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제오르지오 이야기 /이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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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제물 강요하는 흉악한 용에 맞서…

애니메이션 '슈렉'을 보면, 슈렉이 불을 뿜는 무시무시한 용에 맞서 싸우며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용을 무찌르고 가련한 공주를 구한다는 모티프는 사실 그 시원(始原)을 찾아가면 중세 유럽의 '황금전설(Legenda aurea)'에 이른다.

그 속에 순교 성인(聖人) 제오르지오(St. Georgius)란 인물이 있다. 그에게는 유명한 전설이 따른다. 어느 나라에 용이 나타나 여인을 제물로 바쳤는데, 성인이 "예수를 믿으면 용을 죽이겠다"고 제안했다. 임금과 백성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 성인은 창으로 용을 찔러 죽였고, "하느님을 믿고 가난한 사람들을 잘 돌보라"는 부탁을 남기고 떠났다. 그의 이같은 영웅적 이야기는 라파엘로나 루벤스 등의 그림에 생생하게 묘사돼 지금까지 전해진다.

새로 나온 '제오르지오 이야기'(이창우 글·그림/으뜸사랑/1만1천원)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동화쯤인데, 성인 제오르지오를 모태로 지어졌다.

책의 첫 장을 펼치면 먼저 가시덩쿨(나중에 보니 그건 용이 내뿜는 시뻘건 불길이다)을 관통하는 칼의 그림과 함께 '진정한 용기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라는 한 줄 글귀가 보인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전하려는 바를 그렇게 처음부터 간명하게 제시한다.

책 속의 제오르지오는 성인 제오르지오와는 달리 거룩하지 않다. 화자(話者)는 그가 코흘리개 때부터 타고 다니는 늙은 말 다니엘. 다니엘이 보기에 제오르지오는 늘상 천방지축이며 근거 없는 자신감에 큰소리만 앞선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제오르지오는 악어의 공격에 대책없이 덤벼들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한 마귀의 유혹에는 제꺽 넘어가버린다. 그때마다 다니엘이 구해준다.

그런데 제오르지오는 툭하면 칼이 싫단다. "다니엘! 이제는 내가 칼을 휘둘러야 할 일은 없을 것 같아! 이 칼은 필요없다구!"

어느 마을, 불을 뿜는 흉악한 용이 마을 사람을 괴롭히고 처녀를 제물로 바치라고 강요한다. 비분한 제오르지오는 다시 칼을 든다. "나의 목숨을 버리겠다!" 다니엘이 보기에, 이번의 큰소리는 허풍이 아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괴물. 하지만 제오르지오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기적이 일어났다. 잠깐 비친 달빛이 용의 눈을 부시게 하는 순간 제오르지오의 칼은 용의 눈에 깊숙히 박힌다. 평온을 되찾은 마을. 머물러달라는 사람들의 간청을 정중히 거절하고 제오르지오는 고향으로 떠난다.

그런데 제오르지오의 칼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다. 다니엘이 허둥대며 찾아보지만 없다. 하지만 제오르지오는 이상하게 평안한 모습이다.

전설의 성인 제오르지오는 용을 물리치며 그 왕국과 신앙을 거래를 하지만, 여기 제오르지오는 아무런 조건도 없다. 그저 한 생명을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울 뿐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런 용기를 갖게 했음은 물론이다.

지은이는 현재 계원조형예술대학 교수인 일러스트레이션 전문가. 그림체가 깔끔하고 동화적이다. 일부러 4각형 박스 안에 맞춰 그림을 그려, 마치 영화를 감상하듯 화면을 보고 넘길 수 있다. 임광명기자 kmyim@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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