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수장 잃은 EBS호
배동진기자
고석만 사장이 갑자기 떠나버린 17일,서울 도곡동 EBS 사옥의 직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고 사장이 전날 MBC 사장 후보에 나서겠다고 사의를 표명했고 임명권자인 방송위원회는 바로 다음날 좌고우면할 것 없이 사표를 수리해버렸다.
그렇게 고 사장은 떠났지만 정작 MBC 사장 선임 주체인 방송문화진흥회에선 그를 아예 첫 관문인 최종 후보군에서 제외해버렸다. 선정 직전 MBC 노조에서 고 사장을 겨냥해 '임기를 다하겠다는 직원들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사람'이란 내용의 성명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당초 유력 후보로 떠올랐던 고 사장에게는 적지않은 충격이었을 게다.
하지만 1년여만에 '자리 잃은' 고 사장보다는 '수장 잃은' EBS호의 앞날이 더 걱정이다. 지상파 DMB사업자 결정과 수능방송 2년차 시작을 코앞에 두고 있고,KBS수신료 지원금 인상도 추진 중인 상황이었다. 이를 뱃머리에서 진두지휘해 온 고 사장은 사의 직전까지도 관련 회의를 챙겼다고 한다. 이유야 어쨌든 EBS는 마치 전속력으로 달리던 배가 졸지에 선장을 잃은 모습이다.
사실 EBS 노조는 고 사장의 사퇴를 극구 만류했다고 한다. 추진 중인 현안들을 마무리하고 MBC 사장으로 가는 게 좋겠다며 시기상조라고 조언한 것. 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떠나있었다. 임기를 1년 5개월이나 남겨둔 채 말이다.
EBS의 한 간부는 "도대체 MBC 사장 자리가 뭐기에 EBS를 이렇게 통째로 흔들 수 있는가. 수능방송의 성공으로 모처럼 직원들의 자부심이 컸는데 이번 사태로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다"며 낙담한 모습이었다. 고 사장은 물론 더 큰물에 가서 자신의 의욕을 펴고 싶었을 게다. 하지만 그의 이른 행보는 EBS,MBC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무릇 일에는 때가 있다'란 순리론이 새삼 떠올려진다. djb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