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이들이 그리워 하는 것
소설가 김헌일, 중편 모음집 '회색강'
소설가 김헌일(사진)의 첫 소설집 '회색강'(전망 출간)은 조금 색다르다.드물게 중편(4편)만을 모은 소설집이며 또 등단 15년만에 내는 첫 소설집인데 작품 해설없이 단출하다.
그는 '소설 이해에는 도움을 주겠지만 해설자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작품해설을 뺐다'고 특유의 낮은 어투로 조근조근 얘기했다.
'뭔가를 지루하지 않게 얘기할 수 있는 200자 원고지 300매 안팎의 중편을 좋아해요.' 요컨대 단편은 너무 짧고 장편은 너무 길어 중편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소설의 배경도 좀 색다르다.광주민중항쟁 10여년후의 화해 과정을 담은 1편을 빼면 3편이 각각 알래스카,하와이,태평양 바다 위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그는 항공사에 23년간 근무했었다.
그의 소설은 시원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표제작 '회색강'의 한 구절.'사람들은 너무나 지쳐있어.지금 우리에겐 어떤 것이 필요해.그런데 그것이 무엇일까?' 알래스카는 영하의 몇십도의 추위에 짙은 어둠이 더하면 더욱 외로운 곳이다.한밤 중 허공에 총질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된 사내의 말은 '외롭다' 한마디 뿐.
회색강은 알래스카 크닉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크닉 강을 말한다.웅대한 자연을 느끼게 하는 그 빙하는 세상이 시작되는 곳,무엇하나 더하거나 뺄 것이 없는 곳이다.그는 '가장 이국적인 풍광 앞에서 고향의 모습(시원)을 느꼈던 알래스카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망망대해의 항해 체험이 담긴 작품이 '전갈자리'.'망망대해의 정체는 바로 그리움이었다'.산에서 사람을 만나면 오싹해지지만 바다에서는 저 너머서 배 한 척만 지나가도 좋아서 펄펄 날뛴다.
이 중편은 그 바다 체험 뒤 주인공이 세상,가족사와 화해를 한다는 얘기다.
또 광주민중항쟁에다가 제주도 4.3사태를 겹쳐 나가면서 항쟁 당시의 진압군과 항쟁 때 형을 잃은 청년이 다 같은 시대의 피해자로서 화해하는 모습을 담은 '고백'도 잘 읽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소설쓰기는 정말 힘들다',그리고 '그 성취감은 대단하다'고 말했다.그는 86년 부산문화방송 신인상,계간 '한국소설'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부산소설가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최학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