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생각이 달라?" 총성 없는 전쟁터 인터넷이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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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커뮤니티는 연일 총성없는 전쟁 중이다.

한 걸그룹 멤버가 다리를 절며 걸어오는 동료에게 "쩔뚝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영상이 퍼져 수난을 겪었다.

'쩔뚝이'는 인터넷 상에서 다리를 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말이다.

지난 5월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가 해킹당했다. 경찰에 붙잡힌 해킹범은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의 고등학생 회원들이었다.

'이념의 선' 긋고
인신공격 퍼붓는
온라인 커뮤니티 극성
"자정 능력 상실" 우려

이들은 연구소 회원 명단에 '민족문제연구소 죄인 명단'이라는 제목을 붙여 인터넷에 유포했다.

이념의 선을 그어놓고 '너와 내가 다르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수백, 수천 건의 인신공격이 쏟아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한창 예민한 정치 이슈를 거론하는 건 화약고에 불을 지르는 행위와 다를 바 없어졌다.

충격적인 부산 해운대구 살인 사건의 발단도 결국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벌어진 이념 논쟁이었다.

'노운지' '노알라' 등 조롱 섞인 별명으로 수모를 겪고 있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 승리한 2002년만 해도 온라인 공간은 진보와 개혁의 목소리가 압도적이었다. 진보 진영에 대해서는 털끝 만큼의 비판도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3년 이후 '광우병 사태'를 거치면서 진보 일변도의 온라인 여론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선 패인으로 '젊은 온라인 사용자를 끌어안지 못했다'고 분석한 보수 진영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온라인 공간은 오히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우익화됐다.

실제로 '일베'는 지난 대선 당시 야당의 정치 공세가 있을 때마다 엄청난 양의 반대 여론과 데이터를 쏟아내며 사실상 온라인 여론을 주도한 바 있다.

현재 온라인 여론의 향배는 2000년대 초반과 그야말로 천지차이. 한 취업포털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가장 즐겨찾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조사한 결과 진보 색채의 '오늘의 유머'가 1위, 보수 성향의 '일베'와 '디시인사이드'가 뒤를 이었다. 사실상 진보와 보수 여론이 5대5의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중도가 없는 불안한 여론의 균형이 온라인을 안정화시키기는커녕 대립을 격화시켜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지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이철순 교수는 "우리 사회의 이념 논쟁은 중간지대가 없고 논리의 대립만 있다. 정치권에서 시작된 이 같은 진영 갈등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에게도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폐해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의 인기는 사그라들 줄 모른다. 일부에서는 국정원 사태나 NLL 논란 등의 이슈를 놓고 벌어지는 커뮤니티 간 인신공격과 대립을 스포츠 경기 관람하듯 즐기는 행태마저 보인다.

결국 다양한 의견을 포용해야 할 온라인 공간이 더이상 가치있는 여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특히 이번 살인 사건의 경우 젊은 세대 간에 벌어진 터라 온라인 이념 갈등의 양상이 이미 자정 작용으로 치유될 수준을 넘어섰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동명대 미디어공학과 이준연 교수는 "온라인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배려와 예의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가운데'가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이분법적인 사고만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상국·김한수·조영미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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