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문의 왜는 가야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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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박물관 '한일문화교류' 학술대회서 신경철 교수 주장

일본 오사카에서 출토된 토기인 하지키(황갈색)와 스에키(회갈색). 사진 제공=부산박물관

광개토대왕비문에 보이는 '왜(倭)'는 가야일지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와 신라를 파해 신민으로 삼았다'는 비문의 내용도 사실은 왜가 건너온 게 아니라 한반도에 있던 가야, 다시 말해 왜계 가야인을 지칭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부산박물관이 주최해 30~31일 부산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 '한일문화교류-그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며'에서 신경철 부산대 고고학과 교수는 '고고학으로 본 한일 교류'라는 기조 강연을 통해 다소 파격적인 논리를 전개한다.

주장의 근거는 이렇다. 3세기 말 한반도 남부는 대변혁의 시기였다. 순장풍습이나 도질토기, 오르도스형 동복, 승마용 철제갑주 등 중국 동북 지역의 물질문화와 정신문화가 대폭 반영된 시기다. 그런데 김해 대성동 29호분이 축조되던 이 시기에 낙동강 하류 지역에 이전에는 확인되지 않던 일본계 토기인 하지키(士師器)가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다.

문제는 4세기 전반이 되면 일본의 하지키와는 무관한 한반도 남부의 독자적인 하지키가 확인된다는 고고학적 사실이다. 토기 표면을 물손질로 다듬었다는 점과 반원형의 손잡이가 부착됐다는 점은 일본에서 만든 하지키와는 뚜렷한 차이점들. 이는 3세기 말~4세기 초 일본에서 가야로 건너온 왜인들이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살았고, 그 후손들이 토기를 제작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 하나 일본식 하지키가 가야무덤에 부장된 예는 찾아볼 수 없는데 비해 가야식 하지키는 가야의 분묘에 다량 부장되고 있다. 왜인들이 가야 주민으로 편입됐음을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가야식 하지키가 김해 대성동 고분과 동래 복천동 고분을 비롯한 가야의 수장급 고분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는 점에서 토착계 가야인과 귀화인인 왜계 가야인 간에 차별이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신 교수는 주장한다.

신 교수는 논의를 확장해 광개토대왕비문에 보이는 '왜'를 긴키(近畿)나 기타큐슈(北九州)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는 고대사학계의 추론과 달리 고구려가 가야와 왜를 동일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금관가야의 몰락을 상징하는 대성동고분군의 축조중단에 맞춰 일본 열도에 걸쳐 발견되는 가야토기와 가야토기에 전적으로 영향을 입은 초기 스에키(須惠器)는 한반도 남부 주민이 일본으로 이주한 산물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폈다.

이상헌 기자 t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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