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순간 돌이켜 보는 88名勝負](1)피땀이 일군 「88金잔치」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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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金永南



대회 5일째인 9월21일 하오7시50분. 상무체육관에서 벌어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4kg급 결승에서 김영남(金永南·28·동방생명)은 온 국민이 그토록 기다리던 한국의 첫 금메달을 따냈다.

이날 저녁 국내외 보도진 400여명과 5천여관중들 그리고 양정 모(梁正模) 유인탁(柳寅卓) 김원기(金原基) 등 역대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6분간에 걸친 김영남의 사투(死鬪)를 숨죽인 채 지켜봤다.

김은 이날 상오 폴란드의 트라치가 불가리아의 베리체코프를 5-4로 이겨줘 운좋게 조1위로 결승에 올랐다.

이날 결승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관중들은 『영차영차』를 외치며 응원했으나 김이 1라운드에서 소련의 한국계 2세 투틀리 하노프에게 1점을 선취 당하자 실망의 빛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라운드 들어 김이 과감한 공격을 시도, 허리 휘감아 돌리기로 2점을 따내 멋진 역전극을 펼치자 관중들은 목쉬는 줄도 모르고 소리치며 열렬히 응원했다.

어머니가 한국여성인 투틀리 하노프는 이같은 장내분위기에 압도당한 탓인지 후반들어 적극적 공격을 퍼붓지 못했다.

『5 4 3 2 1초, 와 !』 마침내 김영남의 역전승을 알리는 경기종료버저가 『삐이』하고 울리자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김은 껑충껑충 뛰면서 매트를 한 바퀴 돈 뒤 안천영(安川泳)코치를 껴안고 매트위를 뒹굴며 눈물을 흘렸다.

이를 지켜보던 관중들도 감격과 환희에 젖어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애국가를 함께 불렀다.

김은 지난 84년 LA올림픽 때 금메달을 딴 김원기보다 기량이 뛰어나다는 평가에도 불구, 4위의 부진한 성적을 거둬 깊은 좌절감에 빠졌었다.

그러나 김은 『이대로 선수생활을 허망하게 마감할 수는 결코 없다』는 오기와 부인 나향씨(羅香·26)의 따뜻한 위로, 그리고 안코치의 자상한 지도에 힘입어 귀국하자마자 태릉선수촌에 입촌, 피나는 훈련을 거듭해왔다.

동기생인 김원기를 트레이너로 삼아 맹훈련한 각고 4년만에 마침내 「88금」이라는 결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번 올림픽이 나로서는 마지막 기회로 치밀한 계획아래 감독과 똘똘 뭉쳐 비디오분석과 유럽전지훈련 등 최선의 연습을 했다. 특히 지난해 프랑스선수권대회에서 6위에 머무를 때는 고통이 컸으나 이를 교훈삼아 착실한 훈련을 반복한 것이 88영광을 이룩하게 된 힘이 됐다고 생각한다. 『금메달시상식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은 이같은 소감을 피력했다.

lm77의 건장한 체격인 김은 레슬링의 명문 전남 함평농고를 나왔다. 지난 77년 레슬링부 창단 당시만해도 이 학교에는 연 습장조차 없는 상태여서 김은 김원기 등 동료와 함께 새벽4시 에 기상, 매일 6~8시간씩의 강훈을 쌓았다. 수업이 끝나면 책걸상을 치우고 매트대신 짚단을 깔고 연습했으며 시합출전 경비가 부족하면 동료선수 학생 교사들이 힘을 보태줬다.

김영남의 금메달은 이처럼 온국민이 합심해 만든 작품이며 김의 금메달을 기폭제로 한국선수단에는 사상최다의 메달이 쏟아지게 됐다.

[사진]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4kg급 金永南선수는 지난달 21 일 우리나라 첫 金메달의 기쁨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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