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성의 개념 쌓기] 텅 빈 쇼룸의 공포, 시스템이 멈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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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철학과 강사

영화 ‘백룸’ 배경, 비워진 쇼룸 같은 공간
낯선 공허함 속, 불안한 곳이 주는 ‘공포’
유리성 같은 자본주의 취약성 잘 드러내

최근 영화 ‘백룸’이 저예산 영화의 기적이라고 불리며 흥행 몰이 중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우연히 미지의 공간을 발견하고, 그곳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의 문법을 따른다. 흥미로운 것은 그 서사의 소재이자 무대, 즉 백룸 그 자체다. 영어권에서 백룸(Backroom)은 통상 일반인은 못 들어가는 매장 내 뒷공간을 일컫는다. 고객 입장에서 이 백룸은 분명 자신의 눈에 보이는 공간과 이어져 있는 곳이고, 더 나아가 자신을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토대이기까지 하다. 다시 말해 백룸은 가시적 공간을 떠받치는 비가시적 공간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 백룸을 공포의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탈바꿈시킬까? 먼저 주목할 점은 영화의 무대가 직원용 통로나 창고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무대는 대형 가구점에서 고객들이 이용하는 가시적 공간인 쇼룸이다. 침대와 소파, 조명 등을 배치해 실제 생활공간처럼 꾸며 놓은 바로 그 쇼룸 말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 쇼룸을 텅 비워버림으로써 백룸으로 전환한다. 몇몇 가구와 노란 단색 벽지, 윙윙거리는 형광등 등 익숙한 공간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완성된 인테리어는 철저히 사라져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쇼룸의 백룸화인가?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종종 마주한다. 이를테면 가구점에서 상품 진열을 바꾸기 위해 쇼룸을 모두 비워버리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때는 당연히 리뉴얼을 위해 가구점 문을 닫기 때문에 쇼룸이었던 곳 전체가 오로지 직원들만이 움직이는 백룸이 된다. 이삿짐이 들어가기 전의 아파트 역시 마찬가지다. 입주 전까지는 청소업체 직원이나 옵션 점검을 나온 관계자들만 출입하는 일종의 백룸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결국 영화의 무대는 오픈을 준비하는 백룸화된 쇼룸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공간 대부분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이다. 설령 뭔가 있더라도, 뒤틀린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직원도, 고객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공간을 채워야 할 사람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낯선 공허함이 생겨나고, 바로 그 공허함이 공포의 근원이 된다.

여기서 느껴지는 공포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극단적인 무력감이다. 앞서 살펴봤듯 백룸의 주체는 고객이 아니라 직원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 백룸은 노동자의 부재를 드러내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곧 비가시적 백룸이 떠받치고 있던 가시적 공간, 다시 말해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세계가 위태로워졌음을 의미한다. 식료품부터 의류, 안전, 의료, 심지어 커뮤니티까지 모든 것을 ‘구매’ 버튼 하나로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현실이 통째로 소거된다면? 백룸에 빠진 주인공, 좀 더 정확히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바로 상품화된 현실이 삭제된 세계이다. 가구점의 쇼룸이나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사실상 현대인의 안방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오늘날 직접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드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주거 역시 하나의 상품이 된 지 오래다. 화폐를 지불해 필요한 것을 얻는 방식을 제외하면 현대인은 자신의 의식주를 스스로 마련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거의 갖추지 못했다. 결국 가장 사적인 공간인 안방에서조차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무력한 존재인 셈이다.

이제는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지만, 현대인은 소비를 통해 구성된 상품의 우주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곧 쇼륨이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쇼룸은 언제든 백룸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상품은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는 익명의 노동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상품들로 조립된 현실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상품의 부재는 현실의 부재며, 현실의 부재는 삶의 부재,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보다 더 근원적인 공포가 있을까. 이런 맥락에서 영화 백룸의 소재가 된 ‘도시괴담’이 등장한 것은 2019년이지만, 이를 소재로 한 영상 시리즈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시점이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2년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 전 세계는 대규모 셧다운과 사회적 고립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공급망과 서비스, 그리고 일상의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목격했다. 만일 익명의 노동에 의해 지탱해 온 세계가 갑자기 종결된다면 어떨까? 가도 가도 텅 빈 세계에 내던져지게 될 것이며, 여기서 굶어 죽게 될 것이란 불안감이 엄습한다.

결국 영화 백룸이 가시화한 공포의 본질은 미지의 괴물이 아니다. 그것은 소비라는 행위를 제외하면 생존에 필요한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생산할 수 없게 된 현대인의 철저한 무능과 고립이다. 백룸 특유의 서늘함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유리성 같은 취약함에 대한 반작용인 것이다. 백룸의 흥행이 현대인이 당연하게 여겨온 현실의 기반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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