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 가르치려 하지 말고 놀아준다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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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아이 영어 교육' 노하우

'엄마표 영어'의 포인트는 영어를 매개로 편안하고 신나게 놀아주는 것. 줄탁 해운대모임 윤선미 씨의 아이들 박제우(초등 4년) 군과 박정우(초등 1년) 양, 김희미 씨의 딸 장민서(6) 양이 즐거우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각자 수준에 맞는 영어책 듣고 읽으며 '놀고' 있다. 줄탁 해운대모임 제공

영어가 대세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 대부분은 영어교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엄마들 사이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일찍 영어를 가르치려고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영어 학습지를 시키고, 백일 때부터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고, 심지어는 뱃속에서도 영어 동요를 들려주는 '영어 태교'까지 번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일찍부터 영어를 접하게 하고 가르치려 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우리말도 아직 모르는 아이에게 너무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닐까. 더구나 유명 언어학자들도 조기 영어교육은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직접 물어봤다. 짧게는 1~2년에서 길게는 10년 가까이 직접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왔다는 엄마들의 동아리 모임이 마침 지난 21일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다는 첩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29개월 남자아이를 둔 기자가 '엄마표 영어'의 노하우를 듣기 위해 찾아갔다.

그림책 읽어주고 애니메이션 보여줘
3세 이전 알파벳 암기는 흥미 반감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정보 제공

# '엄마표 영어'는 교육 아니라 놀이


오전 11시. 10여 명의 엄마들이 해운대 신시가지 내 작은 커피집에 모였다. 처음 온 엄마, 꾸준히 나온 엄마 모두 간단한 자기 소개와 함께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각자 지난 한 달간 집에서 어떻게 아이 영어를 지도했는지, 무엇이 문제였고 어떤 게 고민인지 등에 대해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방학과 개학을 거치면서 영어책 읽기에 다소 느슨해진 아이에게 무엇으로 다시 흥미를 갖게 해 줄까 고민이라는 초등 3학년 딸을 둔 엄마, 아이 세 살 때 시작한 영어 그림책 읽기가 3년이 지나면서 큰 변화를 보인 것을 보면서 자신도 용기를 갖고 영어회화 공부에 도전한 지 2주째라는 열혈 엄마,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갖고 혼자 초등 4학년인 아들을 2년째 지도하고 있지만 아직 실력이 크게 느는 것 같지 않아 불안하다는 엄마 등등. 다양한 사례와 공부법, 고민들이 오갔다.

그 속에서 조금은 원천적인 궁금함이 생겼다. 영어 말고도 아이에게 교육할 것은 많은데, 대체 이 엄마들은 무엇 때문에 콕 찍어 영어를 손수 가르치겠다고 마음먹은 걸까? 기자에게 주어진 질문 시간에 당차게 물었다. 그러자 뒤통수를 치는 듯한 엄마들의 대답이 술술 터진다. "기자분이 조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무슨 영어를 그렇게 잘해서 애들을 앉혀놓고 가르치겠어요? 그냥 같이 영어로 놀아주는 것 뿐이에요. 교육이 아니라고요." 옆에 앉은 엄마. "대학 나왔지만 말하기가 안 돼 해외여행도 패키지로밖에 못 가는 현실적인 답답함을 내 아이에게는 물려주지 말자는 생각이었어요. 우리가 배웠던 죽은 영어가 아니라 살아있는 영어를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거창한 방법이 아니라 좋은 그림들이 있는 그림책을 읽어주고 신나는 노래와 스토리가 있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방식이에요, 한글과 영어 모두 즐겁게 접하면 둘 다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또 다른 엄마의 설명이다.


# 강요·비교 말고, 느긋하게 시작하길

그냥 편하게 영어를 도구로, 영어책을 매개로 열심히 놀아주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른 주의사항은 없나.

부모교육 커뮤니티 '줄탁닷컴'의 서현주 대표는 우선 영어를 한글처럼 자연스럽게 듣고, 보게 하는 시기는 아무리 어릴 때라도 상관없지만 대신 조바심 내지 말 것을 조언한다. 집에서 엄마가 자장가와 재미있는 동요, 창작 영어 그림책 등으로 영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영어에 익숙하게 하는 요소가 되지만, 교사나 영어교육기관 등 제3의 체계적인 영어교육은 36개월 이전에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모임에 참석한 엄마들도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시켜 주는 '엄마표 영어'를 언제 시작하는가보다는 아이가 흥미를 보일 때 엄마가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더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너무 일찍, 영어에만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한글책을 멀리하거나 타 과목 공부를 두려워하는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고 한다.

줄탁 해운대모임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만나 아이 영어공부에 대한 이야기와 고민, 새로운 정보 등을 서로 나눈다. 줄탁 해운대모임 제공

또한 영어유치원이나 어린이 전문 영어학원 등 사교육기관부터 보내는 것도 비추천사항이다.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자랑하는 영어 사교육 기관은 놀이로 접하는 영어 외에 읽기와 쓰기, 문법 등도 배우게 되므로 자칫 유아 영어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언어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싹부터 자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만 3세 이전 아이에게 영어를 읽고 쓰게 하려는 욕심에 처음부터 알파벳을 외우게 하거나 파닉스를 가르치려 드는 경우 성공을 기대하긴 어렵다. 학습효과를 강조한 교육법은 최대한 배제하고, 영어를 낯선 외국어로 인식하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 먼저다. 이 시기 첫 영어는 '소리'로 익숙하게 해 주는 영어 그림책이나 마더구스(영미권 전래동요) 등을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문화센터 등에서 엄마와 함께 듣는 영어놀이 프로그램, 유아의 첫 영어교육에 맞춘 방문형 학습지 등으로 서서히 진행해도 늦지 않다.


# 엄마의 영어 실력 보다는 시도가 중요

영어에는 아무리 해도 자신이 없는데 아이에게 책을 잘 읽어줄 수 있을까. '엄마표 영어'를 시작해 보려고 해도 갖가지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많은 엄마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다.

일단 모든 것을 엄마가 가르친다는 부담을 떨치자. 대신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주제와 소재를 담은 영어책과 DVD, 영어 이벤트 등 놀이환경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서 적절한 시기에 노출시켜 주는 행동력이 더 중요하다. 주로 줄탁닷컴(www.jultak.com), 잠수네 커가는 아이들(www.jamsune.com), 쑥쑥닷컴(www.suksuk.co.kr) 등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선배 엄마들의 조언과 정보를 얻는 것을 시작으로, 지역 소모임이나 동아리모임 등에 참가해 서로 자극을 받으면서 꾸준히 추진하는 힘을 키우는 방법이 선택된다. 이 과정에서 엄마 또한 영어에 관심이 많아지고 실력도 차츰 늘어나므로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아이 실력이 더 늘어나 엄마가 아이 영어 수준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되면, 엄마는 아이 스스로 영어책을 찾아 읽도록 도와주고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 주기만 해도 된다.
주말에는 엄마 대신 아빠가 아이와 함께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며 시간을 보내도 좋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직장맘의 경우 '엄마표 영어'에 도전하는 것이 더더욱 부담스럽다. 하지만 얼마 안 되는 시간이라도 알차게 활용한다는 생각으로, 퇴근 후 한두 시간 특히 잠자기 전 30분은 한글책과 영어책을 엄마가 읽어주는 시간으로 정하고, 이때 읽었던 책의 오디오를 엄마가 없는 동안에도 반복적으로 듣게 해 주는 정도로도 충분히 훌륭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또 주말에는 온전히 아이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면서 평일에 함께 하지 못했던 것들, 예를 들면 영어카페, 영어마을, 영어연극, 영어박람회 등 영어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된 이벤트에 다녀오는 식으로 작은 자극을 주는 것도 효과적이다. 이후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를 담은 영어 만화 등을 같이 본다면 엄마와 함께 하는 영어가 좋은 첫인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취재협조=줄탁 서현주 대표(cafe.naver.com/jultak)·줄탁 해운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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