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부산에선…노재열 첫 장편소설 '1980'
입력 : 2011-11-03 09:54:00 수정 : 2011-11-03 15:30:28
자신의 체험을 장편소설로 옮긴 노재열. 정종회 기자 jjh@"정의란 이름으로 자행된 공안당국의 폭력에 의해 이름 없이 잊혀 간 사람들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죽은 자들에 대한 기억을 망각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이기 때문이죠."
노재열(53) 부산 녹산산단 노동상담소 소장은 전두환 군사정권 8년 동안 3차례 구속되며 20대 청춘을 다 보냈다. 당시 부산대 공대를 다녔던 그는 1980년 비상계엄령,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됐다. 1981년 부림사건(대학생, 교사, 직장인 등을 반국가단체 찬양 혐의로 구속해 고문한 사건) 당시 구속돼 2년간 교도소에서 보냈고, 1987년 노태우 대선 후보 반대시위로 구속되기도 했다.
부마항쟁 체험 바탕 생생한 복원
"공안 폭력의 희생자 기록해야죠"
그가 첫 장편소설 '1980'(산지니)을 펴냈다. 소설은 1980년 5월을 전후해 부산의 민주화 투쟁을 조명한다. 시간적 배경은 1979년 10월 부마항쟁부터 1981년 3월까지다. 부마항쟁과 1980년 부산 학생투쟁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로 저자의 체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증언과 기록을 통해 1980년 당시 운동사적 맥락을 문학적으로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광주뿐 아니라 부산, 대구, 대전 등 전국에서 이뤄진 투쟁이었어요. 우리 사회 전체가 맞이한 동일한 상황이었죠. 당시 전두환 군사쿠데타 세력은 1980년 5월 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아붙이기 7개월 전에 이미 부산시민을 폭도로 몰아붙였고, 공수부대도 투입했어요. 1979년 10월 부산시민의 투쟁과 1980년 광주시민의 투쟁은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소설은 시간적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저자의 분신인 주인공 정우가 부산 양정의 '15P 영창'과 영등포구치소, 삼청교육대에서 겪은 고문과 폭력적 일상이 소설의 전반부에 나온다. 소설 후반부는 정우가 수감되기 전 상황인 1979년 부마항쟁과 80년 5월 직후 상황을 보여준다. 소설 전반부의 배경을 뒤에 설명하는 형식이다.
정우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 전국으로 확대되자 부산 남포동에서 '성전 포고에 즈음하여'란 유인물을 뿌렸다가 계엄군에 잡힌다. 소설은 정우가 수감된 부산 양정동 소재 15P 영창의 폭력적 일상부터 시작된다. 20평 남짓한 15P 영창은 계엄이 일상이 된 한국사회의 축소판이었다. 깡패, 잡범 등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자들이 모였던 곳, 그러니까 인생의 마지막 종착점이라 할 수 있는 극단적인 공간이었다.
저자의 체험에서 나오는 생동감 있는 묘사가 인상적이다. 감방의 구조, 내부의 자체 규율, 고문에 대한 묘사는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물고문을 하려면 사람을 꽁꽁 묶어야 해. 통닭처럼 매달려 있는 모습은 머리가 거꾸로 서면서 하늘로 향해 입과 코가 벌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얼굴에 젖은 수건을 덮어씌우고 물을 부으면 항우장사라고 해도 버티기가 힘들어. 숨을 쉬지 못한다는 것만 해도 죽을 고통인데 거기다가 공기 대신 물을 들이마시게 되면 급기야 폐가 난도질당하는 느낌이 들면서 토하게 되지.'
디테일한 물고문의 역사는 부조리한 폭력의 역사를 고발의 정신으로 증언한다. 1980년 격동기에서 폭력과 굴종 속에서 고뇌해야 했던 한 청춘의 이야기가 마음을 짠하게 한다. 저자는 "20~30대 젊은이들이 책을 읽고 80년대 청춘들의 고민과 지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비교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