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폐 위기 한성기업, 애국 개미 ‘돈쭐’로 기사회생
부산 본사 둔 수산물 가공업체
시가총액 상장 기준치 밑돌다
6일부터 30배 주문 폭증 반전
참전용사 후원 미담 SNS 확산
“크래미 사자”“주식 사자” 댓글
나흘 연속 주가 40.5%나 올라
부산 영도구 대교동 위치한 한성기업 본사 전경. 박혜랑 기자 rang@
주식시장에서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던 부산의 수산물 가공업체가 오랜 기간 참전용사들을 후원해왔다는 SNS 미담이 확산되며 3일 만에 상장 유지 조건을 충족해 화제가 되고 있다. 온라인에서 형성된 ‘착한 기업 살리기’ 여론이 한성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린 덕분에 설립 63년 된 국내 대표 수산물 가공업체가 다시 일어선 것이다.
9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6일 한성기업의 시가총액은 287억 원으로 코스피 시장 상장 기준치를 밑도는 상태였다. 중동 전쟁 여파로 원재료와 물류비가 급등해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데다, 주 거래처인 유통기업의 유동성 위기로 납품이 중단되고 받아야 할 대금 회수마저 차질을 빚으면서 자금 흐름이 막히기도 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성기업의 지난해 매출은 약 3184억 원으로 전년 대비 4.2%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약 110억 원에서 58억 원 수준으로 반 토막 났다. 회사는 원재료 공동 구매와 온라인 판매 채널 집중 등을 도모하며 고군분투했지만 실적 개선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 지난 6일부터 사흘간 상시 주문량의 약 30배에 달하는 주문 폭증과 함께 회원 수가 42%가량 급증한 것이다. 한성기업 측은 이것이 주말 사이 SNS에서 확산된 미담 덕분으로 보고 있다.
“참전용사들을 위해 수십 년째 음악회를 열어온 기업”이라는 한 줄의 댓글을 시작으로 이 사실이 확산되자 소비자들은 “마트에 가면 크래미를 사자”, “1주라도 사서 상폐를 막자”며 700개가 넘는 댓글로 호응했다. 이후 자사몰 내 일부 제품은 한때 품절을 빚었고, 회사 측은 폭증한 주문량을 소화하기 위해 배송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여론은 주가에도 즉각 반영됐다. 6일부터 9일까지 나흘 연속 주가가 총 40.5% 상승했고, 시가총액은 9일 404억 원을 기록하며 상장 유지 기준선을 넘어섰다. 한성기업은 이에 지난 6일 홈페이지 대문에 감사글을 내걸기도 했다.
한성기업이 주도해 설립한 사단법인 호국문화진흥위원회가 2024년 11월 서울 송파구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한 ‘2024 유엔참전용사, 영웅을 위한 음악회’ 모습. 한성기업 제공
‘크래미’로 대중에게 친숙한 한성기업은 1963년 부산에서 설립돼, 영도구에 본사를 둔 대표적인 향토기업이다.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인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위한 음악회는 임우근 회장의 기획으로 시작됐다. 임 회장은 2009년 미국 출장 중 워싱턴 D.C.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하며 전쟁 참전용사에 대한 미국의 존경과 감사를 목격했다.
한성기업 관계자는 “추모공원에서 ‘우리가 이분들의 희생을 잊고 살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에 평소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회장님이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음악회를 기획했다”고 전했다.
임 회장은 2009년부터 매년 UN참전용사와 가족, 지인 1000여 명을 초청해 음악회를 개최해 왔다. 직접 호국문화진흥위원회를 설립해 이사장을 맡으며, 뜻을 같이 하는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지난해까지 모두 25차례의 음악회를 이어왔다. 올해는 11월에 음악회 개최를 예정하고 있다.
한성기업의 행보는 사회공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해양 생태계 보호와 지속 가능한 수산물 공급을 위해 지난 2013년 국내 식품 제조업계 최초로 해양관리협의회(MSC·Marine Stewardship Council) 인증을 획득했다. 남획을 방지하고 지속 가능한 어업 방식으로 생산된 원재료를 사용하는 기업에만 부여되는 까다로운 국제 인증으로, 제품에는 에코라벨이 부착된다.
서종석 MSC 한국대표는 “국내 자원이 고갈된 명태 연육을 주원료로 ‘크래미’를 생산하는 만큼, 한성기업은 일찍부터 지속 가능한 수산물 소비에 선제적으로 동참해오고 있다”며 “국내에 MSC인증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부터 한성기업은 직접 발로 뛰며 인증을 받아냈다”고 전했다.
코스피 시장에서 상장폐지 여부가 단순히 시가총액 기준 하나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성기업은 이번 일을 계기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대중의 관심에 대해 더욱 깊은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한성기업 관계자는 “매출 상승이라는 결과를 마주했을 때, 판매량보다도 품질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고민이 가장 먼저 들었다”며 “우리가 해온 일에 비해 과분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소비자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앞으로도 좋은 제품으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