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학수의 문화풍경] 도그마의 몰락
동서철학 아카데미 숲길 대표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구글 포 코리아 포럼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인공지능 신기원의 한 장을 축하했다. 2016년 3월 알파고가 바둑의 거장 이세돌을 꺾은 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대중은 이를 인간과 기계의 극적 대결로 기억하지만, 이 사건이 촉발한 변화는 훨씬 더 깊다. 그것은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도그마에 대한 공개 처형이었다.
바둑의 고수들은 대를 이어 정수와 정석이라는 전술의 표준을 정교하게 다듬어 왔다. 명문 도장들의 두터운 권위와 프로 9단들의 절대적인 영향력은 이러한 표준들을 철저히 수호했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 수백 년 묵은 제도적 합의를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로 착각하기에 이르렀다.
10년 전 알파고 승리의 함의는
권위 향한 자발적 순종에 경종
독립적 사유 권리 널리 확산되길
그러던 제2국, 이른바 ‘정수’의 세계를 뒤흔든 ‘37번째 수’가 등장했다. 알파고는 5선에 돌을 툭 떨어뜨렸다. 바둑책이 하수의 떡수라고 치부하던 모호하고 낯선 자리였다. 해설자들은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는 프로그램 오류를 의심했다. 그러나 수십 수의 돌이 깔린 후, 그 외롭던 돌은 판 전체로 영향력을 뻗쳐나가며 이세돌의 전략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알파고의 창의적 일탈은 우리가 그토록 칭송하던 ‘정수’가 사실은 심리적 타성이며, 관습에 안주하려는 두려움의 산물이었음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이러한 자발적 순종은 일시적 실수가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 성향에 깊이 뿌리박힌 구조적 질환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전통적 권위 앞에 수동적이며 무비판적인가? 우선, 권위를 따르는 것은 안전하다. 기성 도그마를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집단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안전을 보장받는다. 나아가, 순종은 책임이라는 무게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훌륭한 정서적 방패가 된다. 매뉴얼대로 하다가 실패하면 “지시대로 했을 뿐”이라는 확실한 핑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관습 거역의 공포에서 벗어나 지성을 온전히 발휘할 용기가 있었다면, 알파고가 보여준 혁신적인 수들은 진즉 인간의 머리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의 위험 대신 군중의 안전을 선택해 왔다.
이러한 무비판적 수용의 문화는 철학의 고전, 특히 『노자』를 해석하는 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는 역대 권위자들이 내놓은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주석을 ‘정답의 바이블’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왔다. 예컨대 소위 전문가들은 노자가 ‘무위(無爲)’의 원리를 인간에게 권장했다며, 이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 혹은 ‘인위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이라는 모호한 말로 포장해 왔다. 그러나 이 정의는 지나치게 막연하다. 숙제를 하기 싫은 초등학생이 당장 마음에 이끌리는 대로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이 노자가 말한 ‘자연스러운’ 행동인가?
실마리는 가장 오래된 판본인 ‘곽점 초간본’이 발굴되면서 풀렸다. 무위는 개인의 처세술이나 신하의 행동 지침이 아니라, 오직 왕을 위해 고안된 국가 통치술이다. 세금을 걷고, 성곽을 쌓고, 전쟁을 치르는 실무는 관리와 장수들의 몫이다. 반면 왕은 통치에 직접적 개입을 삼가는 ‘무위’를 실천해야 한다. 대신 왕은 신하들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인사와 상벌의 권력만을 쥐고 군림한다. 만약 백성이 무위하면 가정은 굶주릴 것이고, 신하가 무위하면 국가는 파탄 난다. 이것은 우리가 비판적인 독해력만 발휘했다면 진작에 도달했을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당연한 이치를 뒤로한 채, 이른바 노자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모호한 신비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했다.
우리는 이 관습적 굴종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내고, 독립적 사유에 필요한 심리적 용기를 길러낼 수 있을까? 그 해법은 단순히 “비판적으로 생각하자”는 식의 유약한 다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교육 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안전한 순종 대신 지적 일탈과 반란을 권장해야 한다. 초등학교에 ‘어린이를 위한 철학’(P4C)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은 이러한 지적 전환을 위한 강력한 청사진이 될 수 있다. 교실을 탐구 공동체로 전환하여,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전제를 의심하고, 근거를 평가하며, 권위에 건설적으로 도전하는 법을 배운다면, 무비판적인 복종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걷어낼 수 있다.
2016년의 대국이 남긴 진정한 가치는 우리가 얼마나 안락하게 눈을 감고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폭로한 데 있다. 우리가 이 편안한 무지의 선잠에서 깨어나 나와 세상을 똑바로 마주하기로 결심했다면, 그 깨어남이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이제는 수천 년 묵은 도그마나 자칭 전문가들이 세워둔 제단에 절하는 짓을 멈춰야 한다. 우리의 과제는 알파고가 시각적으로 증명해 보인 그 거침없고 자유로운 지적 용기를 체득하여, 마땅히 우리 것이었어야 할 독립된 사유의 권리를 마침내 되찾아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