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가면] 남포동 '70번 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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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만난 섬진강 벚굴, 입안 가득 상큼한 봄맛

뭐요 벅꿀? 처음에는 그렇게 잘못 알아들었다. 남해바다와 만나는 섬진강에서만 자라는 강굴을 '벚굴'로 부른다. 바다에서 나는 굴보다 10배쯤 크니 어른 얼굴만 한 게 예사다. 짜릿한 향과 졸깃한 속살이 마법을 부린다. 그 맛을 아는 마니아들은 몸이 단다. 날로 먹고, 쪄서 우윳빛 국물까지 후루룩 마시고, 죽으로 마무리하는 코스까지.

'벚'굴이 된 건 거무튀튀한 껍질이 벚꽃이 만개할 무렵이면 하얗게 변하면서 벚꽃처럼 피어나는 듯해서란다. 2월부터 나오기 시작해 5월이면 채취가 끝이 나면서 가뭇없이 사라지니 절정기도 벚꽃과 딱 맞아떨어진다.

섬진강에 가지 않고 벚굴을 구경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남포동 포장마차 거리에 벚굴이 등장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부산에서 벚굴을 내는 곳이 거의 없으니 당연 귀가 번쩍 뜨일밖에. 이튿날 해거름에 득달같이 달려갔다. 70번 포차 김정이 사장은 "최대 출하지역인 광양 망덕포구에서 직송한 것을 내고 있다"고 했다.

익혀서 먹으면 비리지 않고 담백하지만, 일부러 비릿한 향까지 즐기려 반은 회로 주문했다. 벚굴 위에 무순을 토핑해서 내고, 명란젓과 씻은 김치를 함께 차려내니 먹음직스럽다. 모처럼 벚굴과 회포를 풀었다!

정식 음식점에서도 내기 어려운데 어떻게 포장마차에서?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70번 포차는 계절요리 분야에서 이미 꽤 유명하다. '1만 원짜리 균일가 안주'를 내고 있지만 이게 우습게 볼 게 아닌 것이다. 결코 요리로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주메뉴인 나막스(붉은메기) 구이 차림을 처음 대하는 손님들은 깜짝 놀란다. 생선구이만 나오는게 아니라 샐러드와 함께 유자청을 얹은 잔파, 간장과 생고추냉이가 따라 나온다. 여기 포차 맞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안주가 부족하다 싶으면 슬쩍 곁들이를 낸다. 뎅겅뎅겅 썰어낸 오이와 당근을 예상했다면 허를 찔린다. 커다란 접시에 연두부와 햄, 배추, 과일이 푸짐하게 담겨 나온다.

포차 같지 않은 포차. 그래서인지 이곳은 항상 젊은이들이 바글바글하다. 70번 포차는 남포동 포차거리의 새 풍속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부산도시철도 1호선 자갈치역 3번 출구 신한은행 골목. 나막스 구이, 생선조림 등 한 접시 1만 원. 벚굴 한 접시 1만 5천원. 오후 5시~오전 2시. 글·사진=김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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