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에 보내는 승전가] 박상인 전 부산교통공사 감독
입력 : 2018-05-15 19:42:33 수정 : 2018-05-16 11:39:19
日 골망 뚫던 골잡이 "후배들아 기선제압이 중요하데이~"
박상인(오른쪽 두 번째) 선수가 1976년 3월 21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축구 아시아 예선 한·일전에서 강슛으로 추가 득점을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대망의 2018 FIFA(국제축구연맹) 러시아 월드컵이 29일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대한민국 축구 사상 2번째로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을 노리고 있다. 그동안 아시아 예선에서의 부진 등으로 신태용호는 역대 대표팀 중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염원인 원정 16강 진출이 결코 이룰 수 없는 목표는 아니다. 태극전사들은 불굴의 투혼과 강한 의지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선배들이 일궈 낸 '4강 신화'에 버금가는 기적을 연출하겠다는 각오다. 국민들과 함께 태극전사들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는 본보는 부산과 울산, 경남을 대표하는 '축구 레전드'를 만나 월드컵과 관련한 추억담을 들어보고, 이들이 대표팀 후배들에게 전하는 생생한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시리즈를 마련했다.
1977년 한·일전서 맹활약
'슈퍼골'로 실제로 그물 뚫어
올드팬 지금도 이야기 회자
태극전사 월드컵 본선에선
스웨덴보다 경험 많아 유리
멕시코전 '화끈한 축구' 필요
에이스 손흥민 많이 뛰어줘야
'한국의 요한 크루이프'는 해운대 신시가지에서 황혼을 보내고 있다.
"용케도 알아보고 찾아왔네요!" 환갑을 넘긴 부산의 '축구 레전드'가 찻집에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차범근에 이어 한국에서는 2번째로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던 박상인(66) 전 부산교통공사 감독. 박 전 감독은 지금도 해운대 60대 축구회에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체중도, 축구 실력도 현역 때와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한·일전에서 골망 실제로 뚫어"경남 창녕군에서 태어나 동래고등학교에서 축구 유학을 마친 박 전 감독은 1974년 지금의 국가대표 상비군 격인 '충무' 팀에 뽑혀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듬해인 1975년 국가대표 1군인 '화랑' 팀으로 승격돼 1980년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박 전 감독은 '그 시절 이야기라면 진저리가 난다'며 고개를 저으며 말문을 열었다. "지금이야 소속 팀에서 선수를 모셔(?) 오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태릉으로 오라' 하면 가서 강제로 합숙하던 시절이니까. 외출도 토요일만 가능했어요. 국가대표란 명목으로 6년을 감옥살이한 셈이지요." 지금은 인권 문제로 난리가 날 상황이었지만, 당시엔 으레 태극마크를 달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단다.
감옥살이라며 웃고 넘겼지만 그 시절은 축구 선수 박상인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1977년 서울 동대문경기장에서 열린 한·일 정기전의 '슈퍼 슛'도 그 시절 이야기다. "그날 경기에서 오른발에 '기가 맥히게' 공이 걸렸는데 그게 경기 전날 갈아놓은 골망을 그대로 뚫고 나가버렸잖아. 다음 날 대서특필이 되고 난리가 났었죠. 지금도 어디 가서 자기 소개를 하면 올드 팬들은 '골망 뚫은 박상인'이라며 그 이야기부터 꺼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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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서 메달을 목에 건 박상인(아랫줄 맨 오른쪽) 선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따 '박스컵'이라 불렸던 이 대회에 출전한 박상인 선수 뒤로 차범근, 김호곤 등 기라성 같은 추억의 스타들이 서 있다. 박상인 제공 |
지금은 고등학생 축구 유망주만 되어도 해외 에이전트가 달라붙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그 당시는 해외 진출을 하려면 병역을 마치고 자력으로 팀을 찾아야 하던 시절이었다. 교민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박 전 감독은 1981년 분데스리가 뒤스부르크에 입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성기를 넘긴 후였던 지라 현지에서는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는 독일에 다 몰려 있던 시절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갔다면 더 좋을 뻔했지만 국내 사정 때문에 그러질 못했으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국가대표를 은퇴하고 서른이 다 된 나이의 박 전 감독에게 습한 기후의 독일 잔디를 이겨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힘보다는 기술로 축구를 하던 스타일이었는데 그 질퍽거리는 잔디는 정말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한 경기만 뛰었다 하면 햄스트링이 올라왔죠. '한국에서 요한 크루이프가 왔다'며 차범근의 프랑크푸르트와 홈 개막전에서 한국인 선수끼리 맞대결을 하기로 돼 있었는데 그 경기도 부상으로 뛰지를 못했어요. 독일 교민들의 실망감이 컸어요."
■"스웨덴보다 우리가 본선 베테랑"K리그로 돌아와 은퇴한 박 전 감독은 동래고와 부산교통공사 사령탑을 맡으며 부산에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교통공사 시절에는 축구인 삼부자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지금도 큰아들은 서울FC 유소년 코치, 둘째 아들은 부산교통공사 플레잉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추억에 젖은 박 전 감독에게 월드컵 이야기를 꺼내니 당장 '후배들이 부럽다'는 말부터 꺼냈다. 현역 시절 그에게 '축구인 최고의 무대' 월드컵은 꿈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우리 땐 아시아에 본선 진출권이 1장뿐이었어요. 거기에 이스라엘까지 아시아로 묶여 있었죠. 다들 언감생심 꿈만 꿨지 뭐에요."
자신에게는 닿을 수 없는 꿈이었지만 후배들에게는 현실이 돼버린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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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부산 해운대의 한 찻집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상인 전 감독. |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표팀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박 전 감독은 기선 제압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FIFA 랭킹은 우리가 뒤지지만 본선에서는 우리가 스웨덴보다 더 유경험자라는 걸 잊으면 안 돼요" 스웨덴전은 어떻게든 이긴다는 생각으로 덤벼들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현역 시절 멕시코와 일전을 치러봤던 박 전 감독은 멕시코와는 화끈하게 '맞불'을 놓을 것을 강조했다. "미국에서 멕시코와 친선 게임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땐 우리가 1-0으로 이겼어요. 스웨덴과 달리 체격적으로는 붙어볼 만한데 걔들은 기술이 좋아요. 그런데 악착같이 부딪히면 경기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그러나 결국에는 박 전 감독도 '에이스' 손흥민이 문전에서 결정을 지어줘야 한다고 했다. "A매치에 들어가면 관중이고 응원이고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홈경기든, 어웨이 경기든 마찬가지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에이스가 많이 움직여줘야 우리에게 기회가 납니다. 이제는 후배들도 유럽 선수들에 몸싸움이 안 밀리는 상황 아닙니까. 수비를 견고히 하면서 앞선에서 최대한 흔들어주면 득점 기회는 반드시 난다고 봅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