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그림이야기-31>박상륭 '칠조어론' 인도.티베트 종교화
어머니와 사별후 이민생활 노정,질척거리는 '고해' 7조로 갈무리
깨달음은 썩어없어질 육신의 병이 있기에 싹트는 법.번뇌와 욕망으로 일렁이는 육신은 깨달음의 덫이지만,벼락치듯 내리꽂히는 돈오의 기항지다.서늘한 깨달음은 질척거리는 고해 속에서,고해로 인하여 있는 것이다.그러니까 번뇌의 덫은 깨달음의 닻이다.
그러나 깨달음이 닻을 내려도 육신은 육신일 뿐,다만 텅 비어있는 (공) 육신일 뿐."제길헐,한 대양이,한 물방울 속으로 흘러들었어도,저 한 물방울의 크기에는 별다름이 없음을!"( 칠조어론 에서)
캐나다 이민생활 28년째인 작가 박상륭(57)의 칠조어론 (칠조어론,문학과지성사)은 그러면서 할! 소리를 내지른다.
생각의 크기나 문체의 특이함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어렵다는 칠조어론 은 90~94년 3부작 전4권으로 출간됐다.모국어가 없는 고독한 섬 캐나다에서 17년의 글쓰기,혹은 글수행 끝에 빚어낸 작품이었다.작가가 택했다는 인도의 종교화를 각권의 표지화로 얹고서였다.
성스럽다는 뱀과 거북(1권),칼을 든 비슈뉴 신(3권),염라대왕을 상징하는 소인 야마(4권)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은 괴기하고 신비적인,그래서 낮설은 느낌조차 준다.또 여신 친나마스타가 남.여신이 몸을 합친 위에 서서 분신에게 생명을 나눠 주는 탄트라 그림(2권)은 아주 육감적이기까지 하다.
다소 생경하고 육감적인 그 그림들은,박상륭의 정신적 스승이 티베트 사자의 서 를 남긴 파드마삼바바라는 사실 쯤으로 가늠된다.티베트(불교)가 동아시아보다는 인도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소설에는 역시 달마가 서역서 파미르의 험준령을 넘어 중국에 몰고왔던 깨달음의 바람이 감돌고 있다.그 서역풍은 2조 혜가,3조 승찬,4조 도신,5조 홍인의 거목을 거쳐 제6조 혜능(638~713년)이라는 동아시아 선종의 훤칠한 봉우리에 이르렀다.그러나 혜능은 더 이상 의발을 전하지 않았을 뿐,그뿐이다.
그래서 박상륭은 소설 칠조어론 에서 가상의 7조를 등장시킨다.작가의 분신인 그 가상의 7조는 젊었을 적 살인 간통 경력이 있는 촛불중 이다.그 촛불중은 한편으로 불교 기독교 정신분석학 무속 연금술 인류학적 지식 따위 사상의 대해에서 나비처럼 나부끼다가도 매처럼 급속 활강한다.그리고는 설한다.썩어 없어질 육신이 있기에 마침내 열반도,깨달음도 있다고.육신을 제대로 깨쳐야 육신을 훨훨 벗어던질 수 있다는 것을.
박상륭에게 육신은 죽음의 병을 앓는 육신이다.그가 제7조 를 탄생시켰던 것은 9할 이 어머니의 때이른 죽음 때문이었다.작가는 병치레 잦았던 어머니가 이 땅의 육체적 생을 마감하자 17세때 고향을 등졌으며,29세때 모국을 등지기에 이른다.캐나다에 가서도 그는 병원 시체실 청소부 일을 했다.
이광수의 무정 이래 가장 좋은 소설로 꼽혔던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 는 그런 노정의 소산물이고 칠조어론 은 그런 노정을 갈무리해 볼 요량으로 쓴 것이었다.
소설의 말미는 짙은 여운을 준다.촛불중의 발바닥에는 고 해 라는 낙인이 각각 찍혀 있었다.그는 선종의 초조 달마처럼 관속에다 신발 한짝을 남기고 홀연히 떠난다.그래서 촛불중이 신발 한짝만을 신고 지나간 자리에는 다음의 족적이 남는다.무-고-무-고-무고,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