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스타] ⑥ 핸드볼선수 이상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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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키워 올림픽 金 재도전해요'

이상효씨가 1988년 서울올림픽 동독전에서 수비수를 뚫고 슛을 날리는 장면.

'올림픽 금메달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핸드볼 스타 이상효(43·부산 문현여고 교사)씨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1979년부터 9년간 국가대표로 뛰면서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올림픽 은메달을 따냈지만 아직도 만족하지 않는 그는 지도자로서 다시 올림픽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씨는 부산 동아고 3학년때 태극마크를 단 이후 한국 남자핸드볼의 도약을 이끌었다. 아시아최강 일본의 벽에 막혀 국제무대에는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던 한국 핸드볼은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낸 데 이어 이듬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최초로 일본을 제치고 정상에 섰다.

1986년에는 아시아경기대회 출전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냈고 1988년에는 그동안 본선진출도 이루지 못했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씨가 함께한 대표팀 역사에는 이렇게 '사상 최초'인 것들로 가득하다.

1988년 올림픽 이후 몇몇 동료들은 일본과 유럽리그에 진출했지만 그는 국내에 남았다. 높은 연봉에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고 체력적으로도 자신있었지만 미련없이 선수생활을 접었다. '제2의 도전'인 교직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그는 이미 4년 전부터 교사 발령이 나 있던 상태였다. 부산대 사범대를 졸업한 1984년,부산진여상에 발령 받았지만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던 까닭에 교사생활을 미루고 태릉선수촌에 들어갔던 것.

선수생활을 하면서도 늘 교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그였지만 달리기조차 싫어하는 여고생들을 지도하는 것은 쉽지않은 일이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결국 눈높이를 낮추기로 하고 쉽고 재미있는 운동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자 학생들도 조금씩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는 초보교사 시절이 국가대표 선수로 뛸 때보다 더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아쉬움을 간직한 그는 선수 육성에도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다. 교직을 시작하면서 바로 핸드볼부를 맡은 것. 코치도 없이 직접 팀을 지도하느라 퇴근은 항상 늦었고 대회 참가 뒤에는 빠진 수업을 보충해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다른 비인기종목들처럼 핸드볼이 처한 갑갑한 현실은 넘어야 할 또하나의 벽. 관심이 얕은 까닭에 선수수급 자체가 어려워 중학교,심지어 고교 진학후 처음 핸드볼 공을 잡은 선수도 있었단다. 아이들이 체력 부족으로 기술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는 것도 고충의 하나.

그러나 꾸준히 노력한 결과 전국체전 은메달 2개,동메달 2개 등 나름대로 성과도 거뒀다. 지금도 그는 선수들에게 한발 더 움직일 것을 강조하면서 수준에 맞는 연습프로그램을 짜는데 고심하고 있다.

이씨는 2002년부터 대한핸드볼협회 심판부장도 맞고 있다. 핸드볼 발전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지난해 핸드볼협회 조사연구원으로 크로아티아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에 참가해 대표팀 정보수집의 첨병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70년대까지 일본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던 한국 핸드볼이 80년대 초반 한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86·88'을 목표로 집중 투자한 덕분'이라는 것이 이씨의 진단. 그는 '핸드볼 중흥을 위해서는 어린 선수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목표설정이 필수적'이라며 '후배들이 올림픽 시상대에 다시 한번 설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종우기자

kjongwoo@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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