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갓 지은 밥 한그릇에 추위는 저멀리
갓 지은 밥 한그릇에 추위는 저멀리
'밥퍼나눔공동체' 자원봉사자들이 부산진역 주차장에서 노숙인들에게 제공할 꽃게탕을 배식하고 있다. 추위 속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의 언 마음을 녹여줄 것 같다. 최성훈 기자 noonwara@
지난 14일 오전 11시 40분께 부산 동구 수정동 부산진역 주차장. 남루한 점퍼를 걸치고 모자를 눌러쓴 40~60대 노숙인과 노인들이 언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모여들었다. 30여 명으로 시작된 대기 행렬은 어느새 2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잠시 뒤 큰 보온통과 식기 등을 실은 소형 트럭이 도착했다. 이들에게 따뜻한 점심 한 끼를 대접할 '사랑의 밥차'다.
잠시 뒤 지원봉사자들에 의해 어린이 키만 한 크기의 보온통이 내려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온통 속에는 오늘의 주메뉴인 얼큰한 꽃게탕이 가득했다. 갓 지은 밥에서는 구수한 밥내가 풀풀거렸다.
군침을 삼키며 노숙인들이 줄을 지어 주차장 한편에 설치된 간이 천막에 자리를 잡았다. 비닐로 양쪽을 둘러 친 천막 안으로는 이따금씩 칼바람이 몰아쳤다.
밥퍼공동체 등 운영 무료급식소
노숙인·어르신들에 점심 대접
새벽부터 정성껏 만든 식사
식판 비우자 얼었던 몸도 훈훈
노란색 조끼를 입은 2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하나하나 식판에 밥과 반찬을 수북이 담아 "어르신 많이 드세요"라는 말과 함께 식사를 건냈다.
식판을 받아든 사람들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식판 하나를 말끔히 비워냈다. 뜨끈한 국물이 뱃속으로 들어가자 파랗게 얼있던 얼굴에도 훈훈한 혈색이 돌았다. 김 모(82) 할아버지는 "이곳 밥맛이 부산에서 가장 좋은데,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꽃게탕이 나와 더 흐뭇하다"며 "하루 한 끼만 먹는 일도 허다하다 보니 여기 오면 세 그릇쯤은 뚝딱 비우고 간다"고 말했다.
무료급식봉사단체 '밥퍼나눔공동체'가 이곳에서 점심 대접을 해 온 지도 벌써 6년째다. 춥고 배고픈 이들에게 '따뜻한 한 끼의 행복'을 전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은 새벽부터 잠을 설쳐가며 음식을 다듬는다. 매주 화·금요일은 부산진역, 목요일은 해운대, 토요일은 시청녹음광장으로 옮겨 가며 무료급식 봉사를 한다.
잰 손놀림으로 설거지를 하던 구정은(26·여) 씨는 "올해 유달리 날씨가 추워지면서 손이 시린 것만 빼고는 할 만하다"며 "찬바람 맞으며 먹는 점심 한 끼지만 어르신들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실 때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말했다.
이날 부산 북구 덕천동의 대한적십자사 '나눔의 집'에서도 15명의 봉사원들이 노숙인과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나눔의 집'을 찾는 이는 250여 명에 이른다. 평소 봉사원들은 250인분 보다 많은 양을 준비해 식사를 대접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고 있었다.
김 모(35) 씨는 "오늘 무료 급식을 먹기 위해 양산에서 아침에 버스를 타고 왔다"며 "밥을 먹으니까 속이 뜨뜻해서 좀 낫다"며 큼직한 국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식탁에 남은 식판을 퇴식구로 옮기던 문천순(55·여) 씨는 "오늘 시래깃국과 밥을 한 그릇씩 비우고 가신 어르신들이 많아서 행복하다"며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고 생각하며 기쁘게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구청이 지난 1998년 덕천동에 건물을 지어 대한적십자사가 위탁운영하고 있는 '나눔의 집'에서는 각 동 봉사원들이 순서를 정해 한 달에 2번씩 봉사활동에 참가 중이다. 소외계층에게 따뜻한 식사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은 이곳의 자원봉사자들에게도 큰 보람을 안겨주고 있다.
4년째 노숙 중이라는 박 모(46) 씨는 "처지가 이렇다 보니 고마운 마음에도 말 한번 붙이기조차 겸연쩍지만 함께 밥상머리에 앉아 밥을 먹으니 봉사하는 분들도 먹는 우리도 모두가 한 식구인 셈"이라고 웃었다.
박태우·황석하 기자 wideney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