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스타] ⑩ 테니스 선수 전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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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택 같은 진주 다시 캐내야죠'

한국인 최초로 세계프로테니스협회(ATP) 투어대회에서 우승한 이형택(28·삼성증권)이 인천 공항으로 귀국하던 지난해 1월. 이형택은 마중나온 인파속에서 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한걸음에 달려가 부둥켜 안았다.

이형택과 함께 눈물을 훔치던 그는 70~80년대를 풍미했던 테니스 스타 전영대(44·건국대 감독)씨. 그는 '한국 테니스의 희망' 이형택을 길러낸 대학시절 은사였다. 당시 이형택은 '감독님을 만나자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올랐다'며 감격에 겨워했다.

1989년 은퇴한 뒤 1990년부터 건국대 테니스부를 지도하고 있는 전씨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상대를 쉬지않고 몰아칠 수 있는 공격적인 경기 운영과 강한 체력이라고 말한다. 선수를 보는 눈이 탁월해 '스카우트의 귀재'로도 불리는 그는 얼마나 공격적으로 경기를 하느냐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단다.

지난 1997년 시실리 유니버시아드를 앞두고 이형택을 국가대표로 선발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다. 선발전에서는 탈락했지만 공격적인 외국선수들에 맞서기에는 최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주변에선 특혜를 줬다고 수근거렸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고 이형택은 금메달로 답했다.

전씨가 지도하고 있는 건국대는 지난 1992년부터 12년간 매년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한 대학최강. 지금까지 각종 전국대회에서 50번이 넘는 우승컵을 안았고 한 해 모든 대회를 싹쓸이 한 경우도 있었다. 대한테니스협회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 부진을 계기로 전씨에게 감독직을 맡긴 것도 그의 지도력을 인정한 결과. 그는 199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 2 은 3개를 따내는 성과를 거뒀다.

그가 지도자로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공부하는 지도자'로 남다른 노력을 펼쳤기 때문. 마산 창신중 2학년때 처음 라켓을 잡은 후로 마산고 건국대를 거치는 동안 전문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던 그는 건국대 감독 부임 직후 자비를 들여 1년 6개월간 미국 연수를 떠났다.

미국에서 세계 테니스의 흐름에 눈뜬 그는 귀국후 당시 국내서 주류를 이루던 클레이코트 대신 하드코트를 찾아다녔다. 투어대회의 80%가 하드코트에서 열리는데다 강서브와 공격적인 플레이가 위주인 하드코트에 적응하는 것이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하드코트는 그에게 특별한 인연을 맺어주기도 했다. 70년대말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하드코트를 이용하다 당시 KAIST 부원장으로 열성적인 테니스 동호인이었던 윤여경 박사와 알게 됐고 이후 자연스럽게 윤 박사의 가족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그러던 중 사진에 취미가 있었던 윤 박사의 딸 경미(44)씨가 전씨의 경기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줬고 두 사람은 결국 부부의 연을 맺게된 것.

전씨는 국내 테니스 열기가 80년대에 비해 많이 식은 현실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최근 이형택 조윤정이 투어대회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국내무대 선수들의 인기는 오히려 떨어졌기 때문.

올해부터 대한테니스협회 강화위원장도 겸하고 있는 그는 비중있는 대회를 부산 등 지방에서 개최해 국내선수들을 전국 동호인들에게 알리는 방법을 강구중이다. 그 첫번째 시도로 내년 데이비스컵 지역대회를 부산에서 여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전지훈련장인 경남 창원시 시립테니스장에서 선수 지도에 열중하고 있는 그는 '제2,제3의 이형택을 배출해 또다시 테니스 열풍이 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종우기자

kjongwoo@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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