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폭력 노출 '사각지대'
의료기 파손·행패부리기 예사
CCTV에 찍힌 난동 현장. 혈액공급기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지난해 12월 초 새벽 2시께 부산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팔에 상처를 입은 젊은 남자 등이 들어왔다. 이들은 예진실 앞 의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의료진이 무성의하다면서 소란을 피웠다. 환자는 혈액공급기를 바닥에 쓰러 뜨리기도 했다.
신고를 받은 정복 경찰관들이 응급실로 왔으나 적극적으로 제지하지는 않았다. 경찰관들은 이들과 몇 마디를 나눈 뒤 돌아갔다.
응급실 벽에는 '누구든지 (중략) 의료기관 등의 응급의료를 위한 의료용 시설·기재·의료품 기타의 기물을 파괴·손상하거나 점거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응급실 관계자들은 '경찰에 신고를 해도 상황이 끝난 뒤에 오기 일쑤이고 그마저도 쓱 둘러보고 가 버리는 경우가 많아 요즘에는 신고도 잘 안한다'고 말했다. 청원경찰들은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맞고소 사태가 벌어지면 양쪽 다 처벌 받기 때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의료진도 참고인으로 불려다니는 게 싫어서 분을 삭이고 마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
이와 관련,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조석주 교수는 '싱가포르의 경우 종합병원급 응급실 안에 경찰을 상주시키고 있는데,그게 어렵다면 무인카메라에 촬영된 내용만으로도 난동자를 처벌하는 등 경찰의 개입 정도를 강화하고 음주 난동자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 방침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광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