은 후에 발생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수술로 고정된 마디 주변의 척추가 변성되거나 협착을 일으키는 ‘인접마디 증후군’ 때문이다.수술로 척추의 마디를 고정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대신에 그 위아래 마디가 과도하게 움직이게 된다. 인접마디에 생기는 퇴행은 일상생활 중에 허리를 반복적으로 숙이는 행위를 하면서 나타난다. 수술된 부위는 움직임이 없는데 위아래쪽 마디는 굽히는 동작이 잦아지면서 퇴행 변화가 가속된다.명지오션척병원 박도영 병원장은 “이런 후유증을 줄이려면 수술법을 선택하기 전에 환자에게 허리가 안좋아지는 이유, 즉 허리를 전방으로 숙이는 자세를 최대한 피할 것을 충분히 교육한 후에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인접마디 증후군은 척추 유합술(후방유합술, 사측방유합술, 내시경 유합술)의 방식과 종류에 상관없이 발생한다. 논문에 따르면 증상이 없이 인접마디에 영상학적 퇴행만 보이는 경우가 30%,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10% 정도로 보고되고 있다. 이중 5% 정도는 재수술이 필요하다.척추수술을 받은 후에 불편함과 통증이 지속되거나, 증상이 개선되지 않거나 더 악화됐다고 호소하는 경우를 척추수술 실패증후군이라고 한다. 인접마디 증후군도 크게는 척추수술 실패증후군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진단이 잘못돼 엉뚱한 곳을 치료하거나 근본적인 치료를 하지 못할 때 생긴다.■유합술보다는 감압술이 우선유합술은 뼈의 정렬을 맞추기 위해 인공뼈를 넣고 핀으로 고정하는 치료법이다. 핀이나 나사못으로 척추를 단단히 고정하기 때문에 인접마디 증후군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반면에 감압술은 좁아진 신경 통로를 넓히고 눌린 신경을 펴주어 통증을 줄이는 치료법이다. 척추 마디를 고정하지 않아도 되므로 인접마디 퇴행이나 추가 협착의 위험이 없다. 특히 고령 환자의 경우 수술시간, 출혈, 나사고정의 문제를 고려하면 유합술을 피하는 것이 좋다. 최근의 국제 가이드라인과 임상현장에서는 불필요한 유합술을 줄이고 최소침습 감압술 위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박 병원장은 “굳이 척추를 고정 안해도 되는 환자까지 유합술을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최근의 척추수술은 가능하면 유합술은 피하고 내시경을 이용한 감압술을 시행하는 것이 추세다. 최소침습 접근법으로 감압술을 진행하면 합병증을 줄이고 정상적 조직을 보존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또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분석해서 꼭 필요한 부분만 감압술을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협착증 환자의 경우 뼈가 두꺼워진 골극이라던지, 황색인대가 두꺼워진 비후증, 오래된 디스크의 팽윤으로 인한 신경관 협착 등 각각의 경우에 맞는 원포인트 감압을 진행하면 정상조직을 보존하고 척추 불안정성도 해결된다.그렇지만 유합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척추의 불안정성이 심한 경우가 그렇다. 척추전방전위증이나 심한 척추의 변형 또는 불안정성이 나타날 경우에는 유합술을 시행해야 한다.■수술 후유증을 줄이려면 어떻게수술 후에도 기대했던 증상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아 통증이 남아 있거나 오히려 악화되는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 신경유착, 재발성 디스크, 수술 부위 불안정성, 신경 손상, 심리적 요인 등이다.이런 후유증을 최대한 줄이려면 수술 전에 현재의 환자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술 전에 환자의 증상과 MRI 영상이 정확히 일치하는지, 신경학적 이상은 없는지 등을 잘 따져 보아야 한다. 또 환자의 보행시 허리, 골반, 무릎의 각도와 허리를 숙일 때 벌어지는 뼈가 있는지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충분한 재활과 생활습관의 교정도 중요하다. 인접마디 증후군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인 허리를 숙이는 습관을 가능하면 줄이는 것이다. 나사못으로 고정된 척추 위쪽에 퇴행변화가 오면서 인접마디 증후군이 나타나는데 전방 굴곡이 가장 안좋은 자세다.박 병원장은 “허리를 숙이는 자세를 반복하면 통증이 재발하거나 척추 불안정성이 심해져 재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대학병원의 재활의학과 교수는 땅에 떨어진 돈도 허리를 굽혀 줍지 말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골다공증 관리가 안되면 나사못 유지가 어려워질 수가 있다”고 지적했다.무심코 허리를 숙이는 자세 이외에도 땅바닥에 앉기, 소파에 기대기, 말랑한 침대에 오래 누워있기 등도 피해야 한다. 푹신한 침대에 오래 누워 있으며 허리를 숙이는 자세와 같은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더보기
  • “이제는 냉면 먹으러 서울 갈 필요가 없다”
    문화라이프

    “이제는 냉면 먹으러 서울 갈 필요가 없다”

    부산에서 평양냉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밀면부터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냉면을 먹고 싶은데 메밀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대신 미군의 원조로 들어온 밀가루를 이용해 부산에서 밀면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맛집 검색 플랫폼 ‘다이닝코드’에 따르면 부산의 밀면집은 무려 880곳에 달한다. 부산에서는 이처럼 밀면 문화가 크게 발달하며 전통 냉면은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였다. 냉면의 맛과 모양도 오늘날 냉면이 발달한 서울과는 차이가 생겼다.1953년에 문을 열어 오랫동안 부산의 냉면을 대표해 온 원산면옥도 마찬가지다. 경희사이버대 외식조리경영학부 이승훈 겸임교수는 지난해 부산의 냉면집들을 둘러본 뒤 “원산면옥 냉면은 외관부터 서울의 일반적인 비주얼과는 궤를 달리한다. 쫄깃한 면에서 메밀의 흔적은 느끼기 힘들고, 달착지근한 육수에서는 한약재가 들어가 밀면의 느낌이 난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부산에서 냉면 면발은 대개 질기고 탄력이 있었다. 육수 맛도 진한 편인 데다가 단맛과 감칠맛도 강했다. 부산의 고깃집에서는 한동안 칡가루와 밀가루를 혼합해 만든 쫄면처럼 질긴 칡냉면이 유행하기도 했다.반면에 서울의 평양냉면(이하 ‘평냉’) 면발은 메밀 비율이 높고 육수는 담백해 ‘슴슴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새콤달콤한 밀면에 익숙한 부산 사람이 서울 평양냉면을 먹으면 “이걸 무슨 맛으로 먹느냐?”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산의 냉면집들은 부산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냉면을 변형시켜 서울의 냉면과는 상당히 다른 스타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래서 음식사 연구자들은 “부산에서는 밀면과 냉면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한 부산형 냉면 문화가 발달했다”라고 평가하기도 한다.하지만 부산에서도 일찍부터 서울의 평냉 맛을 접하고 좋아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서울에 볼일이 있으면 우래옥, 을밀대, 봉피양 등 유명 냉면집에 반드시 들러 냉면을 한 그릇하고 돌아왔다. 이들은 ‘밀면 천국 냉면 지옥’이라 불리던 부산의 현실을 못내 아쉬워했다. 2010년대 후반이 되며 전국적으로 평냉 열풍이 불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에 북한의 김정은이 평양의 유명 냉면집인 옥류관 냉면을 판문점으로 보내면서 평냉이 큰 화제가 된 것이다. 이전까지 냉면이 주로 실향민이나 중장년층이 찾던 음식이었다면 ‘평냉’이 방송과 SNS에 자주 등장하면서 20~30대 젊은 층까지 냉면 맛집 순례에 합세했고, 냉면 전문점이 전국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밀면 문화가 워낙 강했던 부산에서도 서울만큼은 아니었지만, 평냉을 찾는 사람이 늘고 새로운 냉면전문점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부산에서 본격적인 서울식 평냉의 출발점은 2013년 해운대에 프리미엄 고깃집으로 문을 연 ‘거대갈비’로 볼 수 있다. 당시 거대갈비는 식사 메뉴에 부산에서 처음으로 순메밀 100% 물냉면을 선보였다(지금은 80%로 바뀌었다). 거대갈비의 물냉면은 입에서 툭툭 끊어지는 메밀면과 우래옥처럼 육향 깊은 육수로 부산의 평냉 마니아들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하지만 냉면을 먹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고가의 고깃값이 걸림돌이었다.거대갈비는 2018년에 평냉을 메뉴에 넣은 두 번째 브랜드 ‘거대곰탕’을 출시하며 평냉 마니아들의 부담감을 덜어줬다. 제육이나 수육으로 소주 한잔하며 ‘선주후면’하거나, 가볍게 평냉 한 그릇만 할 수도 있게 만든 것이다. 거대곰탕은 지난해 서울 강남역 근처에 서초점을 열고 서울에도 진출했다. 진한 곰탕과 평냉으로 냉면에 자부심이 큰 서울 사람들까지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거대갈비 김유철 대표는 “내가 좋아하는 평냉이 부산에 없어서 시작했지만 5~6년은 욕을 진짜 많이 들었다. 하지만 없는 걸 공급하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평냉이 우월하니까 먹으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이런 음식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해운대 거대갈비, 해운대와 서면의 거대곰탕에서 냉면을 맛볼 수 있다.‘담미옥’은 2024년부터 미쉐린 빕구르망에 선정되며 부산에서 평냉의 신흥 대표 주자로 자리 잡았다. 담미옥은 7년 전 부산진구 개금동에서 문을 열었다가, 지난 4월 중구 중앙동으로 이전했다. 이전한 지 두 달도 못 되었지만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이면 줄 서는 맛집이 되었다. 서울의 일반적인 평냉 스타일과 가장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밀 80% 면을 사용하는데, 5000원이 비싼 100% 순면도 있다.담미옥 신철균 대표는 “저도 서울에서 평냉 처음 먹었을 때 아무 맛이 나지 않아 다 남겼다. 가게 초창기에는 면 다시 삶아달라고도 하고, 식초와 겨자를 때려넣어도 안 되니 맛이 왜 이러냐고 욕하는 사람이 많아서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담미옥에는 일본 손님도 많이 온다. 일본인들은 메밀면을 좋아하지만, 한국인처럼 육수를 들이켜지는 않는다. 평냉 맛을 아는 데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고 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부산 수영구 ‘백일평냉’은 2023년 9월부터 12월까지 100일만 팝업 식당으로 운영하고 문을 닫아 주목받았다. 알고 보니 8년 전에도 냉면집을 열었지만, 눈치 보고 타협하느라 자신의 냉면 맛을 지키지 못했던 게 못내 후회스러웠던 모양이었다. 팝업 식당 성공이 가져온 자신감으로 백일평냉은 2024년 3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뛰어날 백(伯)’과 ‘편안할 일(逸)’을 합쳐, 뛰어난 냉면을 편안하게 즐겨달라는 의미였다. 백일평냉은 2025년부터 미쉐린 빕구르망에 선정되고 ‘성시경의 먹을 텐데’에도 소개되며 부산 냉면계의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유수한 1세대 냉면집들의 특장점적인 방향성을 종합적으로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다. 백일평냉 곽동훈 대표는 “여전히 많은 손님들이 식초가 보이면 냅다 둘러버리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테이블에는 식초를 비치해 두지 않는다. 일반 식초는 도저히 맛이 없다. 대신 준비해 둔 특제 맛식초가 궁금하면 언제든 요청해 달라”라고 말한다. 의정부 계열의 평냉이 생각난다는 평가다. 다양한 전통주와 함께 오후 5시 반부터 ‘콜키지 무료’라고 붙여놓은 것도 눈에 띈다.부산 수영구 ‘기장첫냉면’은 지난해 4월에 문을 연 후발 주자다. 하지만 냉면의 뿌리를 부산 기장에 연고가 있는 조선 시대 최고의 미식가 중 한 사람인 심노승에 두고 있다. 심노승은 순조 때인 1801~1806년 기장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겪은 일을 <효전산고>에 상세하게 서술했다. 여기에 그가 기장에서 먹었던 냉면에 대한 기록도 들어 있다. 돼지국밥으로 유명한 ‘청화백’ 김은석 대표가 냉면집을 열며, 부산과 관련 있는 냉면의 일화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은 것이다. 면발도 적당하고 개업 초기에 다소 심심하던 육수도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기장첫냉면은 청화백 돼지국밥과 구분은 되어 있지만 매장을 같이 쓰고 있어 냉면이 부각되지 않는 부분이 아쉽다. 기장첫냉면 김은석 대표는 “밀면 장사도 했지만, 서울에서 평냉을 맛보고 나서 평냉 마니아가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건강을 많이 생각하기에 자극적인 양념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보다 점차 평냉을 선호하는 쪽으로 변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부산 해운대 중동 ‘부다면옥’의 변신은 부산에서 냉면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부다면옥은 원래 반여동에서 ‘부다밀면’으로 영업하다, 2021년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상호를 바꾸고 평냉에 집중하고 있다. 2024년부터 연속으로 미쉐린 빕구르망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부다면옥 입구에 ‘Only Naengmyeon No Milmyeon’이란 안내문이 붙은 걸 보면 여전히 밀면을 찾는 손님이 적지 않아 보인다. 100% 순메밀면을 내세우는데 탱글탱글한 식감이 이채로웠다. 소박한 냉면 담음새는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이번에 방문해 기사에 소개한 5곳의 평냉 맛이 모두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더 이상 평냉 먹으러 서울에 갈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냉면 지옥 밀면 천국’이란 말도 이제는 맞지 않았다. 밀면으로 유명한 부산에 냉면이라는 선택지가 새로 생기며 미식도시로서의 면모를 더 갖추게 되었다. 올여름에는 밀면과는 또 다른 부산의 냉면에도 관심을 기울여 보면 좋을 것 같다. 내 입맛에 맞는 냉면집이 어디인지 더 찾아볼 생각이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더보기
  • 사명대사 우국의 혼 <br />오늘날 표충비 땀으로 흘렀더라
    문화라이프

    사명대사 우국의 혼
    오늘날 표충비 땀으로 흘렀더라

    올해는 유난히 무더위가 일찍 찾아왔다. 5월 중순부터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연일 계속 됐다. 올 여름 더위가 ‘역대급’이란 기상 예보가 그리 달갑지 않다. ‘찜통 더위’ ‘가마솥 더위’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곳이 밀양 얼음골이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이곳을 소개하는 것은 식상할 것 같다. 하지만 얼음골을 품은 밀양하면 얘기가 다르다. 경남 밀양은 얼음골뿐아니라 국란이 있을 때 땀을 흘린다는 표충비와 바위를 두드리면 종소리가 나는 만어사 경석 등 신비한 일들이 많은 지역이다.■신비의 고장 밀양, 국란을 예견하는 ‘땀 흘리는 비석’경남 동북부에 위치한 밀양(密陽)은 옛부터 신비로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 때는 이곳을 미리벌이라 불렸다. 용의 옛말인 ‘미르가 사는 벌판’에서 지금의 지명이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밀양에는 용과 관련된 명소가 꽤 된다. 밀양강이 만들어낸 절벽지형인 ‘용두목’, 이무기가 용이 되어 잠들어 있다는 ‘호박소’, 용왕의 아들이 돌로 변했다는 만어사 이야기까지 다양하다.이런 이야기도 있다. 양기(陽)가 밀집(密)돼 있는 곳, 더운 기운이 많아 한 여름엔 대구를 방불케할 정도로 더운 지역으로도 인식된다. 하지만 밀양의 밀(密)은 빽뺵하다는 뜻 보다는 소리만 빌려 쓴 음차로 기록된 것이다. 밀(密)은 고대 우리말로 물을 나타내는데, 물이 많은 지역이라 해서 밀양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신비의 도시 밀양의 대표적 명소 ‘땀 흘리는 비석’ 표충비를 찾았다. 표충비는 무안면에 있는 홍제사에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승병장인 사명대사의 표충사당과 표충비각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수호사찰이다. 표충비가 세워진 1742년(영조 18)에 사명대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땀 흘리는 비석’인 표충비는 홍제사와 돌담 하나를 두고 있다. 표충비를 보기 위해 절에 들어서니 마치 왕관과 같은 모양의 나무 한 그루가 떡하니 서 있다.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밀양 무안리 향나무’다. 1742년 이곳에 표충비가 세워질 당시 함께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수령이 284년이나 됐다.크기와 모양이 톡특하다. 원줄기 높이는 사람 가슴 높이(1.5m)밖에 되지 않고, 가슴 높이 둘레도 1.1m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산 모양으로 옆으로 퍼져나간 가지의 폭은 10m가 넘는다. 국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향나무 20여 그루 중 이러한 모양을 한 향나무는 이곳이 유일하다. 향나무의 모습이 신기한 듯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어김없이 기념촬영을 한다.향나무를 뒤로 하고 표충비각 앞에 섰다. 사명대사비로도 불리는 비석은 높이가 3.8m나 되는 거대한 대리석으로 이뤄져 있다. 표충비각 옆에는 비석이 땀을 흘린 역사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1894년 11월 19일 동학농민운동 7일전 3말 1되’를 시작으로 ‘1910년 7월 22일 국권피탈 17일전 4말 6되’, 1919년 2월 27일 기미년 3·1 독립만세운동 3일전 5말 7되’… .1945년 광복과 1950년 한국전쟁, 4.19 혁명, 5.16 군사정변,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2010년 천안함 사태 등 한국 근대사의 국란을 앞두고 비석은 어김없이 ‘땀’을 흘렸다. 이를 두고 결로 현상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비석에 음각으로 표시된 글자 부분은 물기가 맺히지 않은 기이한 현상은 설명하기 어렵다.국란을 예고하는 표충비가 땀을 흘리는 것은 사명대사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 사명대사유적지로 향했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다. 무안면은 사명대사의 출생지다.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 2000여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뒤 사명대사는 일본으로 끌려간 우리 백성 3000여 명을 데리고 귀국하기도 했다. 정부와 밀양시는 사명대사 생가 인근에 부지 면적 5만여 ㎡에 사명대사 동상과 사명대사 기념관, 추모공원, 기념비 등을 조성해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유적지 입구로 들어서니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곳에 넓은 공터가 반긴다. 마음이 편안했다. 좋은 곳에 터를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입구 왼쪽에 연꽃 모양의 놀이터에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웃음 소리가 정겨웠다.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담은 부조 벽화가 인상적이다. 유적지 한가운데 사명대사의 동상과 추모 공간에서 잠시 묵념을 올렸다. 백성을 위해 칼을 들었던 실천적 종교인의 기개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사명대사 기념관에서는 사명대사가 생전 사용했던 장삼과 가사를 포함해 승병으로서의 활약상 등을 알 수 있다.이곳에 전시된 표충비의 탁본을 보고 ‘땀 흘리는 비석’의 비밀을 짐작할 수 있다. 비석에는 사명대사의 승병 활동과 포로 구출 공적이 새겨져 있다.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는 사명대사의 충정이 비밀의 열쇠가 아닐까.■종소리 나는 만어사 경석, 용궁의 왕자가 돌이 된 사연은수만 마리 물고기가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만어사. 사진으로 볼 때마다 이곳을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만어사 계곡에 늘려져 있는 돌을 두드리면 종소리가 난다는 이야기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밀양의 3대 신비 중 하나인 만어사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일단 대웅전에 가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신고’부터 했다. 대웅전 앞이 삼층석탑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 석탑은 고려 명종 10년(1180년)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466호)이다. 삼층석탑 위쪽에는 거대한 바위에 정교하게 새겨진 마애불이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크지 않는 사찰이 고요하고 편안하다.마애불을 뒤로 하고 보니 눈 앞에 끝없이 펼쳐진 계곡이 보인다. 계곡에 수많은 바위가 마치 강물을 연상케 한다. 너비 100m에 길이는 500m에 이른다. 이것이 만어사 경석이구나. 거대한 바위들이 마치 계곡에 뿌려져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곳은 빙하기에 돌들이 풍화돼 쌓여 만들어진 지대로, 2011년 천연기념물 제528호로 지정됐다.정말 종소리가 날까 싶어 바위를 두들겨 봤다. ‘딱, 딱, 딱…’ 그냥 돌소리가 났다. 종소리가 아닌데 하고 있는데, 내 모습을 지켜본 한 분이 다른 돌을 쳐 보란다. 쳐보니 정말 종소리가 났다. 맑은 쇠소리랄까. 일반 돌소리와는 분명 달랐다. 신기했다. 만어사 경석은 화강암인데, 화강암의 성분 차이에 따른 현상이라고 한다.만어사 경석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목숨이 다한 용왕 아들이 육지로 나와 신통한 스님에게 새로 살 곳을 부탁했고, “길을 가다 쉬는 곳이 그곳”이란 말을 들은 왕자는 만어사에 멈춰 미륵바위가 됐다. 왕자를 따르던 수많은 고기떼는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다.만어사 미륵전엔 부처상 대신 왕자가 변한 5m 높이의 미륵바위가 모셔져 있다. 미륵전에 잠시 앉아 눈을 감았다. 고요하고 편안했다. 내 모습을 본 꼬마 2명이 절을 하고는 내내 엎드려 있다. 귀엽다.미륵전에서 나와 계곡에 깔린 경석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원석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냥 들어도 들릴 만한 작은 바위인데 소원이 이뤄지면 들리지 않는단다. 저마다 소원을 빌고 돌을 들어보지만 대부분 들린다. 미륵바위가된 용왕의 아들이 모든 사람의 걱정과 고통을 없애주고 저마다의 소원을 들어주면 좋겠다.

    더보기
  • 부산 초여름 수놓을 ‘몸의 언어’<br />제22회 BIDF 개막
    문화라이프

    부산 초여름 수놓을 ‘몸의 언어’
    제22회 BIDF 개막

    부산의 초여름을 수놓을 부산국제무용제(BIDF, 운영위원장 신은주)가 2일 ‘BIDF 프린지’를 시작으로 일주일간의 여정에 들어간다. 올해로 22회를 맞은 BIDF는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프린지를 신설하고, ‘AK21 안무가 경연 결선’을 축제 기간에 포함하는 등 변화를 꾀했다.행사는 7일까지 해운대 해변과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열린다. 한국을 비롯해 캐나다, 프랑스, 덴마크, 몽골 등 13개국 44개 단체, 350여 명이 참여해 60여 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 부산·울란바토르 우호협력 10주년을 기념한 교류 프로그램도 마련된다.공식 개막식은 5일 오후 6시 30분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진행된다. 개막 공연으로는 캐나다 퀘벡의 ‘나무의 존재’와 ‘번 베이비, 번’(BURN BABY, BURN)이 무대에 오른다. ‘나무의 존재’는 퀘벡의 소도시 생장포르졸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현대무용단 ‘플러브 에스파스 당스’의 안무가이자 예술감독인 샹탈 카롱이 2022년 안무한 작품이다. 4명의 무용수가 출연하는 25분 내외의 현대무용으로, 인간과 자연, 특히 캐나다 북부 숲의 야생 동물과 나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시적으로 그려낸다. ‘번 베이비, 번’(BURN BABY, BURN)은 캐나다 무용계의 거장이자 발레리노 출신 안무가 기욤 코테가 이끄는 ‘코테 당스’의 작품으로, 전쟁과 기후 위기 속 인간의 모순을 디스코라는 역설적 이미지로 표현한 60분짜리 컨템포러리 발레다. 두 작품은 5일(오후 7시 30분)과 6일(오후 3시) 2회 유료(R석 7만 원, S석 5만 원, A석 3만 원, 학생 단체 1만 원)로 공연된다.6~7일 오후 6시부터 3시간 남짓 해운대 해변 특설 무대에선 ‘BIDF 공식 프로그램’이 무료로 펼쳐진다. 올해는 한국 무용단(강미리할무용단·와이즈발레단·AWSC·르씨디씨·요찬강·수무브)을 비롯해, 홍콩(Y SPACE), 대만(메이메이지 댄스), 인도네시아(두타 사만 인스티튜트), 프랑스(칸 로젤라 하이타워 주니어 발레단), 아르헨티나(탱고 2커플), 덴마크(어퍼컷 댄스 시어터), 몽골(에르카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라인업을 꾸렸다.이 중 6일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번 베이비, 번’ 외에 강미리할무용단 ‘신이적고’, AWSC ‘Bed town’, 르씨디씨 ‘마브 MOB’ 등이고, ‘나무의 존재’, 요찬강 ‘학’, 수무브 ‘카시나칭칭’ 등은 7일에만 만날 수 있다. 나머지는 이틀 모두 공연된다. 특히 덴마크 어퍼컷 댄스 시어터의 하이브리드 비보잉·현대무용 ‘벤치 BENCHED’, 대만 메이메이지 댄스의 호샤오메이 안무가의 초현실적 미학이 돋보이는 신작 프롤로그, 인도네시아 전통 ‘사만가요춤’ 등이 눈길을 모은다. 일본 미디어아티스트 우메다 히로아키와 부산 무용수들의 협업 무대도 기대된다. 한·일 협업 무대는 2025년 BIDF 안무가캠프와 연계한 것으로 부산-일본(BIDF-우메다 히로아키) 협업 레지던시 후속 창작 작품을 공연한다.신설된 제1회 ‘BIDF 프린지’는 7개국 18개 작품이 참여하는 개방형 플랫폼으로, 부산을 포함한 국내외 신진·기성 안무가들이 참여한다. 부산 연고 작품으로 박재현의 ‘뼈 이야기’, 공주영의 ‘마주할 용기’, 김남진피지컬씨어터 ‘흔들리는 땅’, 이현우의 ‘찰나: 감지하다’, 황정은 ‘그을음’, 프로젝트 촘의 ‘적당한 침묵’(이언주 안무)이 포함됐고, 서울, 대만, 프랑스, 일본, 리투아니아, 스페인, 에스토니아 등에서도 부산을 찾아온다. 2일 오후 7시, 3일 오후 3시부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과 로비에서 열린다. 3일 오후 6시엔 프린지 네트워킹 시간도 마련된다.차세대 안무가 발굴을 위한 제18회 AK21 안무가 육성 경연은 7일 오후 3시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개최된다. 현재 3차 심사까지 통과한 염승훈(‘너 싫어’), 윤희섭(‘Royal blue’), 이종윤(‘만선 Return to the home’), 배현우(‘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가 결선을 치른다. 4명의 안무가 모두 남성이고, 이 중 염승훈과 이종윤은 부산 출신이다. 축하 공연으로는 지난해 17년 만의 첫 공동 수상으로 눈길을 끈 김형민(‘드루와’)과 양승관(‘궤도’) 무대가 준비된다. 올해부터는 최우수안무가상을 수상할 경우, 상금 외에 안무자에 한해 해외 초청 항공료를 지원할 예정이다. 올해 제5회 BIDF 부산국제안무가캠프는 오는 7월 7~16일 부산시민회관 연습실에서 타우피크 이제디유(모로코), 테트 카스크(에스토니아)를 마스터 안무가로 초청해 개최한다.이밖에 △BIDF 거리 공연(4일 오후 5시 해운대 구남로 거리, 7일 낮 12시 부산역) △찾아가는 맞춤형 예술감상 프로그램’(용호초등-몽골·명륜초등-덴마크·충렬초-인도네시아 팀 등) △부산무용협회와 부산무용인이 함께하는 열린무대 △전공자를 위한 오픈 워크숍(6일 오전 10시 발레·7일 오전 10시 탱고, 영화의전당 리허설룸)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공연 예매는 놀 인터파크 티켓과 영화의전당 누리집에서 가능하며, 자세한 일정은 BIDF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051-868-7881.

    더보기
  • 라이프 (Life)
  • 헬스 (HEALTH)
  • 맛 (TASTES)
  • 여행(TRAVEL)
  • 문화(Culture)
스마트폰 영상제

당신을 위한 PICK

    • 강원일보
    • 경남신문
    • 경인일보
    • 광주일보
    • 대전일보
    • 매일신문
    • 전북일보
    • 제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