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카지노'를 꿈꾸는 부산시민은 없다 [이상윤의 세상톡톡]
10년 전 세계 최대 카지노 그룹 ‘라스베이거스 샌즈’(이하 샌즈)는 부산시장실을 찾아와 공공연하게 이런 소리를 했다. “지구상에서 부산에 5조 원 이상 투자를 곧장 할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을 것입니다.” 샌즈 측의 이 말은 자신감을 과장하는 일종의 블러핑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곧이어 제시한 복합리조트 카드는 부산시로서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들이 마이스와 비즈니스,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엮어 제시한 북항재개발 부지의 밑그림은 당장 부산을 국제적 컨벤션 도시로 띄울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샌즈 측이 개발한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가 전 세계 관광객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구심력까지 떠올린 부산시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장밋빛 기대도 잠시. 곧장 복합리조트의 핵심 시설로 꼽힌 오픈카지노가 논란에 휩싸였다. 강원랜드 카지노의 사회적 부작용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샌즈 측이 오픈카지노 대신 자격을 제한하는 형태의 세미오픈카지노를 제시했음에도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샌즈가 입맛을 다시고 물러간 지 10년. 그 사이 엠지엠 등 다른 카지노 그룹들이 샌즈의 뒤를 이어 다녀갔을 뿐 북항재개발 부지는 아직도 대부분 잡초 무성한 공터로 남아 있다. 북항재개발의 뿌리는 노무현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 북항의 기능을 부산 신항으로 대거 옮기고 난 빈 자리를 개발해 부산시민에게 돌려준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이었던 문재인 정권은 그럼 이 부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문 정권 시절 국무위원을 역임한 부산의 한 인사는 퇴임 때쯤 사석에서 북항재개발 랜드마크 부지에 대해 “카지노 기반 복합리조트는 꿈도 꾸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카지노는 입밖에 낼 수조차 없으니 다른 친수공간 활용 방안이나 서둘러 모색하라는 권고도 곁들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가 이런 말을 한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우선 부산과 비슷한 시기 복합리조트 사업 추진을 전국 곳곳에 타진하고 나선 일본이 변수로 부각했다. 싱가포르의 발전상을 부러워하던 일본 아베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 4000만 시대를 열겠다며 복합리조트를 국가사업으로 내걸자 오사카를 비롯해 전국 7곳에서 너도나도 유치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이후 일본은 복합리조트 사업 관련 비리가 터지는 바람에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는 등 큰 진통을 겪었으나 결국 오사카 복합리조트 개발 사업은 돛을 달았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3월 인천 영종도에 인스파이어 복합리조트가 공식 개장했다. 부산 북항에서 벌어진 만큼의 복합리조트에 대한 거부감이나 정부 차원의 외면이 있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인스파이어가 개장 1년도 안 돼 천문학적 적자로 인해 사모펀드로 넘어가고 후속 투자 여부가 불확실해졌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부산의 입장에선 그나마 첫 발이라도 내디딘 인천의 사례가 부러운 건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게 사그라드는 듯했던 복합리조트에 대한 논의에 부산 상공계가 또다시 기름을 붓고 나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조금씩 얘기가 들리는 듯하다 최근 토론회까지 열면서 여론 환기에 앞장서는 모양새다. 혹자는 왜 사행성 사업을 포함하고 있는 복합리조트에 대해 부산지역이 끈질기게 미련을 갖고 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비아냥을 받는 부산이 ‘노인과 카지노’가 될 판이라는 우려도 쏟아진다. 하지만 엑스포 유치에라도 기대어 텅빈 부산 북항재개발 부지를 어떻게든 채우고 부산의 발전 동력으로 삼아보려 했던 부산시민들의 열망이 처참하게 좌절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나. 대통령이 부산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을 약속하며 화려한 청사진을 뿌리고 갔지만 원내 1당의 무관심 혹은 배제로 인해 여지껏 공회전만 거듭하고 있다. 조기대선을 맞아 다시 장밋빛 공약이 난무하기 시작한 게 그나마 위안일 정도다. 다행히 지난해 말 부산시는 북항재개발 랜드마크 부지에 지적재산권 기반 복합 콤플렉스 개발을 위한 대규모 외자 유치 방안을 발표하기는 했다. 시민들은 부산항만공사와의 의견 차이로 아직 불확실성의 범주에 속한 이 계획에마저도 조그만 희망을 건다. 시민들은 이 계획이 숱하게 청사진만 뿌렸다가 흐지부지 발을 뺀 부산지역 기존 사업들의 재판이 되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노인과 카지노’를 애써 꿈꾸는 부산시민은 없다. 마리나베이샌즈를 딛고 선 싱가포르의 발전상을 보며 북항에 벤치마킹이라도 하고 싶은 부산시민만 있을 뿐이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2025-04-22 [18:05]
[이상윤의 세상톡톡] 로마 황제가 재산을 경매로 처분한 까닭
서기 170년 어느날 우리에겐 〈명상록〉의 저자로 유명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비서에 해당하는 해방노예를 불러 계면쩍은 지시를 내린다. “지금 황실에 가서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족장들이 보내온 술잔과 기념품, 아르메니아 왕이 보내온 황금관 같은 걸 모아서 광장으로 내보내게나. 그것들을 급히 경매에 좀 붙여줘야겠어. 국고로 들어온 거라 내가 처분하면 원로원의 반발이 좀 있겠지만 그래도 이해는 해 줄 테지.” 황제의 지시를 받은 해방노예는 로마에서 가장 넓은 광장인 트라야누스 포룸으로 황제가 언급한 물품을 대거 실어날랐다. 두 달에 걸쳐 진행된 황제 주관 경매의 소문이 제국 곳곳에 퍼지자 황실 물건에 호기심이 발동한 로마 유력자들은 물론 인근 갈리아 지역 유력자들까지 몰려와 너도나도 경매에 참가했다. 유럽의 모태가 된 거대제국 로마를 지배한 황제는 왜 이런 뜬금없는 경매까지 벌여야 했을까.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지중해 일대를 장악하게 된 로마의 황제쯤이면 속주국가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군정일치 국가였던 로마는 속주국가마다 몇 개 군단씩을 상주시키며 총독을 파견해 지배했다. 실제로 피를 흘려야 하는 혈세인 군복무 외에 거의 세금이 없었던 로마와 달리 속주국가는 속주세라는 명목으로 수입의 10%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야 했다.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국가의 정체가 바뀐 다음 로마가 맞닥뜨린 가장 큰 난제는 늘 재정 문제였다. 비대해진 군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퇴직자에게 줄 퇴직금과 도로와 수도, 각종 구조물 등의 신축, 보수 등에 들어가는 자금 등은 천문학적이어서 잠시 경계를 늦추노라면 국가 재정은 늘 바닥을 보이곤 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황제는 속주세를 대폭 올려 세금을 왕창 걷으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로마의 황제들은 동양인인 우리의 시각에선 이게 정말 황제가 맞나 싶으리만치 속주세를 올리는 데에는 엄청난 거부감을 표시했다. 아우렐리우스 같은 황제도 전쟁으로 재정이 위태롭자 황실 물품을 팔아 벌어들인 수입으로 겨우 버티면서도 끝내 속주세는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해 유지되는 평화) 시대에 로마 황제가 속주세를 올릴 줄 몰라서 건드리지 않은 게 아니다. 속주세를 올린 뒤 일어날 파장이 두려웠던 것이다. 로마가 마구잡이로 속주세를 올릴 경우 로마의 지배를 인정하던 속주국가가 거센 저항에 돌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군사력으로 진압하는 것도 일시적 방편일 뿐. 장기적으로 더 큰 군사력에 의하지 않고서는 사회를 안정시킬 방법이 없다.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로마는 더 큰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고 바닥난 재정은 악화일로 상태가 될 것이다. 로마 황제들이 옆에서 보기에 딱할 정도로 속주세 인상만큼은 하지 않으려 버틴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고대에 팍스 로마나가 있었다면 현대엔 팍스 아메리카나가 있다. 미국의 주도력에 기대 국제 평화 질서가 이어지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세계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가 판을 쳤다. 소위 선발 강대국이라는 국가들은 곳곳에 식민지를 만들어 국부를 창출하는 데 여념이 없었기에 수탈과 약탈은 강대국을 상징하는 단어로 여겨졌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계가 미국이라는 초일류 강대국의 주도권 아래 재편되며 팍스 아메리카나가 자리를 잡았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미국의 군사력만으로 지탱해 온 것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와 기회 균등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매력은 동맹국으로 하여금 팍스 아메리카나의 우산 밑에 머무르기를 기꺼워하도록 만들었다. 중국이 아무리 초강대국이 되더라도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기 어렵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도 이 같은 미국의 매력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미국이 관세를 무기로 동맹국을 쥐어짜고 나서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로마 황제에 비유한다면 자국의 어려움 해소책으로 속주세를 마구 올리기로 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로마 황제들이 할 줄 몰라서 안 한 것이 아닌 방법을 취한 것이다. 역사의 거울에 비춰본다면 미국은 결국 로마 황제들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추가 비용을 엄청나게 지불해야 할 것이다. 로마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연결된 고밀도 지구촌의 현 상황을 고려하면 그 시점은 더 빨라질 공산이 크다. 팍스 아메리카나 우산 밑에 머무르며 국가 안보까지 기대고 있는 대한민국의 지평은 그래서 더 위태로워 보인다.
2025-03-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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