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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사라진 추억의 장소, ‘레코드 부산’에선 살아날지도
우리 모두는 저마다 추억을 안고 살아갑니다. 특별한 추억이 담긴 장소가 사라지면, 애틋함은 배가되죠. 시간은 무심히도 흘러, 사라진 장소의 흔적은 빠르게 지워집니다. 영원할 것 같던 기억들도 점점 흐릿해집니다.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다지만, 추억은 붙들 수 있지 않을까요.
25일 〈부산일보〉는 사라진 부산 추억의 장소를 한데 모은 지도 페이지 ‘레코드 부산(record.busan.com)’을 오픈합니다. PC뿐 아니라, 모바일로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추억이 살아 있는 지도, 레코드 부산에서 여러분의 추억을 공유해 보세요.
■ 우리들의 블루스
“1973년도 23세 때 광복동 무아 음악실에서 우리 영감 처음 만나 인연이 되어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지금까지 음악을 사랑하며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요. 부부의 인연을 맺어준 고마운 음악실입니다.(hsuk****)”
3월 시작된 〈부산일보〉 디지털 기획 시리즈 ‘레코드 부산’ 기사에는 독자들의 추억 댓글이 달렸습니다. 추억의 식당 ‘호수그릴’ 편에는 “며칠 전 92세로 돌아가신 울 아부지가 여대생이 된 나에게 양식 먹는 법 가르쳐주신 곳(bene****)”이란 사연이올라왔습니다.
추억의 장소에 담긴 독자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이제는 레코드 부산 홈페이지에서 공유할 수 있습니다. 기뻤던 순간도, 슬펐던 일도, 소소했던 일상도 돌이켜 보면 모두 추억이죠. 여러분의 추억이 담긴 장소는 어디인가요?
■ 추억이 살아 있을지도
홈페이지에 접속해 ‘추억 여행 떠나기’를 누르면 추억 여행이 시작됩니다. 부산 추억의 장소를 배경으로 한 영상이 끝나면, 이 홈페이지의 주인공인 ‘살아있는 지도’가 펼쳐집니다. 이제는 포털사이트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부산의 사라진 장소들이 살아 있는 지도입니다. 미화당백화점, 동래동물원, 호수그릴, 마리포사 등 부산 시민의 추억이 담긴 장소 70여 곳이 표시돼 있습니다.
부산닷컴에 간편 로그인만 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댓글은 글뿐만 아니라 사진으로도 올릴 수 있습니다. 지도에 독자들이 소장한 사진을 더한다면, 독자들의 추억 지도가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지도 위에 내 추억의 장소가 없다면, ‘추억 더하기’ 게시판을 통해 추천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의 많은 공감과 추천을 받은 장소는 자문을 거쳐 순차적으로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레코드 부산 자문위원으로는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 동길산 시인, 이동현 부산연구원 부산학센터장, 이용득 부산세관 박물관장, 차철욱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장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 24일까지 다양한 오픈 이벤트도 마련돼 있습니다. 특별한 사연을 담은 댓글이나, 귀중한 사진 자료 등을 제공한 독자를 선정해 시상품을 지급합니다. 사라진 부산 추억의 장소를 다시 기록하는 레코드 부산을 독자 여러분의 추억으로 가득 채워 주길 바랍니다.독자 여러분이 들려줄 소중한 추억 이야기를 기다리겠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22-10-2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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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부산] 부산 학원계의 전설, 부산학원 '1타강사'들의 근황은?
*지금은 사라진 부산 추억의 장소를 다시 기록하는 ‘레코드 부산’. 그때 그 사람을 만나, 추억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요즘은 ‘학원가’ 하면 흔히 서울 강남구 대치동을 떠올리죠. 2000년대 이전만 해도 부산 역시 서울 못지않게 학원가가 성행한 곳이었는데요.
그중에서도 부산진구 범천동에 있었던 ‘부산학원’은 부산의 대표적인 대형 학원이었습니다. 부산학원은 서울대 130여 명 합격, 상위권 대학 1000여 명 합격 등의 무수한 합격 신화를 써 내려간 곳이기도 한데요. 수강생 수도 많게는 3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당시 부산에서 가장 많은 수강생을 거느린 학원이었습니다.
당시 부산학원은 화려한 강사진으로도 유명했는데요. 과목마다 '1타강사(학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사)'들이 포진돼 있었습니다. 특히 국어 김광휘, 영어 옥진수, 수학 박영돈·김수석 등 유명 강사의 수업은 열렸다 하면, 금세 마감되기 일쑤였습니다.
레코드 부산 일곱 번째 주제는 '추억의 학원'인데요. 부산학원의 1타강사 출신이자 부산 학원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광휘·옥진수 씨를 만나 그 시절 부산의 학원가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김 씨는 1974년 부산학원의 전신인 범일학원 때부터 이 학원과 인연을 맺었는데요. 부산학원이 새 출발을 한 1977년부터 함께하다, 1982년엔 서울의 유명 학원으로 스카우트되었습니다. 그러다 1990년에 다시 부산학원으로 내려와 이후 단과반 부원장을 맡았습니다. 2000년에는 부산의 또 다른 인기 강사, 영어과목의 현광식 씨와 함께 '현광학원'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또 서울 종로학원의 브랜드를 따와 부산 종로학원을 운영하기도 했죠. 이후 은퇴했지만, 제자들의 부탁으로 요즘에도 소소하게 강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옥 씨는 부산학원 초창기에 강사진으로 합류했습니다. 몇 년 뒤 서면 제일학원으로 옮겼다가, 전두환 정권의 7.30 교육개혁조치 이후 다시 부산학원에 복귀합니다. 4~5년 뒤에는 다시 나가 서면문리학원, 한샘학원 등을 거쳐 소수 정예 학원인 성문학원을 차리게 되죠. 현재도 성문학원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김 씨와 옥 씨는 현역 시절 '1타 강사'가 될 수 있었던 비법도 귀띔했는데요.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으로 확인해보시죠.
*'레코드 부산'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출연=남형욱·서유리 기자
그래픽=이지민 에디터
2022-10-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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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부산] 추억 속 양식당 '호수그릴'을 기억하시나요?
*지금은 사라진 부산 추억의 장소를 다시 기록하는 ‘레코드 부산’. 그때 그 사람을 만나, 추억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부산 서면에 30년 넘게 자리를 지켰던 양식 레스토랑, '호수그릴'을 아시나요?
부산 중구 남포동의 '청탑그릴'과 함께 부산의 대표 양식당으로 손꼽히던 곳인데요. 양식 레스토랑이 익숙하지 않던 1972년 문을 열어서 2007년까지, 35년간 운영된 곳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곳에는 손님들의 추억도 켜켜이 쌓여있는데요. 가족 외식부터 맞선, 돌잔치, 회갑연 등 많은 손님이 각자의 사연을 갖고 찾은 곳이기도 합니다.
레코드 부산 여섯 번째 이야기는 추억의 식당 '호수그릴'입니다. 호수그릴의 부사장을 맡았던 최승규 씨를 통해 호수그릴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호수그릴은 미군 하야리아 부대 장교클럽 셰프였던 최기수 씨가 문을 연 식당입니다. 처음 터를 잡은 곳은 서면로터리 인근이었습니다. 당시 부산진경찰서와 부산진구청이 근처에 있어 직장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습니다. 그 이후로 두 번 자리를 옮겨 영광도서 근처에 자리 잡고, 문을 닫을 때까지 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호수그릴은 1997년까지는 아주 전성기였습니다. 특히 졸업식이 몰린 시즌이나 어린이날, 어버이날, 크리스마스와 같은 날은 1~2층 모든 테이블이 만석이고, 대기 손님까지 줄을 이었다죠.
그런 호수그릴에도 IMF라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서면점뿐 아니라 송정해수욕장 앞에 문을 연 분점 '호수 바이칼'도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큰 풍파를 견뎌냈지만, 2000년대 초 아웃백, 빕스, 베니건스, TGI 프라이데이 등과 같은 외국계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의 거센 물결에 결국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산의 오랜 향토 음식점, 호수그릴은 35년의 역사를 끝으로 결국 문을 닫게 됐는데요. 이제는 추억 속 식당이 되어버린 호수그릴의 이야기, 영상으로 만나보시죠.
*'레코드 부산'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출연=남형욱·서유리 기자
그래픽=이지민 에디터
2022-10-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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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부산] 오피스텔이 될 보수동 책방골목 현우서점, 마지막 인사
*지금은 사라진 부산 추억의 장소를 다시 기록하는 ‘레코드 부산’. 그때 그 사람을 만나, 추억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최근 보수동 책방골목에 가보셨나요? 헌책 특유의 쿰쿰하고 정겨운 냄새야 여전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낯선 느낌이 듭니다. 오랜 세월 터줏대감처럼 이곳을 지켜오던 책방 입구에 공사장 펜스가 쳐져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죠.
보수동 책방골목은 2000년 초만 하더라도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인데요. 특히 새 학기만 되면 참고서나 문제집 등을 사러 오는 학생과 학부모들로 북적이던 곳이었습니다.
레코드 부산 다섯 번째 이야기는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37년간 '현우서점'을 운영했던 김인조 사장의 이야기입니다.
현우서점의 역사가 시작된 건 1984년 1월. 직장생활에 싫증을 느끼던 김 씨에게 지인이 책방을 추천해왔습니다. '유망 직업'이라는 말과 함께요. 큰길 쪽에 빈 점포를 이어받아 서점 문을 열었고, 아동도서와 참고서 등을 주로 다뤘습니다. 몇 년 뒤에는 책방골목 메인 거리의 한 모퉁이로 옮겨 장사를 이어갔습니다. 2020년까지 책장사를 했으니, 햇수로 37년간 장사를 한 셈이죠.
워낙 오래 장사를 하다 보니, 학생 때 드나들던 단골 손님이 성인이 되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아내, 아이와 함께 와서 반가운 인사를 건넬 때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죠.
지인의 추천대로 2000년대까지는 호황이었습니다. 특히 1980년대는 책방골목 전성기였죠. 새 학기에는 손님이 너무 많아 끼니 거르기가 일쑤였습니다. 현우서점뿐 아니라 그 시절 책방골목에는 새 학기만 되면 손이 모자라, 식구들을 총동원해 손님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00년 중반부터 변화를 체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책방골목을 찾는 발길이 뜸해졌죠. "옛날에는 '동아 원색 세계대백과사전' 같은 건 선금을 주고서라도 구해달라고 할 정도로 귀한 것이었는데, 요즘에는 백과사전 찾아보는 사람이 어딨어요. 인터넷 찾으면 다 나오는데."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중고 책 거래를 할 수 있게 되면서 골목의 침체 속도는 더욱 빨라졌습니다. 설상가상, 현우서점이 있던 건물이 통째로 매각되면서 김 씨는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곳에 있던 8곳의 서점도 한꺼번에 문을 닫았죠.
김 씨는 장사를 접은 후에도 시간이 날 때면 한 번씩 책방골목에 와보곤 하는데요. 손님이 없는 모습을 볼 때면 그 심정을 알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합니다. 김 씨는 그럼에도 이곳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주변 사장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는데요. 현우서점의 마지막 인사, 영상으로 만나보시죠.
*'레코드 부산'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출연=남형욱·서유리 기자
그래픽=이지민 에디터
2022-09-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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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부산] 그 시절 영화관엔 다 그림 간판이 걸려있었지
*지금은 사라진 부산 추억의 장소를 다시 기록하는 ‘레코드 부산’. 그때 그 사람을 만나, 추억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극장마다 영화 그림 간판이 걸려있던 시절 기억하시나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극장가에서는 그림 간판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극장에는 간판을 그리는 '간판장이'들도 있었죠.
그림 간판 자리를 컴퓨터 그래픽이 대체하면서, 영화 그림 간판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부산에서는 부산극장이 2003년까지 그림 간판을 내걸었지만, 결국 컴퓨터 그래픽에 자리를 내어줍니다.
레코드 부산 네 번째는 부산의 마지막 간판장이 권오경 씨와 함께하는 추억의 극장 이야기입니다.
1978년 처음 간판 붓을 잡은 그는 남포동 극장가의 그림 간판을 보면서 운명 같은 끌림을 느꼈는데요. 그림을 배우고 싶은 생각에 무작정 왕자극장을 찾아가면서, 극장과 첫 인연을 맺게 됩니다. 실력을 쌓은 그는 제일극장, 삼성극장 등 부산의 여러 극장을 거쳐서 부산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극장에 들어갑니다. 처음엔 차석으로 들어갔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이후엔 미술부장 자리를 물려받게 됩니다.
영화 홍보 수단이라고는 포스터와 극장 간판, 신문 광고가 전부이던 시절. 간판은 극장 앞에 선 손님들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요. 이 때문에 극장주들은 더 눈에 띄는 간판을 원했다고 합니다. 극장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터미네이터 눈에 불을 넣거나, 간판을 움직이게 하는 각종 화려한 수법이 등장하기도 했다네요.
그림 간판의 시대는 2000년 초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점차 막을 내리기 시작하는데요. 상영관이 하나밖에 없던 단관 극장에서는 그림 간판이 가능했지만, 상영관이 늘어나면서 그림으로 다 그려낸다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게다가 컴퓨터 그래픽이 발달하면서 굳이 그림으로 그릴 필요가 없게 됐죠. 권 씨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2003년을 끝으로 붓을 내려놓게 됐습니다.
그는 지금이라도 영화 간판 의뢰가 온다면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는데요. 20년 넘도록 수천 개 넘는 간판을 그려온 터라 '몸에 뱄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그 시절의 극장 이야기. 영상으로 만나보시죠.
*'레코드 부산'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출연=남형욱·서유리 기자
그래픽=이지민 에디터
2022-09-2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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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부산] '음악 순례자'들의 성지, 추억의 음악 감상실
*지금은 사라진 부산 추억의 장소를 다시 기록하는 ‘레코드 부산’. 그때 그 사람을 만나, 추억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개인 오디오가 귀하던 시절, 음악을 듣기 위해 사람들은 '음악 감상실'로 모였습니다.
음악 감상실은 차도 마시고 수다를 떨 수 있는 음악 다방과는 달리, 정말 음악을 듣기 위한 곳이었습니다. 극장처럼 의자도 모두 앞을 향해 있고, 조명도 어두운 느낌이었죠. 팝 음악을 주로 다루는 '무아'나 '랩소디' '르네상스' '예그린'과 같은 음악 감상실도 있었고, 또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감상실도 있었습니다.
레코드 부산 세 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무아 음악 감상실 출신의 최인락 디제이, 예그린 음악 감상실 출신의 김현민 디제이를 만나 추억의 음악 감상실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1971년 부산 중구 광복동에 문을 연 무아 음악 감상실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는데요. 당시 2만 3000장이 넘는 음반을 보유했을 뿐 아니라, 고가의 오디오, 수준급 디제이들의 음악 선곡으로 '음악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습니다.
1993년 부산진구 서면에 문을 연 예그린 음악 감상실은 후발 주자에 속했는데요.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뮤직비디오의 시대가 펼쳐지면서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LP보다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시간에 손님들이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친구, 연인이 만나서 갈 곳이 많지 않았던 시절. 그 시절의 청춘들은 대부분 음악 다방이나 음악 감상실을 찾곤 했는데요. 리퀘스트 용지에 꾹꾹 눌러 쓴 신청곡이 나올 때면, 괜히 더 특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죠. 비가 오는 날이면, 음악 감상실 앞에 긴 줄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무아에는 1층부터 4층까지 줄이 이어졌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복도에까지 보조 의자를 깔아야 했다고 합니다.
1980년대 큰 인기를 끌던 음악 감상실은 1990년대 중반부터 하나둘씩 사라집니다. 국민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개인 오디오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더 이상 모여서 음악을 들을 필요가 없게 됐죠. 음악 감상실에 대한 수요가 점점 줄어들면서, 결국 무아와 예그린도 경영난으로 인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현민 디제이는 "예그린이 문을 닫기 전 단골손님들에게 '언젠가는 예그린 음악 감상실을 다시 열겠다'고 약속했는데, 20년이 넘도록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서 아쉬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음악 감상실이 문을 닫은 이후에도 라디오 등을 통해 디제이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두 사람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는데요. 부산 음악 감상실의 상징과도 같은 무아 음악 감상실을 복원하는 꿈입니다. 최인락 디제이는 "처음엔 디제이로 평생을 살아온 우리 두 사람이 위안을 받기 위해 행사를 시작했는데, 의외로 동참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우리 다음 세대에도 이 문화를 계속 향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음악 감상실의 추억, 영상을 통해 만나보시죠.
*'레코드 부산'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출연=남형욱·서유리 기자
그래픽=이지민 에디터
2022-09-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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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부산] 부산대 앞에 최초의 프랜차이즈 카페 '가비방'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부산 추억의 장소를 다시 기록하는 ‘레코드 부산’. 그때 그 사람을 만나, 추억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부산의 대학가에 있던 커피숍 가비방을 기억하시나요?
가비방은 1983년 부산대 앞 1호점을 시작으로, 부산·경남 일원에 47호점까지 갖췄던 커피전문점입니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원조 격인 곳이죠.
상호명 가비방의 뜻은 '옳게 끓인 향기를 서비스한다'라는 뜻. 다방 문화가 익숙하던 시절, 가비방의 핸드드립 커피는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하는데요.
여기 1989년 가비방 공채 1기생으로 입사해, 33년째 바리스타 외길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레코드 부산 두 번째 주인공은 부산과학기술대학교 바리스타과 교수로 재직 중인 박영승 씨입니다.
가비방의 모토는 '커피 문화 사업의 선구자'였습니다. 그 모토에 걸맞게 그는 끊임없이 '개척자'의 길을 걸어왔는데요.
요즘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0잔 시키면 1잔 공짜'와 같은 커피 쿠폰을 처음 만들었고, 생과일 주스계의 혁신 '딸기바나나(딸바)' 메뉴를 만들었다는 다소 놀라운 이야기도 전해줬습니다. 또 달콤한 향이 나는 '헤이즐넛' 커피를 전국적으로 유행시켰다고 하네요.
47호점까지 매장을 낼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가비방. 하지만 1999년 스타벅스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에스프레소 커피의 시대가 오게 되죠.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비방도 점점 쇠퇴하게 됩니다. 가비방은 2010년 해운대점을 끝으로 문을 닫게 됩니다.
그렇게 끊길 줄만 알았던 가비방의 역사가 다시 이어집니다. 박 교수가 상호를 이어받아 부산대 앞에 다시 '가비방'이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연 건데요.
그는 대한민국 최초 커피 프랜차이즈인 가비방의 상호가 이대로 없어지면, 대한민국 커피 전문점의 40년이라는 역사가 없어진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겨 다시 문을 열게 됐다고 합니다. 가비방을 재오픈한 뒤로 50대 이후 분들이 "그때 그 가비방이 맞느냐"고 물어보면서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요.
박 교수는 "유럽의 일리커피나 라바짜 커피처럼 부산을 대표하는 커피로 100년의 역사를 가질 수 있도록 가비방이라는 상호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전해왔는데요.
역사 속에 묻힐뻔한 가비방,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으로 만나보시죠.
*'레코드 부산'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출연=남형욱·서유리 기자
그래픽=이지민 에디터
2022-09-0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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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부산] 짧지만 강렬한, 부산 놀이공원 '미월드'의 추억
*지금은 사라진 부산 추억의 장소를 다시 기록하는 ‘레코드 부산’. 그때 그 사람을 만나, 추억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부산의 마지막 놀이공원 '미월드'를 기억하시나요? 미월드 이후에도 '광안비치랜드'가 운영되긴 했지만, 사실상 놀이공원이라 보긴 어려웠죠.
2004년 4월 부산 수영구 민락동에 문을 연 미월드는 9년간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2013년 6월 문을 닫았습니다.
광안리 인근에 있던 미월드는 당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입장료가 없는 놀이공원이라 정확한 입장객 수를 셀 수는 없었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하루 약 1만 명 정도가 찾는 곳이었습니다. 부산 도심에 있어 규모는 작았어도, 언제든 가볍게 들를 수 있는 놀이공원이었죠. 미월드는 '자유이용권 국내 최저 가격'이란 점을 앞세워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미월드는 2013년, 9년이라는 길지 않은 역사를 뒤로한 채 결국 문을 닫았는데요. 2000년 후반부터 미월드 주변의 아파트에서 '소음 민원'을 제기했고, 결국 '영업금지 가처분 소송'으로 이어졌습니다. 미월드 측이 탑승객에게 마스크를 쓰게 하는 등 궁여지책을 마련했지만 역부족이었죠.
소송에서 패소한 미월드는 결국 운영에 타격을 받게 되는데요. 미월드 코 앞에 또 다른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미월드는 더 이상 놀이공원을 운영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미월드 전 운영본부장 김태훈 씨는 담담하게 미월드 이야기를 이어갔는데요. 힘든 시간을 함께 해준 동료들과 미월드를 찾아준 시민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영상으로 함께하시죠.
*'레코드 부산'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출연=남형욱·서유리 기자
그래픽=이지민 에디터
2022-09-01 [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