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화가가 그림으로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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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성 화백.

바나나롱갤러리에서 지난 4일부터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허남성 작가. 허 작가를 갤러리에서 만나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후 한참을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허 작가도 웃기만 한다. "작품이 신선하고 좋습니다." 말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다시 긴 침묵이다. 사실 "작품이 좋다"는 말조차 허 작가가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렇게 허 작가와 만나고 오랜 시간 대화를 할 수 없었다. 허 작가가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허남성 화백 첫 개인전
바나나롱갤러리 17일까지


둘 사이의 어색한 침묵은 달려온 수화통역사 덕분에 깨졌다. 허 작가는 경기도 양주시에 살고 있다. 부산은 아내의 고향일 뿐 허 작가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다. 그럼에도 50대 중반, 자신의 첫 개인전을 부산에서 열게 됐다. 사실 허 작가는 평생 개인전을 꿈꾸지 못했다고 한다. 같은 청각장애를 가졌지만, 프로 무용수로 활발히 활동 중인 아내가 고향 친구인 바나나롱갤러리 강문주 관장을 만나러 오는 길에 동행했다가 덜컥 전시가 성사됐다.

해운대 바다를 뒤로, 동해남부선 기찻길 옆에 위치한 갤러리에 들어서는 순간 부부는 여기서 전시를 꼭 해야 할 것 같았단다. 특히 철거를 앞둔 갤러리의 사정을 듣고서 부부의 마음이 급해졌단다.

20년 전 만나 두 사람 모두 장애인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미술과 춤을 포기하지 않고 한길을 걸어온 부부. 이들의 예쁜 모습이 그림에 그대로 배여 있다. 선한 얼굴의 인물화, 푸근한 풍경화, 사랑을 담은 추상화, 존재의 의미를 묻는 그림까지 허 작가의 작품은 매력이 넘친다.

이렇게 그림이 좋은데 왜 지금까지 개인전을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걸까. 큼직한 미술대전에서 여러 번 입상하며 일찍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허 작가가 장애인인 것을 이용해 사기를 친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픈 기억 때문에 미술조차 포기하려 했지만, 도저히 붓을 놓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허남성 `삶-시간과 공간의 흔적5`. 바나나롱갤러리 제공
'희망'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번 전시에는 허 작가의 작품이 총망라돼 있다. 한참 작품 이야기를 듣고 갤러리를 나서는 기자에게 허 작가가 수화통역사를 부른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다. "나처럼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도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까지 연다. 나를 보고 용기를 내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일 때문에 갤러리를 지키지 못하고 양주시로 떠나야 하는 허 작가는 강 관장에게 한 가지를 꼭 부탁한다. 자신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고 방명록에 기록해 달라는 내용이다. 사람들과 간절하게 소통하고 싶은 허 작가의 진심이 느껴져 뭉클했다. ▶허남성 '희망' 전=17일까지 바나나롱갤러리. 051-741-5106.

김효정 기자 ter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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