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부산항 북항을 바라보며
문학평론가
산업화 수출 현장 친수공간 단장
하지만 역동적 바다 분위기 실종
북적대던 항구도시 천진함 그리워
어김없이 ‘6·25’가 찾아왔다. 굳이 부연하지 않더라도 이날의 의미와 메시지는 우리 모두에게 비슷한 내용으로 다가온다.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와 이를 끝내기 위해 필요한 조건과 상황에는 역사를 훑어보면 수없이 다양하고 복잡한 함수가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도 국민의 의지나 소망과는 관계 없이 때로는 돌발적으로, 때로는 상상하지도 못할 여러 변수로써 진행되었다. 다행히 이곳 부산은 비극적인 전쟁터로 휩쓸려 들어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전세가 불리해지고 피란민들이 부산항을 통해 마구 유입되어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람들이 저마다 살기 위해 항구 주변과 산등성이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중앙동을 비롯하여 영주동 및 영도와 국제시장 주변에 산재해 있었던 수많은 피란민들에게 부산은 삶의 마지막 희망을 제공해 준 공간이자 장소였다. 이들의 급박했던 생활 현장은 지금도 여기저기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40계단이나 영도다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부산항 북항이 있다. 북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으로 개항한 항구다. 부산항의 이미지는 전후 복구기를 거쳐 1960~1980년대 한창 진행된 근대화와 산업화의 열기에 발맞춘 무역과 수출 현장으로 떠올리기 십상이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곳을 소재로 창작된 수많은 대중가요가 지금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으며 아직도 많은 이들이 즐겨 부르곤 한다.
지금의 부산항 북항은 이전의 과포화 상태의 부두 기능을 신항으로 확장·이전하고 친수공간으로 탈바꿈 중이다. 숨 막힐 듯 밀집해 있었던 컨테이너 더미와 선박, 그리고 부산진 CY(컨테이너 야적장)와 부산역 일원의 철도시설 등이 새로운 북항 통합 개발사업 부지에 포함하게 되어 머지않은 미래 시민들의 여가 활동과 편의 및 각종 레저시설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업 진행 과정에서 여러 잡음과 사업 진척을 둘러싼 얄궂은 소문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2022년 연말, 개항 이후 146년 동안 막혀 있었던 부두 일대를 말끔히 단장한 풍경으로 개방된 뒤 매립지를 가로지르는 도로와 충장로의 지하차도도 완공되어 이제는 어엿한 원도심의 ‘신세계’의 꼴을 갖추고 있다.
부산역 2층 대합실에서 북항 쪽으로 빠져나오는 공간인 ‘부산역 하늘공원광장’에서 바다를 보면 예전의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근 깨달았다. 물론 코앞에서 복합환승센터 공사가 진행되고 있기에 어딘가 어수선해 보이고, 재개발로 매립된 면적이 넓기 때문에 그만큼 바다를 ‘잘라 먹어서’ 이전과 다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수많은 국내·외 여행객들이 부산역을 빠져나와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느라 붐비는 틈에도 어떤 여행객들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북항 일대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모습도 보인다. 이들에게 부산은 바다나 항구, 혹은 갈매기로 상징되는 시원한 이미지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부산이 우리 근·현대사에서 행했던 역동적인 기능과 역할을 떠올리면서 지금의 북항을 바라보면 어딘가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기분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먹고살기 바쁜 때의 바다는 기회와 새로운 앞날을 예고하고 준비하는 발판이지만, 지금처럼 국가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생활 수준의 질이 놀라보게 달라지면서부터 바다는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더욱 위축된 이곳 부산의 실상을 반영하는 것처럼 우중충해 보인다. 해양수산부가 시민의 염원으로 부산으로 이전되었으며, 북극항로 시대를 여는 주요 거점으로서 부산항의 의미와 가치가 높아졌는데도 나는 북항을 바라보면서 엉뚱한 생각이 든다.
결국 사람과 도시와 경제만을 ‘위한’ 바다라고만 생각할 땐 ‘바다’는 언제든 쥐어 짜낼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곁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공간으로서 인식하는 바다는 효용과 가치만을 만들어 내는 대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먼 시간과 공간을 여행하는 든든한 길잡이일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이라는 난리 통에서 부산항은 지칠 줄 모르고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거나 이 땅 위에서 자행되는 온갖 살육과 폭력의 상처를 꿰매고 아물게 했던 품이었다. 그런 부산항이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친수공간으로 바뀌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쾌적하고 포근한 공간이 되기를 바라고 또한 그리되겠지만, 한편으로 야성적이면서도 본래적인 바다의 ‘숭고함’이 사람들에게 미지와 신비를 간직한 풍경으로 다가오지 않는 점에 대한 아쉬움이 비단 나만의 낭만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개발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고 싶다는 게 아니라 항구도시로서 부산의 역동성과 가능성까지 어우러진 부산항의 천진한 상태를 한번 생각해 본 것이다. 여기에 지금의 ‘살맛’과 미래의 ‘설렘’이 놓여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