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삶 같은 정치와 드레스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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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전 서울미대 교수·아웃사이더 편집위원

'이게 뭐야,옷이!' '퇴장해,퇴장!' 지난해 4월 29일,16대 국회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재보선에서 당선된 당시 개혁국민정당의 유시민 의원이 평상복 차림으로 선서하려 했다. 그는 하얀 면바지,청색 재킷,회색 티셔츠,밤색 캐주얼화 차림으로 국회 단상에 섰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구 종말의 징조나 본 것처럼 혀를 차며 퇴장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1년이 지난 오늘,국회는 어떤 모습인가. 격세지감! 점퍼와 농민복 차림을 한 민주노동당 의원(당선자)들을 잘 지켜보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17대 국회 개원 때도 그런 평상복을 입고 의정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지구 종말의 징조는 아직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돌이켜 보면,유 의원의 국회 평상복 논란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국회의 역할과 기능뿐만 아니라 정당과 의원의 정체성을 재고할 수 있는 중요한 화두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의원은 정장 차림으로 차떼기 현금수집 및 각종 부패선수권대회를 일삼겠다고 선서하지 않는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책임감을 가지고 의무를 다하겠다'고 선서한다. 또한 이들이 지켜야 할 국회법에는 의원의 옷차림에 대한 규정도 없다. 따라서 유 의원이 선서를 앞두고 밝힌 선서문 내용을 보면 돌출행동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그는 자신의 옷차림에 대해 '국회는 제 일터가 됐고,저는 일하기 편한 옷을 입고 싶은 것뿐이며,이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고 했다.

또 그는 '서로 다름에 대한 존중과 관용' 차원에서 의정활동을 하려는 자신을 격려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원인은 옷차림의 사회적 약속,즉 '드레스 코드'에 확신이 없었던 유 의원과 민생은 안중에도 없고 구태와 권위로 가득찬 국회의 관행에 있다. 그동안 국회가 보여준 망국적 행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련다. 다만 당시 유 의원이 자신의 이유 있음에 대해 더 이상 소신을 보이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 일상 삶과 정치를 연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그는 30일 선서 때,정장과 넥타이를 매고 나와 해프닝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말았다. 만일 자신의 옷차림에 대해 확신이 있었다면 그는 이렇게 주장했어야 했다. '이 평상복 차림은 개혁국민정당의 당복입니다. 각 정당의 정책과 이념은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회엔 서로 아무런 차이 없이 정장과 넥타이를 공동 유니폼처럼 입고 있습니다. 국민과 함께 하는 저희 개혁당은 말뿐이 아닌 행동적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앞으로 당 차원에서 평상복을 입기로 했습니다. 서로의 다름에 대한 존중과 관용에 기초해 의정활동을 하려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옷차림을 자신의 정체성을 비추는 거울이 아닌 단지 '사치와 유행의 상징' 혹은 '꾸며진 감각' 쯤으로 생각한다. 유 의원의 행동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이들은 '튀어 보려고 그랬지?'에서부터 '패션 퍼포먼스…' '옷에 신경쓰지 말고 정치나 잘하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편견을 버리라. 옷차림은 단순히 치장이 아니라 개인과 집단의 라이프스타일과 이념을 반영하는 일상 삶의 정치학인 것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한 시민군의 옷차림이 절대군주시대와 어떻게 구분되었는지 보자. 그들은 노동에 불편한 화려하고 장식적인 의복 대신에 인간신체의 활동성에 전제된 옷차림을 했다.

따라서 국회가 일하는 곳이니 평상복을 입겠다는 유 의원의 생각과 행동은 인간 문화사의 차원에서 분명히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민노당의 강기갑,단병호 의원(당선자)의 옷차림에 비하면 왠지 머쓱해진다. 그들의 옷차림에선 일하기 편한 옷을 넘어서 일상 삶 자체의 '실존 미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단형 고급 승용차 일색의 국회 앞마당에 강기갑 의원의 자가용인 트럭이 주차해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빙그레 웃는다.

곧 우리에게도 '삶과 같은 정치의 시대'가 가까이 왔음을 말해주는 멋진 징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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