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먼저 알아본 산복도로 '일식 가옥'
초량동 산복도로에 있는 1941년에 지어진 일본식 주택. 미국인 코르네게이(28) 씨의 학계 제보로 알려졌으며 일부 개조가 되었지만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김병집 기자 bjk@부산의 한 산복도로 주변에서 일제강점기에 지은 고급 일본식 가옥이 발견됐다. 평지가 아닌 산지 일식 가옥은 이례적인 사례라 건축 배경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8일 부산 동구 초량동 금수사 인근. 산복도로인 망양로 옆 샛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자 한눈에도 고풍스러워 보이는 목조 기와주택이 나타났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왼편으로 일본식 주택에서 볼 수 있는 '서양식 집무실'이 나타났다. 도르래를 이용한 오르내림 창도 일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전실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널따란 공간이 펼쳐졌다. 집 안쪽은 6조와 8조 크기의 다다미방 2개, 부엌, 화장실 등이 있었다.
동구 초량동 금수사 인근
20대 미국인 학계 제보
1941년 日 사업가가 건축
별장 겸 거주공간 사용 추정
일부 개조 불구 보존 잘돼
그동안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만 알려졌던 이 주택은 근대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한 외국인이 최근 학계에 제보를 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코르네게이(28·미국 텍사스 주) 씨는 "한 외국인 친구가 집의 존재를 알려줘 몇 주 전 현장을 방문했다"며 "그동안 봐왔던 부산의 근대 일본식 주택 중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해 훼손되기 전에 건물 존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제보를 받은 동아대 건축학과 김기수 교수 등 연구팀이 주택의 이력을 조사한 결과 1941년 지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가옥대장을 보면 연면적 133㎡의 주택 외에도 온실과 창고 등이 함께 들어섰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주택은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지만 일부 개조가 이뤄져 원형의 모습을 잃은 상태다. 다다미방은 온돌로 바뀌었고, 마당으로 연결되는 일본식 툇마루(엔가와)도 벽과 창문으로 막혀 버렸다. 집무실 지붕쪽 녹색 기와 역시 한 차례 교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팀 조사 결과 이 주택을 지은 인물은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유리그릇과 전등을 제조·판매하던 사업가 스나가와 기쿠지 씨로 확인됐다. 효고 현 출신인 스나가와 씨는 1912년 부산으로 넘어와 지금의 부산역 맞은편에 유리제품 제조공장과 판매점포를 열었다.

스나가와 씨가 공장·점포 근처가 아닌 산 중턱에 주택을 지은 연유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부산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주변에 계곡도 있어 별장 겸 거주 공간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기수 교수는 "당시 항공사진을 보면 주택 근처 구봉산 중턱까지 길이 나 있었다"며 "집주인이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 고급 주택을 지은 뒤 자동차를 이용해 공장을 오갔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주택은 해방 후 적산가옥으로 분류돼 개인에게 불하된 뒤 몇 차례 소유권이 바뀌다 10여 년 전 한 사업가가 매입했다. 소유주 측은 조만간 이 주택을 자연효소 교육·체험시설과 전통찻집 등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유튜브 주소 - https://youtu.be/JPfhc8iHsoQ
영상제작= 김강현 PD·허준 대학생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