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가 열전] 36. 한국 솔음악 대가 김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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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판매 1000만 장에 빛나는 '흑인음악의 개척자'

한국의 스티비 원더, K 솔의 개척자 김건모는 상업적으로도 큰 업적을 이룩했다. 통산 1000만 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올린 몇 안 되는 '텐 밀리언셀러'로 20년 넘게 국민가수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 페이퍼 크리에이티브 제공

무한한 흑인 감성에 재기를 담아 1990년대를 뜨겁게 달구며 현재까지 통산 1000만 장 판매고를 돌파한 몇 안 되는 텐 밀리언셀러(10 Million seller)이자 국민 가수! 스티비 원더를 연상시키는 보컬 아우라로 대한민국을 뒤흔든 절창 김건모! 대중적이라는 측면에서 그와 비견될 수 있는 이는 동시대의 신승훈과 서태지, 그리고 80년대의 조용필 정도밖에 없을 만큼 그가 이룬 상업적인 성과는 말로 다할 수 없다.

1968년 부산 출생, 4살 때 피아노
김창환 사단 만나 데뷔 앨범 대박
90년대 초 음반마다 '밀리언셀러'

■김창환 사단과의 만남


1968년 부산생인 김건모는 4살 때부터 옆집 피아노 학원의 소리를 듣고 이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할 만큼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중학교 때부터 노래와 작·편곡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1986년 서울예대 국악과에 진학한다. 당시엔 실용음악과가 없었던데다, 선배인 가수 박미경을 따른 선택이었다. 박미경·유영석·김혜림 등과 함께 통기타 동아리 예음회에서 활동하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1988년 해군 홍보단 입대 후 음악 실력을 키운 김건모는 제대 후 1991년 '평균율'이라는 그룹의 2기 멤버로 보컬과 건반을 맡아 가요계에 입문한다. 당시 한 방송사의 콘서트에서 출연 가수가 펑크를 내자 무대에 오른다. 그를 눈여겨본 라인기획 매니저는 디제이 1세대로 다운타운가에서 명성을 떨치던 프로듀서 김창환을 연결해줬고, 이후 라인기획 소속 가수들의 가이드 보컬과 코러스로 활동하며 김건모 시대를 열 준비를 한다.

당시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팝의 트렌드를 과감히 차용하던 김창환에게 김건모의 존재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완성할 마지막 조각과도 같았다. 훗날 이 둘의 만남을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거장 프로듀서 퀸시 존스의 만남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김창환은 김건모의 그루브(Groove)와 솔(Soul)을 단박에 알아본다. 김창환 사단의 가장 값진 첫 번째 열매인 신승훈 데뷔앨범의 밀리언셀러 진입과 2집 앨범의 연이은 성공에 고무된 1992년 10월, 김건모는 1집 'Kim Kun Mo'(1992)를 발표해 히트곡을 터트리며 성공 가도를 달린다.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와 후속곡 '첫인상'으로 1993년 초 가요톱텐 골든컵(5주 연속 1위)을 수상한다. 70만 장이란 앨범 판매와 함께 방송 3사 신인상·10대 가수상·신세대 가수상까지 거침없이 석권한다.

김건모 1~4집(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음반 사진들.
1집의 심상치 않은 인기를 바탕으로 1993년 가을, 2집 '김건모 2'(1993)를 발표한다. 레게 리듬을 도입한 하우스 댄스곡 '핑계'로 단숨에 국민가수로 등극한다. 가요톱텐 골든컵을 또다시 차지하며 1994년 초반을 사실상 그의 독무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발라드곡 '혼자만의 사랑'을 시작으로 이후 발매된 앨범마다 김건모표 발라드는 그의 음악 커리어에서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이 앨범 역시 18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그해 음반판매량 전체 1위와 방송 3사 전체 대상을 차지한다.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는 이듬해 발매된 3집 'Kim Kun Mo 3'(1995)에서 폭발한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빠른 비트에 말하듯 외치는 랩과 싸비(후렴구), 고음이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잘못된 만남'이 공전절후의 히트를 친다. KBS 가요톱텐 5주 1위·SBS TV가요 20 6주 1위·MBC 인기가요 베스트50 4주 1위 등 전무후무한 기록도 달성한다. 후속곡 '아름다운 이별' 등 수록곡 전곡이 라디오에 흘러나오며, '서태지와아이들'과 가요계를 양분하다시피 한다.

이 무렵 수많은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영혼 없는 스티비 원더'라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이 앨범은 280만 장이라는 단일 앨범 사상 최고 판매치를 기록한다. 당시 길보드(불법 노점 음반상) 판매량을 합치면 비공식 600만 장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린다.

'미련' '서울의 달' 등 무수한 히트곡
재즈·블루스·솔 넘나들며
한국 대중음악에 풍성한 자양분

■'까만 백조'의 홀로서기


상업적인 대성공과는 별개로, 김건모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김창환의 혹독한 프로듀싱·사생활 관리가 부딪히며 이들의 결별이 초읽기에 들어간다. 1995년, 김건모는 김창환에게서 벗어나 홀로서기에 나선다. 자기 손으로 프로듀싱한 4집 'Exchange kg. m4'(1996)에서는 최준영·주영훈·윤일상 등 떠오르는 신예 작곡가들과 호흡을 맞추며 총 11곡 중 6곡의 작곡에 참여한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타이틀곡 '스피드'를 비롯해 '빨간우산' '미련' '악몽'까지 사랑을 받으며, 160만 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발매한 5집 'Myself'(1997)에서는 윤일상과 손잡고 본격적인 프로듀서의 행보를 보여준다. 진일보한 재즈와 솔을 기반으로 한 흑인음악의 색채가 더욱 짙어졌다는 호평을 받았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각종 가요차트 1위를 쓸어담고, 본인 곡인 '사랑이 떠나가네' 등이 히트하며 110만 장을 판매한다. 2년 후 발매된 6집 'Growing'(1999)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49만 장이란 상대적으로 저조한 판매량으로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 역시 총 13곡 중 6곡의 작사·작곡에 참여한 6집은 데뷔 최초로 1위곡 배출에 실패한 앨범으로, 밀리언셀러의 자리에서도 내려오는 불명예를 안겨준다.

그는 고심 끝에 선택한다. 4집 때 호흡을 맞춘 최준영과 함께 대중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7집 '#007 Another Days…'(2001)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미안해요'와 '짱가' 'Double' '빗속의 여인'까지 큰 인기를 얻으며, 140만 장이라는 높은 판매고를 다시금 이뤄낸다. 활발한 방송활동과 함께 그해 지오디(god)에 이어 음반판매량 2위에 당당하게 자리한다.

2년 후 8집 'Hestory'(2003)는 전작을 잇는 김건모표 발라드 '청첩장', 코믹 후속곡 '제비', 리메이크곡 '아파트'까지, 지나치게 대중성을 의식한 앨범이었지만, 자전적 가사가 담긴 'My Son'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음반 산업의 침체 속에서도 2003년 전체 음반판매량 1위, 50여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하프(Half) 밀리언셀러가 된다.

김건모는 이듬해 발매된 9집 'Kimgunmo.9'(2004)의 판매량이 전작의 십분의 일 수준으로 줄자 '방송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방송에 복귀한다. 그리고 발표한 10집 'Be Like…'(2005)는 팬과 평론가들에게 완벽한 앨범으로 칭송받는 작품이다. 역대 최고의 역작인 '서울의 달'을 포함해 재즈·블루스·솔 등 흑인 음악의 본연에 가까운 곡들만 오롯이 실린 비운의 명반이다.

지리멸렬한 음반 생태계 속에서 계속되는 좌절. 김건모는 11집 '허수아비'(2007)를 거쳐, 다시 김창환에게 돌아가 프로듀싱을 맡기는 초강수를 두지만 시간의 수레바퀴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결별 13년 만에 12집 'Soul Groove'(2008)를 발매했지만 5만여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을 뿐이다.

2012년, 데뷔 20주년을 맞아 정규 13집을 포함해 지금까지의 김건모 노래들을 장르별로 묶은 '自敍傳 & Best'(2012)를 한정판으로 발매했다. 그리고 2014년 10월, 정규 14집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연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얼마 전인 11월 중순 신곡 1곡('다 당신 덕분이라오')과 기존 곡을 리마스터링해 듀엣으로 나눠 부른 미니앨범 '50'(2016)으로 돌아왔다.

데뷔 이후 25년 동안 유행만을 좇지 않으며, 대한민국 가요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온 'K 솔'의 개척자 김건모. 안데르센 동화 속 반전 이야기는 우리 대중음악계에서도 기꺼이 입증됐다. 까만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였다는 사실 말이다.

최성철·페이퍼 크리에이티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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