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봅시다] 설립 10돌 재단법인 그린닥터스 정근 이사장
"부산 사람들 열정이 의료 통한 평화의 길 닦았죠"
"지난 10년은 눈물과 감동의 세월이었습니다. 한 번 하면 끝장을 보는 부산 사람들의 열정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10주년을 맞은 재단법인 그린닥터스 정근(53·온종합병원장) 이사장의 소감이다. 그가 이끈 그린닥터스는 지난해말까지 8년간 북한 개성공단병원을 운영하면서 북한 주민 45만 명에게 무료 진료 봉사활동을 펼쳤다.
8년간 북한 개성공단병원 운영
北 주민 45만 명 무료 진료 봉사
지구촌 재난발생지 의료진 파견
저개발국 의사 부산 연수 교육
지난해 대한결핵협회 회장 선출
북한 해주에 결핵요양병원 추진
"북한 응급환자들이 치료받고 살아날 때, 남북한 의료진들이 서로 미소를 지으며 생명을 살렸다는 뿌듯함을 보일 때 민족애를 느꼈습니다."
그린닥터스는 그동안 해외봉사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파키스탄 대지진 등 재난 발생지역에 6차례 긴급의료단을 파견했고, 매년 의료서비스 취약지역 6개국에 의료봉사단을 보냈다. 또 매년 3명씩 저개발국 협력병원 의사를 부산에 데려와 연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린닥터스 회원은 의사와 간호사, 시민, 청소년 등 총 2만여 명에 달한다. 부산에서 시작됐지만 서울 등 수도권 사람들과 미국, 중국 등 해외교포까지 참여하고 있다.
"작은 계란 하나가 병아리가 되고 큰 닭이 되듯이 그린닥터스라는 밀알이 세계 곳곳에서 싹을 틔우게 됐습니다. 부산 사람들의 열정이 북한과 동남아시아 사람들 가슴 속으로 녹아들어갔습니다. 이런 일들은 부산 미래 발전의 거름이 될 것입니다."
정 이사장은 1960년 경남 산청군 삼장면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부터 수 년간 결핵을 앓았다. 이때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부산대 의대에 진학했다. "대학 1년 때 키 183㎝에 53㎏의 약골이었습니다. 각혈하면서 공부했습니다. 아프고 돈 없는 사람 치료가 저의 소명임을 깨달았습니다."
안과전문의를 마친 후 1989년 강원도 인제군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산골오지라 의료혜택을 못받는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동료 군의관과 함께 매주 토요일 산골을 순례하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92년 부산대 의대 교수로 되면서 월1회 부산 경남지역 양로당과 재활원 등에서 백내장 무료수술 봉사도 펼쳤다. 94년 정근 안과를 개업했다. 1997년 IMF 경제위기 때 백양의료봉사단을 결성했다. 2002년 중국 지린성 옌벤시에서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했다. "이때 우연히 압록강 건너편 북한지역 야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북한에서도 의료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년 동안 준비 끝에 재단법인 그린닥터스를 만들었다. 서울 유수 병원을 물리치고 북한 개성공단병원 운영지정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개성공단병원 운영은 시작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2005년 1월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북한 사람들이 '영어 이름(그린닥터스)을 사용한다'며 싫어했습니다. 이때 북한 고위간부 중 한 명이 연탄가스에 중독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북한에서 고압산소실은 개성병원밖에 없었습니다. 오전 2시 개성병원에서 생명을 구한 후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항생제 기증 등을 통해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고 이것이 8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의료를 통한 평화의 전도사 역할을 부산사람들은 해낸 것이지요."
최대의 위기는 금강산 피격사건 때였다. "모두가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려고 할 때 그린닥터스는 끝까지 남아 병원 지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분위기가 기적같이 바꿨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북한과의 평화협력 및 교류가 더 활발해져야 합니다."
정 이사장은 지난해 대한결핵협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결핵을 앓던 소년이 '결핵 퇴치의 선봉장'이 된 것이다. "북한 황해도 해주에 결핵요양병원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927년 해주에 국내 처음으로 요양결핵병원이 설립됐습니다. 여기서 조선인 결핵환자 모두 치료했습니다. 이를 다시 복원할 계획입니다. 북한에는 현재 100만 명의 결핵환자가 있습니다. 통일에 대비해 결핵환자 치료 및 예방에 앞장설 계획입니다. "
또 인도네시아 아체주 지진지역에 병원도 합작으로 세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임원철 기자 wcl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