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부산을 담아가게 하라!
오픈 스페이스 배 대표
대전발 0시 50분.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라지던 시절, 플랫폼에서 급하게 삼키던 가락국수 한 그릇의 추억은 온 국민의 향수를 자극하는 대전의 서사였다. 세월이 흘러 지금 대전에는 새로운 풍경이 자리를 잡았다. 성심당이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라. 성심당에 순수하게 빵만 사러 가는 사람은 없다. 전주 한옥마을에 초코파이를 사러 가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그럼에도 성심당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서 있고, 사람들은 양손 가득 빵 봉투를 들고나온다. 이유는 단 하나다. 언제 또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도쿄에 가면 평소 먹지도 않을 과자를 대형 할인점 ‘돈키호테’에서 쓸어 담는 심리, 이것이 바로 ‘셋업 코스트’(Setup Cost)다. 여행을 위해 이미 지불한 시간과 비용에 대한 최대한의 가치를 뽑아내겠다는 본능적 심리다. 결국 성심당의 빵은 대전이라는 도시의 경험을 소유하려는 가장 확실한 기념품이다. 대전은 빵 하나로 도시를 팔았다.
BTS 공연 때 외국인 관광객 20만 명 방문
도시 곳곳에 깃든 콘텐츠 엮어내지 못해
지역의 삶과 골목의 냄새 브랜딩 시도를
지난 12~13일 부산은 거대한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BTS 공연을 보기 위해 11만 명의 팬을 포함해 20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부산을 찾았다. 제이홉이 무대 위에서 “오직 부산을 위해서!”를 외쳤을 때 5만 5000명의 관중석이 눈물바다가 됐다. 그런데 20만 명의 세계인은 부산에서 무엇을 가슴에 담아갔는가. 이것이 진짜 물음이다.
숫자만 보면 고무적이다. BC카드 분석에 따르면 공연 주간 외국인 결제액은 전년 동기 대비 73.3% 증가했고, 전통시장 결제액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뒤에 가려진 다른 숫자를 보아야 한다. 공연 주간 숙박업 결제액은 전주 대비 227.8% 폭증했다. 탐욕스러운 숙박업소들이 평소의 수 배에서 많게는 10배에 달하는 요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방을 구하지 못한 팬들은 인근 도시로 쫓겨나거나 서울에서 당일치기를 감행했다. 20만 명이 찾아왔지만 상당수는 부산을 통과했을 뿐, 소비하지 못했다. 도시의 탐욕이 셋업 코스트를 스스로 파괴해 버린 꼴이다. 만약 성심당이 유명세를 치렀다고 빵값을 10배로 올렸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 줄은 단 하룻밤 만에 사라졌을 것이다. 부산은 자명한 교훈을 너무나도 비싸게 배웠다.
셋업 코스트가 작동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가져갈 콘텐츠가 명확해야 하고, 쉽게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부산에는 밀면이 있다. 돼지국밥이 있다. 씨앗호떡이 있다. 광안리 바다와 감천문화마을의 골목이 있다. 서울에서도, 도쿄에서도 살 수 없는 오직 부산만의 것들이다. 문제는 20만 명이 몰려왔을 때 도시가 이것을 제대로 팔 줄 몰랐다는 점이다. 숙박이 없으면 저녁이 없고, 저녁이 없으면 야시장이 없으며, 새벽의 뜨끈한 돼지국밥도 없다. 당일치기 관광객에게 부산의 밤은 존재하지 않았다.
BTS 팬들에게 지민과 정국의 고향인 부산은 그 자체로 성지(聖地)다. 그들이 자란 동네, 다니던 학교, 걷던 길과 먹던 음식이 모두 세계적인 콘텐츠다. 멤버들이 어린 시절 찾던 떡볶이 골목 앞에 영어 안내판 하나만 제대로 세웠어도 전 세계 팬들의 셋업 코스트는 폭발적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산은 완벽한 성지순례 코스 하나 제대로 엮어내지 못했다. 있는 것을 팔 줄 몰랐다.
부산을 찾게 만드는 진짜 셋업 코스트는 무엇인가. 그것은 밀라노에서 수십억 원을 주고 라 스칼라의 ‘오텔로’를 수입해 오는 것이 아니다. 파리에서 1100억 원을 주고 퐁피두 분관 간판을 빌려오는 것도 아니다. 자갈치 새벽시장의 비릿한 사람 냄새이고, 감천마을 골목을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고, 도시 구석구석에 깃든 삶의 궤적이다. 부산은 이미 그 자체로 세계적이다. 외국인 팬이 무인 카페에서 밤을 지새우며 부산의 새벽 부두를 보았다면, 그 새벽의 공기와 풍경을 브랜드로 담아갈 수 있게 해야 했다. 그것이 행정이 할 일이었다.
105억 원으로 라 스칼라를 사 오고, 1100억 원으로 퐁피두 간판을 임차하는 전시 행정에만 혈안이 돼 있었다. 정작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이틀 동안 20만 명이 오는 황금 같은 기회를 주었을 때, 부산 시정이 그들에게 돌려준 것은 바가지 요금과 암표, 차가운 노숙과 당일치기 기차표뿐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부산에 성심당이 없어서가 아니다. 성심당이 되고도 남을 골목과 콘텐츠가 넘쳐나는데, 행정은 그것을 가꾸고 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겉멋 든 외제 간판을 빌려오는 데 눈이 멀어 진짜 시장(市場)의 논리를 몰랐던 것이다.
이제 부산은 화려한 껍데기 빌리기를 멈추고 자신의 골목을 돌아보아야 한다. 간판을 임차하는 행정이 아니라, 골목의 냄새를 브랜딩하는 진짜 정치가 필요한 때다. 세계가 열광하는 부산의 힘은 거창한 미술관 분관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었던 부산의 삶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