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싱글맘으로 산다는 것] '홀로 키우는 사랑'이 당당한 세상, 당당 한부모!
오는 11일은 정부가 정한 열두 번째 맞는 '입양의 날'이다. 그런데 정작 미혼모와 한부모, 해외 입양인 그리고 아동권리옹호 단체 등은 '혼자라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로 2011년부터 이날을 '싱글맘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올해로 7회째를 맞는 '싱글맘의 날'을 앞두고 부산에서도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11일 '싱글맘의 날' 7회째 불구
여전히 한국 사회 편견 두터워
미혼모 육아 지원도 턱없이 부족
"다양한 가족 형태 인정하고
어떤 가정이든 아이 있으면 지원"
'미혼모' 국가 통계 작년 처음 집계
10대보다 30~40대가 훨씬 많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부산지부(대표 박영미) 주최로 지난달 29일 오후 부산진구 가야대로(가야동) 부산실업극복지원센터에서 열린 제1회 '미혼모 휴먼 라이브러리', 일명 '사람책'으로 나온 두 명의 미혼모가 자신의 이야기를 용기 있게 쏟아냈다. 미혼모로서 살아가는 아픔과 사회적 인식, 그리고 어떤 사회·정책적 변화가 있어야 하는지도 짚어볼 수 있었다.
당연한 게 당연하게 받아
들여지는 세상 되었으면…
첫 번째 '사람책' 김은희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12살 딸아이를 키우는 그는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다. 김 대표가 만삭일 때 아이 아빠가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라는 걸 깨달았지만 아이를 낳고 호적을 함께 정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저는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상속이라든지, 이 씨(남편 성)를 만드는 데 제가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모르겠어요. 유산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아이를 키우게 됐지만 지난한 세월 동안 (재판 등을 통해)싸워야 했습니다. 더욱이 제 정체성은 '과부'인데, 국가에선 '미혼모'라고 하더군요."
미혼모가 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 '드세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심지어 '그러니까 신랑 잡아먹지'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싸움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를 지킬 방법이 없더라고도 했다.
"2016년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1.17명으로 아이를 낳아 달라고 사정하는 게 국가잖아요. 그런데 미혼모는 아이를 키워선 안 된다고 해요. 아이를 위해서, 엄마를 위해서 포기하라는 거죠. 엄마가 아이를 포기하면 유기가 되는 데도 말입니다. 아이는 저항할 수도 없고, 선택권도 없어요. 만약에 시설로 보내게 되면 200만 원 이상의 지원금이 나와요. 엄마가 버렸을 때(입양을 보내면)는 지원을 하는데, 엄마가 키우면 지원금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 아닌가요? 미혼모가 내 아이를 스스로 키우는 것보다 타인에게 맡기라고 국가 정책 차원에서 부추기고 있다는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김 대표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됐다. "자기 아이는 자기가 키우는 게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한텐 그렇지 못했어요.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렇게 부당한 건가요? 특히 아이한테 '몹쓸 짓' 한다는 시선엔 정말 속상했어요. 앞에선 강한 척 싸웠지만 집에 가서 운 적도 많아요."
그렇게 해서 김 대표는 '맨땅에 헤딩'하듯 2010년부터 대구에서 미혼모 당사자 조직을 꾸리게 됐다. 훈련된 활동가도 아니었지만 '당연한 게 당연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한테는 절망감을 맛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컸다. 많은 분이 도움을 주었지만 쉽지 않았다.
"누구의 아이와 상관없이 소중한 아이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어요. 홀어머니가 아이 셋을 키웠다면 장하다고 하지만 미혼모가 세 명을 키우면 '저거 미친 년 아니가!'라는 소리를 듣는 세상이니까요. 미혼모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김 대표는 12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는 더 많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야 비로소 미혼모·미혼부 국가 통계(표 참조)가 처음 나온 사실도 지적했다.
"5년마다 한 번씩 발표하는 '인구주택총조사'에 '미혼모·미혼부' 항목을 넣기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이제는 "미혼이지만 자녀가 있습니까?"라는 항목이 생겼어요. 그전엔 '당신은 미혼입니까, 기혼입니까?'라는 질문에 미혼이라고 대답하면 자녀 표시를 아예 할 수 없었고, 법적으로는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기혼으로도 표시할 수 없었어요. 국가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건 다른 국가 지원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죠."
'2015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전국 미혼모와 미혼부는 약 3만 5000여 명. 그중에 미혼모가 2만 4487명, 미혼부가 1만 601명으로 파악됐다. 미혼 부모는 법적으로 미혼이면서 18세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이들이다. 미혼모와 미혼부의 자녀는 각각 2만 9000명, 1만 3000명으로 집계됐다.
미혼모이지만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어요!
이번엔 또 다른 '사람책' 김태림 씨 이야기로 넘어갔다. 결혼 의사도 크게 없었지만 나이가 좀 되어서 연애를 하고 헤어지는 과정에 아이가 생긴 걸 뒤늦게 알았다. 대학 졸업 후엔 일본 유학도 다녀왔고, 지금은 혼자서 피부관리실을 운영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혼모가 된 지는 어언 3년이다.
"제 나름대로는 열심히, 당당하게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미혼모가 된 순간부터 삶이 많이 달라졌어요. 초음파로 아이 심장 소리를 듣는 순간, 이 아이는 나의 운명이구나 싶어서 아이 아빠와 별개로 낳아서 기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감사했던 건 가족의 응원과 지지였다. 태림 씨의 어머니는 처음엔 아이 아빠의 존재를 묻다가 딸아이가 아이를 낳아서 기르겠다고 하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내가 도와줄게!'라고 말씀하셨단다. 태림 씨의 두 남동생도 "누나가 결정했다면 우리는 따라줄게!"라고 이야기해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미혼모라는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였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경우는 축복받은 미혼모구나 싶어서 더 당당하게 아이를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상처받는 일도 자꾸 생긴다. 자기 앞에선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동네 사람들도 사소한 언쟁이나 분쟁이 생기면 "그러니까 미혼모가 됐겠지!" 혹은 "처녀가 아이를 낳아서 키우니까 그렇지"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날 휴먼 라이브러리 참석만 해도 괜히 나와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나왔노라고 덧붙였다. 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안 순간부터 시종일관 양육을 선택했고, 단 한 번도 낙태나 입양은 생각지 않았던 만큼 더 당당해져야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럼에도 태림 씨의 경우는 출산 직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집을 물려받는 바람에 한부모가족 지원은 일절 받지 못하고 있다. 집만 해도 동생들과 공동소유나 다름없지만 명의는 자기 앞으로 되어 있고, 동생들 이름으로 돌리려고 해도 증여세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상황. 뾰족한 방법이 있나 싶어서 동사무소 같은 데 가서 상담이라도 받다 보면 갑자기 인생이 비굴해지는 것 같아서 너무나 힘들어지고, 정부 돈은 절대 받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만 든다는 것이다.
"어떤 땐 '당당해지자!'고 제 자신한테 과하게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긴장 상태가 오래 가다 보면 자칫 지칠 수 있는데 싶어서 고민은 됩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미혼모 자조 모임에도 나오는 등 다른 사람들과 적극 교류하려고 해요."
■'10대 미혼모'보다 30, 40대가 많아
두 사람의 책 발표가 끝난 뒤 청중들과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기쁜 선물을 의미하는 '베이비박스'가 아기를 버리는 상자로 통용되는 슬픈 현실이다. 대구미혼모가족협회는 본뜻을 살려서 신생아용품 꾸러미를 베이비박스로 이름짓고 미혼임산부에게 선물한다. 대구미혼모가족협회 제공
어떤 청중은 "두 분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말한 뒤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기원했다. 자원봉사자라는 또 다른 청중은 "흔히 미혼모라고 하면 10대 청소년이 실수로 아이를 낳는 것만 생각했는데 성인이 아이를 낳는 경우도 미혼모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못했다"면서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을 텐데 더 많이 공론화해서 미혼모든 누구든 아이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다는 걸 알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다는 청중 역시 "미혼모라고 하면 학생이 사고 쳐서 낳은 아이 엄마라고만 생각했는데 미혼모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많았던 것 같아서 부끄럽다"고 털어놨다.
그러자 김 대표는 부연설명을 했다. "30, 40대 미혼모가 가장 많다는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 아이가 아니면 다시는 아이를 낳을 기회가 없다는 사실도 한몫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아이가 둘이면 미혼모 인정도 못 받고, 직장을 다니고 있으면 미혼모 쉼터에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베이비박스만 해도 원래 취지와는 달리 한국에선 아이를 버리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으니까요."
김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저출산 문제와 연관 짓는다면 아이 기준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정착되었으면 합니다. 엄마가 과부냐, 미혼모냐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저도 당사자가 되고 나서 미혼모 평균 연령이 40대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미혼모의 자녀 양육 문제를 해외 입양으로 해결해 왔는데 입양의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미혼모 문제도 해결 안 됩니다."
태림 씨도 거들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미혼모라고, 한부모 가정이라서가 아니라 보편주의적인 성격의 서비스로, 아동이 있는 가족에게 임신 수당과 아동 양육 수당이 지급돼야 바람직할 것입니다. 소득에 상관없이 지원돼야 한다고 봅니다. 결핍 때문에 비굴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섯 살과 네 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30대의 미혼모는 "저는 공황장애와 불면증으로 약을 먹지 않으면 잠들 수가 없고, 집 앞 슈퍼에도 못 나가고 숨어 살다시피 하는데 당당한 두 분의 모습이 너무 놀랍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 미혼모는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나머지 이날도 차비를 아끼려고 전포동에서 1시간 넘게 걸어왔으며 두 아이는 집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대문을 잠가 놓았다고 말해 청중들을 놀라게 했다.
세 살 된 딸아이와 함께 온 20대 후반의 미혼모 당사자도 한마디 했다. 그는 임신 사실을 부모한테 알리지 못해 스물다섯 나이로 시설에 입소해 아이를 낳았고, 입양 대신 양육을 선택하긴 했는데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너무 막막하다고 울먹였다. 그나마 한부모 상관없이 지원해 주는 어린이집에라도 보냈지만 당장 일을 해서 돈이라도 벌게 되면 차상위 지위가 박탈돼 한부모 지원 서류도 뽑지 못하게 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쌀까지 떨어져 하루하루 사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자 30대의 미혼모도 말을 보탰다. 이제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큰아이가 현장학습을 간다고 몇천 원씩 돈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면서 이대로 가다간 몇 달을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기도 마찬가지로 기초생활 수급자인데 전단 붙이는 일이나 포장 알바라도 생기면 나은데 그마저도 없을 땐 자신도 굶고 아이도 굶긴다고 말해 경제적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미혼모의 단적인 면을 알 수 있었다.
한편 김 대표는 이날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자신 역시 10년 만에 '책'으로 나오니까 눈물이 나지만 처음으로 '아우팅'을 한 태림 씨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면서 "세상의 모든 아기가 친부모의 품에서 자랄 권리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미혼모의 권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문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부산지부(부산미혼모지원네트워크) 051-412-1205, 010-3669-1216.
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