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세상톡톡] 이런 지방자치에 목매는 나라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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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역사도 없으면서
제헌헌법부터 지방자치 명시
해방 이후 80여 년 세월은
중앙집권·지방자치 오간 시간
두 제도의 틈바구니에 치여
극적인 쇠락의 길 내몰린 부산

대한민국은 세계사적으로 아주 독특한 나라다.

일제강점기를 겪고 해방을 맞은 뒤 중국과 소련이라는 지구상 최강 최대 공산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심지어 공산주의를 내세운 내부 세력이 일으킨 내전을 겪고도 결국 공산화되지 않은 기적의 나라다. 내전의 상처로 인해 지구상 최빈국 신세로 전락하고도 중공업을 중심으로 산업화에 성공함으로써 최단 시일 내 원조받던 처지에서 원조하는 입장이 된 기적의 나라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던 타국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민주화에 성공한 뒤 불법 계엄 무혈 진압까지 이뤄낸 기적의 나라다.

이 같은 세 가지 기적에 버금갈 정도로 독특한 이력이 대한민국에는 하나 더 있다. 제헌헌법 제정 때부터 헌법 제8장에 당당히 들어가 있던 지방자치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라 1949년엔 지방자치법이 공포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지방자치를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서 이렇게 처음부터 헌법에까지 지방자치를 부르짖었던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기가 힘들다.

유럽은 태동부터 지방자치가 현재 유럽의 뼈대를 만들어 온 근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그만 나라인 스위스가 무려 26개 주로 구성돼 독자적인 입법·행정·자치권을 유지할 정도이니 지방자치는 그들에겐 생활 그 자체다. 각 지방이 쿠니(國)로 갈려 오랫동안 내전을 벌여 온 역사로 인해 지금까지 지방색이 뚜렷하고 심지어 지방 사이 갈등이 있는 일본도 지방자치는 일상이라 할 수 있다. 동부 일부 지역에서 시작해 야금야금 땅을 넓히면서 연방 국가를 만들어 온 미국도 지방자치 외엔 뾰족한 답을 찾기 힘들다.

반면 대한민국은 지방자치의 역사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국가인 고구려, 백제, 신라가 나라별로 갈라져 있던 걸 제외하고는 통일신라 이후 지방자치가 행해졌던 적은 없었다. 후삼국이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으니 범위를 더 좁히면 고려시대 이후엔 중앙집권만 있었던 나라라 해도 조금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나라가 제헌헌법 때부터 지방자치 규정을 헌법에까지 넣어두는 기행을 보였으니 독특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방자치가 1991년 지방의회 선거를 계기로 본격 시행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군사정권 시절 산업화 기치를 높이 쳐들면서 효율적 자원 배분을 최우선시함으로써 국가 주도형 체제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조선이나 고려 같은 전형적인 중앙집권 국가로 회귀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수십년 동안의 중앙집권을 거쳐 지방자치가 본격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0년대 말 이후 민주화 성공에 따른 관성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세 가지 큰 기적이 일어나고 그 와중에 중앙집권과 지방자치가 각각 40여 년과 30여 년을 오가는 동안 가장 큰 부침을 겪은 곳이 있다. 바로 부산이다.

대한민국이 내전을 겪는 동안 부산은 해외 군수물자 조달의 최전방이자 낙동강 방어선의 최후 보루 역할을 했다. 내전 도중 피란민이 몰리면서 인구가 늘고 내전 이후 산업화의 무대가 된 부산은 전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도시가 됐다. 1945년 28만 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1970년엔 200만 명을 돌파할 정도의 압축적 성장세였다. 부산만 지나치게 성장한다고 판단한 정부는 부산을 규제하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정부는 1972년 부산지역 법인 등록세를 ‘무려’ 5배나 올리는 극약 처방을 한다.

이후 부산은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1995년 중과세가 풀릴 때까지 도심에 있던 대기업의 모태들은 모조리 부산 밖으로 빠져나갔고 부산은 철저히 몰락했다. 제조업 붕괴 이후 산업구조 변화를 시도하려 하자 이번엔 지방자치가 발목을 잡는다. 몰락을 막을 특별법 제정은 타지역과의 형평성이라는 족쇄가 채워지기 일쑤였기에 늘 배제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전략적 거점 같은 가치는 아예 꿈꿀 수도 없어졌다. 중앙집권 땐 타 지역보다 너무 발전한다며 중과세로 묶인 채 얻어맞고 지방자치 땐 타 지역과 키를 맞춘다는 논리로 주요 거점으로조차 대우받지 못하는 것이 부산의 현주소다.

부산의 부침은 최근 진행된 광역 행정통합 과정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무려 20조 원에 달하는 정부 인센티브를 ‘미끼’처럼 흔들며 진행된 기이한 행정통합 앞에 부산은 지자체 중 하나로서 미끼 앞에 고뇌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권한과 돈이 중앙에 집중된 나라의 기형적 ‘중앙 주도식 지방자치’ 끝판왕을 보는 듯하다.

기괴한 중앙 주도식 지방자치의 관성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부산은 과연 지방자치 명목의 6월 선거 이후 재반등할 모멘텀을 찾을 수 있을까.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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