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한국체육을 빛낸 스타들] (8) 빙상 배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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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체근력 뛰어난 80년대 최고스프린터

「황색특급」으로 불리는 배기태(裵基兌·단국대학원).빙상하면 으레 배기태의 이름이 연상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그만큼 배기태는 한국빙상이 낳은 최고 스프린터로 80년대를 장식했다.

세계수준급선수부재로 외면을 당해온 한국빙상계에 배기태의 출현은 분명 경사였다.

배기태는 의정부중앙국1년때 빙상과 인연을 맺었다.어린나이에 비해 뛰어난 하체근력이 빙상인의 눈에 띄었기 때문.

국교6년때 서울로 전학한 배기태는 서울고1년때인 80년 청소년대표로 발탁,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이듬해 국가대표가 된 배기태는 당시 한국빙상계의 기라성같은 이영하(李永河·현한체대코치)의 아성을 허물고 한국빙상의 간판으로 위치를 굳혀 나갔다.

86년 삿포로동계아시아경기 스피드스케이팅 1천m에서 우승한 배기태는 87년 세계최고의 스프린터로 우뚝 섰다.바로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였다.

배기태는 500m에서 「마의 37초벽」을 깨는 36초97로 우승해 국내빙상 63년사에 일대 금자탑을 세웠다.배는 이외에도 87년 한햇동안 여섯차례나 국제대회를 석권했다.

배기태는 89캘거리동계올림픽 500m서 5위에 그쳐 동계올림픽 첫금메달의 기대를 무산시켰지만 그해 세계남자스프린트선수권대회(소련) 500m서 36초89로 우승, 건재를 과시했다.

88~89 월드컵시리즈 500m와 1천m에서 종합3위를 차지한 배기태는 89~90시리즈에선 초반에 부진, 세계정상을 바라는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지난16일부터 이틀간 열린 서울3차시리즈에서 현 세계챔피언 우베마이(동독)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말았던 것.

내년 제2회 동계아시안게임(일본)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한 배기태는 일본으로 유학, 교수의 부푼 꿈을 키워갈 예정이다. 아무튼 배기태는 한국빙상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만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一끝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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