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가 열전] 27. 김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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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연주·노래·영화까지… 1인 10역의 '작은 거인'

대중성에서 벗어나 음악성과 실험성에 심취한 '작은 거인' 김수철의 꿈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려는 것이다. 페이퍼 크리에이티브 제공

1957년생인 김수철은 중2 때 어쿠스틱 기타를 잡으면서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음악을 들으며 기타 연주를 하던 그는 중3 때 작곡을 시작했는데 '작은거인' 시절 대부분의 곡이 거의 이 시기에 작곡됐을 정도로 천재성을 보였다. 그리고 '파이어 팍스'라는 그룹을 만들어 미8군 무대에 진출한다.

중학생 때 연주·작곡 천재성 입증
대학가요제 대상 받고 '입소문'
'못다 핀 꽃 한송이' '내일' 등 대박

영화 '고래사냥' 출연 영화음악도
국악·록의 조화 '황천길' 명반에

■당대 젊은이들 사로잡은 '작은거인'


광운대 진학 후엔 핑크 플로이드를 비롯한 프로그레시브 록에 빠져들어 '퀘스천'이란 그룹을 결성해 TBC연포가요제에 출전하기도 한다. 1978년 당시 각 대학에서 쟁쟁한 실력을 갖춘 젊은이들로 결성된 '작은거인'은 김수철(리드기타·보컬), 김근성(건반), 정원모(베이스), 최수일(드럼)이 멤버였다.

이들은 겨울 두 달간 오직 라면 두 박스로 합숙훈련을 한 후 같은 해 '작은거인'으로 전국 대학축제 경연대회에 출전해 '일곱 색깔 무지개'로 그룹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에 알려지게 된다. 록그룹 '작은거인'은 뛰어난 연주 실력과 음악성으로 1979년 1집 '작은거인의 넋두리'(1979), 1981년 2집 '작은거인'(1981)을 발표해 당대 젊은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2집 '작은거인'(1981)은 입대와 졸업으로 떠난 멤버들을 대신해 최수일(드럼)만 남기고 김수철 혼자 기타·베이스·건반을 담당하며 전곡을 작사·작곡하는 가공할 능력을 보여준다. 디스토션이 짙게 걸린 김수철의 기타 사운드와 연주, 그리고 당시 국내의 낙후된 녹음 수준이라는 걸림돌을 일본의 레코딩 엔지니어인 지다가와 마사토를 초빙해 녹음하는 정면돌파로 해결해 버린다. 멀티채널 레코딩이라는 개념과 특성을 잘 살린 1980년대 초반 한국 록의 마스터피스 중 하나다.

팀 해체와 보수적인 부친의 음악 활동 반대로 대학원 진학 후 음악 활동과 결별하는 의미에서 발표한 솔로 1집 '작은거인 김수철'(1983)을 공개한다. '못다 핀 꽃 한송이', '별리', '정녕 그대를', '내일', '다시는 사랑을 안 할 테야' 등 앨범 전곡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2집 '작은거인 김수철 2'(1984)의 '왜 모르시나',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까지 파죽지세의 상승세로 인기의 정점에 서게 된다.

당시 김수철은 1984년부터 1986년까지 3년간 각 방송국의 연말 가수상을 휩쓸며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했다.

1983년 우연한 계기로 출연한 영화 '고래사냥'에 병태 역으로 이듬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할 만큼 영화까지 영역을 넓히며 스타로서 전성기를 누린다. 영화 '고래사냥'의 음악 작업은 김수철 개인의 영화음악사를 따로 쓰게 할 만큼 많은 영화음악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모티브가 되었다.

■'기타 산조' 효시된 영화음악의 거장

1984년 부친의 별세 후 관심을 두고 있던 '우리의 소리'를 하기 위해 혼자 익혀 온 국악을 더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다. 1986년 4집 '영화음악 하나'(1986)에서는 국악가요를 다시 시도하기 시작했다. '잊어버려요'를 5개 버전으로, '세월은 가네'를 4개 버전으로 편곡하는 등 멜로디에 얽매이지 않는 변화무쌍한 편곡 능력을 펼쳐 보였다.

그는 또 이 시기에 여러 편의 영화·드라마·연극 음악을 작곡하였다. '고래사냥 Ⅰ·Ⅱ' '허튼소리' 'TV드라마음악' '노다지' 등은 '우리 소리'에 대한 김수철의 현대화 노력이 깃든 작품들이었다.

더불어 86아시안게임 전야제의 피날레 음악을 맡으며 그때까지 생소했던 국악과 록의 조화를 보여주었다. 이 곡부터 '기타 산조'라는 연주곡 작업이 시작되어, 오늘날 기타 산조라는 말의 효시가 됐다.

이듬해 1987년 5집 '김수철 제5집'(1987)과 6집 '김수철 6집'(1987)을 통해 음악과 우리 소리의 현대화에 음악적 능력을 펼치며 계속 영화음악을 만들어내는 한편, 1987년 제9회 대한민국 무용제 대상 작품 '0의 세계'를 작곡하는 등 무용음악 작곡도 하였다.

같은 해 김수철 최초의 국악음반 '金秀哲'(1987)을 발표하고, 86아시안게임 전야제 음악의 호평에 힘입어 국내 대중음악인으로는 유일하게 1988년 서울올림픽 전야제의 음악감독 및 작곡을 맡기도 했다. 낮에는 방송과 연주 활동을, 밤에는 짬을 내어 거문고, 가야금, 아쟁, 피리 등 국악기를 연마하는 주경야독의 시간을 이어가며 서서히 소리에 눈을 떠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노력은 '풍물'을 포함해 1984년부터 1987년 사이에 작곡된 8곡을 묶어 발표한 앨범 '황천길'(1989)로 결실을 맺는다. 

사진은 '명반' 반열에 당당히 오른 앨범 '황천길'.
참담한 상업적 실패와는 별개로 이 음반은 이후 '명반' 반열에 당당히 오른다. 이듬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작곡과 편곡은 물론, 드럼·기타·베이스·건반·노래까지 레코딩의 전 과정을 한 사람이 도맡아 하는 1인 10역의 기념비적 음반 'One Man Band'(1989) 앨범을 발표한다. 1991년은 9집 '난 어디로'(1991) 발매와 영화음악 및 드라마음악 작곡, 기타산조 공연들이 왕성하게 펼쳐진 한 해였다.

이때부터 김수철은 국내 영화음악계에서 가장 높은 작곡료를 받는 이 중 하나가 되었다. 1993년 '서편제' OST를 발표하며 70만 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 국내 OST 음반과 국악음반 사상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서편제 신드롬을 몰고 오기도 한다. 이어 '태백산맥' OST(1994), '축제' OST(1996), '창·娼' OST(1997) 등을 계속 선보이며 영화음악의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기에 이른다. 1998년 4월 발표한 '팔만대장경 pal·man·dae·jang·kyung'(1998)은 김수철이 18년 동안 추구해 온 '우리 소리'의 현대화 작업의 방점이었다.

■대중음악인 중 첫 순수음악상 수상

이듬해에는 대중음악인으로는 국내 최초로 순수 음악상을 수상하였던 '불림소리Ⅰ'(1992)의 연작 시리즈 중 두 번째 '불림소리Ⅱ·The Sound Of Invocation Ⅱ'(1999)를 발표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 및 공동 응원의 감동을 갖고, 김수철은 남과 북이 한마음으로 부를 수 있는 '우리는 하나, One Korea!'를 작곡했다.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식 문화행사의 음악감독 및 작곡(현대음악 부문)을 맡았으며, 개막식 행사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직접 '기타산조' 연주를 보여주었다. 그해 여름 12년 만의 정규앨범 'Pops & Rock'(2002)을 들고 대중 앞에 돌아왔다. 타이틀곡 뮤직비디오에 안성기·이미숙 등과 20년 만에 영화 '고래사냥' 멤버들이 다시 모여서 영상을 찍어 화제가 되었다.

같은 해 가을 김수철 작곡, 연주로 기타산조 솔로 및 기타산조와 대금, 가야금, 장구 등 국악기와의 협주곡으로 만들어진 '기타산조·Guitar Sanjo'(2002)를 발표했다. 서양 악기인 전기 기타의 다양한 연주 기법을 활용하여 우리의 가락인 산조를 작곡·연주한 것으로 김수철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었고 새로운 장르로 탄생한 것이다.

2004년 '작은거인' 이후 20년 만에 밴드를 결성하여 왕성한 공연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07년 데뷔 30주년을 맞아 기념콘서트로 대중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2010년에는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음악을 맡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음악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영화음악 거장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대중성을 떠나 음악성과 실험성에 깊이 빠져 있었던 이 거인의 꿈은 동서양 사람들 모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리라. 거인의 매그넘 오퍼스를 기다리는 이들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최성철·페이퍼 크리에이티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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