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 기자의 열린 건축 이야기] ⑧ 김해 활천동 주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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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나눠 놓은 건 오직 빛과 그림자

사진은 김해시 삼정동 '활천동 주민센터' 내부. 윤민호 프리랜서 yunmino@naver.com

행정기관과 주민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하나는 소통일 게다. 그렇다면 행정의 소통은 무엇으로부터 올까? 행정의 투명성도 있을 터이고 권위의 탈피도 있을 터이다. 그리고 여기에 곁들여 친숙의 공간이 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터이다. 헌데 이 모두를 건축이 어느 정도 일조할 수 있다면?

어떤 건축은 사람을 모으고 만나게 하는 반면, 어떤 건축은 사람들을 흩뜨리고 소외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활천동 주민센터'(김해시 삼정동)는 '친숙의 공간'으로 성큼 다가온다. 친숙을 통해 소통을 꾀한 것. 먼저 '활천동'이란 주민센터의 명칭부터 친숙의 정감이 깊게 묻어 있다. 법정 동인 삼정동 대신 행정 동 명칭이자 주민들의 입에 더 자주 오르내리는 활천동을 센터 명칭으로 가져온 것은 지역 주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소통의 의지로 읽힌다.

남북으로 확 트인 출입구
주민 접근도 크게 높여

3층까지 뻥 뚫린 공간
유리벽 사이엔 작은 안마당

숨바꼭질하듯
자리잡은 발코니도 '눈길'

'활천동 주민센터'는 김해소방서에서 한 블록 안으로 들어가 김해시청 쪽을 바라보고 50여m 거리에 있다. 활천동 주민센터는 당초 이곳에 있던 주민센터(옛 동사무소)를 허물고 지난 2008년 9월 착공, 올해 1월 공사를 끝냈다. 공사비는 63억 원이 들었다.

북쪽 '동사공원' 일부를 제외하곤 빌라와 아파트가 사방으로 빙 둘러 감싸고 있는 형태다. 대지면적 2천25㎡(700여 평)에 건축면적 969㎡(연면적 3천242㎡)의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지만 외벽은 개방성의 이미지를 갖는 유리와 따스함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베이지색의 샌드스톤을 사용했다.

활천동 주민센터를 설계한 '건축사사무소 창명'의 정명석 건축사는 "설계 시 가장 중점적으로 신경을 썼던 것은 주민들을 위한 친숙의 공간으로 주민센터를 만드는 것이었다"면서 "행정의 공간을 주민의 공간, 친숙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은 계속된다. "센터 내에 기본적으로 도서관과 에어로빅실, 헬스장, 동아리방 등을 갖추어 놓았더라도 이를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주민센터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행정업무 공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주민시설은 행정 업무 시간 외에도 주민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주민 접근 동선을 남쪽과 북쪽에 각각 하나씩 더 만들었다. 주민 동선이 건물 앞뒤로 있다 보니 특별히 건물 앞뒤 구분이 없는 것도 이 건물이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앞과 뒤를 열어둠으로써 주민과 소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상이랄까.

건물 안으로 성큼 들어가 보자. 1층에 진입하는 순간, 개방감이 물씬 묻어난다. 한눈에 민원실의 천장 부분이 3층까지 트여 있음을 느낀다. 벽이 소통의 방해 요소라고 볼 때 민원실에서 시야를 가리는 부분은 없다.

민원실 앞으로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미니 안마당이 펼쳐진다. 센터 중 가장 눈에 띄는 공간 중 하나다. 1층에서 꼭대기까지 뚫린 상쾌함이랄까? 일종의 '매개공간'이다. 정적인 건물로 들어섰을 때 사람의 정서적 심리적 상황을 완충시키는 공간 말이다. 행정 공간에서 느끼는 딱딱함을 이완시켜주는 작용을 한다. 마당을 감싼 외벽의 변형(마치 병풍처럼 살짝 접었다)도 놀랍다.

이러한 매개공간은 건물 곳곳에서 발견되는 '발코니'에서도 느낄 수 있다. 반 외부, 반 내부 성격의 이 발코니 공간은 1~2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지만 문을 열고 나가면 뭔가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듯 설레게 한다. 마치 숨바꼭질 하듯 숨어 있어 찾는 재미까지 더한다.

건물 외벽이 상당 부분 유리로 되어 있어 복도는 조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훤하다. 특히 4층 복도는 천장도 유리다. 2층에 있는 활천행복작은도서관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내부 인테리어도 밝고 예쁘게 꾸몄다. 이곳에서 책을 읽으면 상상의 세계가 끝없이 펼쳐질 듯이. 최정규 동장은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주민센터에 대해 좀 더 욕심을 내어 보면 동장과 민원실을 굳이 구분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동장실이 꽉 막힌 느낌이다. 옥상의 공간 활용도 아쉽다. 센터를 둘러싸고 옆으로 오고 갈 수 있는 길도 없다. 지하 주차공간과 민원실을 통해 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건물을 통하지 않으면 빙 둘러 가야 한다. 세심한 배려가 아쉽다. 이 부분만큼은 건물이 차고 넘친다. 독일 건축가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한 말 '적을수록 많다'(Less is More)는 역설이 귀를 간질인다.

건축의 본질은 공간에 있다. 건축의 가장 기본적, 궁극적 목적은 '삶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김해 '활천동 주민센터'는 '행정(권위)의 공간'을 분명 '친숙의 공간'으로, 나아가 '삶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도시의 일반적 질서 위에 뭔가 다른 진동을 주는 건축물이 있어 도시에 매력을 더한다. 건축은 도시의 삶과 문화를 윤택하게 하는 요소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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