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원의 유행 너머] 콰자작!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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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 기자

“콰자작!”

손안에서 왁스가 부서진다. 왁스를 깨뜨리면 알록달록한 비즈나 점토가 쏟아지고, 손으로 조물조물 주무르는 소리까지 더해진다. 별것 아닌 영상인데 이상하게 끝까지 보게 된다.

5000원 안팎의 작은 장난감이 올여름 가장 뜨거운 소비가 됐다. ‘왁뿌볼’은 왁스로 만든 공을 깨뜨리는 장난감이다. ‘말랑이’는 말 그대로 손으로 계속 주무르고 싶은 폭신한 촉감의 제품이다. ‘슬랑이’는 슬라임+말랑이로, 비즈를 넣은 슬라임을 고무로 감싸 완성한다. 모두 소리와 손끝으로 느껴지는 촉감이 매력 요소다.

30초짜리 왁뿌볼 영상을 보고, 퇴근길 문구점에서 말랑이 하나를 사고, 손으로 몇 번 주무르며 기분을 푼다.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한 돈으로 잠깐의 재미를 살 수 있다. 마음에 쏙 드는 말랑이를 찾아 문구 시장을 방문하는 ‘말랑이 사냥’도 유행이다. 신상품이 많이 들어오는 시장은 어느새 새로운 핫플이 됐다. 서울에선 동묘 창신동 완구 거리로, 부산에선 국제시장의 문구사로 사냥을 떠난다.

비슷한 흐름은 해외에서도 나타난다. 영미권에서는 최근 스트레스 해소용 장난감인 ‘피젯 토이’ 열풍이 거세다. 손으로 반복해 만지고 누르며 긴장을 푸는 장난감으로, 성인 소비자들까지 가세하며 품절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완구 브랜드 ‘니도’의 말랑이는 블랙핑크 로제가 애용하는 모습이 알려진 뒤 오픈런과 품귀 현상을 빚었고, 일부 제품은 중고 거래 가격이 정가의 수십 배까지 뛰었다. 랜덤 색상의 만두 모양 말랑이를 뽑는 ‘랜덤 만두 스퀴시’는 틱톡에서 수천만 회 조회수를 기록하며 ‘니도 헌팅’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비싼 취미보다 손안에 쉽게 잡히는 촉감과 소리, 짧지만 확실한 만족을 소비하는 문화가 국경을 넘어 확산하고 있다.

랜덤 뽑기나 가챠 등 안에 든 내용물보다 열어보는 순간의 설렘과 짧은 행복을 소비하는 문화도 일상이 됐다. 오래 쓰는 제품이 아닌 순간 기분을 전환해 주는 작은 자극에 투자를 망설이지 않는 게 요즘 소비 공식이다.

유행은 늘 시대를 닮는다. 거창한 취미를 시작하기에는 시간도 돈도 부족하다. 여행 한 번 가려면 수십만 원이 들고, 공연 티켓도 만만치 않다. 치솟는 물가에 작은 소비조차 계산하게 되는 시대다. 하지만 얇아진 지갑, 바쁜 하루, 길어진 불황 속에서도 우리는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행복의 물리적 크기가 조금 작아졌을 뿐이다.

“몇 분만이라도 내 감각에만 온전히 집중하며 아무 생각 없이 편하고 싶다.” 복잡한 세상 속 젊은 세대가 소비하는 작고 확실한 즐거움 뒤에 숨은 이면이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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