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역사] 김기수, 한국 복싱 첫 세계챔피언(1966.6.25)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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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한국 복싱 첫 세계챔피언(1966.6.25)

1966년 6월 25일 WBA(세계복싱협회)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전이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졌다. 챔피언인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에게 한국의 김기수가 도전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첫 복싱 세계타이틀전을 보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6천500여 관중이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벤베누티는 그때까지 65전승을 거둔 강자. 김기수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벤베누티와 맞붙어 패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는 예상을 뒤엎고 초반부터 접전으로 전개되었다. 김기수는 벤베누티의 빠른 공격을 위빙과 안면 커버로 막아내면서 강한 양 훅과 카운터 펀치로 응수했다. 9회 벤베누티의 강펀치에 턱을 맞아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10회에 곧바로 반격해 벤베누티의 콧등을 찢기도 했다. 11회 이후엔 치고 빠지는 작전으로 착실히 점수를 보탰다.

15회 종료 후 채점 결과 한국과 이탈리아 부심은 서로 엇갈린 점수를 매겼다. 마지막 주심의 점수는 74-68, 김기수의 우세였다. 2-1 판정승. 김기수는 새 챔피언에 등극했고, 이는 한국에 복싱이 전래된 지 반세기만의 첫 세계챔피언 탄생이었다. 승리가 확정되자 장충체육관은 떠나갈 듯 함성이 울렸고, 라디오와 TV에 눈·귀를 기울이던 국민들도 감격에 겨워 환호했다. 김기수는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 경기는 하마터면 열리지 못할 뻔 했다. 국민소득이 200달러를 갓 넘던 시절, 주최측은 벤베누티에게 지급할 대전료 5만5천달러를 경기 당일까지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자 벤베누티측은 대전료 선불을 요구하며 경기 시작 전 짐을 싸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가버렸다. 결국 정부가 나서 대전료 지불을 보증함으로써 타이틀매치가 치러지게 되었다. 한국의 첫 챔피언 벨트에는 시대의 가난과 열망이 베여 있었다. 정광용 기자 kyjeong@


△진단학회 국사교과서 첫 배포(1946.6.22)

△일본 오다 노부나가 출생(1534.6.23)

△남북한 쌀 제공 계약 합의(1995.6.24)

△조선-이탈리아 수호통상조약(1884.6.26)

△5공화국비리특위 구성(1988.6.27)

△영국 국왕 헨리 8세 출생(149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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