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의 영화랑] 설레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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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시네마테크 부산에선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회고전이 열린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구로사와의 명성이 얼마나 높은지 서울 영상자료원에서 이달에 먼저 열린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은 남녀노소 관객들로 인산인해였다.

비교적 한적한 곳에 위치해 찾는 사람들이 적은 영상자료원의 평소 형편에 익숙해 있던 필자는 구로사와의 영화를 보려고 줄을 서있는 관객의 행렬을 보고 경악했다. 심지어 1980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카게무샤'는 표가 없어 많은 관객이 돌아가야 했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필자의 뒷자리에 앉았던 어느 노인들은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봤다고 칭찬했다. 오래된 일본영화를 트는 자리에 가면 꼭 이런 분들을 접할 수 있다. 영화도 좋지만 그 기저에는 일제강점기에 청춘을 보낸 당신들의 기분을 반추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본 '카게무샤'는 품격이 있었다. 우선 우리 돈으로 환산해 약 1천억 원의 제작비가 든 이 영화의 스케일에 기가 질리는데 일본에선 제작비를 댈 수가 없어 미국의 스티븐 스필버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등이 제작비 조달에 도움을 줬다.

전국시대에 다케다 신겐,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영주가 대립하던 시기에 가장 강성했던 다케다 신겐 부대가 패배해 역사에서 사라졌던 사건을 소재로 한 '카게무샤'에는 대규모 전투장면이 몇 차례 나오지만 활극의 재미보다는 전투에 임한 인간들의 반응을 주로 담았다.

수천 명의 엑스트라와 말들을 동원해 이런 연출을 한다는 게 대단하지만 보고 나서 뭔가 허전해 좀 자극적인 재미를 찾을 요량으로 우위썬(吳宇森)의 '적벽대전'을 DVD로 다시 봤다. '적벽대전'도 전투장면의 정교함 면에선 굉장히 잘 만든 영화인데 '카게무샤'를 보고 나니 이상하게도 천해 보였다. 오래 숙성된 담백한 장인의 음식에 반했다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입맛을 버린 느낌이었다. 역시, 이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요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서구에서는 일본적이라고, 일본에서는 서구적이라고 평가받았던 감독이다. '카게무샤'의 제작비 조달을 도와줬던 이들이 스필버그나 코폴라였던 건 그들이 구로사와에게 부친과도 같은 육친의 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구로사와의 영화에서 존 포드의 서부극을 다시 보는 듯한 감격을 보았다. 영화학도 시절 구로사와의 영화를 독창적이지 않다며 은근히 폄하했던 필자는 요즘 다시 그의 영화를 보며 은근히 부끄러움을 품는다.

구로사와의 영화에는 우리가 섬나라 근성이라고 말하는 편견이 먹힐 곳이 전혀 없다. 매우 대륙적인 스케일을 갖고 그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통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특히 1950년대부터 1960년 중반까지 그가 연출한 영화의 질은 세계영화역사에서도 최상의 자리에 올라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구로사와의 영화세계 전편을 무료로 상영하는 시네마테크 부산의 8월 행사를 많은 분들이 즐기시기를 바란다. 휴가철이라 생각나는 영화들이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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