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면] '문명 교류의 해양 통로' 오롯이
실크로드 도록 - 해로편 / 정수일
수로왕릉 정문 문설주에 그려진 쌍어문. 두 물고기가 마주보고 있는 모양은 인도에서 흔한데 이는 수로왕비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맞닿아 있다. 창비 제공김해 수로왕릉의 정문에 '쌍어문'이란게 있다. 물고기 한 쌍이 마주보고 있는 그림이 문설주에 뚜렷하다. 메소포타미아 신어(神魚)사상이 인도를 거쳐 한반도 남단까지 전해져 자취를 남긴 것이다. 이는 서기 48년 2만5천리의 항해 끝에 금관가야 수로왕에게 시집을 온 인도 공주 허황옥의 이야기에 맞닿아 있다.
처용설화의 무대 울산항은 신라시대 국제무역항이었다. 중국에서 만든 자기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까닭이다. 당시 신라에는 서역의 무역선들이 빈번히 들고 났다. 이를 근거로 처용이 서역인이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신라의 석상 중 심목고비(深目高鼻)가 뚜렷한 서역인상을 만나는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신라고분에서 로만 글라스가 쏟아져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대로부터 한반도는 바닷길을 통한 문명교류가 활발했다. 대식(大食·아랍)을 비롯한 서역에서 사람이 왕래하고 문물이 전래됐다. 한반도 남단을 거쳐 일본까지 갔다가 거꾸로 중국 동남해안을 지나 인도 서해안, 페르시아만, 로마로 나아가는 거대한 문명교류의 바닷길이 열려있었다.
실크로드를 바라보는 시선은 오랫동안 사막의 모랫바람에 붙박여 있었다. 이른바 '오아시스 실크로드'다. 여기서 '초원 실크로드'로 시야가 넓어지고, '해상 실크로드'로 개념이 확장되어 왔다. 하지만 해로의 동쪽 끝을 중국의 동남해안으로 간주하는 것이 통설이었다. 해로의 동단(東端)으로서의 한반도 역할이 소외되어 온 것이다.
정수일(80)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이 '실크로드 도록 : 해로편'을 펴냈다. 앞서 육로편에 해당하는'실크로드 도록'에서는 경주가 실크로드의 동단인 점을 밝힌 바 있는데, 이번에 해로편을 내면서 실크로드의 줄기와 가지를 세밀하게 확장시켰다. 예컨대 김해, 울산, 청해진, 영산강 포구, 인천 등 5개 항구의 역할을 규명한 다음 해상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에 포함시켜 실크로드에서 제외되었던 한반도의 위상을 회복시켰다.
이번 해로편은 실크로드의 시야를 3대양(태평양·인도양·대서양)으로 펼쳐 환지구적인 상을 정립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구대륙에 고착된 실크로드관을 탈각하고 신대륙을 포함한 범세계적인 문명교류의 통로로서 해상 실크로드의 외연을 넓힌 것이다. "실크로드를 물자교역로가 아닌 문명교류의 통로로 봐야한다." 이 같은 그의 지론을 염두에 두고 전세계 주요 해양 거점도시 75곳에서 촬영한 886매의 사진과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인류 문명의 장도가 오롯이 드러난다.
바닷길은 무궁무진한 생명력과 잠재력을 지닌 문명교류의 통로다. 초원로와 오아시스로가 쇠퇴한 근세 이후 해로가 홀로 상승일로의 항진을 이어가는 이유일 것이다. 실크로드는 바닷길로 완성된다. 해양수도를 자부하는 부산에 큰 울림을 주는 명제다. 정수일 지음/창비/496쪽/10만 원.
김승일 기자 doj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