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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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군정 반대로 수감된 해 공직 시작

고건 전 총리는 키가 180㎝로 동년배에 비해 유난히 큰 편이다. 그의 미니홈피에 실려있는 고등학교·수습행정사무관 시절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아래엔 "균형감 있는 사진을 위해 가운데에 서는 버릇이 생겼다"는 글이 실려있다. 그의 큰 키는 철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아버지 고(故) 고형곤 옹으로부터 물려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고 전 총리가 행정고시에 합격해 내무부 지방국의 수습행정사무관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1962년에 군정 반대의 선봉에 나섰다가 옥고를 치렀다. 다음해에는 총선거에서 통합야당인 민정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고 당시 윤보선 야당 대통령 후보 아래에서 당의 정책위원장과 사무총장 등의 요직을 맡았다.

군사정권 시절 야당 정치활동의 선봉장 역할을 하셨던 아버지 덕에 고 전 총리의 초반 공직 생활은 가시밭길이었다. 그는 "고시 합격자들은 1년 반 후 자동적으로 수습 딱지를 떼고 중앙부처의 계장이나 지방의 군수 등의 보직을 받도록 돼 있었으나 나만은 예외였다.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나에게만 보직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1975년 전라남도 지사를 시작으로 교통부 장관 및 농수산부 장관,내무부 장관,2번의 서울시장,국무총리 등의 자리를 거친 고 전 총리는 '행정의 달인'으로 불린다. 본인 역시 이 같은 자신의 별명에 만족을 표한다.

고 전 총리는 오랜 공직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소추 사태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것을 꼽는다. 그는 "국내·외로부터 그 기간 국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가위기 시에 국가관리의 리더십과 국민들의 신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러차례 정권이 바뀌는 동안에도 고위 공무원으로 자리를 지킨 그를 '처세의 달인'이라 평하기도 한다. 그는 "나는 특정 정권에 봉사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봉사를 해왔다"고 강조했다.

대권주자로서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고 전 총리가 최근에 강조하는 이미지는 '알따남'이다. '알따남'은 알고보면 따뜻한 남자의 준말로 그동안의 행정가로서의 딱딱한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행보 중 하나이다.

2000년 서울시장 시절,시청에서 처음으로 수화교실을 열었고 자신이 학생이 되어 제1회 수화교실 졸업장을 받은 것 역시 그의 따뜻한 면을 보여주는 일화. 그는 "여자로 태어났다면 어머니 말씀대로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된 후,지금쯤 '봉천동 슈바이처'처럼 가난한 분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완월동 넘어가는 버스로 통학도 했고 자갈치시장에서 아침 저녁으로 통근선을 타고 다닌 기억도 있다"며 부산에 대한 추억을 더듬는 고 전 총리는 부산에 거주한 경험이 있다. 6·25 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와 2년 동안 송도에서 살면서 서대신동에 있는 피난학교를 다닌 바 있다는 그는 "그때 다른 가족들처럼 우리도 그대로 정착했다면 지금 부산 시민이 됐을 것"이라며 부산과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박소윤기자 sypark@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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